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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년편> - 이광수

저도잘은몰라요 2026. 8. 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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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년편> - 이광수

「나」 <스무 살 고개> - 이광수

「나」를 쓰는 말 (작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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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슨 소설을 한 편 쓸 생각을 한 지가 오래다. 「무엇을 쓸까」 하는 생각이 한 삼 년째 무시로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쓰자」 하는 것이 결정되지 못한 채 내려왔다. 
 나는 대관절 무엇 때문에 소설을 써야 하나, 하는 것을 근년에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것은 써서 무엇하는 게야? 내게는 무슨 소용이 있고 독자에게는 무슨 이익을 주는 게야? 내가 글을 아니 쓰기로 세상이 못 살아갈 것이 아니어든.」 이 모양으로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을 찾으려 하였다. 
 내 나이가 이제 쉰여섯이다. 잔글자가 잘 아니 보이고 하루에 단 열 장의 원고를 써도 가쁨을 느낀다. 아무것도 아니하고 가만히 산수간에 방랑하는 것이 지금의 내 몸으로는 가장 편안하고, 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대단히 필요한 일이다. 이 건강으로 장편 창작을 한다는 것은 제 생명을 깎고 저미는 억지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붓을 들었나. 
 생명은 뭣하자는 것인가. 이 몸의 생명은 가만히 두어도 미구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만일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무엇에든지 보람이 된다고 하면 생명을 아낄 생각은 도무지 없다. 그러므로 문제는 글을 내가 쓰는 글에 무슨 값이 있느냐 하는 데에 돌아갈 것이다. 
 세상의 많은 활동은 재물을 얻기 위하여서 되고 있다. 글도 의식을 얻는 방편으로 쓸 수가 있다. 사백자 원고지 한 장에 창작은 얼마, 평론은 얼마, 번역은 얼마, 하고 출판업자들은 이 모양으로 글에 정가를 매겨놓고, 또 글 쓰는 사람들 편에서도 자기네를 문필 노동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글을 돈으로 판다는 것은 옛날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다만 해괴한 일일뿐더러 글의 신성을 더럽히는 괘씸한 일이다. 그렇지마는 쌀 한 말에 얼마, 고기 한 근에 얼마 하는 것을 사다가 끓여 먹고야 생명을 부지하는 화식 먹는 사람인 문사로는, 부조가 남겨준 재산이 넉넉히 있기 전에는 역시 사백자 한 장에 얼마라는 재물을 받아서 쌀과 나무와 반찬거리와 그리고 담배와 술과 붓과 잉크와 원고지와, 그리고 나중에 경제에서는 당연한 일로 알겠지마는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 조상적 관념으로는 아무리 하여도 용납이 되지 아니한다. 스승은 돈을 받고 글을 팔고, 중은 돈을 받고 도를 팔고, 관리는 돈을 받고 노역을 팔고 이 모양으로 사람들이 모두 다 저 먹고 살기를 원하여 중이 되고 스승이 되고 관리가 되고 시인이 되고- 이런다고 해서야 세상이 정떨어져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지금 쓰는 원고가 책이 되어서 많이 팔려서 큰돈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 돈을 위하여서 이 소설을 쓴다고 하기는 싫다. 나는 무엇을 다 팔아먹어도 글을 팔아서 먹고살고 싶지는 아니하다. 
 돈 따매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따매 이 글을 쓰나. 아픈 머리를 한 손으로 떠받치고 졸린 눈을 억지로 떠가면서 잘 써지지도 아니하는 철필을 가지고 조희를 긋고 있다.
 나는 일쯕 문학을 짓는 나를 길가에 주막을 짓고 앉았는 이야기꾼에 비긴 일이 있었다. 험하고 지리한 인생길을 걷기에 지친 사람들이 잠깐 내 집에 들어 다리를 쉬이는 동안에 내가 하는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고 내가 부르는 노래로 아픔을 잊으라 하는 뜻이었다. 듣고 싶으면 끝까지 들어도 좋고 싫거든 중간에 마음대로 가도 좋다. 끝까지 들었다고 들은 값을 내라고 할 나도 아니어니와 이야기 중간에 나간다고 섭섭은 할지언정 원망할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람이 생기고 말이 생김으로부터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꾼이 생겼다. 머나먼 길을 갈 때에 길동무의 이야기는 다리 아픔을 잊게 할 뿐 아니라, 먼 길을 가깝게 하기도 한다. 겨울철 기나긴 밤에, 밖에서는 살을 이는 찬바람에 눈보라가 칠 때에, 깜빡깜빡하는 아주까리 기름 등잔 앞에 마을꾼들이 모여앉아서 혹은 그 중에서 한 이야기꾼이 하는 이야기를, 혹은 읽는 이야기책을 듣는 것이 인생의 큰 낙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어렵고 까다로운 소리를 하는 문학평론가, 문학사가들이 문학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하든지간에 위에 말한 것이 시인의 큰 목적이오 사명이 아니 될 수가 없다. 호메로스가 동네동네로 몰아다니면서 정자나무 그늘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손수 거문고를 타며 부른 노래가 그의 일리아스요 오딧세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 「나」도 독자 여러분에게 위로를 그리고 기쁨을 드리는 것이 목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이 이야기 「나」가 썩 재미나는 이야기가 되어서 내 아들딸을 비롯하여 세계 인류 전체가 이것을 읽고, 읽는 소리를 듣고 단 한때라도 위로의 기쁨을 드리게 하기를 빈다. 
 그러나 같은 쑥에도 그냥 쑥과 국화가 있고, 생김생김은 비슷해도 장푸(창포)와 난초는 다르다. 쑥과 국화, 장푸와 난초! 사람도 그러하고 사람이 지어놓은 예술품도 그러하다. 어디가 같으나 하면 다 같아도 어디가 다르냐 하면 다 다르다. 박달나무와 인삼은 처음 보는 사람도 알아낸다고 한다. 다 같이 나무로되, 그 몸피가, 빛깔이, 그 잎새가 열매가 모두 예사가 아닌 까닭이다. 어디를 뜯어보아도 남과 달리 아름답고 한데 모아보면 더구나 남과 달리 때를 벗고, 의젓하다. 무엇은 안 그런가. 산도 그러하고 강도 그러하다. 백두산의 위대한 평법, 금강산의 교묘한 위대, 모두 다른 산으로는 흉내내지 못하는 것이다. 다 같은 바위라도 이 산 저 산으로 놓인 자리를 따라서 그 격이 다르다. 
 시도 다른 문학도 그러하다. 다 같이, 부자의 정을, 남녀의 정을, 사랑을, 미움을, 욕심을 옳고 그른 것이언마는 그 붓대를 잡은 손의 주인의 무엇이랄까, 혼이랄까, 정신이랄까, 인격이랄까, 마음이랄까를 따라서 금도 되고 납도 되고 들도 되고 옥도 되는 것이다. 꾀꼬리라야 꾀꼬리 소리를 하고 호랑이라야 호랑이 걸음을 하는 것이다. 북소리와 소고 소리는 다만 적고 큰 것이 다를 뿐일까. 폭포 소리와 낙숫물 소리도 결코 양의 차이만은 아니다. 일말의 낙숫물 소리를 모아도 폭포 소리 하나를 당할 수 없고 장미꽃 만 송이로 연꽃 한 송이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결코 양의 차이가 아니라 질의 차이다. 그러므로 내가 좋은 이야기- 국화와 같고 난초와 같은 이야기, 큰 인경소리와 같은 이야기, 백두산 금강산과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원고지를 앞에 놓고 지름 당장에 곤두박질을 친다 하여도 그것은 될 노릇이 아니다. 붓을 간다고 될 것도 아니오, 종이를 간다고 될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을 갈아내고야, 거듭나고야 될 일이다. 
 좋은 문학이란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으로, 또 높은 이상을 빌어다가 체를 쳐서 버무리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소위 이데올로기 문학이요 선전문학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그것이 혹 허울은 좋을지 몰라도 먹어보면 설겅설겅하고 배에 들어가도 삭아서 피로 가지를 아니하야 맹장염을 일으키거나 관격,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요새에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양주와 같은 것이다. 제대로 고여서 익어서 된 술이 아니오 이 약 저 약을 타서 억지로 만든 가짜 술이기 때문이다. 비록 걸쭉한 막걸리일지라도 제대로 고여서 익은 것이면 술 본래의 맛이 있다. 참말 브랜디가 되려면 좋은 포도주를 법대로 고아야 하는 것이다. 기교와 이데올로기로 좋은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야기에서는 모든 기교와 이데올로기를 빼련다. 그러고 「나」라는 한 사람이 나서 자라서 울며 웃으며 이리저리로 왔다갔다 하며, 이 일 저 일을 하였다 말았다 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을 신문기자가 기사로 적듯이 사진사가 사진을 찍듯이 아무 사정없이 그려보려 한다. 그렇게 있는 대로 그린 그림이 어떻게 숭악한 그림이 될는지 나는 모른다. 다 그려보아서 차마 세상에 내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되면 내 손으로 그 원고 전체를 불살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보려 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남에게 해를 줌이 없이 오직 이로움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나」에 있어서는 나는 그러한 분별을 버리련다. 내가 어찌 감히 선과 악을 판단하며, 내가 어찌 감히 남에게 이롭고 해로움을 판단하랴, 어느 남도 나만 못한 이는 없으려든. 
 나는 내 몸뚱이를 날마다 남의 앞에 내어놓는다. 가족의 앞에, 친지의 앞에,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앞에 내 몸뚱이를 내어놓고 말과 표정을 통하여서 내 속을 그들의 앞에 끊임없이 내어놓고 있다. 그 보기 숭한 얼굴을, 그 부끄러운 속을. 
 못생긴 저를 잘나게 보고 더러운 제 마음씨를 바르게 믿고 혼자 좋아하던 젊은 어리석음은 해가 높이 올라와서 물안개가 스러지듯 스러질 나이가 되었다. 안개에 가리워서 으슥하게 보이던 산의 안개가 걷혀서 검으뭉투룩한 바위와 사태에 씻긴 보기 숭한 산이 분명히 드러나듯이 내 못생김과 더러움이 사정없이 내 눈에 띌 때가 되었다. 내 속을 누가 들여다보랴 하고 마음놓고 하늘과 땅까지도 속이고 살려던 어린 날도 다 지나가고 귀신의 눈이 끊임없이 내 꿈속까지도 보살피는 줄을 알아차릴 나이가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냄새나는 입김이 옆에 있는 사람의 코에 닿을까 겁을 내고 내 몸에서 떨어지는 비듬과 내 털구멍에서 뿜는 부정한 기운이 바람을 더럽힐까 겁을 내일 철도 났다. 그래서 이 몸을 둘 곳을, 숨길곳을 찾지 못하야 헤매는 괴로움을 맛볼 때도 되었다. 약왕보살이 향내나는 기름만을 먹고 몸에 불을 놓아서 향기로운 빛이 되려던 심정을 알아볼만 하게도 되었건마는 이 붓을 잡은 손의 추악한 모양을 변화할 힘은 아직 얻지 못하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세상에 빛을 주고 향기를 보내자는 것이 아니다. (어찌 감히 그것을 바라랴.) 마치 이 추악한 몸을 세상에서 없이하기 위하야 화장터 아궁이에 들어가서 고약한 냄새를 더 지독히 피우는 것과 같다. 한 때 냄새가 한꺼번에 나고는 다시 아니 나는 것과 같이 이 이야기로 내 더러움을, 아니 더러운 나를 살라버리자는 뜻이다. 그러므로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이는 코를 싸고 읽을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며 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라고 하는 한 생명이 이 때에 이 세상에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줄을 안다. 여름에 사람을 못 견디게 구는 파리나 모기도 다 인연이 있어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한 물건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기록은, 똑바로만 쓴다 하면, 사람에게 무용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한 나라, 한 민족의 흥망성쇠의 기록은 다름없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권선징악의 공리적 동기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님은 위에 이미 말한 바와 같다. 루소가 그의 참회록에 그는 후일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앞에 내어놓을 답변으로 그것을 쓴다는 뜻을 말하였거니와 내 이야기는 그런 것과도 다르다. 나는 어디 답변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무엇에 소용이 될는지는 모르나 어디 한번 있는대로 적어보자는 것이다. 다만 그뿐이다.
 어디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짚북데기 재 속에서 불씨를 주어 모으듯이 오십여년 내 묵은 기억을 주어 모아보자. 나를 사랑하여 주던 사람들, 미워하던 사람들, 무릇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던 사람들은 다 내 앞에 나오라. 나와서 지나간 일을 한번 내게 되풀이하라. 혹은 천당에 혹은 지옥에 가 있던 이들도 나와 관계를 가졌던이어든 한번 내 앞에 돌아와서 할 말을 다 하라. 원망이 있거든 원망을, 또는 미진한 정이 있거든 정담을 있는대로 한번 쏟아놓으라. 그러고 내 붓에 힘을 빌려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번 잘 적어보지 아니하려는가. 


정해년 입춘 뒤 어느 추운 날
새벽에 서울 백악산 밑에서. 

 

 

   <소년편> 

    첫째 이야기


 내가 나기는 이조 개국 오백 일년, 예로부터 일러오는 이씨 오백년의 운이 다한 무렵이요, 끝으로 둘째여니와 사실로는 끝 임금인 고종의 이십구년 봄이었다. 내가 나서 세 살 먹을 때에 갑오년 난리가 나서 평양 싸움에 패하여 쫒겨오는 청병이 내 고향으로 노략질을 하고 지난 것은 어른들에게 들어서 알 뿐이어니와 내가 살던 동네가 읍에서 삼십 리나 떨어졌을뿐더러 큰길에 멀기 때문에 직접 난리를 겪지는 아니하였다. 
 나는 나라의 쇠운에 태어났을뿐더러 우리 집의 쇠운에도 태어났다. 내 아버지가 큰집에서 작은 집으로, 거기서 또 작은 집으로 십 사오년 내에 다섯 번이나 이사를 하다가 여섯째 번에 저승으로 가버렸거니와 내가 난 것은 첫 번 옮아간 집에서였다. 그러니까 큰 집을 팔아서 작은 집을 사고 거기서 남는 것으로 유일한 생계를 삼는 정통의 쇠운의 첫머리에 내가 마흔 두 살 먹은 아버지의 만득자로 사대봉사의 장손으로 이 집에 온 것이었다. 
 내가 난 집은 돌골이 산 밑 늙은 홰나무 박인 우중충한 집이었다. 내가 외가에 가면 돌골이 도련님이라고 불려진 것은 이때문이었다. 외가에서는 우리 집을 돌골이집, 또는 돌골이 댁이라고 부르지마는 우리 동네에서는 일가들은 큰집이라 부르고, 타성 사람들은 혹은 서울집, 혹은 이 장령댁이라고 불렀다. 이 장령이라 함은 내 고조가 장령이라는 벼슬을 한 때문이어니와 서울 집이라는 것은 가장이 서울 살이를 많이 한다는 데서 온 것이라고 한다. 똔 혹은 우리 집을 정문 집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내 팔대조와 증조가 다 효자로 표정을 받아서 우리 집 대문에 단청을 하고 붉은 널에 흰 글자로 효자 아무의 문이라고 새긴 정문 현판이 달렸던 까닭이어니와 아버지가 정문 있던 집을 팔고 대문 낮은 초가집으로 떠나온 뒤로는 그 붉은 정문 현판은 종이로 싸고 섬 거적에 묶어서 으슥한 구석에 매달아만 두었기 때문에 정문집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는 내가 난 뒤에는 들어보지를 못하였다. 또 이 장령 댁이라는 택호도 내 조부때까지는 어울렸겠지마는 근년에 와서는 나 많은 이(나이 많은 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특히 우리 집에 경의를 표하여 부를 경우에 한하여 지은 모양이었다. 오직 하나 변할 수 없는 것은 당내 일가들이 부르는 큰집이라는 택호였다. 
 만일 내 조부가 우리 집에 근야 살았다면 우리 집은 좀 더 세상에서 대접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마는 풍류객인 조부는 기생 작첩을 하여가지고 읍내에서 일찍부터 딴살림을 하여서 제사 때에나 잠깐 집에 다녀갈 뿐이었고, 그나마 환갑이 지난 뒤로는 「효손 아모 노불장사」라고 축문에 쓰게 되어 영영 우리 집에는 오지 아니하므로 나는 난지 십여년에 우리집이 아주 없어질 때가 되도록 우리 집에 온 조부를 본 일이 없었다. 
 조모는 내가 낳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그를 모른다. 사진도 없던 때요, 또 영을 그릴 만한 지위도 없었기 때문에 조모의 모습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어른들이 하는 말에서 그가 키가 후리후리하고 몸피가 부대하고 얼굴이 둥글었다는 것과, 조부가 명옥이라는 기생과 딴 살림을 한 후로는 제삿날밖에는 남편의 얼굴을 대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 뿐이요, 그가 첩에게 대하여 강짜를 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는데 내가 여러 번 본 일이 있는 그의 조카되는 아저씨에 비추어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 질투의 불을 태울 사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아무려나 남편을 제삿날에만 만나다가 돌아간 조모는 결코 팔자 좋은 여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마는 나이가 스무 살이나 틀리는 쇠운 머리 선비한테 시집을 와서 밥을 굶고 헐벗는 고생까지 하다가 돌아간 어머니에게 비기면 그래도 조모의 팔자는 상팔자라고 할 것이요, 또 남편으로서의 인물로 보더라도 내 조부는 향당에 이름 높은 잘난 사람이요, 내 아버지는 어떤고 하면 무능하고 못난 편이었으니, 이 점으로 보더라도 조모의 팔자는 어머니의 것보다는 상이라고 할 것이다. 
 할머니 정은 손자가 안다는데, 할머니 없는 집, 스무 살 갓 넘은 젊은 어머니 없는 손자도 손자여니와 시어머니 없는 철없는 며느리가, 밤낮 출입만 하는 남편의 치다꺼리를 하면서 기를 줄 모르는 아이를 기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열다섯 살에 서른다섯 살 된 남편에게로 시집을 와서는 그날부터 주부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 열다섯 살 먹은 어린 주부가 우중충한 커다란 집을 혼자 지키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하여도 동정이 된다. 우리 집에는 내가 나기까지에는 다른 식구는 없고, 게다가 아버지는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다. 혹시 다 저물어서 집에 돌아오면 술이 대취하여서 돌아왔고 날이 궂은 때면 의관은 젖고 허방에 빠져가지고 돌아왔다. 열다섯 살 된 아내가 술 취한 남편을 섬길 힘이 있었을 리가 없고 그러하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를 업수히 여겼을 것이다. 이러고 좋은 가정이 될 리가 없었다. 
 그나 그뿐인가. 우리 집에는 일년에 열 번이나 제사가 있었고 어떤 달에는 일년에 열에 두 번 있는 때도 있었다. 게다가 사오 명절을 가하면 해마다 열다섯번이나 제사가 있었다. 내게 고조되는 이 네 위 제사에는 내 칠촌, 팔촌들까지도 모여와서 제사를 차렸지마는 그래도 종손부는 종손부다. 철없이 잘 할 줄 모를수록 애 어린 마음에 더욱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증조제 위 제사에는 내 오촌 두 집이, 조모의 제사에는 내 삼촌 양주가 왔지마는, 어린 어머니 혼자 손으로 차리는 두 제사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전실 두 위다. 
 아버지는 열다섯에 첫 장가를 들어서 삼 년 만에 상처를 하고 둘째 번 맞은 이는 딸 하나를 낳고 돌아가고 나를 낳은 어머니는 셋째 번 장가든 이였다. 이 전실 두 위의 제사에는 아버지도 참례하는 일이 없었으나(내가 아는 한에서는), 어머니는 이 제사도 다른 제사와 다름없이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어머니가 이렇게 어리고 외로운 것도 한 이유려니와 외조모는 가끔 집에 왔다. 아마 내 기억에도 외조모가 집에 오던 것이 남아 있다. 그는 우리 집에 올 때에는 꼭 무엇을 들고 아버지가 집에 있나 없나 눈치를 보면서 들어왔다. 그것은 아버지를 다만 점잖은 사위라 하여서 어려워하는 마음에서만이 아니었다. 어려워도 할 만한 일인 것이, 외조모와 아버지와는 나이가 십 년밖에 틀리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외조모가 아버지를 꺼리는 것은 아버지가 가의 장모인 내 외조모를 좋아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외조모를 싫어한 까닭을 다 알지는 못하나 한 가지는 안다. 그것은 외조모가 우리 집에 오면 고사를 지내거나 무르츠개질을 하는 때문이었다. 우리 집도 구가라 위하는 귀신이 많았다. 내 기억에도 남는 대로 꼽더라도 안방, 윗목, 시렁 위에 문밑께로부터 차례로 좌정한 귀신이 첫째로 마을, 둘째로 서천인데 해마다 한번 세간을 들어내고 방에 새로 흙물을 바를 때에 마을 서천의 설작을 열어 보면, 마을에는 무명과 명주로 만든 여자의 옷과 피륙이 있고 그밖에 커다란 장지에다가 채색으로 말을 그린 마지라는 것이 들어 있고 서천이라는 검은 칠한 설작에는 백목과 굵은 베가 피륙대로 들어 있었다. 마을 서천이라는 큰 그릇 위에는 이름은 잊었으나 작은 것이 둘인가 셋인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보 위의 베와 백지를 접어서 매어단 성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곳간에는 제석님이라는 신이 모셔 있었고 뒤울 안에는 「텰륭」이란 큰 오장이가 놓여 있어서 이 속에는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들어서 산다고 하면 대문간에는 광대 삼성이라는 찬란한 오색 비단 헝겊을 늘인 귀신이 있으니 이것은 대과에 급제한 집에만 있다는 명예로운 귀신이었다. 뉘에서 들었는지 기억은 없으나, 우리 집에서는 대대로 해마다 불공을 드리고 일년 일차 무당을 들여 굿을 하였다는데, 조모가 돌아간 후로 불공도 굿도 다 아니하게 되어서 그 때문에 신벌이 내려서 우리 집 세사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조모도 안 계시니 실상 고사를 지내거나 굿을 할 사람도 없었던 것이라 귀신들도 그만한 짐작을 할 것이언마는 사실상 굿 아니한 이래로 집은 점점 더 어려워져서 내가 무엇을 알 때쯤 하여서는 굿을 할 마음이 있어도 할 힘이 없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아마 외조모의 말을 들은 때문이겠지마는) 아버지를 보고, 「굿하던 집에서 굿을 안 하면 굿을 하고 싶어도 굿을 할 힘도 없어진다던데.」 하고 우리 집에서도 다시 굿을 시작할 것을 여러 번 조르는 것을 보았다. 「그 쓸 데 없는 소리 말아. 또 양씨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게지.」 하고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었다. 양씨는 외조모다. 
 그러나 만득자 외아들인 내가 몸이 따끈따끈할 때에는 굿은 못하여도 외조모가 하는 정도의 일은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는 술 먹는 것 밖에는 아무데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면서 나 하나만은 무척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어려서 잔병이 많아서 퍽이나 아버지의 속을 썩였다. 내가 앓을 때면 아버지는 출입도 아니하고 사랑에도 안 나가고 내 곁에서 잤다. 등잔에는 참기름 불을 켜고 아버지는 대님도 끄르지 아니하고 둥근 목침을 뉘여서 베고 내 곁에서 잤다. 참기름 불을 켜는 것은 정성을 드리는 표요, 둥근 목침을 뉘여서 베는 것은 잠이 깊이 들지 말자는 뜻이었다. 이러한 때에는 아버지가 외가에 사람을 보내어 외조모를 청하는 일도 있어서 외조모는 당당하게 우리 집에 들어와서 무당에게 무꾸리한 대로 무슨 무르츠개나 할 수가 있었다. 
 아마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시 불공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약하고 잔병 많은 내 목숨을 아무리 하여서라도 늘려보려고 그의 유교적인 고집도 휘여버린 것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 몸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하여 본 모양이었다. 물론 우두도 놓았다. 지금은 우두라면 누구나 다 맞는 것이지마는 오십년 전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나는 우리 이웃에 마마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고 길가 통나무에 오색 헝겊 단 집 오장이를 본 기억이 많다. 이것이 마마가 끝난 뒤에 손님(별성마마)을 냄내는 것이었다(배웅한다는 뜻이다). 작은 손님(홍역)과 큰 손님(천연두)은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두 손님을 치르고 나야만 아들 딸이 아들 딸이라고 생각하였다. 
 마마하는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대문에 금줄을 늘여 외인의 출입을 막고 온 가족은 말도 크게 못하고 조심하였다. 별성마마는 목숨을 맡은 신의 사신이어서 세상경계로 말하면 정승이나 판서와 같은 높은 어른이었고 이 손님께 조금도 불공한 일이 있으면 그 버력이 앓는 사람에게로 내려서 작으면 곰보가 되고, 크면 소경이 되고, 더 크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님을 모신 집에서는 내외가 한자리에 들지도 못하고 살생은 물론이어니와 모든 비린 것 부정한 것을 끼어서 오직 정한 소찬만을 먹고 등도 반드시 참기름 불 장등을 하였다. 그러다가 마마가 다 내어 뿜고 더뎅이가 떨어질 때가 되면 깨끗한 짚으로 오장이를 틀고 거기 색 헝겊을 달고 기타 예물을 담아서 동네 동구 밖 뽕나무에 달고 흰 떡, 무나물 같은 정한 제물을 차려서 무당이 배웅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들이나 딸이 죽지도 않고 소경도 안 되고 귀도 안 먹고 벼슬 자국(곰보)도 없이 곱게 구실을 치르고 나면 집안에는 이에서 더한 경사가 없었다. 마마라는 구실을 치르는 것이 이 세상 한 세상 인간 생활을 할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아직 우두도 안 놓고 구실도 아니한 나를 둔 아버지의 마음 조임은 용이히 상상할 수가 있다. 더구나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누가 앓는다, 뉘 아들이 죽었다 하여 아들 딸 가진 사람들이 모두 전전긍긍하는 그런 편안치 못한 시절에는 아버지는 나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때에는 외조모가 와서 여러 가지 귀신에게 비는 것도 못 본체하고 또 몸소 나를 데리고 절에 불공을 갔다. 흰 종이조각에 주묵으로 그린 이상야릇한 부적도 얻어다가 대문이며 방문, 지도리 위에 붙였다. 한번은 먹으로 그린, 머리 셋 있는 매의 그림을 갖다가 벽장 문에 바른 일도 있다. 「아버지 그건 뭐요?」 하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이것은 삼두응이라고 하는 것인데 삼재팔난을 쪼아 먹어버리는 매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삼재팔난이 무엇인지는 설명을 듣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또 풍수설을 아는 사람들을 데리고 조상의 산소들도 돌아본 모양이어서 내 조모의 산소가 좋지 아니한 혈에 있다는 것을 걱정하였으나 아마 면례를 지낼 힘이 없음인지 돌아갈 때까지도 산소를 고치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잔병치레하는 내가 미덥지가 못하여서 이 모양으로 백방으로 내 목숨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그뿐아니라 아버지는 무슨 큰 불행이 우리 집에 닥쳐오는 것을 예감한 모양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삼사년간은 항상 무슨 신비한 위협을 받는 것 같아서 가끔 꿈자리가 사납다고 낯을 찡그리고, 집터가 나쁘다고 집 옮길 말을 하고, 언제나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었고, 남자 오십이 그렇게 쇠할 나이도 아니언마는 눈에 뜨이게 몸이 수척하고 얼굴이 치사하였다. 내 철없는 어린 마음에도 불길한 예감이 가끔 생겨서 시무룩하고 담배만 피우고 앉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차차 나이를 먹고 키가 자랐다. 언제부터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였는지 모르거니와 한글도 깨치고 한문도 대학, 논어, 맹자, 중용, 구문 진보, 전집, 사략 조권 하편 같은 것도 읽었다. 나는 맹자와 중용을 글방에서 배운 것은 기억하나 천자문과 그 밖의 것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니 아마 아버지께 배웠을 것이다. 갑자, 을축 하는 육갑도 배우고 갑기지년에 병인두, 을경지년에 무인두 하는 것이며, 갑기야반에 생갑자, 을경야반에 생병자 하는 것 등도 배우고 사례도 배워서 축문도 내 손으로 썼다. 이것은 아버지가 재미와 자랑거리로 내게 씌운 것이다. 이런 것이 원인이 되어서 나는 재주있는 아이라는 소문을 내게 되었다. 나는 순임금 모양으로 눈동자가 둘이라는둥, 무척 과장된 찬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 친구들이 찾아오면 내게 글자를 물어보고 내가 그것을 알면 과연 용하다고 굉장하게 칭찬을 하였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만족한 듯이 웃었다. 
 물론 이런 칭찬은 다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요, 사실은 아니었다. 그렇지마는 나 자신도 우쭐하지 아니할 수는 없었다. 공부에 들어서는 아무도 나를 못 따르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과장하여 칭찬하는 사람들은 내 눈 정기가 좋은 것을 말하고 내 얼굴이 잘난 것을 말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천에 하나도 만에 하나도 드문 큰 사람이 될 것이었다. 
「야, 재주가 아깝구나. 세상이 말세니 재주를 쓸 데가 있나.」 하고 나를 위하여서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세 살 나던 해부터 소위 갑오경장이라고 해서 과거의 제도가 없어지고 말았으니 과거 없는 글을 무엇에 쓰느냐 하는 것이었다. 과거란 좋은 것이었다. 아무리 궁하던 선비라도 한번 과거에 급제만 하면 복록이 거기 있었다. 고문 진보에 진종황제의 권학문이라는 글이 있다. 「잘 살려고 좋은 밭을 사려 말라, 글 속에 저절로 천석 타조가 있다. 편안히 살려고 큰 집을 짓지 말라, 글 속에 저절로 황금 집이 있다. 장가들기에 좋은 중매 없어 걱정 말라, 글만 하면 얼굴이 옥 같은 계집이 있다.」 하는 것이니, 글만 잘하면 재물도 집도 미인도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서당에서 이 글을 읽는 아이들은 누구나 어깨가 으쓱하였다. 
 「진종 황제가 날 속였네.」 하는 한탄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는 모르지마는 진종 황제의 말대로 된 사람도 많았다. 개국 오백년에 잘 된 사람은 대개 글을 읽고 과거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말세가 되어서 그 좋은 과거가 없어졌으니 내가 아무리 글을 잘하기로 무엇에 쓰느냐 말이다. 
 어린 마음에도 과거가 없다는 것은 퍽이나 섭섭하였다. 정 도령이 들어 앉고 새 나라가 되어서 다시 과거가 생길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흥패 한 장이면 벼 백섬, 기와집 한 채는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이때에 글방 도련님네의 소원이요, 동시에 내 소원이었다. 
 무슨 참의, 무슨 지평 하는 아버지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 점잖았다. 망건 위에 보이는 탕건이며, 갓 끈에 보이는 은고리며, 더구나 뒤통수에 허연 옥관자며, 다 나의 부러움을 자아내었다. 그들은 걸음을 걸어도 뚜벅뚜벅, 말을 하여도 느릿느릿, 웃음을 웃어도 허허 하고 길게 힘있게, 앉음을 앉아도 떡 뒤로 젖히고 연해 좌우 순의 식지와 장지로 수염을 쓸었다. 이런 것들이 다 내가 보기에 좋고 부러웠다. 나는 그런 소위 조관들의 흉내를 내어보기도 하였다. 
 「흐어, 흐어, 흐어.」 하고 웃는 너털웃음이 그중에도 멋이 있었다. 
 나는 「과거만 있다면야」 하고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한테 과거 보는 방법도 들었다. 아버지는 승부에 초시를 하였을 뿐이요, 대과에는 낙방 거사였다. 시, 부, 표, 책이니 강경이니, 일불이 살 육롱이니, 장원이니 어사화니, 홍패니, 어주삼배니, 한림이니, 옥당이니, 이러한 말도 배웠다. 신헌부, 사간원, 예문관, 춘추관, 승정원, 이런 것도 배우고 이, 호, 예, 병, 형, 공, 육조며, 좌랑, 정랑 하는 낭관과 참의, 참판 하는 당상관이며, 이러한 것도 배우고 감사, 병사, 목사, 군수, 부사, 현감, 현령 이러한 의직도 무엇인지를 배웠다. 나는 이런 것을 아는 것만 해도 거기 가까워지는 듯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과거가 없으니 무얼 해?> 
 이 생각은 내게 절망에 가까운 그늘이 되었다. 그래도 글을 읽었다. 사요 취선, 사문 유취가 과거 준비에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떠들어보기도 하고, 엷여덟귀 시, 부를 짓는 연습도 하여 보았다. 
 지금 내 안목으로 생각하면 그때에 우리 집을 건질 길은 글공부보다도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낙방거사인 책상물림으로 아버지는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아니하였다. 어머니는 농가 생장이어서 퍽 농사를 하고 싶어 하였으나 아버지는 대대로 농사를 모르던 버릇이 고질이 되어 있었다. 
 이때에 눈 밝은 사람들은 많이 글을 집어 내던지고 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일찍부터 서두른 사람들은 얼마 아니하여서 생활이 안정되었건마는 아버지는 그럴 생각을 아니하였다. 그러고 날로 날로 가난에서 가난으로 굴러떨어져서 그가 만 오십이 되던 해에 집을 팔아서 약간의 빚을 갚고 선산 나무를 찍어서 새로 집 한 채를 일으켜 세웠으니 이것이 삼 년 후에 그가 세상을 떠나고 우리 살림이 파하여진 마지막 집이었다. 

