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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무 살 고개> - 이광수

저도잘은몰라요 2026. 8.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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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년편> - 이광수

「나」 <스무 살 고개> - 이광수

「나」

   <스무 살 고개>

    스무 살 안팎

 실단이에 대한 실연과 문의 누님에 대한 불의의 관계는 내 정신에 큰 타격을 주었다. 초년 고생이 끝나고 이로부터 앞으로는 순풍에 돛을 단 듯이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던 희망의 앞길에는 수없는 가시밭이 보이고, 나는 죄가 없노라, 눈과 같이 희고 깨끗하여서 하느님과 다름 없는 권위를 가지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던 내 양심에는 지워버릴 수 없는 검은 점이 박혔다. 나는 문의 누님과의 단 한 번의 실수가 이처럼 내 혼에 큰 생채기를 낼 줄은 몰랐다. 하물며 그 때문에 생긴 내 혼의 검은 점이 날이 갈수록 자라서 마침내 내 혼 전체를 꺼멓게 썩힐 큰 병이 되리라고는 꿈도 못 꾸었다. 나는 이를 어린 나무가 받은 생채기에 비겼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락 말락하던 것이 그 나무가 자라는 대로 자꾸 커지는 것을 보았다. 장차로 그 나무는 아무리 크게 자라더라도 성한 나무는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나무를 죽일 병이 그 생채기로 말미암아서 들어올 것이 십상 팔구다. 나와 문의 누님과의 순간의 잘못은 물론 이보다도 중대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내는 장인의 초종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는 흰 댕기를 들이고 깃것을 입었다. 그는 매우 초췌하였었다. 차차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가 초췌한 것은 다만 그 아버지의 임종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없고 남편의 재산도 사랑도 없는 줄을 아는 그가 아버지를 여읜 것에 남달리 심각한 슬픔일 것은 물론이어니와, 거기 또 하나 그를 초췌케 한 것은 유산에 대한 계모와의 다툼이었다. 계모는 전실 딸에게는 한 푼어치도 주기가 싫었는데, 아내를 철없는 어린 계집애로 알았던 것이, 맹랑하게도 강경하게 아버지의 유언에 대한 제 권리를 주장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마침내 논 열 닷마지기, 밭 사흘갈이를 떼어내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자랑하는 듯이 그 문서 축을 내게 보였다. 그까짓 건 무얼 받아와.하고 나는 대수롭지 아니한 듯이 툭 쏘았으나, 이것은 내 처지에는 매우 큰 재산이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내 집에 이만한 재산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또 지금 모양으로 매삭 십원 이십원의 월급도 분명치 못한 신세로는 평생을 살아도 이만한 것을 벌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속으로는, 이제는 살았다하는 생각이 없지도 아니하였으나, 나는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려고 힘을 썼다. <나는 민족적 영웅이 아니냐, 애국지사가 아니냐.> 하는 허영심에서였다.

또 한편 생각하면 아내가 가련도 하였다. 나 같은 남편하고 먹고 살겠다고 어린 것이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이만한 전토를 얻어 가지고, 그래도 제 집이라고 이 오막살이를 찾아 돌아온 것이 가엾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동안에 무엇을 하였나. 나는 아내가 우리 둘이 먹고 살 것을 얻노라고 조바심을 하는 동안에 문의 누님에 미쳐서 모양 흉한 꼴을 하고 있지 아니하였나 하면 참으로 면목 없는 일이었다. 어리고 순진한 아내는 나와 문의 누님의 관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는 모양이어서, 어느 날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본즉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문의 누님을 보면 억지로 묶어 놓았던 애욕이 또 사슬을 끊고 날쳤다. 그리고 아내만 없으면 문의 누님하고 내가 마음 놓고 살겠는데 하고 아내의 존재를 귀찮게 생각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에 나는 결심하였다. 이 부정한 기억이 있는 집을 단연히 떠나서 큰 동네 한복판에 가서 살리라고 작정하고 부랴부랴 집을 구하였다. 마침 이 교주네 협간이 비어 있었다. 작기로는 지금 집보다야 더 작을 수는 없지마는 아마 수백년이나 되었을 듯한 낡은 집이었다. 본래 파고 세운 집이라 주추가 있을 리는 없으나 기둥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집이었다. 아마 기둥은 다 썩었거나 파묻히고 흙담에만 버티어져 있는 모양이었고, 벽도 수직으로 선 것은 없고 어떤 것은 잦고 어떤 것은 숙었다. 문은 찌그러친 채로 여닫게 되었으나, 내 키로는 고개를 한껏 숙이고 들어가지 아니하면 아니되었다. 그러나 뒤에 등성이를 지고 남향으로 앉은 것만은 좋아서 겨울에 방에 볕이 잘 들 것 같았다. 부엌이 한 간, 방이 두 간, 헛간이 두 간에 한데 뒷간이 붙고 의외에 꽤 넓은 뒤꼍이 있고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꽤 큰 것이 있어서 내가 처음으로 가 볼 때에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어서 매우 내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개나리도 한 포기 있어서 그것도 아직 꽃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 뒤꼍에 닭들이 놀고 있을 것을 상상하고 닭을 몇 마리 치리라고 결심하였다.