 

    둘째 이야기


 나는 아버지의 귀하고 귀한 만득자로, 또 오대 장손으로, 재주 있는 아이로 육칠세까지는 남의 대접을 받고 자라났다. 그러나 집이 더욱 가난하여져서 아버지가 폐포 파립으로 구걸을 하다시피 하게 되매 우리 집에는 오는 손님도 끊어지고 제삿날이 되어도 일가친척도 모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가난의 설움을 뼛속깊이 느꼈다. 
 우리 집의 가난은 아버지가 넷째 집을 팔고 다섯째요 또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집인 새 집을 지을 때에 벌써 그 극도에 달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집은 방 두 간, 사당간 한 간, 부엌 한 간, 그리고는 헛간 한 간으로 된 집이어서 이보다 더 간략할 수는 없는 오막살이었고, 그것도 힘이 부족하여서 담도 반 밖에는 못 두르고 대문도 없이 칠홉 쯤 짓다가 내버리다시피 한 집인 것으로 보아서 알 것이다. 터도 물론 남의 밭 한 귀퉁이를 얻은 것이어서 김 산장이라는 사람이 싫다는 것을 아버지가 떼를 쓰다시피 하여 빌어 얻은 모양이었다. 
 집 한 채 들어 앉고 채마라고 손바닥 만한 땅이 붙어 있어서 어머니가 거기다가 오이, 가지, 강냉이, 온갖 채소를 조금씩 조금씩 다 심고 옷감을 얻는다고 삼까지도 심었다. 농가에서 생장한 어머니는 요만한 농사라도 짓는 것을 기뻐하였고 또 그 농사 덕에 여름내 가으내 푸성귀를 얻어 먹고 내가 오이와 강냉이를 따 먹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요 조그만 땅이 터지도록 여러 가지를 심었다. 호박과 바가지는 집가로 돌려 심고 외가에서 얻어온 봉선화, 금전화, 분꽃 같은 화초도 심었다. 호박꽃에는 벌들이 오고, 박꽃에는 박나비가 머물렀다. 「밭이라도 두어 뙈기 있었으면.」 어머니는 철모르는 나를 보고 이런 소리를 가끔 하였다. 실상 밭만 하루갈이 있었더라도 어머니는 온갖 농사를 다 지었을 것이다. 
 외가에는 논도 있고 밭도 많았다. 그러한 집에서 자라난 어머니는 논밭이 퍽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나도 밭과 농사에 대하여서 약간 취미를 가졌다면 그것은 이때에 얻은 것이었다. 나는 어찌하면 밭을 좋은 것을 하루갈이 사서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나 하고 궁리하였다. 그러나 칠팔세 된 아이가 아무리 궁리를 하기로 별 도리가 나올 까닭이 없었다. 
 우리 집 바로 앞이 김 산장네 큰 밭이었다. 좀 기울어져서 반듯한 밭은 못 되나 보리도 잘 되고 콩도 잘 되었다. 개울에 가까운 편은 질어서 수수를 심었다. 그 밭은 내 눈에는 한량없이 큰 것 같았다. 사실은 하루갈이나 되었을 것이다. 이 밭을 살 수가 없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돈이 어디서 나서.> 
 나는 벌써 돈의 힘을 느꼈다. 이 세상의 모든 밭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내 것을 만들려면 돈을 주고 사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 돈이 어디서 나는 것인지 그것을 나는 몰랐다. 우리 집에는 돈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때에 돈이라면 말끔 전, 쇠천, 당오 이런 것이 있었고 예전 우리 집 곳간문 쇳대에 달린 당백이라는 큰 돈도 있었으나(인제는 그 열쇠도 쓸 데가 없지마는 그래도 어머니는 그것을 가죽 끈에 단 채로 방구석에 걸어 두었다. 언제나 광 있는 집을 쓰고 살게 되면 써 보자는 것이었다.), 당백전은 쓰지도 아니하였고 당오전은 한닢으로 썼다. 그래도 나는 돈 셈을 알았다. 엽전 열 닢이면 한 돈이요, 백 닢이면 한 냥이요, 천 닢이면 열 냥이요, 쉰 냥이면 한 짝이라 하고 백 냥이면 한 바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소 한 바리에 쉰 냥 짝 두 짝을 실을 수 있다는 뜻이어서 나 같은 아이는 열 냥을 지고 가기가 힘들었다. 열 냥 꾸러미면 큰 구렁이 하나만큼 길었다. 그것을 방바닥에 꿈틀꿈틀하게 펴 놓으면 보기가 좋았다. 그런 열 냥 꾸러미 열만 있으면 어머니의 평생 소원인 밭 하루갈이는 살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집에 들어오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쌀 한 말에 한 냥, 국수 한 그릇에 다섯 닢, 엿 한 가락에 한 닢이니, 백 냥이란 돈이 어떻게 엄청나게 큰 돈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루갈이 밭이라는 어머니의 소원이 빌미가 되어서 돈벌이 하는 길을 연구하여 보았다. 쌀이나 기타 곡식이 먹고 남아서 장에 내다가 팔면 돈이 생기는 줄을 알았으나, 쌀을 사다가 먹는 우리로서는 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집에 조상적부터 내려오던 물건- 병풍, 책, 놋기명 같은 것들이 없어진 뜻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팔아버린 것이었다. 내가 울고 아니 내어 놓는 것을 잠깐 빌어간다고 나를 속여서 내 이모부에게 내어 준 칠서도 다시 돌아올 것이 아닌 것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칠서에 대하여서는 한 마디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연상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칠서는 적어도 나로부터 팔 대 이상을 전하여 오던 것일 것이다. 내 팔대조가 형제 진사로 유경하기 전부터 있던 것이라면 더 오랠 것이요, 내 팔대조가 서울서 사온 것이라면 팔 대나 된 것이다. 이 책으로 내 칠대, 육대, 오대조가 다 공부를 하였고 내 고조 장령공이며 내 증조 사간, 종증조 승지공이 다 이 책으로 공부를 하였고 내 조부, 종조부, 아버지, 삼촌이 다 이 책으로 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외조모가 돌아가서 그 초종에 왔던 이모부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루를 묵고 갈 때에 이것을 자기가 타고 왔던 말께 실리고 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꺼낼 때에 나는 알았거니와 사랑간 책을 담았던 큰 뒤조 속에는 책이라고는 고문 진보 전후집 두 질, 한훤차록 한 벌, 주자봉사 한 벌, 고조보의 일기 한 벌, 마경 한 벌, 무원록, 척사윤음, 이서필지, 이런 허섭스레기 책이 남아 있을 뿐이요, 내가 과거 볼 때에 쓴다던 사요취전, 사문유취 같은 것조차 없어지고 말았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나 모르게 꺼내어 팔아버린 모양이었다. 내게 알리지 아니한 아버지의 심정을 모름이 아니지마는 나는 무척 슬펐다. 그래서 울면서 이숙에게 팔아 넘기려는 칠서만은 아니된다고 나는 발버둥을 치고 울었다.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밭 하루갈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것만은 내어놓기가 싫었다. 
 그러나 내 받여울 형(이모의 아들)이 잠깐 빌어다 읽은 뒤에 가져온다는 말에 눈물을 씻고 양보하였던 것이다. 그후 얼마 지나서 나는 받여울 이모의 집에를 갔다. 이모는 나를 무척 귀애하였오 내 이종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수도 나를 귀애하였다. 이모 집은 잘 사는 집이기 때문에 닭도 잡아주고 떡도 하여주고 여러 가지로 대접을 받았다. 이 집에는 밭도 많고 돈도 많다고 생각하고 부러웠고, 또 형수도 있고 누이들도 둘씩이나 있는 것이 놀기가 좋았다. 우리 집은 왜 이렇지를 못한가 하고 어머니가 불쌍한 생각이 나서 이모에게 밭 하루갈이만 달랄까 하다가 부끄러워서 말을 내지 못하였다. 
 형을 따라서 서당에를 갔다. 거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에 형은 접장으로 맨 아랫목에 정자관을 쓰고 앉아 있었으나 선생만 나가면 형은 머리카락으로 활을 매어서 바늘 화살로 벽에 붙은 파리를 쏘았다. 형은 장난꾼이었다. 장가를 들고 정자관을 썼지마는 나이는 열대여섯 살 밖에 되지 아니하였었다. 그는 얼굴 잘 생기고 재주가 있고 나를 대단히 귀애해 주었다. 형수는 형보다 네 살이나 나이 위여서 다 어른이었다. 살이 희고 눈이 가늘고 아무도 없는 데서 내 머리도 만져 주고 손도 만져 주었다. 「도련님」이라고는 하면서도 제 동생같이 나를 가지고 놀았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아니하여서 「아주머니, 아주머니」하고 따랐다. 
 그 집에는 나와 동갑 되는 누이와 나보다 두 살 아래 되는 누이가 있었다. 집에서 외톨이로 자라난 나는 이 누이들과 노는 것이 제일 좋았다. 윷도 놀고, 공기도 놀고, 풀 뜯으러도 다녔다. 
 이 모양으로 나는 며칠동안 가난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잘 놀고 집으로 왔다. 내 책을 읽고 있는 형을 원망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치 밝은 데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데로 들어온 것 같았다. 첫째로 동네가 그렇다. 이모네 집이 있는 받여울은 같은 김가만 수삼십호 자성일촌하여 사는 부촌이었다. 기와집만이 십여 호나 있고 초가집은 모두 크고 깨끗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 집을 지은 곳은 우중충한 산 밑인데다가 집이라고는 단 세 채였다. 아버지는 마치 우리 집의 초라한 꼴을 아무쪼록 세상에 숨기려고 이런 외딴 곳에다가 집을 지은 것 같았다. 단 세 집이었다. 뒷집은 안채에는 노름판 붙이기로 소문난 대장장이, 바깥채에는 쪼그라진 절레 마누라와 그의 남편인지 머슴인지 알 수 없는 대감이라고 칭하는 오므라진 영감장이가 들어 살고, 앞집은 아들 형제 데리고 사는 과부의 집으로서 나이 이십이 넘은 떠꺼머리 둥룩이라는 총각이 낮에 여드름이 툭툭 불거진 것이 장가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 두 집 틈에 우리 집이 있다. 짓다가 중도에 역사를 중지한 채로 비바람에 썩고 찌그러진 집이라면 누구나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천지간에 가장 빈궁한 이웃, 그중에도 가장 빈궁한 집이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에는 삐걱하는 대문도 없고 번화한 닭, 개의 소리도 없었다. 사람도 조석을 굶는 처지에 닭, 개는 무엇을 먹이나, 쥐도 우리 집에는 붙을 리 없으니 동네 고양이도 올 리가 만무하다. 하물며 말, 당나귀의 기운찬 소리며 소, 송아지의 소박한 소리가 우리 이웃에서 날 까닭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구슬픈 생각을 안고 집에 다다랐을 때에는 어머니는 마당에서 혼자 삼을 벗기고 있었다. 텃밭에 심었던 삼을 여남은 단 베어서 다른 사람들 하는 삼굿에 넣어서 찐 것을 앞 개울에 담아 두었다가 집으로 옮겨서 벗기는 것이었다. 얼른 안 벗기면 말라서 아니 벗는다. 나는 이모 댁 이야기와 이런 대접 저런 대접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모가 싸 준 떡과 찐 옥수수와 닭의 다리와 이런 것을 어머니와 함께 점심 삼아서 먹고 어머니를 도와서 삼을 벗겼다. 잘은 못해도 어머니가 석 대를 벗기는 동안에 한 대는 벗겼다. 겨릅대는 말려 두었다가 마 가을에 게잡이 할 때에 홰로 쓰면 좋다는 말이 내게는 더욱 즐거웠다. 나는 금년에는 다른 어른들과 큰 애들 모양으로 떡 내 횃불을 들고 앞 개울에서 게를 잡는다 하면 그만해도 조금은 내가 큰 아이가 된 것 같아서 대견하였다. 
 이렇게 벗긴 삼을 어머니가 혼자 바래어서 삼실을 만들었다. 이것은 한 필 베가 되어서 이듬해 여름 옷감이 되었다. 
 아마 어머니는 이 삼베에 재미를 붙임인지 이듬해에는 누에를 한 방 놓았다. 한 방이라는 것은 길다른 발로 둘이었다. 물론 우리 집에는 뽕나무가 없었다. 재작년까지 살던 집에는 밭도 있고 뽕나무도 있었건마는 지금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뽕 따러 가는 데도 한두 번 따라가 보았다. 어머니는 바구니와 보자기를 가지고 아침 일찍 나섰다. 외갓집 밭둑으로 가는 것이다. 거기는 커다란 뽕나무가 열 나무도 넘는데 그 중에는 갈비라 하여 잎사귀 큰 뽕도 있고 또 잎이 조그만 늙은 나무도 있었다. 오디는 아직 까맣게 익지는 아니하였으나 불그스레하였고 더러 잘 익은 놈도 있었다. 나는 뽕보다도 오디 따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계집애 적에 해마다 뽕을 따던 곳이언마는 출가 외인이라 이제는 남의 것이요, 게다가 외조모까지 돌아가고 이제는 올케와 조카며느리들의 것이 되었으니 마음에 꺼리는 모양이어서 처음에는 사람이 있나 없나 하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이파리 잔 뽕을 훑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점점 이 뽕나무는 우리 뽕나문데 하는 생각이 나는 모양이어서 차차 담대하게 갈비도 따기 시작하였다. 한 바구니가 차면 보에 쏟고 이 모양으로 커다란 이불보 위에 거의 뽕잎이 그득 찼을 때에, 「뽕 따지 마우, 거 누구야, 남의 뽕을 따게.」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휘어 잡았던 뽕나무 가지를 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돌아보았다. 소리 임자는 분명 내 외사촌 형수였다. 어머니께는 조카며느리였다. 나이로는 얼마 틀리지 아니하였다. 형수는 종종걸음으로 이쪽을 향하고 오고 그 뒤에는 그 딸 나만한 계집에와 개가 따랐다. 
 나는 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직 이십 칠팔세밖에 안되는 어머니언마는 가난 고생에 나이보다는 늙었고 머리까지 적어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잠깐 어쩔 줄 모르는 듯이 멀거니 형수가 달려오는 데를 바라보고 섰더니, 무슨 결심을 했는지 천연스럽게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아서 그득 잎사귀를 훑었다. 「아, 그래도 뽕을 따네, 따지 말라는데 남의 뽕을 따. 거, 원 누구란 말야.」 
 형수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있었다. 개가 사람 앞질러 멍멍하고 주인의 노염을 알아듣고 일변 짖으며 일변 달리며 우리 모자 있는 데로 왔다. 그러나 낯익은 나를 보고는 어이없는 듯이 우뚝 서서 꼬리를 흔들고는 제 주인 쪽을 돌아보았다. 「잘 아는 사람이요.」 하고 알리는 것 같았다. 
 형수도 우리가 누군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우뚝 섰다. 그 딸만 나한테로 뛰어왔다. 나는 이를테면 그의 아저씨다. 그럴뿐더러 나와는 장난 동무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모른 체하고 뽕만 따고 있었다. <내 뽕 나 따는데 네 년이 모슨 상관야.> 하고 뻣대는 태도였다. 
 뽕 도적놈이 우리 모자인 줄을 안 형수는 머쓱하고 섰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아주머니, 내요」 하고 나설 것이지마는 나는 내 어머니와 형수와의 사이에 지금 이상한 적의가 있는 것을 알고 나도 어머니 모양으로 모른 체 하고 오디를 따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피차간에 아무 말이 없었다. 퍽이나 야릇한 장면이었다. 
 마침내 형수가 먼저 항복을 하였다. 「아이, 돌고지 도련님이요? 난 누구라고.」 
 형수는 이렇게 말하고 내 곁으로 왔다. 나는 형수를 보고 싱겁게 웃었다. 부끄러운 것 같았다. 형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조모가 내게 밤이나 떡이나 이런 것을 싸 줄 때에는 늘 이 형수의 눈을 꺼리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내 마음에도 이 형수는 만만치 아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키가 작달막하고 눈이 옴팍눈이요, 입을 꼭 다물어 그 동그스름한 얼굴에 매서운 빛이 있었다. 뒤에 두고 보아도 그 형수는 무척 똑똑하고 능한 사람이었다. 
 형수는 어머니 등 뒤로 가까이 가서 「아주머니.」 하고 반갑게 불렀으나 어머니는 고개도 돌리지 아니하고 여전히 뽕을 따면서, 「도경아, 인제 고만 집으로 가자.」 하고는 뽕나무 가지를 놓고 형수와 마주치지 아니할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뽕 보자기께로 간다. 
 나는 어머니 음성이 심상치 아니함을 느껴서 어머니를 따라가서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집이 가난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누에들은 배가 고파서 모가지를 높이 쳐들어 내어 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에 뽕잎을 듬뿍 집어서 누에 위에 활 주었다. 누에들은 좋아라고 이 눈물 젖은 뽕잎을 소나기 소리를 내면서 먹었다. 누에도 나와 같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내가 밥을 굶는 모양으로 가끔 뽕을 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비가 오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뽕을 얻어다가 누에를 아주 굶겨 죽이지는 아니하였다. 나도 가끔 동무네 집 뽕을 얻어도 오고 훔쳐도 왔다. 이렇게 도적질한 뽕, 비럭질한 뽕을 얻어먹고도 누에는 제대로 자라서 오를 때에 올라서 고치를 지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가 이렇게 구구스럽게 누에를 친 것은 내가 장가들 때에 쓸 것을 준비함이었다. 또 이삭 면화를 주워서 백목 두 필을 짠 것도 같은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침내 내가 장가드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고 그 명주와 무명은 어머니의 은 패물과 함께 내가 서울로 공부를 떠나는 노자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가 열 살 되던 해부터 벌써 나를 장가들일 생각을 한 모양이어서 아버지를 보고 조르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남들은 열한 살에 다 장가를 들이는데.」 하고 삼십이 갓 넘은 어머니는 아버지더러 며느리를 얻어내라고 보챈 것이었다. 그때에는 조혼하는 풍습이 있어서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는 아들을 열세살을 넘어서 장가들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신랑보다 사오년, 심하면 육칠년 더 먹은 며느리를 맞아다가 일변 부모가 낙을 보고 일변 하루바삐 씨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흉흉하여서 세상이 뒤집힌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던 그때에는 아들이 있으면 얼른얼른 장가를 들이고 딸이 있으면 어서어서 시집을 보내는 것이 부모로서 시름을 놓는 일이라고들 생각하였던 것이다. 
「노랑두 대가리 
물레줄 상투야 
언제나 길러서 
내 낭군 삼나」
하는 민요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도 내게 대하여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이었다. 
 어머니 생각에 나를 장가들이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명주 몇 필, 무명 몇 필, 은패물 몇 개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기가 시집올 때에 가지고 온 옷을 모두 입지 않고 장에 넣어 두었고 이불 두 채도 야청 이불보에 싼 대로 시렁에 얹어 두어서 내어 엎은 일이 없었다. 아무리 밥을 굶어도 은 패물을 내어 팔 생각은 아니하였다. 어머니는 궁한 늙은 남편을 둔 아내로서 아무 다른 낙도 희망도 없고 오직 며느리를 보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목표를 삼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이른바 날렵하다거나 칠칠한 부인은 아니었다. 이모의 말과 같이 「못난이」는 아니라 하더라도 꾀가 있는 것도 아니요, 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께는 미련퉁이 소리를 들었으나 아버지도 진정으로 어머니를 미련하다고 생각하지는 아니하였다. 
 외조모의 대상에 다녀온 후로 일체 외가에를 가지 아니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마음에 잡은 바가 굳은 표였다. 「없는 사람이 있는 일가집에 찾아 가면 무엇을 얻으러 온 것같이 생각한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모집에서 청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는 일체 안 갔고, 어느 일가집에도 가지 아니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못 살게 되었다」 하는 것을 아프게 느끼는 동시에 그 못 사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아니하였다. 아버지가 폐포 파립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어머니는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내가 여섯 살 적에 누이동생이 나고 누이동생이 세 살 먹던 해에 또 누이동생이 하나 났다. 새 집에 와서 세간은 더욱 줄었으나 식구는 둘이나 더 늘었다. 식구가 느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아버지도 최후의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셋째 이야기 

 아버지의 갓은 더욱 낡아지고 의복은 더욱 남루하여졌다. 더구나 여름에 노닥노닥한 베옷이 땀에 후줄근한 모양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나가서 열흘 스무날 집에 아니 들어오는 일이 많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는 어머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우리 사 모자는 밥을 굶어가면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 동안에 짚세기도 삼아 보고 땔나무도 하러 다녔다. 
 우리 집에는 지게나 낫이나 갈퀴나 이런 연장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새끼 한 바람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서 삭정이나 마른 풀을 들고 손으로 긁어서 묶어들고 돌아왔다. 가을이면 어머니도 밭에 나가서 콩가리를 손으로 긁어서 치맛자락에 싸가지고 돌아왔다. 쌀이 떨어지면 우리는 밥을 굶고, 시래기에 수수를 한 옴큼 두어서 끓여먹는 일도 있었다. 어머니가 심어서 기름을 내인 아주까리 기름으로 밤에 등잔불만은 켰다. 이렇게 굶어 죽게 된 때에는 아버지가 양식을 지고 들어오거나, 또는 사람을 시켜서 지워왔다. 이것을 보면 아버지가 우리를 잊지 아니하고 무엇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쌀짐은 판에 박은 듯이 밤에 왔다. 길이 멀어서 날이 저문 것인지 남의 이목을 꺼려서 부러 해지기를 기다린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아무도 찾아 올 사람 없는 우리 집 마당에 밤에 기침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나면 그것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아버지거나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모자는 밤이면 가끔 귀를 기울였다. 「쌀 받으슈.」 하고 짐꾼이 턱 하고 퇴에 짐을 내려놓은 소리에 우리들의 입은 벌어지고 가슴은 울렁거렸다. 아버지가 아니 온 것이 섭섭하나 먹을 것만 온 것도 기뻤다. 어머니는 새 기운을 얻어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밤이 이르거나 늦었거나 쌀이 생긴 때가 끼니 때였다. 우리 세 어린것들은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짓는 소리를 들으면서 맛있는 것을 먹을 것을 생각하고 기운이 나서 재잘댔다. 실로 밥을 굶은 날은 우리들은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느 섣달 대목이었었다. 밖에는 함박눈이 퍽퍽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과세는커녕 저녁밥도 굶어서 찬 방에서 모자가 올올 떨고 있었다. 「초시님 계시우?」 하고 두루막에 북두를 쩔근 졸라맨 주막집 채인들이 하루종일 외상값을 받으러 왔다. 대문도 없는 우리 집이라 그들은 안방 앞에까지 터벅터벅 들어와서 돈을 내라고 하였다. 「아버지 안 계셔요.」 나는 일일이 이들을 응대하였다. 「초시님 언제 돌아오슈. 섣달 그믐이 되어두 외상을 안 내시면 어떡헌단 말씀요. 작년 것도 밀린 것이 있는데.」 
 빚받이도 이런 소리를 하였다. 
 애초 우리 집에 돈을 받으러 오는 것이 망계다. 우리 집에 무슨 돈이 있나. 그보다도 우리 아버지에게 외상을 주는 것이 잘못이다. 술이나 국수나 주면 그저 줄 것이지, 우리 아버지가 무슨 재주로 그 값을 갚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서 나가는 빚쟁이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밤도 깊고 눈도 깊은 때에 마당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익크, 또 빚받이! 하고 귀를 기울일 때에, 「아버지다.」 하고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십 칠팔 년 내외로 살아온 어머니는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에도 아버지를 알아내었다. 우리들은 벼락같이 문을 열어젖히고 퇴로 나섰다. 과연 아버지였다. 그리고 웬 짐꾼 하나였다. 「었네, 눈 오는데 수고했네.」 하고 아버지는 우리들과 말하기 전에 한 뼘이나 되는 돈꾸러미 하나를 짐꾼에게 주어 보내었다. 아마 한 냥은 되는 모양이니 꽤 먼 데서 짐을 지워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옷과 갈모의 눈을 털고는 끙끙 하면서 짐을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우리들은 짐 가으로 돌라 붙었다. 맨 밑에 흰 자루에 든 것이 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쌀자루 위에 보자기로 싼 것, 수지로 싼 것, 유지로 싼 것들이 아이들 옷감, 당개, 미역, 고기, 소금에 절인 숭어, 김, 곶감 이런 것들이요, 아버지도 손수 들고 온 것은 술병이었다. 찹쌀도 두어 되 있었다. 얼만지 모를 작은 뭉텅이가 수두룩히 쏟아졌다. 얼른 보아도 제물인 것이 분명하였다. 섣달 그믐날도 고조모님 제사도 있고 설날 새벽에는 다례도 있을 것이다. 떡이 없는 것이 섭섮하였으나 그런 불만을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거 백 냥어치도 더 되겠어요.」 어머니는 한 가지 한 가지 집어 옮겨 놓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지나간 가난 고생도 앞날의 걱정도 일시 다 잊어버린 것 같아서 어머니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하였다. 
 나의 동생들도 다 마음을 턱 놓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도 있고 먹을 것도 있으니 도무지 걱정이 없었다. 
 나는 언젠지 모르나 잠이 깨었다. 아버지는 어느 새에 새 옷을 갈아 입고 행전을 치고 갓을 쓰고 초를 잡고 있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옆에는 벼룻집이 뚜껑이 열린 채로 있었다. 축문 두장이 서판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내 머리맡에도 새 옷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누이의 머리맡에도 다홍치마가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밤 동안에 이것을 만든 모양이었다. 
 나는 부엌에 내려가서 더운 물을 얻어서 세수를 하였다. 「가만 있어, 내 머리 빗겨 주께.」 
 어머니는 일변 아궁이에 불을 넣으며 일변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물을 차리기에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를 빗고 새 댕기를 드리고, 내 누이동생도 다홍치마를 입었다. 아버지는 초를 다 잡고는 병풍을 치고 제상을 내어 놓았다. 병풍은 다 팔다가 하나만은 남겨 놓았던 것이다. 촛대도 향상도 향으로 다 내어놓았다. 
 부엌으로부터 제물이 들어왔다. 제물이라야 산 사람의 간략한 밥상밖에 못 되었다. 매, 갱, 과, 포, 채, 모두 몇 가지가 아니 되어서 커다란 제상에 벌여놓은 것이 실로 적막하였다. 나도 바로 몇 해 전까지 이 상이 그득 차는 것을 보았었다. 비록 두부적, 무나물이라도 이처럼 적지 아니하였고, 배, 밤, 감, 대추도 구색은 하였었다. 나는 이 제상에서처럼 우리의 집이 쇠하여 가는 것을 절실히 느낀 일은 없었다. 
 「아버지, 제상은 크게 만들 게 아니요.」 내가 이런 소리를 하여서 아버지의 쓴웃음을 자아내었다. 내가 이렇게 우리 집의 쇠운을 느낄 때에는 여비 남복 두고들 날리는 집에서 자라난 아버지의 감개는 열층이나 더하였을 것이다. 칠월 내고조의 기일에는 갓 쓴 제관이 사십 명이나 되었더니라고 내종 조모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그 중에는 내종 증조 사간, 재종 증조 승지 내 조고모부 조교리, 증조고모의 아들 장령도 끼었더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우리 집이 빛나었던 날을 몸소 보지는 못하였으나 어린 마음에 그날이 무척 그립고, 현재의 영락한 가세가 한없이 슬펐다. 
 아버지는 열한 살 먹은 나를 데리고 말없이 고조모의 제사와, 내게는 오대조 이하의 심 오 위의 다례를 지내고 나니 훤하게 밝았다. 이것이 불행히도 아버지와 어머니로서는 이 세상에서 지낸 마지막 다례요, 이 생에서 맞은 마지막 설이었다.
 아버지가 그 동안에 어떤 모양으로 생활비를 벌었는지는 내가 물어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었으나 그가 만인계를 따라다닌 것만은 안다. 
 만인계라는 것은 그때에 평안감사로 있던, 돈 많이 먹기로 유명한 민모가 허가한 것으로서 천자문 순서대로 하늘천 자 일호에서부터 칠호, 이끼야 자 일호에서부터 칠호까지 만장의 표를 만들어 한 장에 석 냥씩에 팔고는, 은행나무로 알을 만 개를 만들어서 거기 각 번호를 쓴 것을 통에다가 넣고 벌거벗은 사람이 뒤흔들어서 그중에 하나씩을 통 꼭대기에 있는, 알 한 개 나올 만한 구멍으로 나오게 하여서 일등, 이등, 삼등을 뽑는 일종의 도박이다. 이렇게 알을 뽑는 것을 출통이라고 한다. 만 명이 하나에 석 냥씩이면 삼만 냥(엽전풀이로 그러하니 당으로서는 십오만 냥이요, 오늘 돈 셈으로 삼천원이다.)이니 이 중에서 일등에 만냥, 이등에 삼천냥, 삼등에 천냥 도합 일만 삼천 냥을 상금으로 주고 나머지 일만 육천냥 중에서 오천 냥을 감사의 원에게 뇌물로 바치고 그리고 남는 만여 냥으로 비용을 쓰고 마지막에 남는 것을 허가 얻은 사람이 먹는 것이었다. 만냥이라면 지금 안목으로 보면 대단치 아니한 돈이지마는 「천냥 부자는 하늘이 안다」던 그때에는 만냥이라면 수백석거리 전답을 장만할 만한 큰 재산이었다. 민모가 평안감사로 있는 동안에 평안도에는 아마 수백이라고 세일만한 만인계와 천인계가 허가되고 실행되어서 그 때문에 갑작 부자고 댕기고 탕진가산한 사람도 생겼다. 
 이 만인계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로서 한 번 일어날 길은 만인계에 일등을 타는 일이었다. 고놈의 은행알이 뱅뱅 돌다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번호를 가지고 나오기만 하는 날이면 우리 집은 걱정없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꼭 나올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내가 알기에도 우리 동네에는 아니나 한 십 리 밖에 사는 절뚝발이 백과부의 아들이 만인계 일등을 타서 제가 모습살고 있던 기와집과 전장을 사고, 단박에 장가를 들지 아니하였나. 이 절뚝발이 과부만 못할 리가 없다고 만인계를 보인다면 타관까지도 따라다닌 모양이었다. 
 한번은 여전히 우리 네 식구가 배를 곯고 있노라니까 아버지가 또 짐꾼 하나를 앞세우고 개선장군 모양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역시 짐은 쌀, 암치, 옷감 이런 것들이었다. 그때에는 아버지의 말이, 내 이름으로 표 한 장을 산 것이 이등이 빠졌는데 계란에 유골로 쌍알이 빠져서 일천오백냥밖에 못 탔다는 것이었다. 만을 쌍알만 아니 빠지고 내 번호만 빠졌더면 삼천 냥을 탈 것인데 분하다고 하였다. 저편의 알만 빠지고 내 알이 안 빠졌더면 아버지는 한 푼도 못 탔으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하고 아버지는 대단히 의기양양하여서 어머니와 우리들을 보고 말하였다. 「도경이허구 쌍알 빠진 사람이 김 소저라는 계집애란 말이야. 거 이상하지 않아.」 「거 참.」 어머니도 그것을 신통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김 소저라는 어여쁜 계집애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래, 그 김 소저라는 계집애는 어디 앤가요?」 어머니는 매우 흥미에 끌리는 모양이었다. 「앤지 어른인지 알 수가 있어?」 아버지는 싱겁게 웃었다. 「아니, 그것을 왜 안 알아보우. 우리 도경이와 나이가 상적하다면 통혼이라도 해 볼 것 아니요?」 어머니는 힐문하였다. 「그러니 그걸 무에라고 묻누.」 아버지도 아까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시우? 웬만하면 궁금해서라도 알아볼 것 아니요? 만사가 다 그러시니 당신을 어떻게 믿고 살아요?」 어머니는 보물이나 큰 기회를 놓친 것처럼 뾰로통 하였다. 모처럼 들어오는 며느리를 내어 쫓은 것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입맛이 쓴 듯이 입을 쩍하고 돌아 앉는다. 나도 아버지가 김 소저의 일을 물어보지 아니한 것을 아깝게 생각하였다. 「인제는 도경이도 열한 살이 아냐요? 남 같으면 장가 들일 때가 아냐요? 당신도 벌써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시면서 어쩌면 글쎄 며느리 구할 생각을 아니하시오?」 어머니는 모처럼 아버지가 가지고 온 쌀이며 옷감이며 반찬거리도 다 귀찮다는 듯이 두 손으로 그 짐을 발치로 와락 밀어버린다. 어머니 신이라고 사온 신발이 떼구루 시렁 밑으로 구른다. 「다 때가 있겠지, 인연이 있고.」 아버지는 이렇게 혼잣말 모양으로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김 소저라는 애도 -앤지, 어른인지도 모르지마는- 천정 배필이면 서로 알아지고 만나지겠지. 딴은 이상은 해, 그 왜 쌍알이 나온담.」 김 소저가 나와 천정 배필이 아닌 것은 이야기를 쓰는 오늘날까지도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을 보아서 분명한 일이다. 그때에 아이였었는지, 어른이었는지 모르거니와 설사 나와 같은 연배라 하더라도 벌써 육십을 바라보는 노파일 것이다. 그렇지마는 김 소저라는 이름이 내게 평상에 잊혀지지 아니하는 것만 해도 옅지 아니한 인연이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는 이 모양으로 부지런히 만인계를 따라다닌 모양이나 다시는 이등 쌍알은커녕 삼등 쌍알도 나왔다는 말은 못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한 반년쯤 전일까, 아버지는 또 의기양양하게 짐꾼을 앞세우고 집에 돌아왔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하고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엿보았다. 어머니는 인제는 아버지에 대하여서는 아무 소망도 없는 모양이었다. 밭 하루갈이도 며느리도 아버지 힘으로는 안될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 편이 되어서 아버지가 무슨 큰 수가 나서 어머니를 한번 깜짝 놀라게 했으면 좋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봇짐을 풀어서 그 속에서 종이 한 뭉텅이를 내어서 내 앞에 놓았다. 그것은 만인계 표한 책이었다. 지계호, 봉할봉에서 차례로 오십장이었다. 이것을 열 장을 팔면 한 장이구나 또는 한 장 값이 석 냥이 파는 사람의 구문이 되고 또 그중에서 알이 나오는 상금의 십분지 일을 파는 사람이 먹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것을 내어 놓은 것은 그 표를 보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 그런고 하면 나는 그 표를 보다가 사장에 박아 보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만인계 사장이요?」 나는 한껏 놀라고 한껏 기뻐하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끄덕끄덕하였다. 「어머니.」 하고 나는 부엌으로 가서 아버지가 만인계 사장이 되었다는 위대한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궁이로 내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으응.」 하고 대단치 아니하게 대답하는 것이 불만하였다. 어머니로서는 만인계 사장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려니와 아버지가 된 것이라면 대수롭지 못할 것이 의심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날 밤에는 우리 식구들이 여러 가지로 독장사 구구를 하였다. 계표 만장이 다 팔리기만 하면(그것이 부리나케 다 팔릴 것이라고 우리들은 생각도 하고 말도 하였다), 모두 삼만 냥이라, 일만 삼천냥이 상금으로 나가니 일만 칠천 냥이 남아라, 거기서 세금이라 칭하는 뇌물 제하고 비용 제하고 일만 냥이 남아라, 그것을 사장인 아버지와 재무 이모와 둘이 노나 먹어라, 아버지는 사장이니까 적어도 육천냥은 돌아올 것이요, 게다가 내나 내 동생들 이름으로 한 장씩 사서 일등, 이등, 삼등, 다는 못 나와도 일등 하나만 나와도 만 냥이니 아버지 몫 합하면 일만 육천냥이라, 내 동생이 이등 아니 나오라는 법 있으며, 내 작은 동생이 쌍알이라도 아니 나오라는 법 있으랴, 이것저것 다 합하면 일만 칠팔천냥 돈이 들어와라, 그러면 어머니의 평생 소원인 밭을 하루갈이 뿐이랴, 열흘갈이도 더 사고 논도 사고, 산도 사고, 집도 정말 좋은 집을 새로 짓고, 그리 되면 딸 가진 사람들은 다투어서 나를 사위로 삼을 것이요- 우리는 밤이 이슥하도록 이러한 토론을 하고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을 또 수정을 하고 아주 이만 냥 부자가 다 된 셈하고 자리에 들었다. 「도경이, 너 무슨 꿈꾼 것 없니?」 아버지는 이런 말을 물었다. 만인계에는 꿈이 필요하다. 꿈을 보아서 그것을 풀어서 어느 자 어느 호를 사는 것이었다. 「나는 지붕에 올라갔다가 훌훌 나는 꿈을 꾸었어.」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려서는 날아다니는 꿈을 흔히 꾸었는데 그 전날 저녁을 잘 먹고 배가 불러 잔 탓인지 아주 썩 잘 날아다니는 꿈을 꾼 것이었다. 「됐다. 그러면 새조 자나 새 봉 자를 사자.」 아버지는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새 봉 자 일호 박도경이.」 하고 사장인 아버지가 꼬챙이에 뽑힌 알을 꿰어 들고 겹겹이 돌아선 사람에게 돌려 보이는 모양이 눈에 선하였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시들하게 아는 어머니도 이러한 말은 싫지 아니한 모양이어서, 「정말 돈이 그렇게 생기면야 작히나 좋을까. 뽕나무 있는 밭도 사고 밤나무 있는 산도 사고.」 이러한 말을 하면서 빙그레 웃으며 작은동생에게 젖을 빨리고 있었다. 
 이로부터 며칠 동안은 우리 집에 꽃이 핀 것 같았다. 어머니도 웃는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물론 만인계 사장 일로 바빠서 읍내에 가 있었다. 우리는 어서어서 오월 초하룻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날은 아버지가 사장이 된 만인계가 출통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박복한 사람의 일은 언제나 박복하였다. 출통 일을 며칠 앞두고 만인계 금지령이 내려서 아버지의 경영은 수포에 돌아갔을 뿐 아니라, 그것을 허가를 내노라고 원에게, 감사에게, 또 그 밑에 있는 지들에게 뇌물로 준 오륙천 냥의 돈과 표를 박은 종이 값, 사무비는 물론이요, 사장인 아버지를 비롯하여 여러 천 냥 공돈이 들어올 것을 믿고 허비한 돈도 적지 아니하였다. 게다가 망신이 여간 망신이 아니었다. 
 후줄근하게 풀이 죽어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얼굴이 사상이었다. 본디 뱃심없는 아버지에게는 그 타격은 거의 치명적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로 아버지는 한 십여 일간 몸살을 앓았다. 편두통이 난다고 해서 동이에다가 솔잎을 쪄서 그 솔잎을 엎질러 버리고 뜨끈뜨끈한 채로 그 동이를 머리에 썼다. 이렇게 동이를 쓰고 우두커니 앉은 양을 남이 보았다면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숨이 막히지나 않나 하여서 겁이 났다. 이것을 몇 동이 계속 반복하여서 쫙 땀을 흘리고는 거뜬하다고 하고 누워서 처음으로 잠이 들었다. 이것이 어디서 나온 방문인지 나는 모른다. 
 심여 일을 되우 앓고 일어난 아버지는 더욱 말이 아니었다. 눈은 쑥 들어가고 볼은 더욱 쪼그라지고 어성도 옆에서도 들릴락말락하게 약하였다. 한 마디를 하고는 한번 힘을 주었다. 속으로 끌어들이는 어성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차 밥도 자시고 일어나서 다니게도 되었다. 몸은 이럭저럭 회복되었으나 마음은 회복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이번 만인계 실패로 하여서 영영 자기의 운명을 단념하는 모양이었다. 그 운명이란 아버지가 하는 일은 한 가지도 뜻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십이 넘어서 육십을 바라보도록 인생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에 모든 것이 실패였다. 「원 그러기로 그럴 수도 있나?」 하리만큼 한 가지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밥숟가락이 입에 닿을 만하면 무엇이 옆에 지키고 섰다가 툭 쳐서 흙바닥에 엎질러 버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복은 마치 배 안에서 타고 나온 것을 한 껍데기 한 껍데기 벗기워서 차츰차츰 더욱 박복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복이라고는 한 땀도 없는 빨가숭이가 된 것 같았다. 
 아버지의 이번 병은 나았다. 무시무시하게 수척하고 말소리도 허공에서 나오는 것 같이 기운이 없었으나 신열도 내리고 편두통도 그치고 바깥 출입도 할 수 있으리만큼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번 병에 살아난 것은 마치 고생의 미진한 분량을 철저하게 채우기 위한 벌인 것 같았다. 땔나무는 내 손으로 날마다 닭의 똥만큼씩 해온다 하여도 양식은 구할 도리가 없었고 인제는 팔아먹을래야 팔아먹을 것도 없었다. 있다면 지금 들어있는 집- 집이라 하기보다는 짓다가 중도에 내버린 것 밖에 없었으나 그것도 김 산장네 터에 지은 것이라 아무도 탐낼 것이 못 되었다. 어머니가 나 장가들일 때에 준다고 감추어 둔 백목, 명주, 은패물은 아마 아버지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요, 설사 안다 하더라도 어머니 생전에는 내어놓지 아니할 것이었다. 「쌀이 떨어졌는데.」 하고 어머니는 빈 바가지를 들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꼭 이날인지는 몰라도 내가 밖에서 들어오니까 아버지는 꿇어앉아서 칼로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 칼은 어린 누이동생이 나물 캐러 가지고 갔다 온 식칼이었다. 나는 으아 하고 울음이 터지면서 아버지 팔에 매달려서 그 칼을 빼앗았다. 
 아버지는 순순히 내게 칼을 빼앗겼으나, 그 얼굴은 마치 정신없는 사람의 것과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목에 닿았던 식칼을 마당으로 홱 내던졌다가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서 뛰어나가 그것을 집어가지고 방향없이 달아나서 산에다가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 칼을 그냥 집에 두었다가는 반드시 아버지의 생명이 끊어지고야 말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젖먹이를 안고 울고 앉아 있고 아버지는 갓을 쓰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아니 돌아올 결심으로 나가려는 것과 같이 내게는 생각켰다. 그래서 나는 매어달리고 울고 하여 아버지의 갓을 벗기고 두루마기를 벗겼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보아도 우리 다섯 식구의 살 길은 망연하였다. 꼭 굶어 죽을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이때에 마침 쌀짐이 들어왔다. 애꾸눈이 노 서방이 지고 온 것이었다. 쌀이 두 말 턱은 되고 닭이 암탉 하나 수탉 하나, 두 마리, 그리고 찹쌀과 팥과 참깨가 한 주머니씩이었다. 
 애꾸눈이 노 서방은 내 사촌 누이의 시집 먼 일가요 작인이었다. 누이는 명절 때면 애꾸눈이 노 서방을 시켜서 이런 것을 우리 집에 보내는 일이 전에도 있었다. 그 누이는 나보다 이십 년이나 나이가 위이었고 욕심꾸러기 부잣집의 며느리였다. 그는 친동기는 없고 오라비라고 나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를 끔찍스럽게 소중하게 여겼다. 그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고 그 아버지, 곧 내 숙부는 홀아비로 떠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친정이라면 우리집밖에 없었으나, 우리 집이 또 근년에는 거지가 다 되도록 궁하게 되어서 그는 시집 일가에 대하여서도 면목이 없었다. 그가 보내는 쌀이나 무엇이나 이것은 다 시부모의 눈을 속여서 훔쳐내는 것이요, 애꾸눈이 노 서방은 우리 집에 이런 심부름을 보내는 누이의 유일한 심복이었다. 
 아버지는 노 서방에게 인사말을 하고 나서, 「이번 보낸 거는 받지마는 다시 보내지 말라고 그러게.」 하고 노엽듯이 일렀다. 내 생각에도 이런 것을 받아 먹는 것은 면목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마는 오늘 만일 이것이 아니 왔더면 어떻게 할 뻔했나 하면 누나가 불현 듯 보고 싶었다. 애꾸눈이 노 서방을 따라서 금시에 나서고 싶었다. 


    넷째 이야기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극적인 임종을 말하기 전에 내 어린 시절의 애욕 생활을 돌아보려 한다. 
 내가 맨 처음 음양의 이치를 알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적히 기억하지는 못하나 내가 자란 곳이 농촌이기 때문에 닭, 개, 짐승의 배우하는 것을 볼 기회는 많았고 소, 말, 당나귀가 흘레하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랑 아이들이랑 돌라서서 구경하던 것도 분명히 기억된다. 그런 경우에는 멋들어지고 말솜씨 있는 패들이 마치 우리 애송이들에게 강의하듯이 음탕한 소리를 음탕한 음성으로 음탕한 몸짓으로 지껄이는 것이었다. 또 여름 장마때나 겨울 처삼거나 새끼를 꼴 때에는 그들의 화제는 모두 음양에 관한 것이었다. 나같은 애송이들도 그 틈에 끼어서 그들의 음탕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고 남녀 생활에 호기심도 가지게 되었다. 
 내 동무에 몽급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지마는 나보다 영리하여서 아는 것이 많았다. 나는 투전하는 것도 그에게서 배우고 더러운 소리도 그러하였다. 그는 얼굴이 이쁘장하고 눈이 실눈인데다가 웃을 때에는 눈이 온통 웃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나불나불 말을 잘하고 무엇을 훔쳐내는데도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를 일변 꺼리면서도 웬일인지 그와 같이 노는 때가 많았다. 몽급이도 제 이웃에 운걸이니, 덕경이니 하는 동무가 있으면서도, 「도경아, 도경아.」 하고 까치걸음으로 나를 부르러 왔다. 그러면 나도 저항할 수 없이 튀어나갔다. 그가 대개 올 때에는 반드시 무슨 재미있는 계획을 가지고 왔다. 이를테면, 「야, 우리 오늘은 운걸네 밤 도적질 가자.」 하는 이러한 계획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아니 끌려가지 못하였다. 나는 마음이 약하여 남의 말을 거절 못하는 성미가 어려서부터 있었다. 이것이 많은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업보다. 
 몽급이는 나무에도 잘 오르고 담도 잘 넘었다. 나는 둔해서 그런 재주가 없었다. 
 아마 열 살 적인가. 하루는 나는 몽급의 집에 끌려가서 막걸리에 밥을 말아서 몽급이와 둘이서 나누어 먹었다. 이 술은 아마 몽급이네 제삿술인 모양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술을 먹어서 얼마 아니하여 어릿어릿 취하여 옴을 느꼈으나 몽급이는 말짱하였다. 「우리 한 잔씩 더 퍼먹을까.」 하고 몽급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주 구미가 당기는 듯이 입을 냠냠해 보였다. 우리는 한 잔씩을 더 훔쳐 먹고 몽급의 집에서 나왔다. 나는 얼굴이 우럭우럭하였다. 
 우리는 쏜살같이 운걸네 밤나무판으로 가서 아직 아귀도 안 튼 밤을 막 따서 바지가랑이가 땅에 닿도록 넣어 가지고 막 거기를 떠나려 할 적에, 「이놈들, 밤 따지 말아라!」 하는 소리가 벼락같이 들렸다. 우리는 쥐 모양으로 풀속으로 언덕 밑으로 헐레벌떡 거리고 달아났다. 「망할 놈의 새끼들. 이 담에 또 왔단 보아라, 다리 마댕이를 분질러 줄 테니.」 하고 엄포하는 것은 운걸이 아버지였다. 그는 뚱뚱보요 다리가 짧고 자분치가 언제나 목덜미를 덮도록 흘러 내려오는 거무스름한 늙은이였다. 「히히.」 하고 몽급이는 나를 돌아보고 웃었다. 조금만 걸음을 걸어도 씨근거리는 운걸 아버지로는 우리를 쫓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는 뛸 것도 없었다. 휘파람을 불어가면서 천주산 기슭 으슥한 골짜기 사래밭을 찾아서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는 우리가 가끔 놀러 오는 곳이었다. 여기는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아니하고 바람도 없고 길에서는 멀고 훔쳐 온 것을 처리하면서 막 딩굴고 놀기에는 십상이었다. 
 우리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불을 피웠다. 몽급이는 부시 쌈지를 가지고 다녔다. 밤을 구워서 먹어가면서 우리는 다리를 뻗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술 먹은 것이 점점 취해 올라와서 낯은 후끈거리고 정신이 이상하였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는 마치 술 취한 어른 모양으로 「하하하하」 하고 몇 차례나 웃었다. 대단히 유쾌하였다. 
 이때였다. 내가 몽급에게서 음양에 관한 자세한 강의를 들은 것이. 나는 그때까지는 사람은 닭, 개, 짐승과는 달라서 그런 절차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사람도 그러나?」 하고 내가 의아하여 하는 말에, 몽급이는 참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허리가 끊어지도록 한바탕 웃고 나서, 「이 바보야.」 하고 나를 놀려먹었다. 「내 말이 거짓말인 줄 알어?」 하고 몽급이는 분개한 듯이, 「내 말을 안 믿거든 오늘 저녁 우리 집에 가서 나하구 자. 그럼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구 자는 것을 보여 주께.」 하고 단언하였다. 나는 몽급의 말대로 그날 밤 몽급이네 집에 가 잤다. 그리고 몽급이가 약속한 것을 보았다. 
 나는 안 볼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였다. 거기 대하여서 일종의 흥미를 느끼면서도 진저리 치도록 불쾌하였다. 사람이 닭, 개, 짐승과 같다는 것이 아무리 하여도 더럽고 끔찍끔찍하였다. 나는 이때에 예수교를 안 것도 아니요, 불교를 안 것도 아니언마는 어디서 이런 생각이 났을가. 전생부터의 무슨 인과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뒷집에는 창린이라는 타관서 떠들어온 한 가족이 살고 그 바깥채에는 아버지더러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전레 모신 여편네가 살았다. 우리는 이 여편네를 서인 마누라라고 불렀다. 그는 아버지보다도 나이 십 년이나 더 위요 얼굴이 굴굴쪼글한 노파였으나 키가 후리후리하고 턱에는 사자볼이 축 늘어지고 매우 풍신이 좋았다. 같은 밀양 박씨라 하여서 그럼인지 그는 세상이 다 버리는 아버지를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일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대감님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감장이였다. 이는 아마 칠십은 되었을 것이다. 이는 위에 두엇 아래 두엇 내놓고는 오므람이요, 머리도 다 빠져서 상투라야 서너 오라기 센 터럭을 어찌어찌 비끄러맨 명색만이 상투연마는 낯빛은 불콰하고 손은 억세어서 겨울에는 땔나무를 젊은 사람 볼 쥐어지르게 하고, 게다가 본래 바닷가에 살던 사람이라 고기잡이에 익숙해서 얼임이 얼어붙은 삼동설한에라도 조개, 숭어, 낙지 등을 잡아오기가 일쑤여서 서인 마누라네 밥상에만은 맛있는 생선이 떨어지는 때가 없었다. 서인 마누라는 보살님을 모셔서 겉으로는 비린 것을 아니 먹노라고 하면서 남이 아니 보는 데서는 곧잘 먹는 모양이었다. 
 서인 마누라는 이 영감 덕에 땔나무와 반찬 걱정이 없었건마는 내가 보기에는 언제나 그는 이 영감을 구박하여서 어서 집으로 가라고 호령하였다. 그래도 이 늙은이는 오므람이 입으로 싱글벙글하면서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나는 몽급에게서 남녀의 관계를 설명들은 때부터는 이 두 늙은이도 그러한 까닭으로 붙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그 안채 창린이네 집도 이상하였다. 창린이는 직업은 대장장이면서도 대장간은 비어 놓고 노름판으로 돌아다녔다. 창린이 처는 그 친정 어머니와 같이 한 달이면 스무날은 남편 없는 집에 있었다. 초저녁이면 그 집에 내순이니 둥툭이니 하는 동네 젊은 사람, 늙은 총각들이 모여서 투전을 하였다. 이렇게 투전을 붙이면 꼰이라고 하여 하룻밤에 몇 냥씩 방세가 떨어졌다. 
 그러나 창린이 처가 늘 분을 바르고 분홍치마 노랑 저고리를 때 아니 묻게 입고 은가락지를 언제나 치마고리에 달고다니는 것은 그 꼰으로만이 아닌 줄은 나도 눈치채게 되었다. 그것은 언젠가 밤중에 내순이와 둥툭이가 창린네 집에서 대판 싸움을 하고 그때에 창린이 처가 꺼이꺼이 울면서 우리 집으로 피난 온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생각에 이 집은 발 들여놓지 못할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 앞으로 지날 때에는 퉤하고 침을 뱉는 버릇이 생겼다. 이에 대하여서는 어머니가 내게 무슨 말을 일러준 까닭인지는 기억이 없으나 어머니는 내나 내 동생이 창린네 집 옆에를 가는 것을 보면 무서운 눈으로 불러들이던 것을 보아서, 내가 그 집을 더럽게 본 것은 어머니의 영향인 성싶게 생각된다. 
 나는 이렇게 열 살 미만에 음양에 관한 지식을 얻어서 혼자 속으로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우습게도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 여자에게 마음이 끌린 경험을 얻기는 열다섯살적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도 다 돌아가고 우리 집은 다 없어지고 내 한 몸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일본 동경으로 공부를 가게 되었으나 학비가 없어서 이태만에 고향으로 떠들어온 이듬해 정월 대보름 명절에 생긴 일이었다. 
 아다시피 집이 없는 나는 이 집 저 집 일가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처음은 오래간만이라고 나를 반갑게 맞아 주지마는 거지와 다름없는 나를 여러 날 묵히기를 좋아하는 집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은 나는 그때에는 큰 이단자여서 안방에 들이기도 사위스럽게 또는 징그럽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조상 부모하고 집 없이 떠돌아 다닌다는 것은 청승꾸러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내깐에는 잘난가 싶고, 장차 대신의 지위에도 오를 것이라고 뽐내지마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아 주지를 아니하였을 것이다. 기껏 호의를 가진 사람이라야 나를 박복한 고아로 불쌍히 여겼을 것이요, 그만한 호의도 없는 사람이면 나를 집에 들이기에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으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어느 집 문전에 들어설 때보다도 그 문을 나올 때에 그 집 사람들이 기뻐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남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청승꾸러기면 고독 속에 가만히 있었으면 좋으련마는, 사실은 그와는 반대여서, 세상에 나를 반가와하는 사람이 없을수록에 나는 더욱 사랑을 갈망하였다. 마치 아귀의 앞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보이되 입을 대어서 먹으려면 그것이 못 먹을 것으로 변한다는 것과 같이. 게다가 나는 돈보다도 지위나 명성보다도 누구의 사랑을 구하는 성품이다. 나를 만져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같이 어려서만이 아니라 낫살 먹은 뒤에도 생각하는 가여운 업보를 타고 난 중생이다. 사랑을 구하면서 사랑을 못 받는 것은 배고픈 일이었다, 헐벗은 일이었다. 
 일본서 초겨울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따뜻한 집을 찾고 따뜻한 손을 찾아서 겨우내 헤매었으나, 그러한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해가 바뀌고 정월 대보름이 된 것이었다. 
 나는 무슨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나 이번 대보름을 외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외가라야 외조모도 없고 내 형들도 다 죽어버리고 홀 형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쓸쓸한 외가였다. 그 형수라는 것은 어머니와 나와 뽕 따러 갔을 때의 소리치고 따라나오던 이다. 그도 과부가 된 것이었다. 「보름이나 쇠서 가시우.」 오래 있기가 미안해서 떠나려는 나를 형수는 이렇게 붙들어 주었다. 그것이 퍽이나 고마웠다. 
 이 집에는 내 외사촌의 딸이 셋이 있었다. 둘은 내 나이요 하나는 나보다 어렸다. 그러고는 하늘 천 따지를 배우는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이 네 아이들이 나를 환영하였다. 아마 내 이야기에 반한 모양이어서, 아저씨, 아저씨하고 나를 따랐다. 
 열 사흗날인가 열 나흗날인가 어느 밤에 이 집에는 동네 처녀들이 오륙인이나 모여와서 놀았다. 사내 청, 계집애 청이 다르니 나는 거기 섞여서 놀 자격이 없지마는 내 조카딸들이 나를 기어코 끌어내어서 저의 청에 넣어 주었다. 계집애들이라야 지금은 열 대여섯 살이 되어서 어섯버섯하게 되었지마는 내가 어려서 외가에 다닐 때에는 코를 흘리고 같이 놀던 애들이다. 그러나 인제 시집갈 나이들이 된 그들은 그때에 장난 동무라고 나와 가댁질을 할 계제는 못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우리가 놀기를 시작한 것은 술래잡이였다. 우리들은 서로 손을 잡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원을 만들고, 한 아이는 도적놈이 되고 한 아이는 눈을 싸매고 술래가 된다. 도적놈은 아니 잡히려고 우리들의 등 뒤로 돌기도 하고, 우리들의 팔 밑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우리들의 몸 그늘에 숨기도 하면 눈 싸맨 술래는 두 팔을 벌리고 이것을 잡으려고 따라다닌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들은 「어디 장차.」 하고 다음 사람이, 「어느 문으로?」 하면 또 다음 사람이, 「동대문으로.」 하면서 다음 사람의 손을 잡은 채로 팔을 번쩍 들어 주면 이것이 동대문을 여는 것이어서 쫒기던 도적놈은 이 문으로 들어갈 수가 있고, 한 번 이 둘레 속에 들어오면 다시 나오기까지는 술래가 그를 잡지를 못한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이 다시, 「어디 장차?」를 시작하여서 다시 아까 모양으로 계속이 되는데 이번에 「동대문으로」 할 때에는 안에 피난하였던 도적놈이 그 문으로 순라군에게 잡힌 위험을 무릅쓰고 둘레 밖으로 나가서 다음 번 문이 열릴 때까지는 둘레 밖에서 재주껏 아니 잡히도록 피해야 된다. 이러다가 도적놈이 둘러선 어떤 사람의 허리를 안고 피해 있는 동안에 공교히 순라에게 잡히면 순라는 제 눈을 가리웠던 수건으로 도적의 눈을 싸매어 순라를 만들고 도적에게 허리를 안겼던 사람이 제 자리를 고만둔 순라에게 사양하고 도적놈이 되어야 한다. 이 모양으로 이 놀음은 끝이 없이 계속이 된다. 달이 높이 올라와서 우리들의 그림자가 짧아질수록 우리들의 흥이 높아간다. 「어디 장차?」 「전라도 장차.」 「어느 문으로?」 「동대문으로.」 하는 리듬도 더욱 세련이 된다. 다들 제 목소리껏 연습이 되는 까닭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계집애들 틈에 혼자 끼인 것이 열없었으나 차차 유쾌하였다. 둘러선 계집애들 중에는 특별히 얼굴이 어여쁜 애도 있고 몸내가 나는 애도 있고 목소리가 고운 애도 있고 갸득갸득 웃기 잘하는 애도 있었으나 달빛에 보는 명절 차림을 차린 계집애들은 다 어여뻤다. 어느 한 아이에게나 한 가지 어여쁜 데는 다 있었다.  
 술래는 눈을 싸매었기 때문에 앞을 못 보아서 내 어깨를 도적놈의 어깨로 알고 치는 일도 있고 팔로 더듬어서 도적으로 알고 내 허리를 안으려다가 난 줄 알고 깜짝 놀라 달아나는 일도 있었으나, 눈 밝은 도적놈이 된 처녀들은 커다란 까까중이 총각 녀석이 내 몸에 손가락이 스치는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까지나 도적놈도 순라도 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섭섭하였다. 
 그러나 내 조카들이 도적이나 순라가 되었을 때에는 예사롭게 내게 매어달렸다. 이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도적놈이 될 기회를 얻었고 도적놈이 되면 자연 순라가 될 기회도 얻었다. 도적놈이 되었을 때에는 자연히 다른 처녀들을 건드리기가 미안한 관계로 조카들 옆에만 숨었으나 눈을 싸맨 순라로는 설사 목소리로 이것은 누구라고 구별한다 하더라도 꼭 조카들만 고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의 집 처녀와 몸이 부딪치기도 하고 내 손으로 그의 등이나 어깨를 치기도 하고 그 허리에 내 팔을 감기도 하였다. 그런 경우에는 부끄러우면서도 유쾌하였다. 
 내가 도적이 될 때마다 조카들 곁에만 숨으면 조카들은 안된다고 항의하였다. 저를 내 대신 잡아 넣는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해서 나는 차차 파겁을 하였다. 그래서 미안하던 마음도 내버렸다. 나는 이러한 자유를 실컷 향락하려는 마음이 났다. 부러 한다고 눈치 안 채울 만큼 나는 자유롭게 아무나 붙들었다. 내게 붙들린 것이 조카인 때에는 붙들린 본인만이 꺄득꺄득 웃었으나 그것이 낯선 다른 처녀일 때에는 일동이 모두 와 하고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 웃음이 특별히 나를 책망하는 웃음이라이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재미있고 유쾌한 웃음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만 그렇게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니라 계집애들도 내게 대하여서 차차 허물없이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였다. 눈을 뜬 도적놈도 내 등에 와서 내 허리를 살짝 안고 서기도 하고 내 겨드랑 밑으로 와 붙기도 하였다. 
 그중에도 실단이라는 계집애는 처음에는 그 갸름한 맑은 눈으로 나를 슬쩍 보고는 나를 피하더니 얼마 아니하여서 내 조카들과 다름없이 내게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얼굴빛이 볕에 글은 것처럼 거무스름하였으나, 그 거무스름한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일 만큼 얼굴의 윤곽이며 몸매가 고왔다. 둥그스름한 판에다가 코하며, 입하며, 눈하며 그 모양이나 위치나 비례나 다 어여뻤고 더구나 그의 까만 머리채는 거진 발뒤꿈치에 닿을 만하여서 그가 뛸 때문 은국화 판에 석웅황 단 댕기를 들인 머리채가 달그닥달그닥 소리를 내이며 꿈틀거렸다. 열다섯 살로는 결코 숙성한 편도 아니지마는 처녀의 아름다움은 내 눈에도 남김없이 다 핀 것 같았다. 그는 꺄득거리는 패는 아니요 도리어 조용한 편이었다. 나는 그가, 「어디 장차?」 하고 소리를 물론 알아들었으나 그것은 힘껏 마음껏 뽑는 소리가 아니요, 부득이 하여 조심조심히 꾹꾹 눌러가며 내는 소리였다. 그것이 내 귀에는 더욱 은근스럽고 단아하게 들렸다. 음성은 좀 약하였으나 소리청은 고왔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 중에 실단에게 강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내 몸 가까이 뛰어 올 때면 내 몸이 그에게로 쏠림을 느꼈다. 그가 내 허리를 반쯤 안고 뒤에 와서 붙을 때에는 일부러 무관한 체 힘을 써야만 내 마음의 평정을 보전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서 나는 이런 일을 발견하였다. 실단이가 달빛을 반사하는 그 갸름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나 그 노랑 저고리 끝동 단 소매로 내 허리에 감길 때에나 그는 젖먹이 어린애와 같은 무관심한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적지 아니한 실망을 가지고, 동시에 더할 수 없는 귀여움을 가지고, 그가 나와 같이 남녀 관계에 눈뜬 아이가 아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내가 사내라는데 대하여서는 전혀 무관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무슨 사건이나 증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도 천연스럽게, 하도 허물없이 내게 매어달리는 것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판단케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깨달았다고 해서 그에게 대하여 일어나는 어떤 불길이 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와 같이- 내가 제게 대하여서 느끼는 것과 같은 간절한 사모의 정을 느껴 주었으면 하면서도 그의 어린애 마음속에 더욱 높고 깊고 더욱 나를 끌어 결박하는 힘이 있음을 느꼈다. 
 진실로 자백하거니와 나는 지금까지 몽급이에게서 배운 남녀의 정 밖에 몰랐다. 창린이 처, 서인 마누라- 남녀의 정이란 그저 그런 동물적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러한 몽상도 못하던 사랑을 느낀 것은 이날 밤, 실단에게 대하여서가 맨 처음이었다. 
 술래잡기도 끝이 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좀 더 이 놀이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형수가, 「다들 들어와서 엿도 먹고 윷도 놀지.」 하고 부른 소리에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우럭우럭하였다. 더운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들의 몸이 어떻게 꽁꽁 얼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들 빙 둘러앉았다. 형수는 나를 아랫목에 앉히고 어른손님 대접을 하였다. 계집애들은 마치 처음 만나는 스스러운 남자 앞에 있는 모양으로 고개들을 고부슴하고 치마폭으로 무릎과 발을 감추고 점잔하게 앉아 있었다. 오직 조카들만이 제 집이라고 펄렁거리고 왔다 갔다 하며 윷, 윷판, 윷말, 감, 엿, 밤, 대추, 곶감 이런 것을 단번에 가져올 것도 두 번 세 번 날랐다. 
 먹을 만큼 먹고 나서 우리는 윷판을 차렸다. 먼저 편을 가를 때에 나를 어느 편에 넣을까가 문제가 되었다. 내 실력을 모르는 그들은 나를 제 편으로 끌 것인가 아닌가를 의심하는 모양이서 모두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단이도 그 갸름한 눈으로 나를 보고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나는 거와 한편이 되고 싶었으나 혐의쩍어서 그런 의사표시는 못하였다. 이렇게 유여 미결할 때에 나보다 한 살 위인 조카딸이, 「아저씨는 우리 편에 와.」 하여서 내 거취를 결정해 버렸다. 실단이와는 적이 된 것이 섭섭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큰 조카는 내가 윷을 잘못 노는 줄 알고 주인의 겸양으로 나를 제 편으로 끄는 것이라고 나는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의외에도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윷을 잘 노는 편이어서 얼마 아니하여서 내 인기가 높이 올랐다. 편윷으로 놀 때에는 그다지도 아니하였으나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놀 때에는 내 솜씨는 더욱 놀라왔다. 옆에서 실단이가 칭찬하는 눈으로, 또는 마음 조리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내 실력을 갑절이나 높여 주는 것 같았다. 윷가락이 손에서 마음대로 놀고 힘껏 들어 던져도 소복소복한 데 모여 떨어졌다. 
 실단이하고 나하고 마주 겨룰 때가 내게 가장 행복된 순간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잘 노는 윷은 아니나 그의 생김생김과 같이 어여쁘게 얌전하게 놀았다. 그의 소복이 부은 듯한 조그마한 손은 대단히 민첩하게 움직였다. 침착한 그는 한번도 낙판을 하는 일이 없었고 또 말을 쓰는데 지혜로와서 허욕이 없었다. 가령 도나 개에서도 여간해서는 굽는 일이 없고 한 구멍이라도 더 갔고 내 큰 조카 모양으로 여러 말을 너븐히 붙이는 일이 없이 한 동씩 착착 내는 주의였다. 그것이 모두 다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실단이를 지우고 싶지 아니하고 내가 그에게 지고만 싶었다. 그러기 위하여서 나는 여러 가지로 꾀를 부렸다. 가령 그의 말이 모도간이나 도캐간에 있을 때에 나는 겉으로는 기어이 잡는다고 벼르는 양으로 꾸미면서 윷을 낙판을 시킨다든지, 또는 그의 추격을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경우에도, 걸으로는 욕심을 부리노라고 방자하여서 그에게 잡히기 쉬운 악막을 쓴다든지, 이러한 부정한 수단을 썼다. 그럴 때에는 실단이는 눈을 치떠서 나를 힐긋 보았다. 명민하게도 내 얕은 꾀를 알아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때엔느 다른 계집애들도 입을 삐쭉하였다. 내 속에 먹은 마음이 그들에게 통한 것이다. 나는 낯을 붉혔다. 그리고는 얕은 꾀를 감추고 얼마쯤 내 힘대로 논다. 그렇지마는 한 번 기울어진 운수는 쉽사리 회복되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마침내 예정한 대로 실단에게 진다. 「흥.」 하고 말괄량이 기운이 많은 내 큰 조카가 빈정대고 코웃음을 한다. 「다 알아. 아저씨가 부러 졌어.」 하고 나와 실단을 흘겨본다. 실단은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들은 가갸거겨밖에 배운 것이 없건마는 모든 눈치는 다 발달되었다고 나는 놀랐다. 
 나와 큰 조카와의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도 부러 질 테유?」 큰 조카는 쟁두를 할 때에 벌써 빈정거렸다. 「이번에는 부러 이길걸.」 나는 이렇게 농쳤다. 그러고는 실단에게 진 것이 부러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기회에 변명하리라 하여, 「그렇게 마음대로 이기려면 이기고 지려면 지나.」 하고 나는 기운을 내려는 듯이 도사리고 앉았다. 「이번에는.」 하고 큰 조카가 앉음앉이를 고치고 윷가락을 이리 고르고 저리 골라서 단단히 벼르는 모양을 하면서, 「이번에는 내 아저씨 단동 불출을 시키고야 말걸. 누구는 아저씨만큼 윷을 못 노는 줄 아슈?」 하고 잔뜩 골이 오른 표정을 한다. 나는 그때에 죽은 내종형을 생각하였다. 그 말이 그때 모습에 죽은 아버지가 번뜩 보인 까닭이다. 그 형은 나를 귀애하였다. 나를 놀려먹기도 잘하고 또 내게 글과 글씨도 가르쳤다. 
 큰 조카는 과연 솜씨가 낫다. 두 모 도로 대뜸에 두 동을 붙였다. 나는 이번에 지고 싶었다. 그리하는 것이 실단에게 대한 의혹을 풀 것도 같았다. 또 승벽이 있는 큰 조카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같았다. 큰 조카의 두 동문이를 잡지 못하고 도에 붙었다. 큰 조카는 내 도를 잡아가지고 또 도 모를 하였다. 큰 조카는 도 밭의 것을 도로 주워서 꽂을 도로 끌지 아니하고 새로 모 도를 붙여서 속도에 석 동문이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분명히 안할 짓이다. 「그렇게 쓸 데야?」 하고 나는 그의 반성을 구하노라고 윷가락을 모아 쥐고 기다렸다. 「걱정 말아요.」 하고 큰 조카는 툭 쏘았다. 「글세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가 도로 도 밭의 것을 잡아서 모 도를 하면 넉 동문이가 다 죽지 않아?」 하는 내 권고를 큰 조카는 듣지 아니하고 제 악마에 대한 고집을 그냥 세웠다. 옆에 보는 애들도 다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윷가락이 내게 오면 모 도 하나쯤은 나기가 쉬운 줄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큰 조카는 요행을 바라서 나를 돈동 불출을 시킬 욕심인 것이 분명히 보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윷을 던졌다. 모다. 큰 조카의 낯빛은 분명히 파랗게 질렸다. 나는 윷가락을 걷어 잡으면서 「인제라도 말을 고쳐 써.」 하고 큰 조카를 보았다. 「걱정말아요. 도가 나나, 개가 날거 머.」 하고 억지로 태연한 모양을 보였다. 나는 진정으로 도가 아니 나고 개가 나기를 바랐고 그렇지 아니하면 낙판이 되기를 빌면서, 그렇게 되기를 쉽게 하노라고 윷가락 하나를 굉장히 높이 치쳤다. 이상한 일이다. 높이 올라갔던 가락이 떨어지는 서슬에 엎어졌던 한 가락을 쳐 일으켜서 정말 개가 되고 말았다. 「개다, 저봐, 개야.」 하고 큰 조카는 무릎을 치며 앉은 춤을 추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안심한 듯이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실단이가 처음에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오마조마해서 마음을 졸이다가 개가 나매 아랫입술을 꼭 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형세는 늘 큰 조카에게 유리하여서 석 동문이를 참을 놓고 막동이 먼저 나 버리고 내 말은 찢을 도에 외동문이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희망은 모 윷이나 세 모 도로 참 놓은 저편의 석 동문이를 잡는 것뿐이니, 이것은 거의 이적을 바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윷가락을 모아 쥐고 말판을 바라보았다. 원래 큰 조카에게 질 작정으로 시작한 윷이지마는 형세가 이렇게 되면 승벽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세 모 도, 세 모 도.> 하고 나는 입 속으로 외면서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나를 단동 불출을 시키는 바로 한 걸음 전에 있는 큰 조카는 눈도 깜박 아니하고 밭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이 찾는 목표는 실단이의 표정이었다. 그는 입을 방싯 열어서 박씨 같은 앞이를 보이면서 금시에 몸이 와들와들 떨릴 듯이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보다 간절하게 「세 모 도」를 빌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방안은 고요하였다. 천지간에 가장 중대한 일이 이 순간에 생길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손에 쥐었던 윷가락을 한 번 윷판에 놓고 두 손을 씻는 것 모양으로 한번 마주 비볐다.
 나는 다시 윷가락을 잡았다. 「세 모 도!」 「아이, 어서 놀아요, 아저씨, 웬 거드름이 그리 많아요?」 큰 조카는 짜증을 냈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한 번 더 실단이를 힐끗 보고 전심력을 다해서 윷가락을 던졌다. 따, 따, 따, 따. 「모야!」 하고 누가 소리를 쳤다. 그것은 실단이는 아니었다. 
 나도 식기 전에 또 윷가락을 던졌다. 「두 모야!」 이것은 의외에도, 또 고맙게도 실단이의 소리였다. 본래 수줍고 말없는 실단이의 이 한 소리는 다른 사람의 천 소리 이상의 값이 있었다. 
 숨이 찬 것은 큰 조카만이 아니었다. 다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 손에 잡힌 윷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모 더. 이 다음에는 평생에 모가 안 나도 좋으니 한 모만 더.> 하고 비는 내 속도 떨렸다. 갑자기 손 끝이 싸늘하게 식는 것도 같았다. 
 나는 손을 한 번 더 마주 비비고 나서 네 가락 윷을 단단히 내 오른 손바닥 위에 거머쥐었다. 큰 조카는 실신한 사람 같고 실단이는 웃니로 아랫입술을 꼭 물고 있었다. 그의 바른 편 젖가슴 위에 맺혀진 자주 주름코가 산 짐승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이제 한 모만 더 하면 실단이는 분명히 나를 사랑한다!> 나는 이렇게 꼭 믿었다. 
 나는 한 번 앉음을 바꾸어서 왼편 무릎을 세워 왼손으로 힘껏 그 무릎을 으스러져라 하고 꽉 눌러 전신의 무게를 왼편 발 끝에 모으고 바른편 발바닥의 얹혔던 꽁무니를 번쩍 들면서 지붕이라도 뚫고 올라가거라 하고 윷가락을 던졌다. 그리고는 나는 두 활개를 번쩍 벌리고 벌ᄄᅠᆨ 일어났으나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윷판도 안 보이고 윷가락은 물론 안 보였다. 다만 훤한 불빛 속에 까만 머리들이 떠 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모다! 세 모, 세 모!」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그 소리는 여럿이, 아마 큰 조카만을 빼어놓고, 한꺼번에 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려서 윷판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모다. 큰 인자를 흘려 쓴 것과 같은 모양으로 엎어진 네 가락이 모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너 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래 숨이 막혔던 것 같았다.
  나는 영웅이 된 것 같았다. 이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나를 우러러보았다. 실단이도 체면을 불구하고 눈을 크게 떠서 실컷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느스름하던 눈이 마음 놓고 크게 뜨면 상당히 큰 눈이었다. 약간 젖은 빛을 띠었고 살 눈썹이 분명하고 길었다. 무심코 턱을 쳐들고 쳐다보는 그의 모양에는 새로운 어여쁨이 있었다. 「그래도 도가 나나, 세 모 아냐, 네 모 다섯 모라도 도가 나야지 머.」 하고 큰 조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처음에 두 동산이가 속 도에 있을 때에 내가 모 개를 한 것을 기억하고 그런 일이 또 한번 생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도까지 하여서 큰 조카의 석 동문이를 참에서 잡아버리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부러 하는 것이 나타나지 아니할 정도로, 낙판을 시켰다. 그러나 도는 도였다. 
 「싫어, 싫어. 부러 낙판하는 것 싫어.」 하고 큰 조카는 어리광 모양으로 몸을 흔들었으나 그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분한 것이었다. 「너의들은 암만해도 아저씨를 못 당하겠다. 모가 마음대로 나는 걸 어떻게 당하니?」 언제 들어왔는지 형수가 등 뒤에서 이렇게 말하며, 「자 다들 식혜나 먹지.」 하였다. 우리들의 등 뒤에는 식혜 상이 들어와 있었다. 
 식혜를 먹으면서 계집애들은 나를 윷판에서 몰아내기로 결의를 하였다. 어떤 아이는 그럴 것이 아니라 밤윷을 놀자고 말하였다. 내 재주를 못 부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윷판에서 몰려 나와서 등 뒤에서 형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과 마음은 항상 실단이에게로만 끌렸다. 