아내도 이 집으로 떠나오는 데 반대는 아니하였다. 동네는 원체 대접받지 못하던 동네였으나 아내에게 이웃이 많은 것만 해도 살아나는 일인 듯하여서 그는 이 집이 좋다고 대찬성이었다.

옛날 경계로 말하면 천한 계급이 사는 동네에 들어온다는 것도 일가와 친척이 눈살 찌푸릴 일이어든, 게다가 남의 협간에 든다는 것은 내 생각에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억지로 이런 일도 미화하고 이상화하였다.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천한 자의 벗이 되자, 그리고 나 자신 청빈한 지사가 되자 하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는 우리가 이리로 떠나 오는 것을 매우 환영하는 빛을 보였다. 집집에서 품을 내어서 집을 수리를 하고 아낙네들도 들며 나며 우리의 살림을 도왔다. 학교에서는 내 족형뿐 아니라 굵직굵직한 학생들도 종이를 가지고 와서 방에 도배를 하고 내 서재요 사랑이라 할 웃방만은 장판까지도 하였다. 이 집에 종이가 붙는다는 것은 하느님도 예상 못하였을 것이라고 능글능글한 백 선생이 수염을 쭝긋거리며, 크크크크하고 웃었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사하는 날은 문의 누님이 아침부터 집에 와서 짐을 싸 주었다. 나는 때때로 힐끗힐끗 그의 기색을 엿보았다.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의 얼굴에는 근심 기운까지는 아니라도 전에 보다는 복잡한 표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로 하여서 인생으로 처음 보는 경험을 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처녀도 아니요 수절과부도 아니었다. 다시는 그는 전에 있던 자리에 돌아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의 정신뿐 아니라, 그의 혈액에도 벌써 이성의 호르몬이 섞여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한번 그의 몸에 일어난 변화는 다시는 본래의 상태에 회복될 수는 없는 것이다. 처녀의 피를 가지고 과부의 정절을 지키던, 그 적막하나마 깨끗하고 갸륵한 맛이 있던 그의 세계는 나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만 것이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수심에 가까운 복잡한 표정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짐이 나간 뒤에 그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끌러서 툭툭 떨 때에는 그의 눈가에 심히 적막한 기운이 떠도는 것을 나는 보았다. 언니도 갑시다.하는 내 아내의 말에 문의 누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 다음에 갈게. 모르는 동네에 이사 날부터 내가 무엇하러 가?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의 심정이 가긍하여서 외면하였다.

우리가 나선 때에 문의 누님은 멀거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껏 심히 섭섭하면서도 그가 아니 따라오는 것을 다행하게 여겼다. 양심에 묻은 검은 것을 씻어버리지는 못하여도 더 번지지는 않게 하려는 우리의 새집생활에 그가 끼어서는 아니된다. 나는 마음을 지어 먹고, 내 아내를 사랑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나는 내 아내에게 애정을 표하였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집에 돌아와서 마당과 뒤꼍을 쓸고 닭을 놓은 뒤에는 닭을 돌아보았다. 병아리들을 몰아 넣고 닭들이 다 홰에 올랐나 아니 올랐나 점고하고 문신칙(문이라야 사립문이지마는)도 몸소하였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꼭 아내와 자리를 같이 하였다.

아내는 대단히 내 사랑에 대하여 만족하고 행복된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이나 부엌에 있다가도 마주 내달아서, 학생들이 내게 하는 모양으로 경례를 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어색하고 우습기까지도 하지마는 나는 그 속에 그의 가여운 감사와 존경의 뜻이 품긴 것을 느껴서 엄숙한 마음으로 이것을 받고 나도 답례하였다. 나이로 말하면 그와 나와 단지 네 살 터울이지마는 나는 그를 분수 없이 어리게 보고, 그는 나를 엄청나게 두렵게 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장인데다가 학교개나 다녔다는 것을 자세하는 것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남편 앞에는 고개를 못 드는 구식 가정에서 배운 까닭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잘못함이 없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내 상이 나기 전에 그는 밥을 아니 먹는 모양이어서 나는 그가 밥 먹는 양을 본 일이 없었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그는 내가 벌써 잠이 든 체를 해야 가만히 이불을 들고 들어와 누웠다. 아침에도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모르는 때가 많고, 혹시 내가 잠이 깨어 있노라면 바스락 바스락 아무쪼록 소리가 안 나도록 옷을 주워입고 가만히 문을 여닫고 나갔다. 이런 것은 옛날 가정의 젊은 부녀로는 누구나 그러하던 일이겠지마는 요새 사람으로는 이런 것을 모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형수도, 누나도 없이 자라난 나는 그때에 있어서도 이런 것을 보기는 처음이어서 우리 나라의 부도에 대하여 매우 인상이 깊었다. 능히 이 부도를 지킨다는 것이 내 마음에 아내의 가치를 훨씬 높였다. <보기와는 다른 데, 취할 데가 있는 데.> 하고 나는 아내를 재인식하고 그에게 대한 존경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가정 생활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새 이웃들도 우리를 사이좋고 의초 맞는 부부라고 인정하는 모양이었고, 그것은 또한 내 생명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제비도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병아리도 축 안 나고 잘 자랐다. 암탉들이 알도 잘 낳았다. 다만 하나 내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은 수탉이 못나서 교줏집 수탉한테 제 계집들을 빼앗기는 일이었다. 나는 건방져서 남의 협간살이를 하면서도 큰집을 존경하려 아니하지마는 우리 수탉은 그것을 알아서 명분을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수탉이 이러하는 것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위신에 관계되는 일이었다.

아침 밥상을 받고 앉았노라면 흔히 교주네 수탉이 꺼덕꺼덕하고 거만한 소리를 하면서 대문 밖에 와서 기웃기웃 우리 집을 엿보았다. 내가 막대기를 가지고 나오지나 않나 하는 것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나는 여러 번 그놈을 혼을 내어 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 그 놈이 흠칫하고 달아나지마는 사람이나 닭이나 다를 것 없이 계짐과 재물에 욕심이 난 것을 누르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잠깐 몸을 피하였던 그놈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시 와서 엿보다가는 에라 죽으면 죽고하는 듯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수탉은 못나게도 끼득끼득 겁난 소리를 하면서 죽지를 늘이고, 대가리를 길게 뽑아서 숙이고, 제 계집을 적에게 맡기고 뒤꼍으로나 개구멍으로나 달아나고 만다. 그것을 보는 나는 분김에 불끈 주먹이 쥐어진다. 밥 숟가락을 놓고 단박 내달아서 그놈의 수탉의 갈기를 찢어 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후리 암탉들이 갸륵한 정절을 보여서 동네 수탉의 불의의 유혹에 대하여 추상같이 똑 잡아떼고 반항할 것을 기다리는 마음도 있어서 잠깐 두고 보고 있노라면 그놈의 수탉은 우리 수탉을 울타리 밖으로 내어쫒고 나서 한 편 날갯죽지를 처뜨리고 옆걸음으로 우리 암탉을 어르기 시작한다. 다른 두 놈은 이리 비키고 저리 비켜서 완강하게 거절하지마는 그 중에 노르스름하고 통통한 놈은 무릎을 꿇어버린다. 그때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뛰어나간다. 내 손에는 단장이 들렸다. 내 서푼에 혼이 난 동넷집 수놈은 엎더지며, 퍼덕거리며 달아나고 만다. 나는 수놈을 때리려던 단정으로 무릎을 꿇었던 노랑 암탉을 후려갈기나 물론 내 단장에 얻어 맞을 그는 아니다. 그는 어디론지 달아나고 만다. 이만큼 혼을 내어 놓으면 서너 시간 동안은 다시 그런 일이 없으나 수놈은 또 대문에 와서 엿본다. 고 노랑이를 모가지를 비틀어서 죽여버려야.하고 나는 숨이 차서 자리에 돌아온다.