 나를 몰아내인 윷판은 평화는 하였을는지 몰라도 활기는 없었다. 큰 조카가 아무리 선동을 하여도 다른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나 둘 애들도 가고 그 중 집이 멀어서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실단이만 남았다. 갑자기 좌중이 쓸쓸해진 것이 마치 큰 잔치를 치르고 난 뒤와 같았다. 여태껏 자고 있던 사내조카가 일어나서는 나와 윷을 놀자고 하였다. 그가 노는 윷이 웃음거리가 되어서 약간 좌중의 흥미를 이었으나 누구의 마음에도 인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큰 일이 하나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실단이를 제 집으로 안동하여다 주는 것이었다. 노마 할머니가 어디 가고 없으니 형수가 날더러 데려다 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실단이를 데리고 나섰다. 보름달이 낮이 되었으니 야반이다. 언 눈을 밟는 우리 둘의 발자국 소리가 뻐드득 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밤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우리는 비스듬한 밭을 지나서 밤나무와 소나무로 덮인 등성이 길에 들어섰다. 이 수풀은 OO산이라는 큰 산에 연한 기슭이어서 그 동안이 얼마 멀지는 아니해도 깊은 산중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늑대나 표범도 나오고 귀신도 난다는 호젓한 곳이었다. 늙은 밤나무와 소나무 그림자가 눈 위에 어룽어룽한 것이 무시무시하였다. 실단이는 내게서 두어 걸음쯤 앞을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내가 뒤에 바싹 따르는 것을 꺼리는듯한 빠른 걸음이었다. 나는 들먹들먹한 그의 머리와 어깨를, 복잡한 선을 그려서 꿈틀거리는 그의 머리채를, 펄럭펄럭하는 치맛자락 밑으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의 하얀 버선 신은 발을 어린 듯한 눈으로 보면서 뒤를 따랐다. 어떤 맹수가 내닫거나 요망스러운 여우가 길을 막거나 흉악한 떠꺼머리 총각놈이 시퍼런 칼을 들고 덤비거나 또는 머리를 풀어서 산발을 하고 입으로 피를 흘리고 눈으로는 불을 뿜는 귀신이 저희를 하더라도 나는 내 몸으로 그들과 싸워서 실단의 몸에 그들의 손가락 하나, 발톱 하나도 범접하지 못하게 하리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별렀다. 
 실단이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종종종종 더욱 빨리 걸었다. 그의 걸음이 빠르면 내 걸음도 빠르고 그가 걸음을 늦구면 나도 걸음을 늦구어서 그와 나와의 거리가 언제나 한모양이기를 나는 잊지 아니하였다. 나는 너무 그에게 접근하여 예를 잃는 일이 없는 동시에 너무 뒤떨어져서 그에게서 멀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였다. 그러면서도 무슨 무서운 일이 하나 생겨서 내가 용기를 내어서 실단이를 보호하는 큰 공을 세울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나, 듬성이를 다 올라서 인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 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다만 달라진 것은 이쪽은 산 북쪽이어서 내려갈수록 달빛이 없고 또 길이 가팔랐다. 환하던 데서 침침한 그늘 속으로 들어설때에는 좀 무시무시하였다. 게다가 눈이 미끄러워서 빨리 걸을 수가 없는 대목이 많았다. 구두를 신은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때였다. 실단이는 무엇에 놀랐는지 우뚝 서더니 서너 걸음 나를 향하여서 종종걸음으로 뛰어와서 내 어깨에 두 손을 걸고 매어달릴 듯하다가, 그까지는 차마 못하는 듯이 두 손을 내 가슴에 대고 전신을 내 품에 꼭 붙여버렸다. 분명히 그는 무슨 소리를 들은 모양이나 나는 아마 그의 뒷모양에 정신이 팔렸던 까닭인지 아무 것도 듣지 못하였다. 
 실단이는 쌔근쌔근 숨이 찼다. 실단의 가슴이 닿은 내 가슴과 그 등에 얹은 내 손은 그의 자주 뛰는 심장과 고동을 하나하나 느낄 수가 있었다. 「왜,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우?」 나는 이렇게 물으며 귀를 기울였다. 내 코에는 실단의 머리 냄새가 향기롭게 들어왔다. 「저 소리, 저 소리!」 하고 실단이는 마치 내 가슴을 파고들려는 듯이 착 달라붙는다. 그의 여성의 본능인 겁과 의심이 염치를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인 남성에게 그의 위험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남성이라야 열다섯 살 밖에 안되는 나는 도리어 동갑인 그보다도 어렸다. 게다가 평생에 처음으로 느끼는 이성에 대한 불붙는 듯 하는 애정에 정신이 황홀하여서 허둥지둥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삐익, 빼액, 애개개개.」 이 비슷한 날카로운 소리가 정신없는 내 귀에도 들어왔다. 나도 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실로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것 같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무서움을 자아내는 소리였다. 사람의 목을 무엇으로 꼭 졸라맬 때에 이런 소리가 날까, 그러나 사람의 음성 같지는 아니하였다. 필경 집승에게 잡혀먹히는 무슨 짐승의 소리려니 하면서 목매어 죽는 귀신이 원통한 푸념을 하는 소리라고 해야만 설명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숨소리를 죽이고 다음 소리를 기다렸으나 다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아니하였다. 들리던 무서운 소리가 안 들리게 되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소리가 안 들리매 나는 눈을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산마루터기와 수풀에 가리워진 달그림자 속에는 어디를 보아도 무슨 괴물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실단이도 그런 모양이어서 잠깐 얼굴을 내 가슴에서 떼어서 힐끗 좌우를 살펴보고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도로 내 가슴에 파묻어 버렸다. 그의 따뜻한 입김이 내 외투와 양복을 뚫고 내 가슴에 들어왔다. 
 이 동안이 얼마나 길었을까. 한 이 삼분 밖에는 안되는 것도 같고 어찌 생각하면 여러 시간이 지난 것도 같았다. 
 콩콩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실단이는 내 가슴에 파묻었던 고개를 번쩍 들어서 나를 쳐다보고 한 번 상긋 웃고는 몸을 내 몸에서 떼어서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한껏 다행도 하고 한껏 서운도 한 마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수풀 그늘을 다 지나서 달빛이 환한 곳에 나설 때에 실단은 뒤를 돌아보면서, 「인제 괜찮아요. 저기 우리 집 불이 보이지 않아요. 자 인제 돌아가세요. 너무 늦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알지 않아요?」 하고는 더 빠른 걸음으로 살랑살랑 달음박질을 쳐서 달빛 속에 녹아버리고 만다. 
 나는 섰던 자리에 멀거니 서서 실단의 뒷모양을 보았다. 실단은 두어 번 머물러서는 내 쪽을 돌아보았으나, 그만 그 모양이 스러지고 말았다. 
 나는 꿈을 꾸던 사람 같았다. 지금까지 있던 일은 모두 꿈이던가. 내 가슴에 안겼던 실단이도 꿈속 사람이던가. 술래잡기 하던 것, 윷 놀던 것이 모두 여러 천년 전 일과도 같고 정말은 없던 일과도 같았다. 
 실단이가 자기 집 불이라고 가리키던 조그마한 불빛이 한 번 커졌다가 도로 작아졌다. 아마 실단이가 제 집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있던 일은 노상 꿈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도 꿈이었던가.
 나는 외가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고 형수만이 나를 맞았다. 내가 그렇게 본 탓인지 형수는 내 속을 들여다보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았고 그 눈에는 이상한 웃음조차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새우다가 다 밝게야 잠이 들어서, 「아저씨, 밥, 밥 먹어.」 하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형수에게 다른 눈치는 없었으나 조카딸들, 그 중에도 큰 조카는 나를 볼 때마다 입을 삐쭉거렸다. 
 나는 이 날은 외가를 떠난다고 선언하였다. 물론 여기 있기가 싫은 것도 아니요 또 어디 갈 일이나,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체면상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형수는, 「왜요, 오늘도 명절인데.」 하고 만류하는 말을 하여 주었으나 그렇게 탐탁하게 나를 붙드는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또 나를 그렇게 애써 붙들 것은 무어 있나. 「아자씨, 윷 한번 놀아 볼라우?」 큰 조카가 윷을 내어놓았다. 「난 떠나야 할걸.」 입으로는 그러면서도 또 윷을 시작하였다. 조카들은 오늘만 지나면 고운 옷도 다 벗어서 장에 개켜 넣고 구와판 댕기도 끌러놓고 내일부터는 때묻은 옷을 입고 물레질도 하고 바느질도 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날 하루가 무척 아까운 것이다. 
 이렁그렁 점심 때도 되어서 찰밥을 먹고 내가 막 길을 떠나려고 할 때에 실단이 어머니가 왔다. 그는 물론 내가 모르는 이는 아니다. 어려서도 내가 외가에를 오면 가끔 보던 이지마는 내가 세상에 떠돌아다니노라고 외가에도 발이 멀어진 뒤로는 아마 사오년간은 만난 일이 없었다. 
 실단 어머니는 형수와는 물론 친한 사람이어서 서로 웃고 인사말을 바꾼 뒤에는, 반가운 듯이 내 곁에 와 앉으며, 「아주 몰라보게 어른이 되셨구려.」 하고 존칭하는 말을 썼다. 내 형수들에게밖에는 어른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일이 없는 나는 「되셨구려」 하는 말이 간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실단이를 보고 나서 이제 다시 보니 실단 어머니는 얼굴일지 목소릴지 실단이와 꼭 같았다. 가느스름한 눈 하며 동그스름한 판 하며 까무스름한 살빛은 말할 것도 없고 웃을 때 반쯤 벌어지는 입술까지 그 딸과 한판이었다. 
 그는 귀여워하는 중에도 어려워하는 빛을 띠면서 무릎 위에 놓인 내 손을 한 번 만져 보면서, 「어제 저녁에는 우리 실단이를 바래다 주셨다는데 이왕이면 우리 집에 들어오셔서 몸이나 녹혀 가시지 않고, 그런 데가 어디 있어요? 그년이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구려. 그렇더라도 들어오시지 않고. 걔 아버지가 뛰어나가도 보았답니다. 그런데 벌써 안 보이더라구요.」 
 실단 어머니의 말은 부드럽고 인정이 그득 차고도 음악적이었다. 그의 몸에는 명주도 비단도 없이 모두 상목이었으나 몸매와 바느질이 모두 좋음인지 퍽 모양이 있었다. 연한 옥색 치마저고리에 자주 고름남 끝동이 삼십이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여인이라는 것보다는 이십 사오세나 된 젊은 며느리같이 보이게 하였다. 그에게 비기면 내 형수는 나이는 그와 상적하건마는 늙은 태가 있었다. 형수도 젊어서는 이쁘다는 말을 듣던 이지마는 과부가 된 탓인지 몸에는 젊음의 빛과 향기가 하나도 없고 설늙은이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옷을 아무렇게 입어서 추울 때면 죽은 남편의 저고리를 덧입기도 하고 치마도 늙은이 모양으로 정강치기를 곧잘 입고 다녔다. 겉치레는 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위하여서 힘들게 일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실단 어머니는 과부도 아니요, 층층 시하에 있는 며느리인 까닭도 있겠지마는 얼굴도 아마 분세수를 한 모양이요, 손도 일하는 사람같지 아니하였다. 일언이폐지하면 어여쁘고 얌전하고 상냥스러운 젊은 부인이었다. 「댁허구 우리 집허구는 남이 아니랍니다.」 하고 실단 어머니는 하얀 이를 보이면서 나를 보고 동시에 형수도 보면서 말하였다. 「도련님 전 어머님께서 내게 당고모님이 되신답니다. 그러니깐 촌수를 따지면 도련님이 내게는 육촌 오라버니시지.」 「응, 그러시구먼.」 하고 내 형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나는 물론 내 전 어머니를 본 일이 있을 리가 없지마는 그 제사를 지내던 일을 생각하고 그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내 구름바시 누이를 생각하고 그 누이 집에를 한 번 찾아가리라고도 생각하였다. 「그럼, 그렇답니다.」 하고 실단 어머니는 형수만을 향하여서 하는 말로, 「그러니, 이 도련님 어머니, 그 아주머니 생존시에야 내가 그런 말씀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만 속으로만 저 어른이 우리 당고모님 대신이시거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래도 이 도련님 아버지께서는 지나실 길이면 우리 집에 가끔 들르셨답니다. 그야 우리 시아버니와 친구신 관계도 있겠지마는 그래도 그 어른이야 본래 인지하신 어른이시니 옛 일을 잊으실 리가 있겠어요?」 하면 형수는 참 그렇다는 듯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러믄요. 우리 돌고지 아저씨야 참 인자하셨지.」 하고 아버지 칭찬을 하였다. 내 생각에도 아버지가 무능은 하였으나 남에게 싫은 소리는 할 줄 모르는 이였고 조부도 그러하였다. 하물며 제 것을 남에게 빼앗길지언정 남의 것을 탐낼 인물들도 아니었거나 못되었다. 
 이렇게 실단 어머니는 내가 자기와 남남이 아니라는 말을 한 끝에 나를 오늘 저녁에 자기 집에 부른다는 말과, 형수의 조카들도 다 같이 오라 하고 비록 차린 것은 없으나 윷도 놀고 행년점도 치고 잘 놀자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니까 나는 이날 외가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다 저녁 때에 실단이가 우리를 청하러 왔다. 어젯밤에 콩콩 짖던 갠가 싶어, 까만 개 한 마리가 실단이를 따라왔다. 간다 안 간다 하고 한참 법석을 한 끝에 형수는 집이 비니 갈 수 없고, 어린 조카는 밤이니 갈 수 없고, 나와 두 조카딸들만 실단이를 따라서 나섰다. 실단이는 간 밤 무서운 소리가 나서 내게 안겼던 자리에 와서는 두 조카에게 그때에 무섭던 이야기를 하였으나, 무서워서 어ᄄᅠᇂ게 하였다는 말은 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그것이 실단이와 나와 단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이상하기도 기쁘기도 하였다. 
 실단의 집에는 실단이 할아버지 내외가 있고, 증조할아버지가 있고, 총각 삼촌이 있고, 또 실단의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나는 노인들에게 차례차례 절을 하였고 그들이 묻는 말에 몇 마디씩 대답을 하였다. 이 집에 와서 느낀 것은 번성하는 집이 아니요, 쇠하여 가는 적막한 집이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내게 그런 감상을 주었는가. 
 집도 초가집이지마는 컸고 나뭇간도 크고, 구석구석 곡식 섬도 많고, 외양간에는 소가 있고, 닭도 놀고, 개도 짖고 얼른 보면 흥성흥성한 큰 농가지마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말이 적고 움직임이 적었다. 늙은이가 많고 젊은이가 적은 것이 그 집을 적막하게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젊은이라고 할 실단이 아버지도 마치 제상 앞에 선 제관과 같이 말이 없고 웃음도 없고, 실단의 삼촌인 나보다 서너 살 더 먹은 총각도 스스러운 집에 온 손님과 같이 말이 없었다. 실단의 남동생까지도 자다가 일어난 아이 모양으로 아무 소리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실단이 모녀의 얼굴에만 방글방글하는 웃음이 있었으나 그것도 극히 조용한 것이어서 마치 벙어리들끼리 모여 사는 집 같았다. <왜 이럴까?> 하고 나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모두 깨끗하다. 그야말로 구석구석이 다 말끔하여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품이 절간과 같았다. 기둥에다 벽장문에다 붙인 주련도 다 칼로 깎아낸 듯한 해자뿐이요, 흘려 쓴 것은 하나도 없었고 실단의 조부가 등신 모양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랑도 그러하여서 찬 바람이 도는 듯하였다. 게다가 이 집이 동네에서는 뚝 떨어져서 외따로 있기 때문에 더욱이 절간이나 무슨 당집과 같은 맛이 있었다. 참 이상한 집이었다. 
 저녁상은 참 잘 차렸다. 안채는 늙은이들이 있는 산 사당과 같아서 우리들은 실단네 식구들이 사는 소위 바깥채라는 뜰아랫방에서 상을 받았다. 나는 마치 큰 손님이나 되는 듯이 어른어른하게 닦인 칠첩 반상기를 늘어놓은 독상을 받고 실단이 아버지와 내 두 조카는 다음 방에서 상을 받은 모양이요, 실단이 어머니는 안방으로 부엌으로 우리들 방으로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어떻게 조용한 집인지 닭들도 조용히 홰에 오르고 고양이도 소리없이 살랑살랑 다녔다. 
 윷판이 벌어졌으나 말괄량이 큰 조카도 새졸랑이를 내지 아니하였다. 다만 실단 어머니의 잠시도 쉬지 아니한 은근한 접대만이 우리에게 정다움과 고마움을 주었다. 「더 먹어, 이것도 먹어 보구.」 하고 그는 내 조카들을 잊지 아니하였다. 내게 대해서는 더욱 끔찍하여서 그가 권하는 것이면 거절할 길이 없었다. 실단 아버지도 이십 년이나 나이가 틀리는 나를 점잖은 손님과 같이 공손하게 대우하였고, 비록 말은 많지 아니하나 심히 은근한 정을 보였다. 우리가 놀 때에는 슬쩍 비켰으나, 가끔 들어와서 내게 한 두 마디 말을 함으로써 나를 잊지 아니하는 정과 성을 표하였다. 그는 손을 보면 농군이지마는 얼굴과 몸가짐은 선비였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것은 다 유식하고 점잖고 예절다와서 학자님 풍이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안 일이어니와, 그도 이십이 넘도록 소매 넓은 옷(행의라고 하였다.)을 입고 박운암, 유의암 문하에서 성리학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내 증조가 홍경래란에 연루가 되셔서 당시 장령으로 계시다가 삭탈관직을 당하시고, 금부에 하옥이 되셔서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한 것을 약현 대신의 힘으로 가까스로 벗어나셨어. 정말 죄가 있었으면 벗어나실 리가 있겠나마는 내 증조께서는 홍경래란에는 관계가 없으셔. 그런데 홍경래가 오봉사에서 공부할 때에 내 증조도 그와 동창이셨거던. 게다가 내 증조가 고집이 있으시고 마음이 강직하셔서 당시 권문에 미움을 받으셨더래. 그래서 몰리신 것이지. 그리구 돌아오셔서부터선 일체 출입을 안하시고 몸소 소를 먹이시고 감농을 하시고 자손더러도 일체 과거는 보지 말라고 유언을 하셨어. 그래서 내 조부나 가친도 글 공부는 하셨지마는 일체 장중에는 출입 안하셨지. 지금은 치국평천하를 도모할 때가 아니니 수신제가나 하라고, 자식들 글은 가르쳐도 애어 세상에 출입은 말고 농사만 지어먹고 가만히 있으라고- 이렇게 유언을 하셨단 말야.」 이것은 실단 아버지가 내게 자기 집 내력을 설명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척 이 집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집안에 흘려 쓴 글자 하나도 없이 모두 단정한 해자만 있는 뜻도 알았다. 나는 내 집에 대하여 상당히 자존심이 있었으나 실단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이 집이 내 집보다 격이 높다고 생각하였다. 대소과가 많이 나기로 우리 집은 이 고을에서는 명가지마는 진실로 학과 행이 일향에 모범이 되는 이로는 내가 알기에는 내 팔대조 형제분밖에 없었다. 그 밖에는 승자, 사간, 장령 같은 미관말직에 연연하고, 또 그것을 장한 것으로 여겨서 술이나 마시고 음임풍영월이나 하는 이들이었다. 풍류객일지 모르나 도학군자는 아니었다. 더구나 내 조부에 이르러서는 기생 작첩까지 하여 향락으로 생애를 삼고 집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이에 나는 우리 집이 이렇게 쇠잔한 원인을 찾는 것 같아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고 실단네 집을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 집이 맑은 물같이 맑으면서도 적막한 기운뿐이요 번화한 기상이 없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언제 또 일본을 가나?」 하고 실단 아버지가 물을 때에, 나는, 「한 달 안으로 떠나겠어요.」 하고 대답을 하였으나 아직 학비가 어찌 될는지 몰랐다. 「공부를 중도에 폐해서야 쓰겠나. 아무리 하여서라도 공부를 마치어서 자네네 집을 다시 일으켜야지. 자네네 집이야말로 우리네와 달라서 구가요 대가가 아닌가. 자네가 뉘 집 자손인고. 공부한 우리 모양으로 중도이폐를 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야. 용이 되다가 못되면 강길이가 된다는 겐데 용이 되면 천하에 은덕을 베풀지마는 강길이란 세상이 화근이 되어서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 아닌가. 자네야 용이 되어야지, 강길이가 되어서 쓰겠나. 그러니까 어서 하던 공부를 마치게.」 
 실단 아버지의 말은 마디마디 내 폐부를 찔렀다. 나는 강길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겁이 났다. 계집애들하고 윷이나 놀고 즐겨하는 내 모양이 부끄러웠다. 윷에 흥이 아니 날 뿐 아니라, 실단이에게 대한 못 견디게 그리운 정도 강길이가 되려는 징조인가 싶어서 무시무시하였다. 
 그러나 실단 어머니와 실단이들과만 앉아서 이야기할 때에는 무한히 즐거웠다. 평생에 고독한 한을 이날에 실컷 푸는것만 같아서 언제까지나 이런 시간이 계속하였으면 하였다. 「수명이 아저씨 생일이 요새 아니요?」 하고 실단 어머니가 묻는 데는 놀랐다. 「내 생일이 요샌 줄을 어떻게 아세요?」 하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수명이라는 것은 내 형수의 아들이다. 나를 부르기에 적당한 칭호가 없고 도련님이라기도 안되었고 그렇다고 내 전 어머니 편으로 외육촌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오라비라고 부르기도 거북한 실단 어머니는 생각생각한 끝에 나를 수명이 아저씨라고 부른 것이었다. 「수명이 아저씨 나신 것이 요새이던 것 같아서 말이요.」 하고 실단 어머니는 옛날 일을 생각하는 듯이 멍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는 놀란 김에 내 생일을 바로 말하였다. 그것은 정월 그믐날이었다. 「그럼, 생일날은 금년에는 우리 집에서 차립시다. 아무것도 없지마는, 국이나 끓이고 나물이나 하고.」 실단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이 말에 고개를 숙였다. 고마움도 고마움이어니와 부모가 돌아간 뒤로 사오년간 나는 생일을 차려먹은 일이 없었다. 혹은 평양에, 혹은 서울에 혹은 일본에 객지로만 다니는 내가 어디서 누가 내 생일을 기억하여서 차려 주랴. 
 내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주먹으로 씻기도 무엇하여서 방바닥에 떨어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어머니 생전에는 불이 붙게 가난해서 밥을 굶을 지경이면서도 생일이면 그냥 지내 보내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어머니 없으시니 내 생일도 없었다. 그렇거늘 이제 아무 인연도 없는 실단 어머니가 내 생일을 차려 준다는 것은 실로 이상하고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한참이나 눈물을 떨구다가 코를 푸는 듯 눈물을 씻고, 「네, 그럼 그날 오겠어요.」 하고, 떨리는 소리로 그 후의를 받았다. 고마운 양 해서는, 「어머니.」 하고 실단 어머니에게 울고 매달리고도 싶었으나 인제는 열다섯살이 아니냐 하여 그러지도 못하였지마는 마음으로 그에게 매달리고 그의 품에 안기기를 수없이 하였다. 
 나는 염치없이도 약속한대로 생일날에 실단네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닭을 잡고 떡까지 하고 생선을 굽고 어머니 생전에도 그런 일이 없을 만큼 풍부하게 차린 것이었다. 실단이도 인제는 낯이 익어서 덜 스스러웠다. 그간 소학을 배우고 있는 줄을 그때서야 알았다. 소학도 마지막권인 제오권이었다. 「언제 일본 가우?」 실단이는 나와 단 둘이만 있는 틈에 내게 이런 말을 물었다. 「한 닷새 있다가 떠나우.」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서울서 학비가 될 듯 싶으니 곧 올라오라는 편지가 왔기 때문에 나는 떠날 날짜를 작정하였던 것이었다. 「요담엔 언제 오우?」 실단이는 더욱 가는 소리로 물었다. 「글세. 내년 여름에나 올까.」 나는 문득 실단이를 떠나서 멀리로 가는 것이 슬펐다. 실단이와 함께 갈 수는 없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났다. 「몇 해나 되면 공부를 다하고 아주 집에 오우? 한 삼 년?」 하고 실단이는 담대하게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글세, 암만해도 십 년.」 나는 지금 중학교 이년이니 고등학교, 대학 다 치면 십 년이 될 것을 속으로 계산하면서 대답하였다. 「십 년?」 실단이는 그 가느스름한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내 생각에도 십 년은 먼 것 같았다. 「십 년.」 하고 나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의 말은 이뿐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삼 년 후 열아홉 살 되던 봄에 중학을 졸업하고 제일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러서 훌륭히 합격을 하고 고등학교 생도라는 명예와 자부심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는 늙은 조부도 있고 어린 누이도 있으니 한 해에 한번씩은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건마는 고학하다시피 하는 외국 유학에 그렇게 왔다갔다 할 여비가 없었다. 또 고향에 돌아오기로서니 간 데마다 푸대접이 기다릴 뿐이요 나를 환영할 집이 없는 것도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어니와 내 초라한 꼴을 실단과 실단의 집에 보이고 싶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무슨 자랑거리를 하나 거먹쥐고 고향에 돌아오지 아니하면 면목이 없었다. 중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이나 하여 놓으면 약간 금의환향이 될 것도 같았다. 또 될 수만 있으면 이번 길에는 장가도 들고 싶었다. 실단이가 내 아내가 될 것을 꼭 믿었다. 
 나이 이십이 가까우니 장가들고 싶은 생각이 상당히 강하였다. 게다가 실단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억제하기 어렵도록 강하였다. 나는 몇 번이나 실단이 아버지에게 내 뜻을 고하는, 이를테면 청혼 현지를 썼으나 하나도 부치지는 아니하고 다 찢어버렸다. 집도 한 간 없는 중학생 녀석이 남의 딸을 노리는 것이 몰염치한 것 같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공하여 처자를 칠 만한 힘이 생길 시기까지 실단이를 시집보내지 말고 기다리게 하여달라는 것은 더욱 뻔뻔스러운 일이었다. 
 지나간 사 년, 즉 만 삼 년 이개월 간에 하나 사진도 없이 필적도 없이 그를 그리워하였다. 다만 내 마음 속에 그의 동그스름한 얼굴, 갸름한 눈, 방싯 열린 재주있을듯한 입술 사이로 엿보이는 하얀 이빨, 까무스름한 살빛, 그리 크지 아니하나 구석빈 데 없는 몸매, 이런 재료로 그를 만들어놓고는 그리워하였고 심히 부드럽고도 맑은 그의 음성을 귀에 듣고도 그리워하였다. 내가 상상하는 얼굴이 실물에 얼마나 가까운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그는 내게 있어서는 실재였다. 나는 그를 위하여 공부에 힘을 내고 그를 위하여 살았다. 더구나 내가 학년이 높아져서 문학작품을 읽게 되면서부터 그 속에 나오는 모든 아름다운 여성을 언제나 내 실단이와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문학작품 중의 어느 여성도 내 실단을 당할 수는 없었다. 단테의 비아트리체나 내 실단이에 비길까. 내 실단은 어디까지나 동양적이었다. 그는 정숙스러웠다. 그의 가느스름한 눈은 언제나 내려떴고 한 번 치뜰 때에는 별과 같이 빛났다. 그는 분홍치마 노랑저고리에 남 끝동, 자주깃, 자주 고름을 달아야 한다. 그의 얼굴에는 분이 발려서는 못 쓰고 그의 몸에 향수가 뿌려져서는 못쓴다. 그런 것들은 그의 천진한 빛과 향기를 가리울 뿐이다. 얼굴에 탐욕의 검푸른 기운이 도는 사람만이 분으로 그것을 감추고 몸에서 악독의 비린내를 발하는 사람만이 향수로 그 악취를 죽이는 것이다. 나의 실단에게는 그러한 인위적인 것을 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더 바랄 바는 없었다. 그는 완전 그 물건이었다. 다만 걱정은 나는 부덕이었다. 내 입에서는 구린내가 나고 내 몸에서는 땀내와 비린내가 났다. 나는 도저히 그와 짝이 될 사람이 못 되었다. 
 내가 성경을 읽고 예배당에를 다닌 것도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할 양이었다. 나는 마음에 있는 구린 것을 버리면 자연히 몸에서 향기가 날 것을 믿었다. 나는 내 얼굴과 손발과 몸매를 아름답게 할 수 없는 것이 슬펐다. 
 나는 길에서나 차 속에서 많은 여성들을 만났으나 하나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내 가슴은 실단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 생각으로 서투른 시도 지어보고 일기도 써 보았다. 나는 거의 매일 실단에게 편지를 썼으나 한 장도 부치지는 아니하였다. 나는 오천리 밖에서 내가 이렇게 간절히 생각하는 심정이 말이나 글이 없더라도 반드시 실단에게 통하리라고 믿고 또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나는 내가 어린 제 불행이 다 지나가고 앞날에는 운수가 탄탄하게 피일 것을 믿었다. 「초년 고생을 그만치 하였으니 앞으로야 좋은 일이 있을테지.」 라든가, 「뉘집 자손이라고.」 라든가, 「금계 포란형 정기를 몰아 타고난 네로고나.」 라든가, 「네 얼굴이 잘나고 눈과 코가 좋다.」 라든가 어른들이 나를 보고 하던 칭찬(?)들이 다 정말로만 생각하였다. 장쾌에는 대신이나 대장이나 내 마음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비록 우리나라가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군대가 해산되고 모두 불리하고 빕고 강개한 재료뿐이었으나 그것도 내 힘으로 내 손으로다 바로잡힐 것만 같았다. 
 「사랑과 희망과 신앙.」 성격에서 가르치는 이 세 가지는 바로 내게 꼭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중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남들이 다 어렵다는 고등학교에를 대번에 합격한 것은 내 자신을 더욱 높게 하였다. 동경 유학생계에서도 내 이름은 날로 높았다. 나는 이것이 모두 다 실단의 힘이라고 믿고 감사하였다. 
 여름 새벽 바다는 거울과 같이 맑았다. 대마도도 지나고 아침 볕을 받은 고국의 산이 바라보일 때에 나는, 「아, 내 나라!」 하고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 년 만에 보는 고국, 어려서 떠나서 수염발이 잡혀서 보는 고국이라는 것만 하여도 눈물이 흐를 만하거든, 하물며 안중근이 전 통감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죽인 사건의 여파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여론은 물끓듯 하였고 그것을 기화로 하여 계태랑 사내 정의를 머리로 하는 일본의 군벌은 단호히 한국을 합병하여 저희가 이른바 「동양 평화의 화근을 빼어 버린다」 고 음으로 양으로 민론을 선동하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안중근을 추겼다는 혐의로 안창호, 이갑, 이동휘 등 민족운동의 수령들이 깡그리 일본 관헌의 손에 체포되어 헌병대에 갇혀 있던 때라 나같은 소년의 마음에도 조국의 흥망이 경각에 달렸음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누란(累卵)」이니, 「급업(岌業)」이니 하는 말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함을 형용하던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용어는 우리 가슴에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이러한 조국의 땅, 부산에 발을 디딘 십구세의 소년인 나를 맨 먼저 환영하여 준 것은 일본의 무서운 관헌이었다. 나는 벌써 경찰의 주목을 받은 연령에 달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동경에서 나 또래 몇 동인이 발행하던 등사판 잡지가 동경 경시청에 압수된 사건으로 하여서 그 책임자로 필자인 나는 일본 관헌의 요시찰 인물 명부에 오른 것이었다. 이런 것은 다음 다른 이야기에 말할 기회도 있을 듯하니 여기서는 이만하여 두자. 
 부산서 또 하나 내 마음의 행복을 깨뜨린 것은 기차에서 한국 사람 타는 간과 일본 사람 타는 간을 구별한 것이었다. 이런 것은 내가 사 년 전에 일본 갈 때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에는 아직 한국의 주인은 한국이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와보니 관헌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요, 또 기차에도 승객의 반수 이상이 일본인이요, 그뿐더러 주객이 전도하여 일본인이 도리어 주인이 되고 우리 한국민이 거꾸로 객이 된 것이었다. 나는 이를 보고 이를 갈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오냐. 이제 두고 보아라! 내 피로 조국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하고 속으로 맹세하였다. 
 서울도 평양도 인심이 물끓듯 하였다. 사람들은 다 입을 다물고 곁눈으로 서로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중요한 지점에는 어디나 총과 칼을 든 일본 군인과 헌병의 눈이 번뜩거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나는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서는 무엇이 나를 기다렸나?
 조부는 모든 재산을 없이하고 외딴 글방에 병들어 누워있었다. 그는 어린 손자의 공부에 방해될 것을 두려워하여서 그동안 일어난 이러한 불행을 내게 숨긴 것이었다. 그는 유일한 그의 짝인 내 서조모를 묻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먹다먹다 못하여서 나중에는 집을 헤치고서 내 어린 누이는 당숙의 집에, 자기는 어느 서당에 붙이고 있다가 병이 든 것이었다. 그의 병은 황달이었다. 팔십 노인인 그가 소복할 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조부를 찾아간 날 그는 날더러 일으켜 앉혀달라 하여 내 절을 받고는, 몽롱한 눈으로 대견한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인제 졸업 다 했느냐?」 하고 물었다. 「아직도 육 년이 남았어요.」 하는 내 대답에 그는, 「육 년.」 하고 힘없이 말하고는 날더러 도로 자리에 뉘어 달라 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육 년」 하던 조부의 한 마디에 창자가 미어지는 듯함을 느꼈다. 조부가 육 년을 더 살 리가 만무하였다. 나는 밥을 빌어서라도 조부를 봉양하여서 그의 여년을 마치게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할아버지.」 나는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눈 감은 조부에게 이렇게 불렀다. 「응.」 하고 조부는 눈을 떴다. 「저는 일본 안 가요.」 하고는 울음이 북받쳤다. 「그럼 어디 가고?」 조부는 놀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눈 흰자위가 치자라도 들인 것 같았다. 「아무 데도 안 가고 할아버지 모시고 있겠어요.」 조부는 이윽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니 말없이 스르르 눈을 감아버린다. 