닭 문제는 내게는 결코 적은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모처럼 학교와 동네에 새로운 기풍을 세워 놓아서 학생이나 동네 남녀들이 잘 내 지시를 믿고 복종할 만치 된 때에 이곳 교회에 내게는 존장이나 되는 나이를 먹은 한 목사라는 이가 부임하여 와서 목사의 권위를 내둘러서 내 권위를 침범하는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가령 내가 학생들에게 활발히 하라는 정신을 고취하여서 걸음도 빨리빨리 걷고 말도 크게 분명하게 하라고 하면 한 목사는 무엇이나 조용조용하고 느릿느릿하게 해야 하느님의 뜻에 맞는다고 한다. 한 목사 자신이 비 맞은 병아리와 같이 후줄근하고 말하는 소리는 겨죽도 못 먹은 사람과 같이 깡깡갑는 사람이라, 학생들 중에서도 살살거리고 얌전이나 빼는 사람을 가까이 하였다. 학생 중에나 동민 중에나 한 목사 편으로 돌아가 붙은 사람이 있었다. 한 목사는 나보다도 세상 풍파에 경험이 많을뿐더러 또 천품이 간교하고 가식이 능하여서 능히 인심을 끄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합병 후에 사립학교에 대한 총독부의 핍박을 면하기 위하여서 여러 사립학교가 예수교회로 가 붙어서 미국 선교사의 비호에 의지하였거니와, 내가 와 있는 학교도 금년부턴느 교회의 학교가 되어서 선교사가 설립자가 되었기 때문에 한 목사는 자기가 설립자이거나 한 것처럼 학교 일에 참견을 하려 들었다. 이에 대하여서 교회는 교회요, 학교는 학교라 하여 학교의 독자성을 내세우고 한 목사의 용훼를 허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 목사는 정면으로 나를 적으로 보게 되었다. 백 선생과 내 족형은 안 그렇지마는 다른 교사들은 아들이나 끝에 동생 같은 애송이 교사인 나에게 눌려서 절제를 받는 것이 싫어서 은근히 한 목사의 편이 되어서, 직원회의 같은 때에도 가끔 내 말에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백 선생도 애초에는 나를 치켜 세워놓고 제 마음대로 주물러 볼 작정이었으나 천만 의외에 나는 그가 예상하던 것과 같은 날탕도 아니요, 바지 저고리도 아니어서 정말로 학교와 학생을 내 손아귀에 쥐려 드는 것을 보고는 다소 심정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처지에 있던 나이기에 우리 수탉이 남의 집 수탉에게 암탉들을 빼앗기는 것이 내 꼴인 것도 같아서 그렇게도 성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혹은 외가로 혹은 고모네 집으로 싸움 잘 하는 수탉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이 교주네 (이제는 전 교주가 되었지마는 세상에서 그대로 부르니 나도 그대로 부르자) 닭이 잘 생기고 기운에 센데다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놈이라 텃세라는 것도 있어서 그 해 늦은 가을까지에 나는 새 수탉을 세 마리나 구하여 왔으나, 다들 이 교주 집 닭에게 참패를 하여서 그 닭의 꾸꾸꾸하는 소리만 들려도 벌써 좁은 구석을 찾았다.

나는 부쩍 심사가 나서 문에게 부탁하여서 보통 닭 값의 갑절이나 주고 수탉 한 마리를 사 오고 문이 어디서 들어온 처방에 의지하여서 생 쇠고기 한 근에 구리 가루 두 돈 중을 넣어서 탕을 쳐서 먹였다. 그리고 내가 지켜앉아서 새 닭이 우리 집 지리를 잘 알기까지 사, 오일간은 교주 집 닭과 맞붙지 못하게 하였다.

이 동안에 교주 집 닭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 집 문전에 와서 낯선 우리 닭을 노려보고 한 번 자웅을 결하려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본래부터 우리 집에 있는 못난 수탉이 새로 사온 용사에게 대번에 항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새 닭은 키로 말하면 교주 집 닭과 막상막하하거니와, 가슴이 떡 벌어지고, 발톱이 날카롭고, 소리가 여무지고, 동작이 힘있고 날쌘 품이 교주 집 닭보다 월등하게 나은 것 같았다.

쌀쌀한 어떤 가을 날 아침에 나는 오늘이야말로 우리 집 닭과 교주 집 닭이 천하를 쟁탈하는 대결전을 할 날이라고 별렀다.

아침을 먹고 앉았노라니, 먼저 우리 새 닭이 우렁차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가 끝나자마자 꾸꾸꾸 하는 거만한 교주 집 닭의 소리가 들렸다. 됐다-!하고 나는 방싯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교주 집 닭은 내가 몽둥이를 들고 나서지 아니한 것을 보고 안심한 듯이 뚜벅뚜벅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 새 수탉은 세 암놈을 뒤로 두고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덤빌테면 덤비어라 하는 모양이었다. 못난이 수탉은 깩깩 소리를 치며 황망하게 개구멍으로 빠져 도망하고 말았다.

두 수탉의 고개가 점점 수그러진다. 전투 태세다. 언제까지 움직이지 아니할 듯이 서로 같은 자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선 목덜미 붉은 털이 쌀쌀한 가을바람에 펄펄 떨렸다.

그 순간! , 그 순간! 둘은 마주 붙었다. 꼭 지키고 앉아 있던 나연마는 어느 편이 먼저인지를 보지 못하였다. 아마 쌍방이 동시였을까.

쪼고 차고 뛰고, 퍼떡거리고.