 조부의 누운 방은 찼다. 글방이라 하지마는 조부가 병이 중하게 된 뒤에는 아이들도 아니 오는 모양이어서 산 옆에 외따로 지어 있는 이 서당에는 오직 앓는 조부 혼자서 누워 있었다. 「병 구완은 누가 하나. 조석은 어떻게 자시나?」 이런 말을 조부에게 물을 용기도 없었다. 나는 부엌에 내려가서 불을 때려 하였으나 나무도 없었다. 나는 뒷산에 올라가서 삭정이를 한 아름 주워다가 불을 지피고 있었다. 「어떡허나」 하면서 아궁이를 들여다보았다. 불이 훌훌 붙어서 가느다란, 굵다란 무수한 불길들이 날름날름 까불고 있다. <조부님을 모시려면 살림을 차려야 하고 살림을 차리자면 장가를 들어야 하고, 또 집을 장만해야 하고 직업을 구해야 할 텐데.> 나는 부지깽이로 공연히 아궁이 앞을 쑤시면서 생각하였다. 
 실단이한테 장가들 수가 있을까.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내 딸을 데려다가 무엇을 먹일 텐가.」 하던 김 의관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기 바로 두어 달 전 일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며느리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채워주려고, 아마 또는(부끄러운 말이지마는) 그와 동시에 먹을 것까지 얻어 볼 허욕으로 하루는 나를 데리고 섬바위 김 의관 집에를 갔다. 그는 아버지와 동년배 되는 친구요 부자였다. 그는 이천 냥을 쓰고 중추원 의관을 얻어 하여서 옥관자를 붙인 사람이었다. 그는 명주옷을 입고 탕건을 쓰고 사랑 아랫목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조그마한 얼굴에는 주름은 있었으나 기름기가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귀골인 듯 어엿한 데가 있었다. 거기 비겨서 아버지는 폐포파립인 데다가 간골은 툭 불거지고 두 뺨은 쪼그라지고 눈은 저공에 걸리고 궁상에 험상을 겸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돌아갈 임박은 뼈와 가죽뿐이어서 꼭이 엉성하고 살멱만 툭 두드러져 있었다. 뽐내는 데까지도 인제는 기운이 줄어서 앉은 자세를 꼿꼿하게 하기가 힘드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와 김 의관이 떡 버티고 앉아서 두 손으로 버선발을 만지는 양을 대조하면서 내 어린 마음이 슬펐다. 
 이러한 판에 아버지는 염치없이도 김 의관의 막내딸을 내 아내로 달라는 말을 꺼낼 때에 나는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김 의관의 얼굴을 꼭 지켜보고 싶었다.
 김 의관은 소리 안 나는 코웃음을 하면서, 「자네 내 딸을 데려다가 무엇을 먹이려고 그러나.」 할 때에 몸부림을 하고 울고 싶었다. 「자네 딸에 먹을 것을 얹어 주게그려.」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였으나 물론 그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이날의 망신은 내가 평생에 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제 두고만 보아라. 네가 나를 사위로 아니 삼은 것을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하고 풀 죽은 아버지를 따라가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아궁이 앞에서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실단이와의 혼인이 희망 없음을 슬퍼하였다. 내가 공부를 마치어서 학사, 박사가 되어서 돌아오기만 하면야 문제가 없지마는 이제 공부를 고만두면 실단 아버지의 말과 같이 중도이폐한 강길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실단이를 내어놓을 수는 없었다. 실단이 없이 내가 살 수가 있을까. 
 나는 며칠 후에 외가에를 갔다. 형수는 그동안에 더 늙은이가 되고 천자를 배우던 조카는 벌써 상투를 틀고 관을 쓰고 있었다. 나는 거진 나만한 조카며느리의 절을 받았다. 조카딸들은 다들 시집을 가고 없었다. 사년 동안에 변하기도 변하였다. 형수의 내게 대한 칭호는 아주버니로 승격하고 조카도 제법 내게 아재비 대우를 하였다. 열두살 먹은 새신랑이었다. 「인제 졸업 다 하셨어요?」 형수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인제는 그만큼 공부를 하셨으니 벼슬이나 하시지. 솔모루 문 성의는 박천 군수가 되어 가지고 긴무 이 참서 딸한테 장가를 들었답니다. 아주 잔치가 대단했대요. 대섯 고을 원이 모였더라나, 여섯 고을 원이 모였더라나. 벙치 쓴 관속 사령이 수십이나 옹위를 하고 통인 급창 다 데리고, 참 굉장했더래. 이제 아주버니도 그렇게 장가가시겠지. 그때는 나도 구경이나 갑시다.」 형수는 나이 먹으면서 더욱 말솜씨가 늘었다. 과부 생활로 닦은 재주였다. 
 나는 내 입으로 먼저 실단이의 말을 묻기가 거북하였으나 형수는 내 사정은 모르고 제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딸들 시집보내던 이야기, 사위 이야기, 사위네 가문이 좋다는 자랑, 며느리 맞던 이야기, 아들이 장가를 들게 되니 사랑을 잘 수리하였다는 이야기, 형수의 이야기는 끝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형수는 젊은 과부로서 이만큼 가산을 늘이고 자녀들을 성취를 시킨 데 대하여 깊은 만족과 자부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또 그럴 만도 하였다. 젊은 과부의 재산을 노리는 일가 떨거지들을 다 휘어 누르고 이만큼 하여 놓기는 진실로 칭찬할 일이었다. 「아즈버니, 난 형님이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도록 친정에 가 본 일이 없어요. 새 옷 한 벌 지어 입은 일이 없고요. 젊은 과부가 몸 모양을 내고 나들이를 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아요. 내가 이 꼴을 하고 망나니 노릇을 했길래 이만큼이라도 애들 밥은 안 굶기고 남 의지 아니하고 살지요. 안 그래요 아즈버니.」 인제는 형수는 나를 자기와 상대가 되는 어른으로 대우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나 단자 들이러 가우.」 하고 조카가 관을 비뚜르 쓰고 들어온다. 「단자라니. 응 실단이 새서방? 그러기로 관 쓰고 단자가 무에야? 아이들이나 하는 게지. 어른도 단자 들이나.」 형수의 말도 듣지 않고 조카는 까치걸음으로 대문을 나간다. 대문 밖에는 아이들이 등대하고 있다가 와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가버리고 말았다. <실단이 새서방?> 이 말에 나는 천지가 노랗게 됨을 느꼈다. 「실단이 새서방요?」 나는 귀를 의심하면서 저도 모르는 결에 이렇게 물었다. 「오, 참. 아즈버니가 실단이를 귀애하셨지. 네, 오늘이 실단이 새서방 장가 오는 날이랍니다. 실단이도 불쌍한 애라우. 고것 얌전하지 않아요? 아주 재주 덩어리고. 그런데 속아서 혼인을 했답니다. 줄아우 최주사 손자라나 원. 가문이 좋다고 해서 혼인을 정했는데 정해놓고 보니 신랑이 바보래. 나이는 열다섯살인데 아직도 침을 질질 흘리고 게다가 반벙어리라나. 글쎄 고 얌전이가 어떻게 그런 남편을 만나우? 돈이야 있지. 최주사 집이 부자랍니다. 한 삼백 석 한 대. 그렇지만 삼백 석 아니라 삼천 석이면 무얼 하오, 신랑이 저따위니. 참 실단이가 가엾어요. 그래 실단이 어머니는 파혼을 한다고 울고불고 했답니다. 그러면 되우? 실단이 할아버리는 양반의 집에서 한 번 허락했으면 고만이지 웬 딴소리가 있느냐고 고집을 하고, 실단 아버지는, 아즈버니도 아시다시피 부모의 말씀이면 그저 네, 네지 터럭 끝만한 것 하나도 거역은 못하거든요. 그래 눈물 판이지요, 그 집이야. 실단이가 울지요, 실단이 어머니가 울지요. 그러니 쓸 데 있어요?」 「그러기로 이럴 법도 있나?」 하고 나는 정신이 아뜩아뜩하여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처럼 간절하게 사 년 동안이나 하느님께 빈 것도 허사하였던가 하면 하느님도 원망스럽고, 내가 자주 실단의 집에 편지도 하고 또 청혼도 하였더면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하면 나의 못생김이 밉기도 하고, 진주같은 실단이를 돼지에게 주는 실단의 부모가 괘씸하기도 하고, 끝으로 자식의 운명을 부모의 마음대로 결정하는 우리 나라의 인습에 대하여 강하게 반항하는 마음이 불 일 듯 일어나기도 하였다. 
 내가 고민하는 양이 아무리 억제하여도 형수의 눈에 뜨인 모양이었다. 형수는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더니 분명히 내 속을 다 뽑아보고 나를 위로하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즈버니. 난 모든 것이 다 인연이라고 믿어요. 사람의 일은 하나도 인력으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다 제 팔자요 인연이야요. 난 내 일을 보니깐 그렇거든요. 내가 형님한테 이 집에 시집온 것도 다 인연야요. 나도 싫다는 것을 부모님이 억지로 이 집으로 보내셨답니다. 그래도 인제는 부모님 원망은 나는 아니해요. 다 내 팔잔 걸요. 물 한 방울 샐 틈 없는 걸 무어. 지내 보니깐 그럽데다. 실단이도 그렇지요. 이런 말씀 하면 아즈버니 마음만 불편하시겠기에 아니하려고 했지마는 실단이 어머니는 실단이를 꼭 아즈버니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답니다. 그때에 아즈버니 댕겨가신 뒤로, 벌써 사 년이 되나 오 년이 되나, 아마 한 달에 열 번은 우리 집에 왔을 거야요, 실단이 어머니가. 아즈버니한테서 무슨 기별이 없는가고. 그러고 실단이도 자주 놀러 왔지요. 고것이 말이 없어서 속을 알 수는 없지마는 왜 몰라요? 사람의 속이란 말이 없어도 다 드러나는 게 아냐요? 고것이 우리 집에를 왔다가는 갈 때에는 언제나 시무룩해서 가겠지요. 그게야 아즈버니 소식을 못 들어서 그런 것이 분명하지요. 그러니 계집애가 열여덟, 열아홉이 되니 어떻게 그냥 둘 수가 있어요, 병신 궤지가 아닌 연에야. 그러니 언제까지나 나는 시집 안 가요 하고 버틸 수가 없거든요. 그 언젠가 한 번은 실단 어머니가 와서 툭 털어놓고 말을 합데다. 아즈버니가 실단이한테 마음이 있을 듯 싶으냐고. 실단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집 한 간도 없는, 떠돌아다니는 아이한테 어떻게 실단이를 맡기느나고, 안될 말이라고 그러지마는, 아즈버니만 마음이 있으시다면 자기가 아무렇게 해서라도 다른 자리는 다 물리치고 아즈버니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노라고요. 실단이도 말은 아니해도 아즈버니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라고요. 그런데 아즈버니한테서는 영 소식이 없어, 실단이 나이는 자꾸 가. 헌데 한 번은 그러더래, 실단 아버지가 실단 어머니랑 실단이랑 들으라는 듯이 아즈버니가 설상 돌아온다 하더라도 웬걸 학교 공부도 아니한 시골 계집애한테 장가를 들겠느냐고, 필시 서울 어떤 대가집 딸하고 혼인을 할 것이라고, 넌지시 그러더라는구려. 실단 어머니가 나한테 와서 그런 의논을 한단 말야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듯도 하거든요. 게다가 실단이 동생을 또 장가를 들여야 안하겠어요? 그 애가 벌써 열네살이어든, 벌써 혼인이 늦었지, 안 그래요? 지금 밥술이나 먹는 집 치고 어디 아들을 열네살 넘도록 그냥 두는 집이 있나요. 세상이 말세가 되어서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고, 어서어서 시집장가를 들여야 부모가 마음을 놓거든요. 그래서 실단이 이번 혼인이 된 모양인데, 그러니 실단 어머니나 실단이야 울며 겨자 국을 먹고 있지요. 아즈버니가 한 달만 일찍 돌아오셨더라도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마는. 아, 참 아즈버니는 어디 정혼한 데는 없으세요?」 형수의 말로 실단의 사정은 대강 짐작이 되었다. <그러기로 이럴 법도 있나?> 나는 한 번 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때에 내가 느낀 슬픔, 분함, 뉘우침, 괴로움은 도저히 내 붓으로는 그릴 수가 없다. 그저 내 모든 희망, 신앙, 평생의 계획이 한꺼번에 다 깨어지고 절망과 암흑의 밑없는 구렁텅이로 빠진 것과 같았다고 할까. 
 나는 더운밥으로 지어다 주는 점심도 입에 들어가지를 아니하였다. 한식 술이 남은 것이라고 형수가 주는 술만 서너 잔 마시고 상을 물렸다. 몽급이네 집에서 술을 훔쳐 먹은 이래로 내 입에 술을 대는 것은 처음이었다. 형수도 내 속을 알아보고 권하는 술이요 나도 홧김에 마신 술이었다. 술 잘하기로 유명한 형수의 솜씨라 이른바 매눈 같은 청주였다. 나는 얼근을 느꼈다. 답답하던 속이 좀 누그러지는 듯하였다. 
 형수는 내 눈치를 슬쩍 보고 앉았더니 웃지도 않고 근심스러운 정성을 보이는 얼굴로, 「심심한데 가 보시지.」 하였다. 「어딜요?」 「잔치 집에, 실단네 집에. 달걀이나 두어 꾸러미 싸 드리께 들고 가 보셔요. 못 가실 데야요, 머?」 「흠.」 하고 나는 어이없이 웃었다. 「실단네 집 뒤에 곰여울 할머니가 사십니다. 재작년에 집을 짓고 그리로 떠나가셨어요. 실단 어머니가 적적하다고, 또 실단이가 시집갈 바느질도 하여 달라고 해서 거기다가 집을 한 간 짓고 계십니다. 그 할머니도 찾아 뵈일 겸 가보시지. 그 할머닌들 아즈버니를 얼마나 반가와하시겠어요. 오죽이나 돌고지 도련님을 귀애하셨나. 그러셔요, 가 보셔요. 아마 거기 가시면 실단이도 만나실 거야요. 실단이가 아마 그 할머니 댁에서 차릴 게입니다. 실단이가 시집가면 만나실 수 없지 않아요?」 하고 형수는 싱긋 웃는다. 그리고는 정말 나가서 달걀 두 꾸러미를 손집이를 하나로 하여서 들고 보이면서, 「자, 이걸 들고 가셔요, 구경 겸.」 한다. 
 잔인하게 나를 놀려먹는 것 같이도 생각하고 하회가 어찌되나 하고 사건의 진전을 흥미있게 기다리는 것도 같았다. 
 아마 한 잔 먹은 김이었을 것이다. 나는 형수의 말을 좆기로 하여, 달걀 꾸러미를 들고 나섰다. <싱거운 길이다.> 하고 나는 스스로 저를 조롱하면서 사년 전 내가 실단이를 집으로 바래다 주던 길로 나섰다. 
 만일 오늘이 실단의 혼인 날이 아니요, 그를 내 아내로 할 희망을 가진 길이라면 한 발자국에 얼마나 가슴이 울렁거렸을까. 또 만일 실단이가 죽었다고 해서 가는 길이라도 얼마나 감정이 격동할 것일까. 그러나 실단은 이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하여, 오늘 밤이면 아주 그가 내 생각 안에서 영원히 나가기 위하여 단장을 하고 있을, 그러한 자리로 찾아가는 나의 걸음은 무거웠다. 그럴진댄 안 가면 고만이 아니냐, 하련마는 그래도 가 보고는 싶었다. 다만 한 번만이라도 그리운 실단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는 실단의 집으로 바로 가기를 꺼려서 형수의 훈수대로 곰여울 할머니의 집으로 갔다. 집이란 이름뿐이요, 더 적을 수 없고 더 초라할 수 없는 오막살이었다. 집이라고 부엌 한 간, 방 한 간, 그리고는 앞채로 헛간 한 간, 울타리도 없었다. 아무 것도 탐날 것을 가진 것이 없는 육십 노파 혼자의 집에 청장을 하기로는 뉘라 들어오랴. 바람과 비만 안 들어오면 고만이었다. 「곰여울 할머니!」 나는 마당에 서서 불렀다. 「거 누구야?」 하고 귀에 익은 소리가 방에서 나왔다. 「제야요. 돌고지 도경입니다.」 하는 소리에, 「무어? 도경이?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고 곰여울 할머니는 문을 열었다. 사 년 전에 비겨서 벌로 더 늙은 줄도 몰랐다. 「아이구, 이게 웬 일인고. 어서 들어오라고. 크기도 했네. 아버지 키보다도 더 크겠고나, 원 세상에. 그래 언제 왔노? 서울서 장가들었다지. 색시도 데리고 왔나. 실단이는 도경이를 가다리다 못하여 고만 다른 데로 시집을 가게 됐구먼. 원 세상에, 실단 어멈을 불러와야겠군. 퍽도 기다리더니. 날마다 기다렸지. 신랑 옷 한 가지를 지어도 도경이 품에 맞게, 도경이 품이 이만 할까, 저만 할까 하고 모녀가 그렇게도 생각을 했구먼. 아이 세상에, 그럴 데가 어디 있누. 가만 있어, 내 실단 어멈 오랄게. 얼마나 반갑겠누, 원 세상에.」
 곰여울 할머니는 귀먹은 늙은이가 흔히 하는 모양으로 혼자만 지껄이면서 신을 끌고 나간다. 내게는 한 마디도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단간단한 말에서 그동안의 실단이 모녀의 심경을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나를 그리고 기다리던 것을 아니 더욱 그리웠다. 그러나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린 꿈이다. 앞으로 회고의 쓰라림이 기다릴 뿐이 아니냐. 
 잰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실단의 어머니였다. 상글상글 웃는 눈은 예와 같으나 눈초리에 주름이 잡히고 얼굴에 빛이 준 것이 중년 여성임을 보였다. 그 뒤를 따라오는 실단은 그 어머니와는 반대로 활짝 핀 꽃과 같아서 사 년 전에 보던 배틀하고 메마른 계집에로부터 몸이 퍼질 데는 퍼지고 빛날 데는 빛나는 여편네가 되었다. 
 나는 실단 어머니에게 절을 하였다. 「아니, 절은 무슨 절.」 하고 실단 어머니는 내게 맞절을 하였다. 서서 받을 절이 못 된 것을 나는 아깝게 생각하였다. 「아이참, 몰라보게 되었구먼.」 하고 실단 어머니는 그 고운 다정한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치에서 그가 나를 그리워해준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나도 그에게 대하여서 크게 그리운 사람을 대한 듯한 정다움을 느꼈다. 나는 마음놓고 그의 얼굴을, 눈을 반갑게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고적의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이 훈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 뒤에 나는 눈을 실단에게로 돌렸다. 실단은 머리를 고부슴하고 두 손으로 치마고름을 잡고 있었다. 아마 한식에 갈아입은 옷이겠지, 연분홍 서양목 치마가 약간 풀이 죽고 고운 때가 묻은 것이 더욱 정다왔다. 그의 얼굴은 까무스름한 편이어서 옥같이 희다든가, 복숭아꽃같이 불그스레한 맛인 없으나 단정하고 포근한 맛을 주었다. 「글세 괜한 소문이 났구먼.」 하고 곰여울 할머니는 한 손으로 내 등을 만지면서, 「도경이가 장가를 든 일이 없다는데, 웬 서울 식시헌테 장가를 들었다고, 헛소리를 누가 해서, 아이 세상에. 이렇게 도경이허고 실단허고 가지런히 놓고보니깐 비둘기 한 쌍, 원앙새 한 쌍 같은 걸. 아이구. 아까워라. 실단이도 그렇게도 애를 태고 도경이를 기다리더니. 실단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지. 나헌테 오기만 하면 도경이 말이로구먼. 옷 한 가지를 말라도 이만하면 도경이 품에 맞겠지, 도경이가 이보다 더야 자랐을라고 하고 그렇게도 도경이 말만 하더니, 웬 세상에. 그런 데가 웨 있누.」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실단의 고개는 더욱 수그러진다. 그의 통통한 목덜미가 몹시 나의 마음을 끌었다. 「모두 다 연분이지 이제 그런 말씀 해서 무엇하겠어요.」 하고 실단 어머니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웃으면서, 「우리 실단이가 도경이 마음에 차지 않길래 아무 말도 없었겠지. 도경이야 일본까지 가서 큰 공부를 하고 앞에 크게 귀히 될 사람인데 시골 구석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우리 실단이야 배필이 될 수가 있겠어요. 그런걸 제가 어리석어서 제 속만 여기고 기더렸지요. 안 그래요, 할머니?」 하는 말에는 좀 원망하는 빛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하고 나는 구구한 변명인 줄 알면서 입을 열었다. 이 기회에 내가 지난 사 년 간 속에 먹었던 생각을 얼마라도 실단이 모녀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 게 아냐요. 다 지금 와서는 쓸 데 없는 말씀입니다마는, 저는 사 년 전에 그 때에 여기서 댕겨가서부터는......」 하고 실단이를 무엇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서 머뭇머뭇 하다가, 「에라」 하고 용기를 내어서, 내 일기에 몇 백 번인지 모르게 써 본 실단이란 이름을 한 번 실단의 앞에서 불러보기로 결심하였다. 「저는 줄곧, 날마다 실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하느님께 빌었어요. 실단이가 잘 있게 해줍소사고. 또 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마는 실단이와 혼인하게 해줍소사고요. 실단 아버지께 편지도 여러 번 썼어요. 청혼하는 편지를 열 번은 더 썼어요. 썼다가는 모두 찢어버렸지요. 내가 부모도 없고 집 한 간도 없는 놈이 어떻게 남의 딸을 달라고 하랴, 염치없는 일이거든요. 또 실단 아버지께서 괘씸한 놈이라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실 것 같지도 아니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제가 졸업이나 하고 직업이나 얻으면, 그때에나 말씀을 해볼까 하고요, 그런 게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외가에 와서 형수헌테 듣고야 오늘이 실단이 혼인날인 줄을 알았지요. 그래서 벼르고 별렀던 소망이 다 끊어졌지만, 한 번 실단 어머니나 뵈옵고 가려고 왔던 길야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이마와 등골에 땀이 흐른다. 제가 어떻게나 박복하고 못난이인 것이 너무도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괜한 소리를 했다 하고 낯이 후끈거렸다. 
 실단 어머니는 실신한 사람 모양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고, 실단은 웃니로 아랫입술을 꼭꼭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곰여울 할머니는 내 말은 다는 알아듣지 못하고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밖에 우수수하고 봄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실단 어머니는 후유 한숨을 쉬고 실단의 치맛자락에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들의 내게 대한 생각을 이제야 분명히 알았다. 그들은 정말 나를 사랑하였던 것이다. 그 어머니의 침묵의 한숨, 실단이의 침묵의 눈물, 그것들은 어떠한 웅변도 못 미치게 그들의 간절한 정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실단이 모녀가 더욱 내 살에 파고 스며드는 것과 같이 반갑고 그리웠다. 실단의 딴딴하게 땋은 귀밑머리를 내 손이 아니고 뉘라서 풀랴. 그의 바른편 가슴에 꼭 매어진 저고리 고름에 내가 아니고 뉘라서 감히 손을 대랴. 그의 마음이 내 것이니 그의 몸도 내 것이다! 나는 당장에 달려들어서, 「내 실단이!」 하고 실단이를 껴안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못할 일이다! 실단의 귀밑머리와 옷고름을 마음대로 풀 사내가 지금 꺼떡대고 한 걸음 한 걸음 이리로 가까이 오고 있다. 그의 말머리가 보이기 전에 나는 여기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실단이 곁에 앉아서 실단의 이름을 부를 수는 영원히 없는 것이다! 「실단이!」 하고 나는 인사 체면도 다 잊고 불렀다. 그 소리는 내 소리같지 아니하게 떨리고 우는 소리였다. 「네.」 하고 실단은 고맙게도, 의외에도 대답하고 고개를 들어서 눈물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그 맑고 다정한 눈!> 나는 마치 이번에 한 번 보아두면, 천만 번 나고 죽더라도 그 눈을 아니 잊을 것이나 되는 것같이 뚫어지게 그 눈을 바라보았다. 실단이는 내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숙였다. 나는 또 한번 「실단이!」 하고 불렀다. 실단은 또 「네.」 하고 아까 모양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아까보다도 눈물이 그득 찼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두 번 듣고 눈을 두 번 보았다. 이제는 더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여기 오래 있는 것이 더욱 못난 것임을 깨달았다. 무에냐, 제 것도 아닌 실단을 옆에 놓고 그리워하는 것이 거지의 기상인 것 같았다. 설사 실단이 모녀가 한 팔에 하나씩 매어달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홱 뿌리치고 나서는 것밖에 내게 남은 사내다움은 없었다. 
 나는 아주 선선한 사람같이, 「저는 가요.」 하고 곰여울 할머니 집에서 나섰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실단이 모녀가 내 뒤를 바라본다고 느꼈으나 굳이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버렸다. 
 나는 무엇을 빼앗기고 망신하고 쫓겨난 사람과 같은 생각을 쫓아낼 수가 없었다. <에익, 고약한 내 운명!> 하고 나는 침을 퉤 뱉았다.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이라고 원망도 해보았다. 세상과 운명에 대하여 반항하리라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나는 한을 품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이야기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는 넷째 이야기로 써야 옳은 것인데 이것을 다섯째로 민 것은 까닭이 있다. 첫째는 내가 어렸을 적 이야기가 너무 암담한데다 뒤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주일을 새에 두고 작고한 비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로서도 차마 하기 어려울뿐더러 이 글을 읽을 이의 정신에도 과도한 비감을 드릴까 슬퍼함이었다. 그래서 어린 사랑 이야기를 새에 넣어서 나와 및 읽는 이들의 마음을 쉬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행이 많은 이 세상에서 불행한 이야기를 일부러 하여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비참한 이야기는 영영 아니하고 마는 것이 좋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이 하는 일을 다 알아서 어떤 것은 기록할 만한 값이 있는 일,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 일이라고 낱낱이 판단하기는 어렵기도 하려니와 건방진 일일 것도 같다. 내라고 하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도 나 스스로 그 뜻을 알아낼 수 없는 일이어든, 내 일생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어느 것이 꼭 뜻이 있고, 어느 것은 아무러한 뜻도 값도 없다고 작정해 버릴 수는 없고, 차라리 내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크든지 적든지, 내가 보기에 뜻이 있든지 없든지, 이 일을 있게 하는 하늘로서 보면 다 뜻이 있고 까닭이 있고 따라서 우주의 섭리에 필요한 것이어서 그중에서 하나도 빼어놓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줄로 생각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돌아감도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대로 적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 한 사람에게는 이 두 죽음이 무의미할 리가 만무하다. 내 성격을 이루는 데나 내 일생의 행로를 결정하는데 영향이 없을 수가 있는가. 열한 살의 어린 나는 필시 이 두 죽음에서 인생의 괴로움이라든가, 덧없음이라든가, 세상이 어떻게 무정하다는 것이라든가,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가, 죽으면 어찌 되는가, 어찌하여서 어떤 사람은 재물도 많고 형제도 자손도 번성하게 잘 사는데,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야 하는가 라든가 이런 문제들도 어렴풋하게나마 어린 내 마음에 일어났을 것이다. 한 번 마음에 박힌 인상은 영원히 스러지지 아니함을 생각하면 이러한 생각을 마음에 일으킬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내 생애에 큰 문제가 아닐 수가 없지 아니한가. 
 내 아버지로 말하면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서는 이미 쓸 데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재산도 건강도 다 없어지고 무엇을 하여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이 벌써 이 세상에서 받은 복은 다 써버렸다는 표였다. 내가 아는대로 보면 아버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우리 네 식구밖에는, 이 넓은 세상에 하나도 없는가 싶었다. 일가도 친척도 아버지를 환영할 사람은 없었다. 약간 재물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무엇을 달랄까 겁을 내었었고, 아무것도 없는 빈궁한 사람들은 아버지와 같이 아무 것도 아무 힘도 없는 궁한 사람이 소용이 없었다. 아마 아버지는 청을 할 만한 데는 다 청을 하였고, 꿀 만한 데는 다 꾸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아버지가 제 집 앞에 번뜻 보이기만 하면 「내 집에는 안 들어왔으면」 하고 빌었을 것이다. 안 오면 다행으로 알고 오면 어서 가기를 바라는 그러한 신세가 된 아버지였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는 쓸 데만 없을뿐더러 어서 이 세상에서 물러 나가기를 남들이 바라는 그러한 아버지의 신세였다. 
 아버지가 내 사중숙의 집에서 갓에 제비똥을 받았을 때에, 「허, 새 집승까지도 나를 괄시를 하는군.」 하던 것을 보면 아버지 자신도 자기가 쓸데 없는 사람인 줄을 안 모양이었다. 「새가 머리에 똥을 싸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데.」 하고 그 집 아주머니가 나중에 내가 듣는 데서 말할 때에는 나는 울고 싶었다. 
 아무리 세상에서는 쓸데 없는 사람이라도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버지요, 내 어머니께도 천금보다 소중한 남편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나 내나 아버지를 잘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도 날이 갈수록 아버지를 못나고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모양이었고, 내외 말다툼이나 할 때에는 대어놓고 아버지를 빈정거리고 대수롭지 아니하게 여기는 모양을 보이기도 하였다. 나이로 말하여도 스무살이나 틀리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젊은 아내에게 그런 불공한 괄시를 받는 아버지를 나는 가엾게 생각하여서 어머니를 눈흘겨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풀이 다 죽은 아버지는 이런 때에 다만 한 마디, 「으응」 할 뿐이요, 버릇 없는 젊은 아내를 되려 책망도 못하였다. 먹을 것, 입을 것도 못 대어 주는 남편이 어떻게 위신이 설 수가 있을까. 
 어린 내 소견에도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여도 안되는 운수를 탄 사람이었다. 그가 양식을 벌어 오려니, 옷감을 구해 오려나 하는 생각은 나도 아니하게 되었다. 그저 아버지니까 소중하고 보고 싶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의지한다는 마음보다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더욱 많았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럴까- 남의 아버지 같지 못할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의식도 못 얻어다 주는 아버지언마는 그가 없는 세상을 나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야 설명할 수는 없지마는 그러하였다. 필요한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필요는 대단치 아니한 필요다. 왜 그런지 모르는 필요야말로 무서운 필요다. 아버지는 내게는 이러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던 해 여름에 나는 이질을 앓았다. 배는 오려내는 듯이 줄창 아프고 하루에도 삼사십차 피곰을 누었다. 나중에는 이루 뒤를 볼 수가 없어서 젖먹이 모양으로 기저귀를 차고 누워 있었다. 팔다리는 북어처럼 마르고 살은 희다 못하여 파르스름하게까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죽을병이었다. 그러나 나는 죽는다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아버지는 밤낮 나를 간호하였다. 불돌을 구워서 연방 배에 갈아 대어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약을 구하러 갈 때에만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다. 약을 구해가지고 돌아오면 의관을 벗기도 잊어버리고 또 내 간호를 하였다.
 아버지가 구하여 오는 약은 가지각색이었다. 첩약 이외에 가루약도 있었다. 면화 꽃을 달여붙여서 먹으면 낫는다고 하여서 면화 꽃을 한 움큼 따 가지고 집 그림자가 마당 한복판에 검을 금은 그은 때에 돌아오던 아버지 모양을 기억한다. 또 도끼를 불에 달구어서 막걸리에 담가서 지글지글 끓는 것을 먹이던 것도 기억된다. 
 이 모양으로 날마다 무슨 약을 먹어서 이질에 좋다는 약으로 아니 먹어 본 것이 없지마는 그중에도 잊히지 아니하는 것이 거무스름한 구렁이 헐을 백지에 싸 가지고 온 것이다. 아버지는 나 보는 데서 이것을 숯이 되도록 구웠다. 그 길다랗고 어룽어룽한 것이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고 고드러지는 양도 흉헙거니와 거기서 나는 누린내는 더욱 비위를 거슬렸다. 한 달이나 넘어 중병으로 신경만 날카로와진 내 눈에는 독이 그득 찬 두 눈과 갈라진 혀끝이 날름거리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오십 리 길이나 걸어서 구렁이 많은 산촌에 가서 구하여 온 이 약을 아니 먹을 수가 없어서 눈을 꽉 감고 술에 탄 구렁이 헐 가루를 들이마셨다. 내가 다 마시고 그릇을 내어놓는 것을 받으면서 아버지는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이 약을 먹고 내가 나을 것을 믿고 하늘에, 신명에 빌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버지께 효도한 것이 없으나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주는 약이면 무엇이나 순순히 먹는 것이었다. 나는 두 살 적에 우두를 맞을 때부터도 아버지가 하라는 것이면 무엇이나 거역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우두 맞을 때에 내가 아프다고 양미간 찡그리고 울먹하면서도 웃었느니라고 아버지는 즐거운 기억 삼아 가끔 말하였다. 사실상 나는 내 병이 나으려고 약을 먹느니보다는 약을 구해다가 주는 아버지가 미안하여서 하는 편이었다. 잔병을 많이 앓은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의 애씀을 느낀 것이었다. 
 구렁이 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이질은 점점 차도가 있어서 배 아픈 것과 뒤 무거운 증세도 없어지고 입맛도 나게 되었다. 그러나 좀체로 일어나 뛰어다닐 수는 없었다. 이 모양으로 내가 몸이 추서는 동안에 아버지는 여전히 내 곁을 아니 떠나고 내 동무가 되어 주었다. 장기도 가르쳐 주고 골패도 가르쳐 주고, 사례 편람, 상례, 천기대요 같은 책을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는 이동안에 관, 혼, 상, 제의 모든 예를 배우고 모든 축문을 암송하였다. 왼손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말고 세 손가락의 아홉 마디에 아버지가 손수 붓을 들어서 일천록, 이안손, 삼식신, 사징파, 오귀, 육합식, 칠진귀, 관인, 구퇴식을 다 써주어서 외고 그것이 어디로 보아도 열다섯 끝이라고 내가 말하여서 대단히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러하다. 