암탉들은 무엇을 주워먹기도 잊고 고개를 길게 빼어 두 용사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둘 중에 하나가 죽지 아니하고는 말지 못할 싸움이었다.

뛰고 차고 쪼고, 퍼떡거리고.

피차의 볏에서는 피가 흐른다.

피차의 입에는 피차의 털이 물렸다.

혹은 뒷걸음을 치나 반드시 져서 쫓김이 아니었다. 혹은 서로 이마를 마주 대고 맴을 도나 대번에 죽일 자리와 기회를 찾음이었다.

둘은 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피차에 발길이 헛나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기기 전, 또는 죽기 전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는 소리가 났다. 교주 집 닭이 두어 걸음 비틀비틀 뒤로 밀려났다. 우리 닭이 그 날카로운 톱니 있는 발로 적의 앙가슴을 힘있게 찬 것이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곯아 떨어질 교주 집 닭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덤비어들었다. 모가지를 땅바닥에 바싹 붙이고 한 번 단단히 쪼거나, 찰 자리를 노리는 것이었다. 과연 교주 집 닭이 우리 닭의 앙가슴을 한 번 차기에 성공하였으나 아까 모양으로 하는 소리가 안 들린 것으로 보면 정통은 아닌 모양이었다.

차고 물려서는 교주 집 닭을 우리 닭은 어느 틈에 또 한 번 앙가슴을 찼다. 이번에도 !하였다. 더 단단히 채운 모양이었다. 교주 집 닭은 정신을 잃은 듯이 비틀거렸다. 우리 닭은 이때로구나 하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드는 듯 적의 목덜미를 물고 나꾸 채었다. 적은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렸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아니하였다. 대세는 정하였다.

우리 닭은 교주 집 닭을 한참이나 물어서 끌고 돌아다니더니 껑충 뛰어서 적의 어깨를 덥석 밟아 누르고 볏, 대가리, 모가지 할 것 없이 막 쪼고 물어 뜯었다. 마침내 교주 집 닭은 깩깩하고 살려 달라는 소리를 하였다. 아마 이 닭이 이 소리를 한 것은 병아리 적에 큰 닭한테 쪼인 이래로는 처음일 것이다. 그는 이 소리 한 마디로 이 동네 닭 나라의 왕자이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이 교주 집 닭이 우리 닭에게 쪼여서 아주 죽어버릴 것을 염려하여서 싸움을 말렸다. 우리 닭이 그놈의 몸에서 내려서니 그는 겨우 죽다 남은 목숨을 주워가지고 비틀거리며 달아났다. 우리 닭은 개선 장군의 위엄을 가지고 길게 목을 늘여서 소리 높이 한 번 울었다.

이튿날 이 교주 집 닭이 또 왔다. 그는 아무리 하여도 그대로 지고 말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 둘이 마주 붙어서 싸웠다. 그러나 도저히 적수는 아니었다. 이날은 어제보다도 더 심하게 쪼이고 뜯기고 달아났다.

이튿날 그는 또 왔다. 거뭇거뭇 선지피 덩어리가 된 볏은 두 군데나 찢어지기까지 하고 살멱도 성한 데가 없건마는 그래도 그는 또 왔다. 그가 이 참혹한 꼴을 가지고 우리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때에 나는 생명의 뜻이란 어떻게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하고 몸이 떨렸다. 그는 필시 간밤에 홰에서 졸면서 몇 번이나 꿈에 놀래어서 깨고 몇 번이나 밝는 날의 복수전을 별렀을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그의 적의 등에 올라서서 대가리를 쪼아 깨뜨리고 그 골을 먹을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그는 오직 오늘의 싸움을 위하여서만 모이를 먹고 이기지 아니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할 결심으로 집을 떠나서 우리 대문으로 향하였을 것이다.

이틀이나 연전연패한 그에게 이길 가망은 극히 적었다. 무슨 이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에게 오늘이 마지막 싸움일 것이요, 내일 또 한 번 싸워 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첫째로 그의 모양이 벌써 초췌하여서 벌써 빛이 가시고 풀이 죽었다. 두 번 싸움에 볏이나 살멱이 찢어지고 거뭇거뭇 허물이 진 것이라든지 그 결 좋고 빛 좋은 목과 가슴의 털이 누덕누덕하게 된 것은 그 닭이나 우리 닭이나 다를 것이 없지마는, 고개를 번쩍 들고 선 그 위풍이랄까 영채랄까가 그 닭이 도저히 우리 닭과 비길 수가 없었다. 그 닭의 후줄근한 꼴은 아무리 하여도 제 운세가 다 지나간 쇠퇴한 기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 그의 천지를 온통으로 부셔버리려는 결의와 분노만이 그의 피선 두 눈에 무시무시하게 빛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싸움이 이기어지는 것일까.

우리 닭은 그 닭이 달려드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도 모이를 쪼아서 암탉을 불러 먹이는 여유를 보였다. 그 닭을 잘 따르던 노랑 암탉은 이제는 패한 자를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승리자의 총애를 달게 받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윤리였다.

그 닭이 가까이 올 때까지도 마치 못본 체하고 암탉과 희롱하는 양은 밉살스럽도록 거만하였다. 혹시 적의 가슴을 어지럽게 하려는 전략인 것도 같았고, 승리는 내게 있다 하여 대드는 적을 무시하는 것도 같았다.

교주 집 닭의 목털은 오리오리 빳빳이 일어서고 그가 노리고 뻗은 머리는 푸르르 떨렸다. 성낸 머리카락이 관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우리 닭은 적을 지척에 놓고 한 번 홰를 쳐서 울기까지 하였다. 나는 저놈의 경적이 필패를 모름이나 아닌가 하고 조바심을 하였다.

교주 집 닭의 분노한 발길이 우리 닭의 가슴을 차는 것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물고 차고 뜯고 끌고. 최후의 결전인 줄을 피차에 같이 의식하는 모양이어서 싸움은 처음부터 격렬하였다. 전투의 법이나 기술이나 돌아볼 여지가 없었다. 막 물고 막 차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헛 물고 헛 차는 일도 많았다. 적의 머리를 쫀다는 주둥이가 땅바닥을 쪼고 적의 가슴패기를 겨눈 발이 허공을 차는 양은 더욱 처참하였다.

죽기를 맹세한 교주 집 닭은 이적이라 할 만한 끈기를 내었다. 암만 쪼이고 암만 채우더라도 날개죽지를 가누기가 어렵도록 기운이 진하였건마는 머리가 무거워서 흙을 핥으면서도 언제까지나 적에게 덤비어 들었다. 우리 닭도 기운이 진하였다. 그도 인제는 적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죽기를 기쓰고 싸우고 있었다.

어찌한 기회로인지, 줄곧 바라보고 앉았던 내 눈으로도 보기를 놓쳤으나, 교주 집 닭이 우리 닭의 볏을 물고 잡아 끌었다. 우리 닭도 뿌리칠 기운이 없어진 듯이 몇 걸음을 끌렸다. 아아, 또 우리 닭이 지는가.하고 나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끊었다. 나는 우리 닭이 적에게 짓밟히는 양을 차마 볼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눈을 감고 아니 볼 수도 없었다. 나는 두 주먹에 땀을 한 줌씩 쥐고 하회를 보았다.

문득 우리 닭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의 볏은 일부분은 적의 입에 남았고 뜯긴 볏에서 흐르는 피가 우리 닭의 눈으로 흘렀다. 적의 입에서 머리를 빼어낸 우리 수탉은 껑충 몸을 솟아 적의 앙가슴을 박찼다. 털 속이라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거니와, 교주 집 닭은 마치 실신한 듯이 비틀거렸다. 정통을 단단히 채운 모양이었다. 우리 닭은 적이 몸을 비킬 틈도 주지 아니하고 목을 높이 뺄대로 빼어서 소리가 나도록 적의 머리를 내려 쪼았다. 그리고는 두 번째 쫄 때에는 적의 목덜미를 물어서 끊어져라 하고 좌우로 잡아 흔들었다. 몇 번이고 언제까지고 물어 흔들기를 그치지 아니하려는 것 같았다.

아아, 교주 집 닭은 다시 저항이 없었다. 그는 가엾이도 우리 닭에게 마당의 한 구석에서 다른 한 구석으로 질질 끌려 갔다. 우리 닭은 달아날 수 없는 구석으로 적을 몰아넣고, 그 미운 적을 물어 뜯고 뜯어서 간을 내어 먹고 골을 물어 흩고 피를 빨아 뿜고야 말려는 것 같았다.

나는 인제 그만 말릴까 하였으나 말았다. 그들의 뜻을 끝까지 펴게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들의 운명에 간섭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적에게 깔린 편이 다시 기운을 회복하여서 쾌히 설치를 하든지 이긴 편이 실컷 승리자의 기쁨에 도취하든지 저마다 제 뜻을 펴게 할 것이다록 나는 생각하였다. 나의 반지빠른 국량으로 적게는 그들의 뜻을 간섭하고 크게는 하늘 땅의 섭리에 참견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또 설사 내 간섭으로 교주 집 닭이 죽을 목숨을 보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그를 위함인지 알 수 없었다. 패배자의 수치를 무릅쓰고 오래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끝까지 싸워서 죽는 것이 그에게 남은 오직 하나인 영광의 길일 것이다. 그가 저 꼴이 되도록 하는 소리 한 마디를 아니하는 것을 보아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내 지노라, 나를 살리라.하는 비굴한 일을 아니하겠다는 교주 집 닭의 갸륵한 결심인 것 같았다. 그렇다, 그로하여금 그의 뜻을 펴게 하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비록 교주 집 닭이 죽더라도 나는 마음으로 동정하고 찬양할지언정 그를 도와서 구차스러운 신세를 그에게 강제하는 일이 없으리라 하였다.