 이것은 무엇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는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나 지금은 생각이 아니 난다. 「七月流火, 九月授衣」 라는 시전 구절을 그때에 특별히 배운 것을 보면 내가 앓은 것이 유월에서 구월에 걸렸던 것 같다. 저녁에 마당에 밀짚거적을 깔고 모깃불을 놓고 식구들이 모여 앉았노라면 박나비가 박꽃에 날아오고 하늘에는 별똥이 많았다. 참외 수박은 사다 먹을 형세도 못되지마는 어머니가 가꾼 강냉이를 밥 위에 찌거나 아궁이에 구워서 먹을 수는 있었고, 아버지는 불 잘 안 붙는 담배를 모깃불 화로에 붙일 수가 있었다. 젖먹이 누이는 재롱을 피우고 여섯 살 먹은 누이는 반딧불을 따라다녔다. 개구리와 두꺼비가 담뱃재를 얻어먹으려고 엉금엉금 기어들고 극성스러운 모기들은 바람결에 모기내 밀리는 틈을 타서 덤비었다. 아버지는 담뱃대를 떨고는 또 담으면서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는 얼마 안되는 삼을 삼으면서 나를 장가를 들여서 어서 며느리를 얻어야 한다고 불평을 하였다. 박복한 우리 집에도 이러한 시름없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하늘에 북두칠성과 다른 별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것이 내 직성이며, 내 아내가 될 사람의 직성은 어느 것인가 하고 찾아보았다. 은하수가 거진 내 입 위에 왔다. 이것이 아주 내 입 위에 오면 햇곡식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견우성, 직녀성은 가장 내게 흥미를 주는 별이었다. 견우는 신틀아비라 하고 직녀는 베틀어미라 하였다. 이것은 어머니가 견우직녀 이야기를 할 때에 부르는 이름이었다. 
 우리 집을 뉘라 찾으리,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한 해에 오직 한 번 장령공 할아버지 제삿날이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었다. 칠월 스무날이면 오십 리쯤 떨어져 있는 내 재당숙네 집에서 몇 사람이 풍성한 제물을 가지고 우리 집을 찾았다. 
 이 해에도 내 재종조모와 재당숙이 비부 상금이와 종 칠월이에게 제물을 들리고 왔다. 우리가 저 밤나무, 대추나무 있는 기와집에 살 때에는 재당숙 집에서도 사오 인이나 왔었으나 인제는 여럿이 와도 묵을 데가 없었다. 종조부와 당숙도 왔다. 우리 집 굴뚝에서는 전에 없이 오래오래 연기가 났다. 아버지도 옷은 비록 헌털뱅이나 도포는 말짱하여서 이날만은 궁한 빛이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종손이라, 아무리 잘 사는 일가들이 제관으로 모이더라도 이날의 주인은 아버지였다. 
 어찌 알았으리, 이것이 아버지로서는 마지막 제사일뿐더러, 이 세상에 마지막 소임을 다한 것이었다. 제사가 끝나고 당숙들, 재당숙들이 다 떠나가니 우리 집은 전보다 더욱 쓸쓸하였다. 
 추석이 오지마는 무엇으로 다례를 지내며 간산을 하리. 팔월 초승이면 제주도 담가야 하고, 팔월 열 이틀 사흘이면 두부도 앗고 녹두도 갈고 떡도 쳐야 하지 않는가. 추석 대목이라고 소들도 잡건마는 쇠고기 한 깃을 무슨 돈으로 구하여 오며, 숭어나 민어나를 어떻게 사들이나. 
 팔월 열사흗날 아버지는 사당간 문을 열고 손수 소제를 하고, 어머니는 담을 것도 없는 제기를 닦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뒤에 따라다니며 아버지가 하는 양을 보았다. 
 아버지는 손을 읍하고 말없이 사당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제사도 못 지내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림을 보았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감실을 가리운 휘장을 걷었다. 거기 나타난 것은 감실 넷을 가진, 나무로 짠 장이었다. 그 속에는 향하여 오른편 감실로부터 내 오대조, 고조, 증조의 차례로 삼대의 독이 있고 넷째 감실에는 조모의 혼백이 설작에 넣어 있었으니 이것은 조부가 생존하여 있는 때문이었다. 나는 내 오대조부터의 장손이었다. 
 아버지는 내 오대조의 감실 앞에 서서 그 신주에 무엇이라고 썼느냐고 내게 강을 받았다. 나는, 「현 증 조고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부군, 현조비 정인 백씨 신위.」 이렇게 불렀다. 다음에는 아버지가 고조부 감실 앞에 서서 나를 보았다. 나는, 「현조고 통복대부 행 사헌부장령 부군 현조비 숙인 신씨 신위 현조비 숙인 문씨 신위.」 이렇게 불렀다. 여기 증조, 조라는 것은 내 조부로부터 본 것이었다. 조부의 고조가 되는 승지공은 내 조부의 재종형되는 이가 봉사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거침없이 다 아는 것을 보고 만족한 듯이 휘장을 늘이고는 별 말 없이 사당문을 닫고 나왔다. 
 아버지는 그리고는 내게 제삿날들을 묻고 제사 벌리는 법을 묻고 제물의 이름을 물었다. 육부치로는 쇠고기와 사슴의 쪼를 쓰되 돼지고기는 쓰기도 하나 아니 쓰는 것이 좋고, 수물 즉 물고기로는 비늘 있는 것을 쓰되, 숭어, 민어, 농어가 좋고, 조기, 준치는 비늘은 있더라도 쓰지 아니하며, 단물 고기는 잉어, 붕어가 깨끗하고 비늘이 있으나 역시 쓰지 아니하고, 실과로는 배, 감, 대추가 대종이어서 삼색 실과라 하고 감과 잣은 쓰며, 낟알로는 쌀, 기장이를 쓰고, 콩은 두부로, 녹두는 적과 승편소로 쓰나 팥은 아니 쓰며 새로는 닭을 쓰나 꿩은 아니 쓰며, 기러기, 오리는 제상에는 못 오른다는 것 들이었다. 
 이런 일은 나도 이미 대강 아는 것이언마는 아버지는 웬일인지 오늘따라 자세히 묻기도 하고 설명도 하였다. 「복숭아, 살구는 왜 안 써요?」 하고 나는 복숭아의 좋은 빛과 내와 맛을 생각하면서 물었다. 「복숭아, 살구는 안 써.」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고 웃었다. 「금년에는 복숭아를 못 먹고 말았어.」 나는 불현듯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 「복숭아가 먹고 싶으냐.」 하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까딱까딱 하였다. 「복숭아 나두.」 하고 여섯 살 먹은 누이가 달려왔다. 마치 내가 혼자 복숭아를 저 몰래 먹다가 감추기나 한 듯이 내 등 뒤까지도 돌아본다. 「오빠, 복숭아 먹었어?」 누이는 내 눈치를 본다. 「아니, 복숭아가 어디서 나서 먹어.」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복숭아 하나 먹었으문.」 하고 누이는 두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복숭아가 아직도 있을까.」 하고 아버지는 의관을 하고 나갔다. 
 앞집에서 떡 치는 소리가 났다. 뒷집 대장장이 집에서는 떡 치는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서인네 대감은 아들네 집에 추석 쇠러 간다고 갔으니 올 때에는 서인 마누라 주려고 떡을 싸가지고 올 것이다. 
 우리 사 모자는 기나긴 날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인제 터 밭에 오이도 없고 강냉이도 없었다. 늙은 씨 가지가 있을 뿐이었다. 
 앞길로 건너 마을로 울긋불긋하게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이 다니는 것이 보였으나 우리들은 갈아입은 새 옷도 없었다. 
 집 앞 김 산장네 밭에는 키 큰 수수가 바람에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앞 고래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물결치고 있었다. 풋밤도 먹을 만하고, 콩청대도 해먹을 만한 때다. 나는 전에 살던 신영말 집의 풋대추도 생각하였으나 인제는 모두다 남의 것이었다. 
 어머니도 우리들더러 밖에 나가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명절날이 되어도 새 옷 한 가지 못 갈아입은 꼴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단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버지가 큰골서 복숭아나 밤을 얻어 가지고 올 것을 바라고 지붕 그림자가 뜰에 지나가는 것을 들락날락 보고 있었다. 누이는 문 밖 살구나무 밑에 나가서 아버지가 돌아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아버지였다. 
 다 저녁 때, 해가 다 넘어가고 땅거미가 들 때에야 아버지가 돌아왔다. 우리들은 아버지 손부터 보았으나 아무 것도 든 것이 없었다. 「복숭아 다 없어졌어.」 아버지는 기운 없는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복숭아를 못 먹는 것이 섭섭하였으나 아버지가 돌아온 것만이 좋아서 다시는 복숭아 말은 거들지 아니 하였다. 누이도 복숭아 말은 아니하였다. 
 우리들은 마당에다가 밀짚 거적을 깔고 모여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아직 중추 명월까지는 이틀이 남았지마는 거진 다 둥근 달이 돌고지고개 위에 솟아서 가난한 우리 다섯 식구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것이 어찌 알았으리, 우리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먹는 마지막 저녁이었다. 아버지는 내일 낮이 기울면 이 세상을 떠날 이요, 어머니는 모레부터 병이 나서 이레 뒷면 돌아갈 이였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일이 마음에 행기어서 나는 달빛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 어디서 술을 자신 듯하여 낯이 좀 붉은 것은 아버지가 돌아올 때부터 본 것이지만 초췌한 그 얼굴에는 무엇인지 모를 그림자가 있었다. 「아버지 어디가 아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응, 배가 쌀쌀 아프다. 술을 한 잔 먹은 것이 오르내리는가 보다. 그 집 술이 시어서.」 나는 아버지의 이 말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나는 며칠 전에 어금니가 빠지는 꿈을 꾼 것과, 메추리 보금자리에 돌을 던진 것이 이상하게도 바로 맞아서 어미와 새끼 다섯이 한꺼번에 으스러져 죽은 것과 또 그저껜가 꿈에 우리 집 부엌 솥 건 뒷벽에 뻘건 쇠고기가 달려있는 꿈을 꾼 것들을 생각하고 아버지가 돌아가려는 징조가 아닌가 하여서 몸에 소름이 끼쳤다. 
 달은 밝고 사람은 서늘하고 모기도 있대야 한두 마리가 이따금 앵앵거릴 뿐, 다섯 식구가 파찬국 된장찌개뿐일망정 배불리 먹고 앉았으니 즐거울 만도 하건만 나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내 눈은 아버지 동정만 살피고 조바심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잠이 들었다가 깨니 아버지는 앓는 소리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정한 것을 치우노라고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쥐통(호열자)에 걸린 것이었다. 이 해에 유월부터 쥐병이 돌아서 인근 동네에서도 사람이 많이 상하였다. 어떤 데서는 어른아이 다섯 식구 중에 젖먹이 하나 남기고는 다 죽은 집도 있었다. 그러나 팔월 달을 접어들어 추풍이 나면서부터 뜸하여서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하던 판인데 아버지가 우리들을 위하여 복숭아를 얻으러 큰골에 갔다가 병을 묻혀온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금년 쥐통에 죽은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참 끈기있게 아버지 간호를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입에다가 아주까리기름을 한 입 물어서 아주까리 대 한 마디를 아버지 항문에 대고 그리로 입에 문 기름을 불어넣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을 자기의 병으로 여겨서 더러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어머니는 젖먹이를 업고 백 의원네 집에를 간다고 가더니 점심때나 되어서야 곽향정기산 몇 첩과, 가루약 한 봉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가루약은 곧 먹이고, 첩약도 부랴부랴 달여서 먹었다. 그러나 약 숟가락 뚝 떼며 이상한 증세를 발견하였다. 손발이 꺼멓게 죽고 콧집이 찌그러지고 눈이 곧아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거 큰일났다고 날더러 달 참봉네 집에 가보라고 명하였다. 달 참봉이란 아버지의 죽마고우로 무엇이나 조금은 다 안다는 사람이었다. 쇠를 가지고 집 자리와 묘 자리도 잡노라 하고, 날받이도 하고, 약은 아니 놓았으나 처방도 하였다. 
 나는 우물게 고개라는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서 장달음으로 달 참봉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 참봉 집에 갔다. 김 참봉은 망건 위에 탕건을 받쳐 쓰고 얼근하게 술이 취하여서 사랑에서 백지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었다. 「오, 너 어째 왔누?」 하고 달 참봉은 반가운 듯이 웃었다. 
 나는 아버지의 병 증세를 설명하고 약을 달라고 하였다.
 달 참봉은 놀라는 듯이 입에 물었던 장죽을 한 손에 빼어들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내가 가도 쓸데없어.」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송진을 콩알만큼 서너 개 먹이고, 머루덩굴을 물에다 끓여서 그 물로 손발을 씻겨라.」 하고는 다시 담뱃대를 물었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살아나겠어요?」 하고 나는 울면서 물었다. 「인명은 재천이야. 죽고 살기는 천명이지. 아무려나 어서 가서 그렇게 해보아라.」 하는 김 참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집에서 뛰어 나와서 집을 향하여 달렸다. 길에서 장난동무, 글동무들도 여럿 만났으나 나는 말없이 그들을 피하여서 뛰어 달아났다. 명절날 때 묻은 옷을 입은 것도 부끄럽거니와 아버지가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도 면목이 없었다. 
 송진과 머루덩굴을 해가지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의 모양은 아까보다도 더 나빴다. 정신도 없는 모양이어니와 그보다도 숨소리가 톱질하는 듯 하는 것이 수상하였다. 나는 이러한 숨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도경아, 너 청룡모루 김 의원네 집에 가서 좀 오시라고 그래 보아라.」 하는 어머니 말에 나는 집에서 뛰어나왔다. 
 청룡모루라는 동네는 내 사촌누님이 있는 데로서 우리 집에서 오리는 잔뜩 된다. 나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길을 달음박질하여서 넓은 논들에 들어섰다. 여기는 드렁다리라는 옛날 큰 돌다리가 있고 그 밑에는 물이 깊어서 큰 붕어와 메기가 잡히는 데다. 
 김 의원이란 사람은 약국도 놓고 훈장질도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약보다도 침을 잘 놓는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울 때면 어른들은 청룡모루 김 의원 불러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다. 키는 작고 얼굴은 통통하고 검고 자박수염이 난 매서운 사람이었다. 
 내가 말하는 병 증세를 듣고 김 의원은 송편을 한 그릇 내다가 날더러 먹으라고 하였다. 그것은 금방 쪄낸 것으로 솔잎 냄새가 나고 기름이 찌르르 흘러서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아침도 점심도 안 먹은 속이라 앉은 참 서너 개를 맛있게 먹었다. 먹다가 생각하니 이렇게 내가 떡을 먹고 있을 처지가 아닌 것 같아서, 떡그릇을 물려놓고, 「선생님, 저허구 가셔요. 우리 집에 가셔서 우리 아버지 살려주셔요.」 하고 졸랐으나, 김 의원은, 「내일 추석이니까, 다례를 지내야 하니까 못 가. 어서 네나 집으로 가거라. 다른 의원헌테도 갈 것 없어. 어서 빨리 집으로 가란 말야. 알아들었니?」 하고 야멸차게 거절하였다. 하릴없이 나는 김 의원 집에서 나와서 고개를 넘어서니 우레와 번개가 점점 가까워 오면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빗물 섞에 눈물 섞여 전신에 물을 흘리면서 드렁다리 길로 뛰었다. 발을 어떻게 옮겨놓는 것인지 나도 몰랐다. 숨이 찬지 아니 찬지도 몰랐다. 거의 드렁다리에 다다랐을 때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논과 개울에는 수없이 죽방울이 섰다. 천주산 벼락바위가 비에 가리워서 보일락말락하였다. 귀와 목덜미와 뺨을 때리는 빗방울은 콩알과 같아서 눈을 들 수가 없었다. 벼락바위 쪽으로 냅다 부는 바람과 그 바람에 몰리는 살대 같은 빗발이 내 가슴을 떠밀어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하늘은 찌부러질 듯이 바싹 내 머리 위에 내려와 닿은듯하고 빗발과 빗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아니하였다. 마치 갑자기 어스름이 온 것처럼 천지가 혼명하였다. 나는 그 속으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다시피 하고 여전히 바람비를 거슬러서 뛰었다. 먼 우레 소리가 들려오고 번쩍하고 번개에 잠시 훤해지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단 말이지.」 나는 뛰면서도 청룡모루 김 의원의 말을 새겨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면 나는 살 수 없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 안 되고말고. 아버지는 꼭 붙들어야 한다. 내가 어서 가서 아버지를 꼭 붙들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하였다. 
 된 소나기는 지나가고 천지가 훤하게 되었다. 요란하게 물을 때리던 빗소리도 조용하게 되었다. 벼락바위가 반쯤 구름에 가리운 채 분명히 보이고 벼락바위에서 얼마 내려와서 산중턱에 있는 높은 데(산제 터를 이렇게 부른다) 지붕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길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하느님, 높은 데 계신 서낭님, 제발괴발 우리 아버지 살려줍소사. 천우신조 합소사, 천우신조 합소사.」 하고 소리를 높여서 빌었다. 
 집에 돌아오니 누이가 대문 밖에서 비에 떨어진 붕어를 조그마한 웅덩이에 넣고 놀고 있었다. 「이거 봐, 붕어가 떨어졌어, 하늘에서 떨어졌어.」 하고 누이는 작은 손바닥으로 붕어를 건져서 내게 보였다. 작은 붕어는 누이의 손바닥에 누워서 입을 넓적거리고 꼬리를 치고 있었다. 「아버지 어때?」 하고 내가 묻는 말에, 누이는 붕어를 도로 웅덩이에 놓으면서, 「엄마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좀 낫대, 잠이 들었다고 떠들지 말라고.」 하고 <나는 쫒겨나왔어>하는 뜻을 얼굴 표정으로 보였다. 
 나는 가만히 문을 열고 아버지가 누운 방에 들어섰다. 한편 무릎을 홑이불 밑에 세우고 한 팔을 구부려 손을 명치 끝에 바로 앉고 고개를 약간 어머니 앉은 쪽으로 기울이고 누워 있었다. 톱질 소리와 같은 숨소리는 과연 아니 들렸다. 나는 「천우신조 합소사」 하고 드렁다리에서 벼락바위를 향하여 빈 공덕이 나타났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젖먹이를 안고 시름없이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버지가 좀 나으신 것 같다. 숨소리가 없고 잠이 드셨고나.」 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연 아버지의 얼굴에는 고민의 빛이 스러지고 화평하였다. 눈은 반쯤 감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낯빛이 이상하게 푸르스름한 것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서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았다. 싸늘하고 축축이 땀이 있었다. 나는 이마를 짚었던 손을 옮겨서 아버지의 코밑에 대어보았다. 숨이 없었다.
 아버지는 운명한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숨이 없어! 돌아가셨어!」 이렇게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내 이 말은 아버지의 죽음을 우주에 선포하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두 어린 딸을 곁에 놓고 아무 말도 없이 그 괴로운 일생을 끝막은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못한 대신에 조그마한 손으로 아버지의 반쯤 뜬 눈을 감겼다. 내 손 길이가 아버지의 눈의 길이를 다 덮지는 못하였으나 내 손이 내려 쓰는 대로 아버지는 만족한 듯이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숨이 없다는 내 말에 황망히 젖먹이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굽혀서 홑이불을 젖히고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어서 쓸어보고는, 「가슴도 식었고나.」 하고 고개를 폭 수그렸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경험이 없는 어머니는 손발을 모을 생각은 아니하였다. 부엌으로 내려가 대접에 물 한 그릇을 떠서 소반에 받쳐 들고 숟가락을 놓아 가지고 들어왔다. 「엇다, 아버지 입에 물이나 한 모금 흘려넣어라.」 하고 어머니는 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나는 숟가락에 물을 하나 떠서 아버지의 방싯 벌린 입에 흘려 넣었으나 입술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물은 수르르 뺨으로 흘러 내려서 베개를 적셨다. 
 어머니는 홑이불을 끌어올려서 아버지의 얼굴을 가리웠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풀고 다음에는 나와 누이의 머리를 풀었다. 그러고는 몇 마디 곡을 하였으나 곧 그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서른세 살 밖에 안된 젊은 어머니다. 가난고생은 하였더라도, 옷이 허름할망정 얼굴에 궁기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얼굴이 선하게 보이는 듯도 하면서도 그려보려면 그려지지를 아니한다. 
 어머니의 얼굴은 흰 편이요, 눈은 이모처럼 재치있게 이쁘지는 아니하였으나 그 대신에 유순하고 단정하였다. 얼굴판은 길지도 둥글지도 아니하였고 체격은 건장하였다. 이모는 어머니더러 미련퉁이라고 놀려먹었지만 나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어머니는 추위도 잘 참고 배고픈 것도 견디었으나 그것을 미련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조그마한 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가꿀 줄을 알았고, 삼을 심어서는 삼베를 낳고, 누에를 쳐서는 명주를 짜고, 면화로는 무명을 짰다. 어머니는 글을 몰랐고 알려고도 아니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미련인지도 모르거니와 우리 삼남매가 자라난 것은 아버지 재주보다도 어머니 재주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어떠한 사람인 것을 아버지가 돌아간 때에 비로소 알았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더욱이 어머니의 놀라운 성격에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어머니는 머리를 풀고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도경아.」 하고 대단히 감정적인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평소에 무뚝뚝하다고 할 만치 냉정하던 어머니의 이 센티멘털한 음성은 나의 마음을 움직임이 크고 깊었다. 「왜요?」 하고 나는 이상한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과 같이 눈을 크게 떴다. 「나까지 죽으면 너는 어떻게 할련?」 이것이 어머니의 첫 말이었다. 「어머니가 왜 죽소? 어머니마저 죽으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게.」 나는 어머니 말이 부러 하는 말인 줄은 알면서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나와 누이들과 세 아이만이 세상에 남아 있을 광경울 차마 생각만이라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되면 말이다. 사람 일을 사람이 아니? 엄마가 내일이라도 죽는다면 말야.」 어머니가 죽는다는 말에 누이는 내게 매달리고 세 살 먹은 누이도 말귀를 알아듣는지 눈이 둥그래서 어머니의 무릎에 기어올랐다. 「어머니허구 우리들허구.」 하고 나는 어머니가 죽는다는 말을 일부러 못 들은 체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농사해 먹고 살아. 내가 낭구도 하고 소도 먹이고 다 할게. 조그마한 지게 하나 걸어 달래서 나도 지게를 지거든. 어머니야 농사 잘하지 않소?」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머릿속에 내가 지게에 볏단을 지고 소를 끌고 어머니 있는 집으로 저녁때에 돌아오는 광경을 생각하였다. 그러면 마음이 든든하였다. 「안 돼!」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왜?」 하고 나는 눈을 크게 떠서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어머니의 눈에도 전에 못 보던 빛이 있었다. 그것은 이모의 재치있는 빛보다도 더 깊고 큰 빛이었다. 「내가 안 죽으면 네가 지게를 지고 소를 몰아야 되는고나. 나마저 죽어야 네가 공부를 하여서 후제 귀히 되지.」 하고는 가슴으로 파고드는 젖먹이의 까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언년아, 너허구 엄마허구는 아버지 따라가자. 그래야 오빠허구 언니허구 두 애나 잘 살지, 아버지는 혼자만 가시면 외롭지 않아? 그렇지 언년아?」 하고 토닥토닥 젖먹이의 등을 두드린다. 젖먹이는 두 팔로 어머니의 가슴을 꼭 껴안고 낯을 어머니의 가슴에 꼭 붙인다. 숨을 쉬는 대로 그 등이 들먹들먹한다.
 어머니는 눈도 깜짝 아니하고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낯빛은 분을 바른 듯이 희어지고 그 가느스름하게 반쯤 뜬 눈은 차차차차 날카로워진다. 이모의 눈보다도 더욱 재치있게 보인다. 어린 내 생각에도 어머니의 눈은 어디 지극히 먼 곳을 바라보고 그 마음에는 엄청나게 큰 생각을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만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친 것이 아니라 내 팔목에 꼭 매달려서 나만 쳐다보고 있는 누이의 눈도 쫑긋하였다. 
 어머니는 가슴에 붙은 언년이를 두 손을 밀어서 데면서, 「언년아, 어부바.」 하였다. 
 언년이는 허둥지둥 어머니의 어깨를 짚고 등 뒤로 돌아서 어머니의 두 어깨에 장난감 같은 손을 걸고 이마를 어머니의 등에 꼭 붙인다. 
 어머니는 젖먹이 누이를 업고 일어나서 띠를 매더니, 아버지의 시체 가까이 다가서며 삼사람에게 말하듯, 「나허구 언년이허구 다려가시우. 그리고 도경이허구 간난이허구 오래오래 잘 살게 해주시우.」 하고 한 발을 번쩍 들어서 아버지의 시체의 허리를 타고 넘었다. 그리고는 크고 어려운 일을 치른 듯이 한숨을 쉬고 빙그레 웃으면서 날더러, 「이렇게 하면 다려간대.」 하였다. 이때에는 어머니의 눈은 예사롭게 되어 무섭지도 이상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때에 받은 내 정신의 감동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그 말대로 소원대로 된 것을 생각하면 세상에 이에서 더한 비창하고 비장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우리 네 모자만이 지냈다. 뒷집 창린이더러 돌고지 일갓집에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기별을 하여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밤에는 아무도 오지 아니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중로에서 노름판에 들러서 이튿날 아침에야 기별을 전하였다고 한다. 다른 데도 알리지도 아니하였거니와 설사 알았더라도 아버지의 병이 병이라 아무도 올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도 우리 집에 재산이 있거나 권세가 있으면 모험을 하고라도 올 사람도 있으련만 우리 집에 무엇을 바라고 오랴. 세상에서 없어지고 버려진 아버지다웁게 아버지는 돌아가고 그러한 가장의 가족다웁게 적막한 경야를 하였다. 곡성도 없고 수선거림도 없는 지극히 고요한 초상집이었다. 
 이튿날은 팔월 추석이다. 돌고지서는 종조와 당숙을 머리로 여남은 사람이 모여왔다. 나는 얼른 한 집에서 하나씩 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내 불쌍한 아버지는 수의도 없이 밀짚 거적에 싸여서 우리 집 대문 밖 밭귀에 묻혔다. 그리고는 당숙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당숙도 여기서 사십 리나 넘는 바다의 나루를 건너야 하는 곳에 있는 조부에게 기별을 한다고 떠나고 우리 네 모자만이 집에 남았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아니한 듯이 언년이를 업고 아버지가 더럽혀 놓고 간 이부자리와 의복을 개울에 가지고 나가서 빨아가지고, 머리까지도 말짱하게 감고 저녁때나 되어서 들어왔다. 
 어머니는 빨래는 줄에 널어놓고는 두어 걸음 비틀비틀 하더니, 「어쭐어쭐 하다.」 하고 억지로 진정하여서 퇴에 걸터앉았다. 어제까지 그렇게 궂던 날이 오늘은 씻은 듯이 맑고, 멀리 청천강 있는 쪽으로는 구름봉우리가 피어올랐다. 마치 이제 세상에는 궂은 일이 다 끝났다는 것 같았다. 기상에도 바람비가 재우치는 때와 고요하게 일월이 명랑한 동안이 있듯이 사람의 일에도 한바탕 풍파가 지나가면 잠시 평온무사한 날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요동 안에 약간 기운을 회복하여서 앞에 오는 새 곡경을 당해보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때 우리 집에 온 쉬는 동안은 참으로 짧았다. 
 어머니는 예사롭게, 웃을 때에 웃기까지 하면서 저녁밥을 지어주고 잠자리도 보아주고 젖먹이를 안고 우리들과 같이 누웠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하여서 경계하는 눈이 쉬이지 아니하였으나 그 예사로운 태도에 안심도 되고 또 며칠 몸과 마음의 타격에 곤하기도 하여서 잠이 들어버렸다. 
 밤중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옆에는 어머니가 있지 아니하고 숙부와 당숙이 상투 바람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운명하던 방에 아버지가 돌아간 때에 깔았던 요를 깔고 그 베개를 베고 그 홑이불(어머니가 어제 빨아 말린 것)을 덮고 누워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곁으로 가서 황황하게 불렀다. 「왜 일어났니? 더 자지. 아직 밝을람 멀었는데.」 어머니는 손을 내밀어서 내 등을 만졌다. 「어머니, 왜 이 방에 왔소?」 금방 사람이 죽은 방, 금방 사람이 죽은 자리에 드러누운 것과 언년이를 업고 아버지 시체를 타고 넘은 것과 연결하여서 나는 어머니가 죽을 차비를 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다만 한 마디, 「나도 아버지 돌아가시던 병이 들었다. 나는 인제는 못 살아.」 할 뿐 더 말이 없었다.
 나는 작은아버지와 당숙에게 귓속말로 어머니가 언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따라 죽을 결심인 것을 말하였다. 두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어찌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어른들도 어찌할 수 없으니 나도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에도 어머니는 아니 일어났다. 아버지가 앓던 병이라면서도 구토 설사도 없고 전근도 없었다. 아프다는 소리도 없이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눈을 떠서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볼 뿐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의 당숙모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것은 정을 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내가 보고 싶은 것도 억지로 누른 것이었다. 죽는 사람이 산 사람에 정을 떼고 죽어야 살아남은 사람이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아침밥을 누가 지었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당숙이 끓여서 먹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냉수 한 모금도 아니 찾은 것만은 기억한다. 
 어머니가 누운 지 며칠 만인지 잊었으나 하루는 내가 어머니더러, 「어머니 아무렇지도 않지 않수? 아무 데도 아픈 데 없지 않우?」 하고 물었다. 그렇게 물을 만도 하였다. 날은 좋아서 방 안이 환하게 밝은데 어머니는 얼굴이나 눈이나 잘 자고 난 사람 모양으로 말짱하였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홑이불을 걷어 올려서 다리를 보이면서, 「이거 보렴, 죽을려고 벌써 점을 치지 않았니? 이거 보아, 이거 말이다.」 하고 무릎 밑에 무엇에 다친 것처럼 돈닢만 한 퍼렇게 된 점을 가리켜 보였다. 어머니가 죽는 점이라니 나도 그런가 하고 믿고 무서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도로 이불을 덮고 몸이 성했을 적보다도 더욱 편안한 얼굴과 맑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달라지는 것은 어머니의 음성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가까이 귀를 대어야 말이 들리게 된 어느 날 어머니는 손을 들어서 나를 불렀다. 「언년이 다려온.」 하는 언년이를 안고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언년이는 싫다고 발버둥을 치고 울었다. 어머니는 반듯이 누웠던 고개를 언년이 쪽으로 돌리고 가슴을 열고 젖을 손으로 쳐들며, 언년이를 보고 「젖 머.」 하고 젖을 흔들어 보였으며, 언년이는 무서운 것이나 본 것처럼 돌아앉아서 두 팔로 나를 껴안고 낯을 내 품에 묻고서 다른 데로 가자고 몸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바르고 홑이불로 가슴을 가리면서, 「그것 봐라, 죽을 사람을 어린애가 안다는 게야.」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 일이 있은 뒤로는 젖먹이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아니하고 그와 반대방향을 향하고 앉았다. 내게 안겨 있을 때에도 내가 어머니 쪽을 향하여 앉았으면 돌아앉으라고 떼를 썼다. 혹시 나와 누이가 다 밖에 나오고 언년이만 혼자 있을 때에 들어와 보면 그는 어머니 있는 쪽에서 제일 먼 구석에 가서 담벼락을 향하여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잠시도 아니 떨어지고 밥보다도 젖으로 살던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영절스럽게 달라질까. 영 보채는 일이 없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언제나 내게 매달리고 내 곁에 있고 싶어 하였다. 잘 때에도 내 곁에서 내 손을 꼭 쥐고야 잤다. 잠결에 나를 엄마로 생각하고 입으로 내 가슴을 뒤지다가도 젖이 없으면 곧 돌아누워서 잤다. 어쩌면 그럴까. 나는 지금도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언년이는 우리 형제들 중에는 제일 잘생긴 아이였다. 갸름하고 하얀 판에 눈이 어여쁘고 까만 머리가 귀를 덮었다. 성질은 어머니를 닮아서 무겁고 순하여서 재능은 없었으나 음전하다고 사람들이 칭찬하였고, 우리 집안 모든 식구의 귀염을 받았다. 나는 그가 말한 기억은 없다. 그의 기억은 조각적이요, 음악적은 아니었으나 내게는 평생에 그가 애끓는 기억이 되었다. 그는 어머니보다 한 해 뒤떨어져서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는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오직 숨만 남은 사람이던 어느 날 내가 뒷산에 가서 땔 나무를 한 묶음 해가지고 돌아오니 어머니는 부엌에 나와서, 한 발을 아궁이에 넣고 쓰러져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나는 울면서 불렀으나 물론 대답이 없었다. 「물을 한 모금 데워먹을 양으로 불을 지필 생각이던가.」 나는 그때에 이렇게 생각하고 가슴이 아팠다. 
 물론 당성냥도 없던 그날 어머니의 기운으로는 불을 불어서 일으킬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이레 동안이나 꼼짝도 아니하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자 높이는 되는 낙수층계를 내려서, 그만 못지아니한 부엌 문지방을 넘어서 들어왔을까. 
 부러 죽자는 죽음이지만 죽기 바로 전에 살고 싶은 마음이 났던 것일까. 그렇지 아니하면 반 무의식중에 저녁을 지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 일일까?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날 밤에 어머니는 우리들이 지켜 앉은 속에 자는 듯이 돌아가고 말았다. 
 이튿날 우리 집 대문 밖에는 가지런히 새 무덤 둘이 놓였다. 일 년 후에 나는 돈 일백 일흔 냥을 구걸하다시피 얻어서 간략한 면례를 지낼 때까지 두 무덤은 여기 돌아보는 이도 없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집은 헐려버렸으니 아마 흉가라 하여 드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여섯째 이야기