나는 닭 싸움이라는 것도 잊고, 우리 닭의 승리라는 것도 잊고, 한 목사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이라는 것도 잊고 자연의 지극히 깊은 비밀의 방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내가 개인과 민족의 생활의 진리를 배우는 자리에 앉은, 한 적은 제자의 심경으로 두 닭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쪼고 물고, 뜯고 짖밟고, 갖은 고통과 모욕을 적에게 주기에 정신이 없던 우리 닭도 마침내 기운이 진한 모양이었다. 그 고개의 움직임은 갈수록 둔하여지고 그의 날개죽지도 땅에 끌리도록 가눌 기운이 없었다. 밑에 깔린 닭은 인제는 픽 픽 하고 멱을 따인 닭의 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고 경련이 일어난 듯이 때때로 몸을 퍼떡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최후의 승부는 결하였다. 우리 닭은 적이 죽었나 아직도 살았나 알아보려는 듯이 물끄러미 적을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인제 다 되었다.> 하는 모양으로 적의 시체(?)를 내버리고 마당 한복판으로 걸어나왔다. 나는 모이를 뿌려 주었으나, 구경하던 암탉과 병아리들이 모여들어서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쪼아 먹어도 우리 승리자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듯, 고개를 기웃기웃하고 서 있을 뿐이요, 모이에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주둥이를 이리저리 땅에 뉘여 끌었다. 묻은 피를 씻는 것인가 싶었다. 인제 전쟁은 끝난 것이다. 아마 그에게는 평생 처음의 격전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는 이삼일 간 집에서 휴양하면서 병아리 아울러 이심 마리 가까운 가솔을 거느렸다. 그는 어디서나 먹을 것을 찾으면 암탉과 병아리들을 불러서 그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보고, 임금이나 가장의 기쁨을 느끼고 밤이면 먼저 홰에 올라서 식솔들을 불러들이고, 저는 떡 문 밑게 앉아서 지켰다. 언제까지나 우리 집 닭 나라의 평화도 계속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평화도 잠깐이었다. 우리 닭은 교주 집 닭을 이긴 맛에 취한 모양이어서 다른 집에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첫째로 끌어들인 것이 교주 집 암탉들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의 날마다 새 암탉들을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그는 그들을 다 제 신민으로 아는 모양이어서 우리 집 암탉이나 병아리가 밖에서 온 자에 대하여 텃세를 하는 빛이 보이면 가끔 그는 사정 없이 제 식구를 쪼았다.

이로부터 여러 집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우리 닭이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남의 집 수탉들과 싸워 이기고는 그 집 암탉들을 후려내어서 알을 받기가 어려우니, 그 놈을 좀 붙들어 매어 달라는 것이었다. , 제국주의다.하고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때나 카이제르의 독일이 한창 강성하여서 영국과 힐항하던 시절이다. 확실히 그것은 두 큰 수탉이었다. 러시아라는 엄청나게 큰 수탉이 풋병아리 일본에게 참패하자, 더 큰 수탉 루즈벨트가 싸움을 말렸으나, 그 통에 우리 나라는 풋병아리의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가 이 수치를 벗는 길은 둘이 있었다. 하나는 정당한 길이요, 하나는 요행의 길이었다. 정당한 것이란 우리 나라가 고기 한 근과 구리 가루 두 돈중어치를 먹고 며느리발톱을 날카롭게 갈아서 바다 건너온 수탉 일본의 대가리를 쪼고 앙가슴을 박차서 넘어뜨리는 것이요, 요행의 길이라 함은 다른 닭이 일본을 물어서 끌리는 것이었다. 합병된지 일년 남짓한 당시 우리들은 비분강개의 눈물을 흘렸으나, 한 근 고기와 두 돈중 구리 가루를 구하는 것보다도 어느 큰 닭이나 미운 일본 닭을 쫓아주기를 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닭을 타고 누를 닭이 우리를 그와 같이 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고기 한 근과 구리 가루 두 돈중!> 나는 이것을 교육과 산업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튿날 하학 수에 강당에 학생을 모아 놓고 이번에 본 닭싸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는 선생들도 왔다. 한 목사는 듣다가 매우 못마땅한 듯이 중도에 나갔다. 나는 독한 눈으로 그의 나가는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의 운명의 대표자인 교주 집 닭이 이미 우리 닭에게 죽도록 쪼여서 노예가 되었다고 속으로 외쳤다.