 나는 무엇 때문에 동경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게 되었다. 잠시라도 모시고 효도를 해보려던 조부는 얼마 아니하여 돌아가고, 아름다운 꿈을 그리는 짝이던 실단이는 그야말로 꿈결같이 한 번 만나고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시집을 가고 말았다. 닭 쫒던 개는 참으로 나를 두고 이른 말이었다. 
 그러면 이제 동경 학교를 갈 수 있느냐 하면 그도 못하게 되었다. 나는 이 시골에 있는 학교에 교사로 취직을 하고 백남필이라는 입심 좋은 선생의 선동에 넘어가서 아니해도 좋은 퇴학원을 제출하고 학비를 주마던 곳에도 거절하는 편지를 해버렸다. 백이 나를 충동하는 말은 이러하였다. 「지금 국가흥망이 경각에 달린 이때에 우리가 언제 제 일신의 영욕을 생각할 여지가 있나, 한 자라도 모르는 동포를 가르쳐야지, 안 그렇소? 천산은 그만하면 큰 선생이란 말야. 더 공부할 야심은 버리고 이 학교를 맡아요. 저 학도들을 보시구요. 그래 천산이 저것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있어? 안 될 말이지. 그러니까 어서 퇴학 청원을 하오. 그것을 아니하면 미련이 남아서 못 써. 남아의 행동이란 분명해야 쓰는 게야.」 이 모양으로 어린 중 젓국 먹이듯이 나를 달래었다. 남의 말을 거절할 뱃심이 없는 나는 그만 백의 수단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고 잘한다 잘한다 하는 장단에 나는 꾀인 듯 싶어서 이 학교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한다는 맹세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늙고 병든 조부를 모시기 위하여라는 이유까지 붙여서 아주 충과 효를 위하여 나 개인의 일생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자부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 취직한 지 한 달이 못 되어서 조부는 작고하였다. 또 정작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학도들이란 것은 나보다 십장이나 되는 자가 있고 그중 나이 적은 자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게다가 반수 이상은 세상 경험은 물론이거니와 한학으로 말하면, 내게는 선생이 될 사람들이니 사랑이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바에는 이들에게 정이 붙을 리가 없었다. 그나 그뿐인가, 이름은 중학교라면서 학과라는 것이 어떠한고 하면 헌법, 형법, 국제법에다가 천문학, 심리학, 철학개론이 없나, 마치 대학과정 마찬가지니 중학을 졸업한 나 따위가 땅뜀인가 하랴. 아직 학제가 정하지 못하였던 때라, 되는 대로 좋은 학과라면 막 집어넣은 것이었다. 내가 맡을 만한 것은 일어뿐이지만 영어, 기하, 대수, 삼각 같은 것도 나밖에는 배워본 선생이 없었으니 내가 유일한 대가였다. 
 이 꼴이니 내가 학교에 정을 붙일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래서 나는 술 먹는 버릇을 배웠다. 
 나는 스스로 탄식할 재료가 많았다. 조부는 돌아갔고, 학교는 중도이폐하였고, 실단은 시집을 갔고, 대장부가 시골구석에 묻혔고, 이러한 재료들은 술이 취하기에 좋은 핑계가 되었다. 「아아, 번민이다. 환멸이다. 절망이다! 아아.」 이러한 소리를 하고는 술을 마셨다. 어렸을 적 동무들 중에는 옛날 친구를 찾는 법으로 술을 한 병 차고 안주를 싸가지고 오는 이도 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내게 술대접을 하는 이도 있었다.
 좁은 시골이라 얼마 아니하여서 내가 술 먹는다는 소문이 났다. 
 나는 술 먹는다는 소문이 명예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취하는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곳에 날더러 형님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술병을 차고 나를 찾아준 사람 중에 하나인데, 그의 말에 의하건데 그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좋은 술벗이어서 내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이틀 사흘씩이나 연취하여 묵은 일이 있다고 한다. 그는 문 서방으로 열네 살부터 벌써 호주가 되어서 살림을 맡아 한다고 한다. 나와는 나이가 한 살 차이밖에 안 되건마는 무슨 까닭인지 그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깍듯이 예를 하였다. 나는 그 까닭을 묻지는 아니하고 가장 형인 체하고 그를 자네라고 불렀다. 피차에 노부형 자제라는 데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었다. 나는 그의 집에 불려가서 그의 아내와 상회례까지 하였는데, 문이 땅달보인 것과는 반대로 그의 처는 나이도 오 년이나 위이거니와 키도 남편의 갑절이나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문은 그의 아내에게 대하여서 꽤 전제적이었다. 열여덟 살 먹은 가장과 스물세 살 된 노성한 부인과인 그들의 부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아니하였다. 
 문은 단 내외요 어린 것도 없었다. 그의 누님이라는 스물댓은 되어보이는 과부가 있었다. 문의 말을 들으면 그의 열다섯 살 적에 열두 살 먹은 신랑과 혼인을 하였다가 장가든지 사흘만에 홍역으로 앓기 시작하여서 칠팔일 만에 죽었다고 한다. 「우리 누님은 참 불쌍해, 형님.」 문은 술을 먹으면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나도 문의 말을 듣고 그를 불쌍히 여겼다. 
 문의 누님은 문과는 판이 달라서 몸이 부얼부얼하고 키도 후리후리한 편이었다. 미인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어도 시골서는 백에 하나라고 할만은 하였다. 이 형제가 이렇게 모습이 다른 까닭을 나는 얼마 아니하여서 알았다. 문의 누님은 정실소생이오 문은 첩의 몸에서 난 것이었다. 그러나 문의 생모는 일즉 죽고 문은 적모의 손에서 길렸다. 문이 지금 입은 거상은 적모의 거상이었다. 문이 날더러 형님이라고 존칭을 하는 까닭도 짐작이 되었다. 
 하루는 상망이라고 문이 일찍 몸소 학교에 나를 찾아왔다. 아침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이날 문은 나를 안방으로 인도하였다. 문의 누님이 부엌과 방으로 들락날락하면서 내게 먹을 것을 권하였다. 그는 매우 친숙하게 나를 대하였으나, 동생의 친구에게 하는 일이어니 하고 나는 수상쩍게 생각하지 아니할뿐더러 도리어 그것이 정답고 유쾌하였다. 외로운 내 신세가 인정에 민감한 것이었다. 그는 몸피와 몸매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맛을 주는, 풍기는 여인이었다. 실단이를 잃은 나에게는 눈에 차는 여자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단이와 같은 계집애는 이 세상에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실단이를 생각하여서 다른 여성에게 마음이 끌려서는 안 될 까닭도 의리도 없을뿐더러 도리어 실단이를 빼앗긴 적막을 다른 이성의 애정으로 위로받아야 할 이유도 있다면 있었다.
 밥먹는 동안에 문과 그 누님은 내 혼인 문제를 묻기 시작하였다. 정한 데가 있느냐, 어떤 사람을 고르느냐 하는 말을 하는 중에서 내 의향을 떠보고, 한후 곧 중매를 하여도 좋다는 기미를 은연중에 보였다. 특히 문의 누님의 눈치가 그러하였다. 
 젊은 사람이 제게 관한 혼인말을 듣는 것은 간지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문의 누님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것이 기뻤다. 내게는 총각의 수줍음이 있었으나 장가가 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제 외사촌 동생이 있어요. 나이가 열다섯 살이어서 좀 어리지마는.」 내가 학교로 돌아올 시간이 바쁜 것을 아는 누님은 마침내 본문제를 제출하였다. 
 열다섯 살은 미상불 어렸다. 그러나 소녀의 귀여움이라는 매력도 없지 아니하였다. 웬일인지 나는 첫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내 나이가 열아홉이니, 색시가 열다섯이면 사년 터울이라 꼭 알맞다고도 생각해 보았다. 또 문의 누님의 외사촌이라면, 얼굴이나 몸피나 몸매나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문의 누님만하면 넉넉하다고도 생각하였다. 또 내 배필로 올 사람이면 그럴만한 사람일 것이라고 제 분복을 믿기도 하여서 부쩍 비위가 동하였다. 그러나 나는 정책상 누님의 말에 응한다는 뜻은 표시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 여자에 관한 것을 더 알고 싶어서 농담삼아(기실은 농담이 아니다), 「누님 닮았어요, 그 색시가?」 하고 웃었다. 
 문의 누님은 내 말에 수삽하여 잠깐 낯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가, 「왜 저 닮았으면 안 돼요?」 하고 호호 하고 약간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나는 실언을 하였다 하고 부끄러웠다. 
 문의 누님은 내 곤경을 벗기려는 듯이, 「이뻐요. 바느질도 곧잘하고. 저보다야 똑똑합니다.」 하고는 내 눈치에서 호감을 가진 양을 알아본 듯하여, 매우 감동 많은 어성으로, 「근데, 불쌍한 아이야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모 슬하에서 마음을 못 펴고 자라났어요. 제 외숙이란 이는 안일을 전혀 모르는 대범한 어른이고요. 그래서 친동생은 아니지마는 퍽이나 가여워요. 그래서 어디 좋은 자리에 시집이나 보내 주었으면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같으신 분을 남편으로 섬기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도 참 마음이 턱 놓일 것 같아요.」 하고 한숨을 지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동정의 눈물을 가진 눈은 악마라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누님의 그때의 눈은 입으로 빨고 싶게 매력이 있었다. 열다섯 살 먹었다는 그 색시의 눈도 반드시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 어미 없는 불쌍한 계집애를 내 아내로 삼으리라고 속으로 작정하였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 문은, 「형님, 됐소. 이 혼인 합시다. 나하고는 내외종 남매간이 되니 좋지 않소? 아시다시피 나도 외롭거든. 사촌이 있소, 오촌이 있소? 참 외롭단 말야, 우리 누님도 마찬가지지. 안 그렇고, 누님?」 하고 나와 제 누님의 동의를 구하는 눈을 굴린다. 「그럼, 그렇고말고. 김 선생이 우리 일가가 되시면 어떻게나 든든한 의지가 되겠어요, 우리 남매에게도.」 하고 문의 누님의 음성은 더욱 감동적이다. 「외롭기로 말하면야.」 하고 나도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서, 「나같이 외로운 사람이 또 있었어요. 조상부모하고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몸이 아니야요? 마음같아서는 내종 매씨와 곧 혼인이라도 하고 싶어요, 인사 말씀이 아니라 진정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혼인할 처지가 못 돼요. 집 한 간 없는 녀석이 남의 딸을 데려다가 무엇을 먹이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과연 내 신세가 그러하였다. 홀몸으로 다니는 데는 집이나 재산의 유무가 별로 문제가 아니 되지마는 처가족을 데리고 구차한 살림을 하는 것은 내 눈으로 본 아버지의 말년 생활로 보아서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정승, 판서가 된다고 나도 뽐내고 남들도 기대하던 내가 시골 구석에서 한낱 교사 노릇을 하는 것만 해도 창피한 일이어든, 하물며 오막살이 집에서 빈궁한 가족 생활을 하고서는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일찍 궁한 아버지가 생각하던 것 모양으로 집과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부자집 딸이나 다닥드리면 몰라도 지금 형편으로 아무리 잘 굴어야 매삭 삼십원 월급 이상을 바랄 도리는 없었다. 그때의 삼십원, 요새 삼천원은 되겠지마는 요새 삼천원의 가정 생활이란 것이 겨우 굶어죽지나 않는 연명밖에 더 되는가. 「아냐요, 그걸랑 염려마셔요.」 하고 문의 누님은 그런 일이면 지극히 수월하다는 듯이, 「그 애가 가져올 것이 논섬지기가 됩니다. 그건 제 외숙모가, 그애 어머니 말씀이죠, 친정에서 가지고 오신 깃득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 소생이 그애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깐 그 땅은 당연히 그애게로 올게야요. 또 제 외가는 그것이 아니라도 볏백이나 하거든요. 아마 선생님도 아실 게야, 제 외가가 말아위 김 정언 집 아냐요? 세사가 전만은 못해도, 아직도 부명 듣고 산답니다.」 논섬지기라는 말은 의외에 들리는 반가운 말이었다. 「논섬지기!」 나는 우리 집 쇠운머리에 태어나서 논섬지기란 것을 본 일이 없을뿐더러 그런 큰 재산을 가지리라는 것을 생념도 못하였다. 열다섯 살 된 처녀와 논섬지기가 함께 굴러들어온다는 것은 꿈 같았다. 내가 교사노릇을 평생을 하더라도 그런 재산이 생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에 대하여서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의 작고 낮음에 대하여서 반감까지 생겨서, 「그러기로 사내가 처덕 바라겠어요?」 하고 가장 강경하게 부인하였다. 
 문의 누님은 내 말이 의왼 듯이, 또는 내 말 속에 숨은 뜻을 캐려는 듯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이 어떻게나 영리한 눈인지, 나는 내 말과는 다른 속을 잡힐 것 같아서 슬쩍 외면하였으나 내 낯은 활활하였다.
 문의 누님은, 「선생님이야 그렇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마는 그 애로 보면 왜 처덕인가요, 제 것이지. 제 것을 제가 가지는 게 무엇이 잘못이야요? 안 그래요?」 하고 방긋 웃었다. 나는 이 여인이 내 속을 들여다보았구나, 무서운 여인이로구나 하고 더 앉아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핑계로 가부간 결정하는 말이 없이 일어나 나왔다. 
 학교에 오는 길에도 다는 이 혼인 문제만 생각하였다. 내가 꼭 이 혼인을 한다는 허락은 아니하였지마는 문 남매는 내가 허락한 것으로 해석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고 나는 으쓱하여서 어느 길을 어떻게 걷는지도 모르게 학교에 돌아왔다. 
 시간에 들어가서 학도들을 바라보니 어제와 감상이 달랐다. 저놈들은 모두 장가를 들고 논섬지기가 있는 놈들인데, 나도 인제는 열다섯 살 먹은 색시도 있고 논섬지기도 있다 하니, 저절로 마음이 든든하고 강의하는 소리에도 호기가 있었다. 
 나는 이 말을 누구나보고 하고가 싶었다. 그래서 하학 후에 백의 방을 찾아서 마치 그의 의견을 들어가지고야 이 중대문제를 결정이나 할 것같이 문의 누님이 제출한 혼인 문제를 말하였다. 기실은, 백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그 말에 움직일 까닭도 없었고 다만 이 좋은 행운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에 의논한다고 가면을 쓴 것이었다. 
 백은 내 말을 듣고 그 불쑥 두드러진 눈을 껌벅거리더니, 「허, 천산 땡잡았네나 그랴.」 하고 모난 경기 사투리로 커닿게 말하고는 카이저 수염을 쭝긋거리며, 「흐흐, 겉으로는 뇌락한 척을 해도 볼장은 다 보시는군. 축하하오.」 하고 싱글벙글하였다. 「아니, 축하라니 누가 무슨 좋은 일이 생겼나? 하고 옆방의 박이 허둥거리고 들어온다. 그는 아무렇게 생겼다고 할 만한 상판에 입만 크고 난데없는 구레나룻이 난 친구다. 백이나 박이나 다 나보다는 십여년 장이다.」 「허, 천산이 장가를 드시게 되었어. 새색시는 방년 십오세의 미인이시라고.」 하고 백은 나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면서, 「글쎄요 골생원님이 어느 새에 벌써 그런 구멍을 팔 줄 알았어? 전 의뭉이야, 의뭉이라니까.」 하고 너털읏음을 친다. 「어, 거, 잘 됐구먼.」 하고 언제나 술주정꾼 같은 박은 눈을 씰룩거리며, 「그래, 어디와, 뉘댁 규수와?」 하고 이 지방 사투리를 막 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남의 엄숙한 문제로 놀림거리를 삼는 것이 불쾌하였으나, 그래도 물어 주는 것만 기뻐서, 「박 선생은 잘 아시지, 저 말아우 김 정언의 손녀라나요?」 하고 나는 김 정언의 손녀라는 것을 두 사람이 분명히 또 결의를 가지고 들어주기를 바랐다. 「응, 김 정언.」 하고 박은 대수롭지 아니한 듯이, 「그럼 저 시라소니 김 진사의 딸이로구먼.」 하고 대단히 못마땅한 듯이 혀를 찬다. 「무어? 시라소니 김 진사?」 하고 백이 눈을 크게 뜬다. 「응, 시라소니 김 진사라고 있지. 그 아버지의 별명이 갈범 김 정언이어든. 호랑이 새끼 못난 것을 시라소니라고 안하나. 술을 먹으면 에데데데 하고 춤을 질질 흘리고 못난 꼴을 한단 말야. 그래도 속에는 욕심이 그뜩 차서 당길 심은 있거든. 에, 여봐, 천산, 그만 두어. 그놈의 집과 혼인이 무슨 혼인이야. 그래 천산 집이 그깟놈의 집과 혼인할 집야.」 하고 분함을 못 이기는 듯 두 볼을 불룩거린다. 
 박의 말에 나는 매우 실망하였다. 비록 반 미치광이라는 박이지마는 그 대신에 속에 있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염려가 되어서 역시 학교 직원 중에 하나인 족형 윤경을 보고 의논하였다. 나는 김 정언의 손녀와 혼인하면 어떠냐 하는 말을 물었다. 윤경은 그가 늘 하는 모양으로 눈에 단아한 웃음을 띠면서, 「그렇게 급히 서두를 건 없지 않소? 천천히 더 골라 보시지.」 그는 나보다 칠팔년이나 장인 족형이언마는 나를 선생이라 하여 경어를 쓴다. 나는 그가 이 혼인에 반대인 것을 알았다. 그러고 섭섭하였으나 그렇다고 웬일인지 단념이 안 되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더 끌어서 윤경 형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니, 김 정언 아들이 시라소니라고요?」 나는 이렇게 물었다. 윤경 형은 싱그레 웃으면서, 「왜 시라소니야. 글씨를 잘 쓰지 않소? 사람들이 흉보느라고 괜히들 시라소니 김 진사라고 그러지.」 「아조 못난이고 또 욕심꾸러기라고. 또 술을 먹으면 에데데데 하고 숭물을 부린다지요?」 「누가 그럽디까, 박 선생이? 아마 김 진시가 술을 잘 안 사준게지. 누구는 술 취하면 에데데데 안하나.」 하고 윤경은 웃었다. 「그래도 박 선생은 그깟놈의 집과 천산이 혼인할 처지냐고 그러던데요.」 「글쎄, 전 세월로 말하면야 김 진사 집이 선생네 댁만 못하지. 그러기로 혼인 못할 거야 무어 있나.」 「그럼 형님은 반대요?」 「반대야 내가 무슨 반대를 하겠소. 너무 급히 서두를 건 없단 말이지. 또 선생은 초상 상젠데 어느새 혼인은 무슨 혼인이요?」 나는 윤경 형의 의사를 잘 알았다. 그의 품격상 김 진사를 깎아 말하지는 아니하나 에둘러서 이 혼인이 맞지 아니하다는 뜻으 표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번민이 일어났다. 이럴까 말까 하는 번민이 아니라, 김 정언의 손녀라는 것에 자꾸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었다. 다들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단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인과응보의 바퀴는 열 바리 황소의 힘으로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한껏 꺼림칙하면서도 김 정언의 손녀와 혼인하는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끌려 들어갔다. 문의 누님은 외가에 가서 내 선전을 하고 백 선생은 백 선생대로 나를 혼인을 시켜서 학교에 비끄러매려는 정책으로 나를 충동하였다. 
 유월 무더운 어느 날 저녁때에 문은 꾀꼬리 날개 같은 북포 상복을 입고 방갓을 쓰고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아주 말쑥하게 깎은 서방님이었다. 「형님, 어디 좀 갑시다.」 문은 들어오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 나는 문의 쏙 뺀 모양을 보며, 「알부랑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리둥절하여서 물었다. 「글세, 차리고 나서우. 소풍이나 갑시다.」 문의 말에 나는 대강 눈치를 채고 흰 여름 양복에 맥고자를 쓰고 나섰다. 「천산, 좋은 데 가네나 그랴.」 백은 나를 기롱할 것을 잊지 아니하였다. 학교 문밖에 나가니 거기는 문의 누님이 눈같이 하얀 모시 치마적삼을 입고 흰 댕기 드린 까만 머리를 곱게 빗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게야?」 나는 인제는 다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 「내 외숙이 형님을 좀 만나자고 하시는구려. 누님이 어저께 댕겨 오셨어. 언간하면 내 외숙이 형님을 찾아올 것인데 동풍이 되어서 출입을 못한다고 날더러 형님을 좀 같이 오라고 그러시니 갑시다. 머, 못 갈 덴다. 김 진사도 형님네 댁과 세읜 걸. 문병 삼아 갑시다.」 하고 내 소매를 끈다. 「가시죠. 제가 꼭 뫼시고 온다고 장담을 한 걸요.」 하고 문의 누님은 내가 뒷걸음을 못하도록 막느 모양으로 내 뒤에 따라선다. 
 나는 싱거운 걸음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뿌리칠 용기도 없고, 또 한끝으로는 호기심도 있어서, 「거, 어디, 꼼짝 못하게 말씀들을 하시는구먼.」 하고 나는 싱거운 소리를 하면서 따라 나섰다. 
 김 정언 집은 학교에서 이십 리도 다 못 되는 데다. 이 길은 내가 어릴 적에도 다녀 본 데요, 아버지와 함께 어디 가는 길에 김 정언 집에도 들러서 얼굴은 빨갛고, 눈은 노랗고, 수염은 하얀 갈범 김 정언을 본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라소니 김 진사란 사람은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김진사는 사랑에 누워 있었다. 이 사랑은 툇마루에 난간까지 두르고 앞뜰에 화계까지 하여 놓은 제법 좋은 사랑이었으나 아랫목에 누운 김 진사는 과연 시라소니라는 별명을 들을 만하였다. 오래 누워 있어서 머리는 이마와 귀밑에 흘려 내리고 입술 두텁고 큰 입은 헤벌어져서 침이 흘러 내렸다. 윤곽이 분명치 못한 눈하며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하며 하나도 마음 끄는 구석은 없었다. 
 그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남더러 일으켜 달라서 일어나 앉았다. 문이 절을 하니 나도 따라서 절을 하였다. 
 그는 내게 대하여서 반갑다는 말을 하고 내가 어렸을적에 아버지와 같이 자기 집에 왔었다는 말을 하고, 다음에는 자기 병이 중하여서 살아나기 어렵겠다는 말을 하고, 자기가 죽으면 집 일을 돌라볼 사람이 없다는 말과, 아들이라고 이제 여덟 살 먹은 것이 있으나 변변치 못하다는 말을 하고, 마치 내게 유언하는 모양으로, 「내 집을 돌아보아 다오.」 하고 해라로 명령을 하고 내 손을 잡게 해 달라고 하여 내 손을 잡고는, 「딸넌이 미거해.」 하고 내게는 대답할 새도 아니 주고 어눌한 말로 혼자 다 결정해 버리고는 씨근씨근 숨이 차서 쓰러지듯이 누워버리고 만다. 그가 하는 짓이 뚱딴지요, 어색은 하지마는 그 속에 비창한 인정도 있고, 성의도 있어서 일종 비극적인 효과를 내었다. 그는 결코 박 선생이 말하는 것과 같은 시라소니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굳이 만류를 받았으나 나는 사양하고 나섰다. 그의 딸이라는 처녀를 한 번 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런 말은 내지 못하였다. 내가 문과 함께 나올 때에 그 집 대문 밖에 여편네들이 사오 인이나 나와 섰는 것을 언뜻 보았다. 내 선을 보는 것이로구나 하였다. 문의 누님은 큰길까지 따라 나와서 내 입에서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제 내일 갈게, 내일 저녁에 우리 집에 오세요.」 하고 그는 도로 제 외가로 들어가버렸다. 
 내가 상중에 장가드는 데 대하여서는 예문에 대가라는 내 사종숙이, 「당장 제사를 받들 총부가 없으니 거상 중에 친영을 하여도 권의로 용서될 것이다.」 하는 해석으로 해결이 되고, 또 혼인 삼일 간 길복을 입어도 좋다는 해석을 얻었다. 
 학교에서는 나를 위하여 학교에서 두어 마장 되는 곳에 작은 집 하나를 사고 거기다가 소꿉장난 같은 살림을 차려놓았다. 내게 있어서 모두 신이 아니 나는 일이었다. 아내도 맘에 안 들고 집도 맘에 안 들고 세상이 모두 심상하기만 하였다. 
 우리 집이란 것은 동네에서 좀 새뜨게 떨어져 있는 안채가 삼 간, 앞채가 삼 간으로 된 두잇자 집으로, 안채에는 부엌이 한 간, 방이 두 간이요, 앞채라는 것은 광이 한 간, 헛간 이 간인데 그 중에 한 간은 대문간으로 겸용이 되고, 좌우로 터진 데는 수수깡 바자에 짚으로 뜸을 두른 것이어서 그것을 합하면 입구자 집이었다. 뒤꼍은 산비탈이었다. 문을 열어 놓으면 오리나무와 기타 잡목이 꽤 무성한 수풀이어서 낮에는 낮새 소리, 밤에는 밤새 소리가 들린다 하면 운치 있는 것도 같지마는, 언제 모슨 짐승이 내려올지도 모른다 하면 무섭기도 그지없는 곳이었다. 이 집에 그중 가까운 집은 이 집보다도 더 산속으로 들어가 있는 집으로서 큰 소리로 부르면 서로 알아들을 만한 거리요, 집에서 몇 걸음 아니 나와서는 읍내로 가는 큰길 아닌 길이 있다. 그러므로 내 집은 이를테면 노름판 같은 것을 붙이거나 술주막을 하기에 합당한 집이어서, 인근 수백호 가난한 농가 중에도 가장 작기로 한 둘을 다툴 집이었다. 
 대장부 뜻을 도에 두거나 천하 국가에 두매, 집이 크고 작은 것을 염두에 둘 배 아니라고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큰소리를 해보아도 내 속마음은 고개를 흔들고 세상에 대하여서도 면목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정드는 애인과 같이라면 재미도 있으려니와, 첫날에 벌써 내 눈밖에 난 어린 아내를 보러 학교에서 돌아오는 걸음은 죽으러 가는 소의 걸음과 같이 무거웠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려고 애써도 보고 사랑을 못할 바에는 불쌍히나 여기려고도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애정을 억지로 짜내려고 아내를 껴안으면 실단의 어여쁜 모양이 나타나고 불쌍한 동정을 짜내려 하면 불쌍한 것은 내요, 그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오기가 싫었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한 자리에 자다가도 학교로 뛰어가고만 싶었다. 
 하나 위로가 되는 것은 문의 누님이 가끔 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문의 누님의 신발이 놓였으면 기뻤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인 줄 알건마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학교일에 몸을 고단하게 하여서 가정의 불만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동네 남녀를 모아놓고 야학도 하고 예배당에도 열심히 다녔다. 
 한 겨울 이 모양으로 힘쓴 효과는 났다. 학교에서는 내가 대단히 신용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고 교회에서도 그러하였다. 동네의 회와 야학에서는 물론 내가 중심인물이 되었다. 나는 가정에서 쏟을 데 없는 애정을 이 모양으로 학교와 교회와 동네에 쏟았다. 술이나 먹고 주책없는 젊은 놈이던 나는 대접받는 점잖은 선생이 되었다. 백도 나를 한 수 낮게 보는 버릇을 버리고 학교 일에 관하여서는 내 의견을 존중하였으며, 학생들의 내게 대한 태도도 일변하여서 나를 존경하는 모양을 보였다. 
 나 자신으로 보더라도 나는 변하였다. 나는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서생식인 아무렇게나 날치는 것을 버리고 말이나 걸음걸이가 무거워졌다. 이것은 내 마음이 괴롭고 적막한 까닭도 되거니와 내가 의식적으로 인생의 향락을 단념하고 나라를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살리라, 죽으리라 하고 마음 먹음에도 말미암는다. 
 경술, 팔월 이십구일이 내게도 큰 충격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많은 슬픈 노래와 시를 지어 학생들에게 보였다. 그 노래들은 우리 학교에서뿐 아니라 다른 데도 널리 퍼졌다. 이것도 이 지방에 내 명예를 높인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열아홉, 스무살의 소년인 나로서는 지사적인 생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불타는 애욕이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었다. 내 아내는 이에 대하여서 다만 만족을 주지 못할뿐 아니라, 더욱더욱 내 애욕으로 하여금 배고프고 목마르게 하는 것이었다. 
 내 아내가 어디가 병신이라든가, 특별히 못난 여자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는 물론 환하게 잘 생겼다거나, 아기자기하다거나 그러한 여자는 아니로되 보통은 가는 수수한 여자였다. 나는 가끔 그가 바느질을 하거나 그러한 때에, 흔히는 밤에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일이 있었다. 그의 머리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이리저리, 요모조모로 뜯어보고 합쳐보아서 정 붙는 구석을 찾아보려고 힘을 썼으나 나는 번번히 실패하였다. 나는 온종일 밖에 있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음탕한 생각까지 억지로 짜내어서 내 아내에 대한 정욕을 일으켜가지고 집에 들어가는 길로 그를 껴안고 살을 비비고 갖은 사랑의 표시를 다하려고 벼르지마는 집에 들어가서 척 그를 대하면 고만 모든 흥미가 자연히 다 스러져 버려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나는 그러한 때마다 이렇게 한탄하였다. <저도 다른 남자에게 아내로 갔더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나로는 아무리 하여도 사랑할 수가 없다.> 이것은 못 만날 남녀가 잘못 만난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서서 전생 다생의 인과응보로 이렇게 불행한 가정의 보를 받기 위하여 만난 것인가. 하고 많은 남녀에 이렇게 싫은 사람끼리 만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실로 애타고 기막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좋으나 궂으나 이 모양으로 살아가노라면 어찌어찌 아들딸도 날 것이요, 그러는 동안에 늙어서 죽으면 고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곧잘 이런 생각을 하고 학교 일 같은 데 내 몸과 마음을 될 수 있는 대로 고달프게 하였다. 
 첫여름 어느 날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OO산성에 원족을 갔다가 비를 함빡 맞고 어둠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옷에 몸은 얼어 들어오고 시장은 하고 다리는 아프고 다 죽게 되어서 반갑지도 아니한 집이라고 화를 내면서 사립문을 들어섰다. 방에는 불이 켜 있었다. 나는 아내가 앉아 있을 줄만 믿었더니 내 기침소리에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뜻밖에도 문의 누님이었다. 「아이 함빡 젖으셨군요.」 하고 문의 누님은 무심히 하는 모양으로 내 등을 손으로 만졌다. 「들어가셔요, 발 씻으실 물 떠다 드릴게.」 하고 그는 대야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방안에는 아내가 없었다. 「어디 갔어요?」 나는 이렇게 물을 흥미는 없었지마는 의리를 느낀 것이었다. 「말아우 아저씨가 갑자기 병환이 더쳤다고 기별이 와서 그 애가 갔답니다.」 문의 누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놋대야에 뜨뜻한 물을 떠들고 들어왔다. 「어떻게 더운 물이 있던가요?」 나는 아내로는 못할 일이다 하고 물었다. 「발 씻으실 물이라고 데워 놓았더니 다 식었어요.」 하고 그는 장을 열고 내가 갈아입을 옷들을 내고 있었다. 
 평생에 남편을 받들어 보지 못한 그는 이렇게 물을 데워 놓고, 저녁상을 차려 놓고,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 것이 아마 처음일 것이요, 또 생각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정경이 퍽이나 가련하였다. 
 그는 내가 세수하고 발 씻는 것이 끝나는 것을 보고는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 동안에 젖은 옷을 벗고 문의 누님이 차례차례 주워 입기 좋게 내어 놓은 옷을 갈아입고 막 대님을 칠 때에 새물 한 대야를 떠 가지고 들어왔다. 「손 씻으세요.」 하고는 문밖에 지키고 서 있다.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손을 씻었다. 문의 누님은 다시 대야를 들고 나가더니, 이번에는 밥상을 들고 들어오고 찌개 놓인 화로를 들고 들어왔다. 화로에는 찌개 뚝배기 말고 작은 갱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까무스름한 청주였다. 
 문의 누님은 그 갱기를 들어서 앞치마로 재를 닦아 내 밥상 위에 놓으면서, 「약주 한 잔 잡수셔요. 아버지 생일 제주 뜨고 남은 것이야요. 아까 오라비가 가지고 와서 한참이나 기다리다가 갔는데 비가 그치면 또 온대요.」 하고 권한다. 「내가 술을 먹나요? 벌써 끊은 걸요.」 나는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지은 냉정이었다. 「그래도 비를 맞으시고 그러신 때에는 한 잔 잡수시는게 약이 된다는데.」 하고 문의 누님은 두 손으로 술을 담은 놋그릇을 움켜쥐듯이 만져 보고, 「따뜻합니다. 얼마 안 되는 걸요.」 하고 그것을 들어 준다. 
 으스스한 것과 권하는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술 빛이 깊은 유혹을 주었다. 문의 아버지가 평생에 호강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술과 음식 솜씨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서너 참에 마셨다. 그러고 반찬도 내 아내 솜씨와는 달라서 모두 맛이 있었다. 
 상을 물릴 때에는 공복에, 또 오래간만에 먹은 술이라 얼근하게 취하여 올라왔다. 부엌에서는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는 쫙쫙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벌써 열 시. 낮이 길고 밤이 짧아진 것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는 것을 깨달았다. 
 부엌에서는 설거지가 끝난 모양이나 문의 누님은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그도 어찌할까나 하고 마음을 지향 못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나는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바람도 이는 모양이다. 이따금 비가 모래알같이 복창에 뿌려 왔다. <이 밤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려 하였으나 자꾸 딴 생각이 나서 그 짧은 기도문을 몇 번이나 중도에서 막혔다. 실상 신앙이 솟아나서 믿는 예수도 아니었다. 마음 붙일 데 없으니 믿는 예수요, 민중교화의 한 수단으로 민중에게 접촉할 기회를 얻기 위하여 다니는 예배당이었다. 
 나는 이 밤에 생길 수 있는 한 장면이 눈앞에 떠 나오는 것을 여러 번 고개를 흔들어서 지워버렸다. <부엌에서 무얼 하고 있나?> 나는 그것이 마음이 끼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다. 들어오라고 하자.> 나는 이렇게 마음 속에서 연습을 해가지고 가장 점잖은 음성으로, 「무얼 하여요? 어디 가셨어요?」 하고 부엌으로 통한 샛문 쪽을 향하고 불렀다. 「네, 인제 들어가요.」 하고 마치 잊어버렸다가 생각난 듯이 씻금질하는 물 소리를 내었다. 
 내 마음은 점점 평형을 잃고 줏대를 잃었다. 여린 신앙과 도덕의 북두는 끊어지고 수컷 짐승이 다된 듯하였다. 내 눈앞에 문의 누님이 번뜻하기만 하면 사자가 아롱말을 덮치는 모양으로 덮칠 것 같았다. 잠깐 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남이의 용기요 자아에 충실한 것이라는 철학적 해석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 모든 허위를 버려라. 빨가숭이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아주 위대한 비장한 결심이나 한 듯이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무서운 눈으로 천하를 노려보았다. 「쾌락의 일순은 고통의 천년보다 낫다.」는 바이런의 동판의 구절이야말로 진리라고 응하고 용을 썼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오 문의 누님에게 대한 자비심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관자놀이에 피가 뛰는 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가 있었다. 아까 산성에서 산에 오를 때에 보다도 더욱 숨이 가빴다. 술의 힘이 이것을 도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의 누님이 자리끼를 대접에 받쳐 들고 들어왔다. 들어와서 내 모양을 힐끗 보고는 자리끼를 놓고, 「자리를 깔아드리께 일어나셔요.」 하고 장롱 위에 쌓아 놓은 자리를 내렸다. 나는 문의 누님을 정작 눈앞에 대하매 짐승의 마음이 사라지고 사람의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머쓱한 생각으로 순순히 일어섰다. 
 문의 누님은 우리들 애정 없는 부부가 이따금 쓰디쓴 잠자리를 같이하는 요를 깔고 이불을 펴고 베개를 놓고 일어섰다. 나는 그의 몸의 곡선이 움직이는 양을 탑스러이 보고 서 있었다. 
 문의 누님은 아무쪼록 내 시선을 피하면서, 「자, 곤하신데 주무셔요. 나도 옷간에서 잘 테야요.」 하고 웃간으로 올라가서 샛장지를 꼭 닫는다. 
 나는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나는 학교 선생이 아니냐. 교회에서 강도를 하는 교역자가 아니냐.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이 무슨 더러운 생각이냐. 저 여자는 교육도 없는 젊은 과부라도 저렇게 마음이 굳굳하지 아니하냐. 나는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제가 싫어지고 미워졌다. 내 낯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고 싶었다. 「거기 자리가 있으니 깔고 주무셔요.」 하는 나의 말은 예사로운 점잖은 말이었다.  
 나는 번뇌와 수치가 뒤섞인 잡념 망상으로 오래 잠을 못 이루었으나 마침내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에는 벌써 웃방에는 불이 켜 있었다. 장지 틈으로 움직이는 그림자와 사악사악 하는 소리로 판단하건대 그는 머리를 빗고 있는 모양이었다. 빗소리는 없었다. 
 나는 목이 좀 아프고 머리도 띵함을 느꼈다. 감긴가 하였다. 간밤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고 이제 문의 누님을 대할 것이 면구하였다. 그는 필시 내 눈치에서 내 더러운 속을 다 들여다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일어날 생각도 아니하고 자리에 누워 있어서 간밤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뉘우침과 무안함이 가슴에 그뜩 차면서도 한편 구석에는 그 기억이 달콤하기도 하고 절호한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깝기도 하였다. 이치로는 무엇이 옳다는 것을 아나 아직 덕의 힘이 서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마음 속에 아내 아닌 여인에게 음심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예수는 칼날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미 문의 누님에게 간음을 행한 죄인이었다. 세상의 눈은 속일 수가 있어도 내 마음과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러하건마는 그 달콤한 생각이란 대체 무엇인고? 시인과 소설가들 중에 그것이 끔찍이 좋은 것인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지어서 사랑을 위하여서는 집도 명예도 목숨도 희생하는 주인공을 용기 있는 자라고 찬양한 것조차 있었다. 마치 문학은 도덕을 반항하는 것을 큰 옳은 일로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동경에 있을 때에 유행하던 자연주의 문학이란 것이 이러하였다. 구라파의 로맨티시즘이 의리있는 남녀의 사랑을 찬양하는데 대하여서 자연주의 문학의 대부분은 불의의 남녀간의 사랑을 즐겨서 묘사하고 찬양하였다. 이것을 자유라고 일컫고 해방이라고 일컬었다. 불의의 애욕을 심각하게 그린 문학일수록 애독자가 많았다. 이에 대하여서 톨스토이 혼자가 그리스도주의 문학으로 고군분투하였다. 나는 자연주의 속에서 톨스토이를 읽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내 속에 고양이와 쥐와 함께 있는 모양으로 자연주의와 이른바 이상주의가 동거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는 마치 끝없는 내란과 같아서 이 주의가 한 번 내 마음을 점령하면 저 주의가 또 습격하여서 이를 점령하였다. 이통에 곯는 것은 내 마음의 나라였다. 끊임없는 싸움의 마당이 되어서 갈수록 황폐할 뿐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그만한 힘이 없었다. 「아아 나는 괴로운 자로다.」 하는 바울의 한탄을 나는 장한 듯이 흉내내었다. 
 밤 사이 그렇게도 서두르던 풍우도 지나가고 창에는 햇볕이 쏘았다. 뒷산에서 새 소리가 들렸다. 아침밥을 짓는 불에 자리가 따뜻하여 올라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스무 살 되는 내 육체는 내가 보기에 풍만하였다. 청춘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 몸은 나 자신이 향락할 것이 아니라, 내 애인이 향락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적막하였다. 나는 희고 포근한 팔다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그러고는 견딜 수 없는 애욕이 끓어 오름을 느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시들어질 꽃!> 나는 이렇게 한탄하였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옷을 갈아입었다. <배고프고 목마른 내 애욕이여!> 나는 재물로만 가난한 것이 아니라, 애욕으로 가난한 자였다. 
 나는 학교에 갔으나 다른 교원들이 내 눈이 붉다고, 열이 있나보다고 할 때에 부끄러웠다. 다만 어제 원족에 비 맞은 때문이라면 그리 부끄러울 것은 무엇인가. 남들이 열이 있다고 하니 더욱 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맡은 시간을 다하였다. 「천산 안 됐소, 어서 가서 누우시오.」 하고 백이 나를 보고 걱정하였다. 그는 의사도 의원도 아니나 교원들 중에서는 가장 의술의 지식이 있어서 약방문을 내는 재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약을 써 본 일도 없고 신용도 아니하였다. 
 나는 무거운 몸과 괴로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중에는 그렇게 청청하게 맑던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흐리기 시작하더니 저녁 때에는 나무가 소리를 내고 흔들리도록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등으로 가슴으로 팔목으로 스며들어와 몸에 쪽쪽 소름이 끼치고 제 입김이 뜨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호흡기가 약하여서 급성 기관지염을 가끔 않는 나는 또 그것이나 아닌가 하였다. 침을 삼키면 목이 뜨끔뜨끔하고 기침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집에는 문의 누님이 있었다. 나는 그를 대하기가 부끄러웠으나 몸이 아픈 것이 모든 것을 용서할 이유가 되는 것같이 생각하고, 「나 좀 누워야겠어요.」 하고는 두루마기를 벗고 쓰러졌다. 문의 누님은 자리를 깔아 주면서, 
 「어저께 비를 맞으셔서.」 하고 걱정해 주었다. 
 나는 저녁도 먹는둥마는둥 자리에 누워서 사오일 동안이나 신열이 높아서 중통하였다. 백이 문병을 왔다가 약을 지어 보내었다. 나는 백의 처방을 믿지는 아니하면서도 달여 먹었다. 다른 선생들도 다녀가고 학생들도 문병을 왔다. 그처럼 내 병은 중하던 모양이었다. 지금 말로 하면 폐렴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앓는 동안에 문의 누님은 참으로 정성으로 간호해 주었다. 중병이란 것이 모든 장벽을 깨뜨린 것이었다. 그는 친 동기와 같이 허물없이 내 몸을 만지고 내 베개를 고쳐 주었다. 나는 그것이 기뻤다. 밤중에 깨어보면 내 곁에 그가 쓰러져서 잠이 들어 있는 일도 있었다. 이 모양으로 나는 그에게 대하여서 더욱 잎이 정이 들었다. 그도 나를 정답게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하였다. 
 나는 이 동안에 문의 누님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점을 발견하였다. 훌륭한 아내가 될 사람인데 혼자 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와 살고 싶었다. 그를 아내로 하고 살 양이면 행복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왜 살고 싶은 사람하고 못 살고 살기 싫은 사람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앓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여진다. 나는 문의 누님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면서도 그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반성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어떤 믿을 만한 남자에게 중매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백이 작년에 상배를 하여서 홀아비였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아니하나 남편감으로는 괜찮다고 보았다. 나이는 사십이 가깝지마는 몸은 건장하고 성미는 걸걸하고 또 들으니까 전실에는 계집애 하나가 있으나 서울 집에서 제 조모에게 길린다고 하니 그다지 폐는 아니었다. 사람이 좀 변덕스럽고 남을 깔보는 흠이 있지마는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열이 내리고 방안에서 일어나 앉을 수가 있었다. 아침 꾀꼬리가 북창 밖에서 우는 것을 내가 유쾌하게 듣고 앉아서 노래라도 하나 지어보고 싶은 생각으로 있을 때에, 「천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물을 것 없이 백의 음성이었다. 「백 선생이시오?」 하고 나는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문의 누님은 일어나서 옷방으로 올라갔다. 백의 눈은 그의 뒷모양을 따랐다. 「살아나셨구만 그래.」 하고 백은 눈과 입이 온통 웃음이 피어서 방에 들어왔다. 「보내 주신 약이 효험이 있었나 보아요.」 나는 이렇게 치사를 하였다. 「천산의 병을 내가 분명히 알거든, 약이 안 맞을 리가 있나. 과녁을 겨누고 쏘는 살과 같이, 흐흐흐흐.」 하고 백은 심술궂은 웃음을 웃었다. 나는 그의 빈정대는 뜻을 알아듣고 잠간 낯을 찡그렸다. 「학교엔 아무 일 없었나요?」 하고 나는 백의 입에서 더 궂은 소리가 나오기 전에 화두를 돌렸다. 「별일 없어. 밤낮 일 헌병이 성가시게 오는 게야 언제나 마찬가지지. 읍내에서 또 사오 인 붙들려 간 모양인데, 그러기로 우리들이야 어떨라고? 그러나 저러나 나는 갈라우. 모두 구찮고. 가서 구멍가게라도 벌리고 앉아서 세상을 모르는 것이 편안하지.」
 이런 소리를 하고 백은 입맛이 쓴 듯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입맛을 다셨다. 「가시다니, 백 선생이 가시면 학교는 어떻게 하고요?」 이것은 다만 인사말만이 아니었다. 백은 지금까지는 학교의 중심 인물이었다. 「무어. 인제는 천산이 자리를 잡으셨거든. 처음에는 미상불 천산의 거취를 의심했다는 것은 과언이지만, 어찌 되는가, 대체 어찌할 작정인가 하고 안심이 안 되었었소. 그래 다들 걱정을 했었어. 그렇지만 인제는 천산을 절대 신임야. 무엇이 신임인고 하니 말야, 첫째로는 천산이 학교를 위해서 몸을 바칠 결심을 하신 것, 둘째로는 직원과 학도가 천산의 인격과 학식에 대하여 절대 신임인 것, 그리고 셋째로는 역시 천산의 학제 개혁안이 옳다는 것을 다들 승인했단 말요. 법학이니 천문학이니 다 집어치우고 아주 순전한 중학교로 개편하자는 천산의 의견이 옳단 말야. 이 교주도 오늘은 쾌히 승낙하는 답장이 왔는데, 인제는 실시만 남았거든. 도청에 들낙날락하는 것은 재가 전과 같이 담당할꼐시리 학교 일은 천산이 맡으시란 말요. 난 천산의 심부름꾼이 되리라.」
 나는 믿기지 아니하리만큼 백의 말에 놀라기도 하였거니와 내 주장에 통과하고, 또 내가 그만한 신임을 받게 된 데 대하여서는 감출 수 없을 만치 기뻤다. 실상 내 개혁안을 반대한 것은 백인데 백이 무슨 변덕으로 이렇게 앞장을 서서 찬성하게 되었을까. 그가 인제는 이 학교에 염증이 나서 내게다가 밀어 맡기고 달아나려 함인가. 그렇다면 구멍가게나 내고 세상에서 숨는단 말이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도청에 드나드는 심부름을 한다고 하니 학교를 떠날 결심이 아닌 것도 같고 도무지 그의 진의를 알 수가 없었다. 아찌 되면 그가 교장이 될 마음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교장은 이 생원이라는 늙은 한학자로서 다면 명의만에 지나지 아니할뿐더러, 그는 누차 사임할 뜻을 표시하고 있고 또 도당국에서도 실지로 책임을 w질 교장을 내라고 독촉도 있었다. 이 기회에 백이 교장이 되려 한다는 것은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사정으로 보면 백이 교장이 되기는 어려운 현평도 있었다. 첫째로 백은 일 솜씨는 있으나 남의 존경을 받을 만할 덕이 부족하였다. 내 족형 윤경은 원만한 사람이라 백의 밑에 드는 것을 참기도 하겠지마는 박은 도저히 그리 못할 것이다. 
 백이 정말 교장이 될 야심이 있나 하고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교장이 되게 하고 문의 누님과 혼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났다. 
 백이 간 뒤에 나는 문의 누님과 마주 앉은 기회에 이렇게 말을 해보았다. 「아까 왔던 이는 백 선생이라는 이야요. 본래 서울 사람인데 작년에 상처를 했어요. 전실 아이로는 계집애가 하나 있을 뿐이라고요.」 「네.」 하고 문의 누님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힘없이 대답하였다. 「무척 사람이 걸걸하지요, 사내다와요.」 「네에.」 「백 선생 보셨지요?」 「아까 오시는 것 뵈었어요. 접때에도 뵈었구요.」 문의 누님은 더욱 유심히 나를 바라본다. 「수염이 장관이지요? 이렇게 떡 뻗친 것이. 그것이 카이저 수염이라는 거야요, 독일 황제 카이저의 수염이 그렇거든요.」 「네.」 문의 누님은 싱거운 소리도 한다 하는 듯이 일어나간다. 
 나는 다소 무안함을 느꼈다. 내 말 눈치를 알아차리고 노한 것이나 아닌가. 남의 수절과부 앞에서 사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실례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그를 향하여서 탐하는 정욕이나, 그가 나를 향하여서 같은 뜻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모두 낯에 쥐가 날 일이었다. 
 이렇게 얌전한 궁리를 하는 한켠에 자연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묵은 인습에 대한 반항심도 있었다. 수절은 다 무에며 정조는 다 무에냐, 모두 케케묵은 인습이요, 곰팡내나는 헌 옷이다. 현대인은 모름지기 이것을 쾌쾌히 벗어버릴 것이다. 입센의 「노라」가 무에라고 하였느냐,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나는 새와 같이 나는 자유다. 세상에 다시는 나를 가둘 옥이 없다.」 라고 부르짖었다. 며칠 못 갈 인생을 왜 허송하랴. 이 몸이, 이 밤이 즐길 대로 즐기다가 지쳐서 죽을 것이 아니냐. 거기 우리의 자유가 있지 아니하냐. 나는 실단을 그냥 놓쳐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그가 그날 그렇게 내게 매어달리지 아니하였던가. 내게 안기기를 애원하지 아니하였던가. 나는 못나게도 내가 만족하고 그를 만족시킬 기회를 놓쳐버리지 아니하였는가. 「못난이! 네가 못난이!」 하고 나는 나를 침을 뱉고 발길로 차고 싶었다. 문의 누님에게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다. 한 집에서 단둘이 자는 밤을 그대로 닷새나 엿새나 보낼 법이 있으랴. 마음으로 갖은 짓을 다하면서 겉으로는 점잖을 꾸미는 허위! 그래서 피차에 마음을 졸이고 몸에 기름을 말리우고 있지 아니하냐. 비겁이다! 허위다! 그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제 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려는 내 심사, 아아 그것은 허영심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가장 깨끗하다는 것을 세상에 자랑하자는 허영, 속은 먹장같이 검으면서 겉을 희게 꾸미려는 허위다. 「회 칠한 무덤!」 예수의 말씀과 같다. 그렇다. 나는 회 칠한 무덤이다. 속에는 썩고 구더기 끓고 구정물 흐르는 송장을 두고 겉에 회 칠을 하는 것이다. 속에 있는 송장을 치워버리거나 겉에 바른 회를 벗겨버려라. 
 그렇지마는 잠간 기다려라, 애욕이 과연 그렇게 더러운 송장일까. 그것이 내 마음에 피어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아닐까. 「사랑! 사랑!」 사람에게 사랑에서 더한 꽃이 있을까. 젊고 마음 맞는 남녀가 가쁜 숨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힘있게 서로 껴안는 그 순간의 사랑의 불길- 이것이아말로 우주간에 가장 거룩한 불길이 아닐까. 이것을 막는 모든 제도와 이것을 그르다고 징죄하는 모든 도덕은 다 두들겨 부술 악이 아닐까. 그리하는 이야말로 용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찼다. 앞에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부수고 철문이 있으면 박차고 나갈 것 같았다. 그리하여 눌린 사랑에 우는 천하의 청춘남녀를 위하여 반역의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서고 싶었다. 「흥, 명예?」 하고 나는 내 쥐뿔만한 명예를 코웃음하였다. 나는 실단을 내 것을 못 만든 것을 이를 갈았다. 영국 이야기의 로빈훗 모양으로 초례청에 실단을 박차가지고 말을 달려 산림 속으로 못 달아난 것을 분히 여겼다. <그렇다, 실단만은 못하나 문의 누님은 내 것을 만들리라. 내가 마음껏 즐기다가 싫어진 때에 백에게나 뉘게나 원하는 자에게 물려 주리라.> 이렇게 작정하고 나니 마음이 가뿐하였다. 나는 크나큰 용사요 혁명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일각이 삼수와 같이 밤이 들기를 기다렸다. 
 문의 누님은 내 마음이 어떤 줄도 모르고 태연히 들락날락하고 내 곁에서 무심하게 바느질도 하였다. 그는 내게 대하여서는 아주 턱 믿고 안심한 모양이었다. 내 무덤의 면회에 속은 것이었다. 
 저녁때에 문이 낙지 한 코와 소주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벌써 전작이 있어서 얼근하였다.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의 소년이면서 중년 선비의 태를 부리는 그였다. 「낙지 장수를 만났길래 형님 생각이 나서 술을 한 병 사가지고 왔소. 술은 삼거리 서 병순네 술인데 금방 고무는 것을 곧소주로 받아 달라고 했지. 값은 얼마라도 더 준다고 별 청을 다 했소. 망할 놈들이 물을 타서 팔아 먹노라고  곧소주를 내 놓우. 한사코 안 내놓지. 이게 한 식기라고 하지마는 두 식기 턱은 될 것이요. 맛이 좋아.」 하면서, 죽엽을 그린 사기 술병을 제 귓가에 흔들어 본다. 촐랑촐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님.」 하고 문은 웃방을 향하고, 「이 낙지로 안주 좀 만드슈. 슬쩍 데쳐서 초고추장에 먹으면 괜찮아. 초 있수? 없으면 집에서 좀 가져오시구. 신접살림이 무엇이나 넉넉할 리가 있나?」 라고 떠드는 양이 매우 유쾌한 모양이다. 「그래 어디서 오는 길야? 무슨 좋은 일이 있나보에 그려?」 나는 이렇게 문을 건드려 보았다. 「좋은 일?」 하고 문은 그 가늘고 다부진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하, 형님도. 내야 도처 춘풍이지, 무슨 걱정이 있소? 주머니는 묵직하겠다 (그는 절렁절렁 주머니를 흔들어 보인다) 술은 있것다, 때는 진달화초 만발하는 봄철이잇다. 글쎄 무슨 걱정이요? 엊저녁도 번저리 유엽이 집에서 진탕치듯 먹고 마시고 골패하고 해가 낮이 되도록 자다가 낙지 한 코 사 들고 형님 찾아 오는 길 아뇨. 인생이 일장춘몽이라 아니 놀고 무엇하리, 한 번 아차 죽어지면 만수장님에 운무로고나, 하하하하. 안 그렇소, 형님? 형님 같이 골 생원님야 이 풍류를 알겠소. 누님 나 냉수 한 그릇 주슈.」 하고 북창을 탁 열떠리며 가래를 탁 뱉는다. 「그러기로 하고한 날 그렇게 놀고 어ᄄᅠᇂ게 할 작정인가. 게다가 놀음까지 하고.」 나는 점잖은 형의 태도를 보였다. 
 문은 머리가 가려운지 주먹으로 탕건 뒤를 툭툭 치고 나서, 「안 그럼 무얼 하우? 나 같은 놈이 이제 형님 모양으로 공부를 하겠소? 안 배운 농사를 하겠소? 그저 이러고 일평생을 보내는 게지. 안 그렇소, 형님?」 하고 초연한 빛을 떤다. 「그러기로 술 먹고 놀음하고 가산이 견디어 나?」 나는 문의 생활의 방향을 돌리고 싶었다. 그렇게 재주있고 마음 착하고 한 소년이 어느 새에 술꾼, 노름꾼, 알부랑자패들 차고 가산을 탕진하는 것이 가여웠다. 「그야 그렇지. 벌써 한 오십석거리 팔아 없앴는걸. 또 한 자리 내 놓았어.」 하기까지는 회오의 빛을 보였으나 다시 처음과 같은 알부랑자의 태도로 돌아가며, 「허. 안 그럼 무얼하느냐 말요? 노름빚에 땅 팔고, 빚 갚고 남은 건 술 먹고,이 모양으로 곶감 빼어 먹듯이 쪽쪽 빼어 먹노라면 며칠 아니하여서 거지 될 것이야 빤한 일이지. 내가 그런 줄 모르우. 그런 줄 다 알건마는 배운 도적질이요 버려 놓은 춤이로구려. 기호지세라, 가는 데까지 갈 밖에. 왕후장상이 영유종호아, 거지 깍장이는 씨가 있읍디까, 나 같은 부랑자가 되는 것이지. 흥, 벌써 거지가 거진 다 됐어.」 하고 고개를 숙여서 때묻고 꼬깃꼬깃한 서양목 두루마기와 버선을 만지면서, 「이게 사흘 입은 게 이 꼴이구려. 그놈의 석유 기름에 이렇게 까매진단 말야. 그놈의 석유 등잔을 켜놓고 연일 밤을 새우니 안 그런게요? 형, 인제 요꼴에다가 노닥노닥한 누더기를 입고 바가지 굳은 옆에 꿰어 차고, 남의 집 문전에 서서, 거지 동냥 왔습니다, 뿜빠뿜빠 하고 장타령을 한다? 하하하하. 눈에 선해. 흥, 그것도 한 풍류야. 퉁소를 배우면 좋을 게요. 그렇지만 그도 귀찮고. 기는 장타령이라고 장타령은 내나 곧잘 한다오. 형님 한 번 들어 보실라우?」 하고 왼장 친 버선을 두 손으로 닦는 듯이 쓰다듬고 있다. 「여보게 그만두게.」 하고 나는 정색하였다. 「왜요? 형님은 나를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시오?」 「미치긴 왜?」 「그럼 부랑패류라고?」 「패류야 아니지.」 「무랑자는 부랑자란 말씀이지.」 「흥흥.」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바로 보셨소. 형님이 바로 보셨어. 내야 알부랑자지, 요꼴에. 하하하하. 그렇지만 소리에도 대장부 허랑하여, 그러지 아니 했소? 대장부는 본래 부랑자여든. 형님 같은 이는 졸자고 옹졸하고 용렬한 선비란 말야, 안 그렇소, 형님?」 하고 문은 고개 젖히고 뽐낸다. 「그래.」 하고 픽 웃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말야. 형님은 좀 파겁을 해야 된단 말요. 형님은 나를 훈계하려고 하시지마는 형님이 내 훈계부터 먼저 받으슈. 그 졸장부 좀 빼 놓아요. 자 한잔 먹읍시다. 누님 거기 술잔 하나 주슈. 술 먹고 안주라니 술부터 먼저 먹고 안주는 나종 먹읍시다그려.」 
 낙지도 잘도 들어왔다. 낙지는 내가 즐겨하는 것이었다. 하얀 낙지 동강 위에 파란 파가 보기좋게 뿌려져 있었다. 「자, 한 잔.」 하고 문은 주발 뚜껑에 그뜩 부은 것을 내게 권하였다. 우리 집에 술 잔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술을 먹나?」 나는 속으로 당기면서 사양하였다. 속으로 당기는 까닭은 첫째로 안주도 술도 좋았거니와 오늘 밤 계획에 술의 힘을 빌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나도 알맞추 취하고 싶었다. 「아따, 그 용렬한 것 좀 빼라는데 그러시는구려.」 하고 문은 무릎을 밀고 나오며 강권하였다. 
 나는 잔을 받아서 한 모금 맛을 보았다. 과연 물기운 없는 곧소주였다. 사뭇 달고 매웠다. 「어서 주욱 들이켜요. 그리 주접떠시지 말고- 파겁을 내가 시키고야 말걸.」 하고 문은 제 손으로 술잔을 내 입에 밀어다 대었다. 「가만 있어. 천천히 먹어.」 하면서도 나는 먹고야 말았다. 가슴 속이 얼얼하였다. 
 이렇게 먹기를 몇 순배를 하니 술이 화끈 낯에 오르고 정신이 흐릿하여졌다. 술도 차고 가슴도 답답하나 그래도 유쾌하였다. 
 나는 실언을 아니하리라고 스스로 입에 자갈을 물렸으나 그래도 차차 말이 헤퍼지고 웃음소리가 커짐을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보고 문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문은 제가 먹던 잔을 마시고 나서 조그만큼 한 잔을 부어놓고, 「누님, 누님.」 하고 부른다. 
 나는 얼근히 취한 김에 문의 누님이 눈앞에 있기를 바랐다. 차차 마음을 싸고 비끄러매었던 무엇이 슬슬 풀림을 느꼈다. 「왜왜.」 하고 문의 누님은 앞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부엌으로부터 서 들어왔다. 아마 저녁 동자를 하던 모양이었다. 「누님, 좀 앉으슈.」 하고 문은 누이의 소매를 끌어서 앉히고는, 「누님, 이거 한 잔 잡수슈. 아버지도 술을 잡수셨고 나도 먹는 것을 보니 우리 집안에 술 못 먹을 사람은 없을 것 같으우. 자 드슈.」 하고 술이 든 탕기 뚜껑을 누이의 손에 대어 준다. 「아이, 망칙해라. 내가 술이 무슨 술이냐.」 하고 손을 들어서 오라비의 잔 든 팔을 민다. 「조금 잡수어 보시지.」 나도 권하였다. 나는 그의 얼굴에 불그스레 술기운이 도는 양이 보고 싶었다. 그러고 부끄러운 말이지마는 그도 좀 취하는 것이 내 계획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문의 누님은 한 모금을 마시고 낯을 찡기었으나 문과 나는 기어코 그 잔을 다 먹이고야 말았다. 문의 누님이 진저리를 치고 잔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문은 만족한 듯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누님, 이제도 저더러 술 먹는다고 걱정하시겠수? 하하하하.」 하고 병에 남은 술을 따라서, 「집병자 필배야. 이 자는 내가 먹으리다.」 하고 쭉 들이키고는 「크으」 하고 낯을 찡기고 마치 수염을 씻듯이 두 손으로 번갈아서 입을 씻는다. 나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그 아버지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형님, 이거 술이 부족하구려, 내 한 병 더 사 가지고 오리다. 춘관은 몇 날이리, 마시고 밤을 새웁시다.」 하고 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저녁상이나 받고 집으로 가라고 그의 누님도 나도 만류하였으나 취한 그는 듣지 아니하였다. 대문까지 따라나간 나는 그가 까치당이 고개 쪽으로 무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알부랑자」 라던 문의 말을 생각하고 나는 그의 장래를 근심하였다. 그러나 그의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직 오늘의 향락만에서 인생의 값을 찾는 철저함이 한껏 부럽기도 하였다. 이 인생관이야말로 우리 나라 모든 소리에 나타난 철학이요 중국의 성당시대 시인의 인생관이라고 생각하매 알부랑자 문은 결코 속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저녁상을 받았으나 밥에는 마음이 없었다. 허공에 둥실둥실 나 뜬듯한 정신 상태였다. 내 눈에는 혹은 정면으로 혹은 곁눈으로 혹은 속눈으로 문의 누님만이 보였다. 내 옆으로 오락가락하는 그의 몸에서는 일종의 향취를 발하고 그의 몸이, 손이, 고운 때묻은 버선 신은 발이, 치맛자락이 모두 견딜 수 없는 유혹을 내게 주었다. 더구나 곧소주는 나의 양심을 마비시켰다. 그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희고 포근한 것 같고 그의 입술은 더욱 붉고 열정적이었다. 
 나는 나를 누르기가 심히 어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실단에게 대한 것과 같은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애정과 달라서 아주 동물적인 것이었다. 나는 실단과 마지막으로 둘이 있을 때에는 결코 이러한 욕망을 가지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종교적인 경건하고 엄숙한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 문의 누님에 대한 감정에 비기면, 형제나 자매에 대한 것이지 남성이 여성에 대한 정열은 아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로부터 불과 일 년에 나는 소년의 감정을 잃어버리고 수컷 짐승의 정욕을 품게 되었다. 
 나는 문의 누님에 대한 생각을 정신적인 것으로 전환하려고 애써 보았으나 그것은 부서진 옥함의 조각을 맞추려는 것과 같았다. 
 깨어진 옥함! 그렇다 산산조각이 난 옥함이다. 그리고 옥함 속에 들었던 소년의 향기로운 안개는 영영 어디론지 나가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원인이 무엇일까.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탓일까? 혼인을 하여서 이성과 육적으로 결합하는 경험이 있는 탓일까? 내 목전에 있는 여성이 특별히 육감적인 탓일까. 내가 타락하여서 더럽게 된 탓일까. 내 혼인 생활이 사랑이 없는 불행한 것인 탓일까. 어쨌으나 나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흰옷 입고 향내 나는 천사로서 피묻은 옷을 감고 비린내 피우는 악마로 떨어진 것 같아서 지난봄 실단이와 만나서 울던 시절이 까마득한 가버린 옛날인 것 같았다. 
 나는 술과 번뇌로 불같이 뜨거워진 한숨을 토하였다. 문의 누님은 뜬 숯불에 내 옷을 다리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내가 학교에 가기 때문이다. 내가 앓는 동안에 그는 옷 한 벌을 빨아서 지었다. 나는 그가 반쯤 몸을 굽히고 다리미를 밀었다 당기었다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모으로 보이고 통통한 하얀 목이 옥으로 깎은 듯이 탐스러웠다. 그가 다리미를 내어 밀어서 몸이 앞으로 숙고 허리가 편 때에는 볼기짝과 어깨와 젖통께의 선이 아름다운 리듬으로 움직였다. 어떤 기회에는 짧은 저고리 뒷자락 밑으로 하얀 허리의 살이 불 그림자의 어두움 속에 번뜻번뜻하였다. 
 나는 조각가의 흥미로 이 여성을 바라보려고도 하고 자매관 (누이로 보는 것)으로 보려고도 하고 부정관으로 보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내 어설픈 방법으로는, 약한 내 도력과 신앙력으로 날치는 동물적 정욕을 누르기는 어림도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내 양심을 앞에 닥쳐오는 쓴 잔을 면하려고 애처롭고 가냘픈 애를 써 보았으나 그것은 단 쇠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와 같았다. 
 더군다나 문이 가져온 독한 곧소주는 나를 죄악의 구렁이로 쓸어넣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문의 누님은 점잖은 여자로서 육례를 갖추지 아니한 남자의 요구에 대하여 반항할 수 있는 절차는 다 하였으나, 그도 사람이요, 젊은 여자요, 또 과부였다. 마침내 나는 그를 나의 정욕의 독한 이빨로 씹어버렸다. 이리하여서 나는 악인의 적에 등록이 되고, 양심의 옥함을 깨뜨린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내 소년 시대의 입맛 쓴 끝이었다. 
-소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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