내 이야기는 상당히 청중의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빈정거리는 표정을 언제나 가진 백 선생도 눈을 뚝 부릅뜨고 듣고 있었다. 오직 한 목사를 따르는 유, , 장 등 몇 학생이 버릇없이도 눈을 감고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고약한 놈들, 괘씸한 놈들!> 하고 원래 흥분하였던 나는 가슴에 불이 타오르는 듯하였다.

나는 다윈의 생물 진화론을 들어서 우승 열패와 적자생존의 철칙을 말하였다. 가증한 오줌 병아리놈들은 다 죽어라! 무엇이냐? 어깨를 축 처뜨리고 발자국 소리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그 반쯤 죽은 것은 못난 것들이.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요, 고구려인의 자손이다! 우리는 저 세계의 노예 이스라엘은 아니다! 너희들은 이스라엘을 버려라, 차라리 로마인을 배워라!나는 이렇게 탈선하였다. 흥분김에 한 목사와 그 일파인 예수교인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었다.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공격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공격이 무엇이냐, 나는 예수를 배우는 진실한 제자로 자처하였다. 내가 미워하는 것은 한 목사와 같이 겉으로 얌전한 듯, 겸손한 듯하게 꾸미는 그러한 태도였다. 찬미가를 부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증한, 죽어가는 소리로 말고 우렁찬 군가조로 불러라!이런 소리도 하였다. 나는 중간에 나가는 한 목사와 눈을 감고 앉았는 유, , 장 세 녀석에게 분격하여서 아니 할 말을 하였다고 후회하였다. 그리고 말 끝을 민족 문제로 돌려서, 여러분! 우리 민족이 요구하는 것은 고기 한 근, 구리 가루 두 돈중이요. 우리 민족은 싸워야 하오. 우리 민족은 이기어야 하오. 다른 닭이 싸워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거지 영신이요.하고 말을 맺았다.

내 이야기는 두 시간을 넘는 큰 연설이었다. 익살 박 선생은 꼬빡꼬빡 졸고 있었다. 내 족형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점잔하게 앉아 있었다. 재미 있는 이야긴데. 천산네 진 수탉은 오늘 잡아 먹세 그랴.하고 강당에서 나오는 길에 백 선생은 내 옆을 걸으며 호호호호 하고 웃었다. 나는 그가 내 대연설을 이렇게 농담으로 비평하는 것이 불쾌하여서 대답을 아니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내 말의 심원한 뜻을 알랴 하고 속으로 그를 경멸하였다.

나는 내 연설에 대하여서 감격의 찬사가 빗발치듯 들어오기를 기대하였으나, 백 선생 만큼도 평하여 주는 이가 없어서 섭섭하였다.

자다가 깬 박 선생이 방에 나와서 기지개를 켜며, , 한 잠 잘 잤다니.한 때에는 나는 그를 발길로 차 주고 싶도록 분격하였으나, <제까짓 게 무엇을 알아.> 하고 치미는 분을 꿀떡 참았다.

아이들이, 고기 한 근, 구리가루 두 돈중 있으면 좋겠다.하고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이 괘씸은 하였으나, 그래도 내 말이 그들에게 준 인상이 깊었던 것이라 해서 마음에 좋았다.

나는 생명의 기미와 자연의 비밀에 투철한 내 대연설의 반향이 적은 것은 날이 갈수록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다들 정도가 어려서.> 하고 나는 학교에 대하여 환멸의 비애를 느꼈다. 나는 이런 유치한 것들과 더불어 세월과 정력을 허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번 닭 싸움에서 큰 진리를 찾은 것으로 믿었다. 내 손에 잡은 것이라고 뽐내었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이 닭 싸움의 대연설이 큰 풍파를 일으킨 것을 발견하였다.

다음 일요일 아침 예배에 예배당에서 한 목사는 내 연설을 들어서 공박하였다. 내 연설에는 다섯 가지 큰 죄목이 있었다. 첫째는 다윈의 진화론을 들어서 성경을 공격한 것이요, 둘째로는 하느님의 종손인 이스라엘 족을 모욕한 것이요, 셋째로는 수탉 싸움으로 제 계집을 빼앗긴다.는 등, 암탉이 이긴 수탉을 따르는 것이 윤리상 당연하다.는 등, 학생에 대하여서 못할 말을 하였다는 것이요, 넷째로는 하느님의 일꾼과 신도를 욕하였다는 것이요, 다섯째로는 거룩한 민족을 천한 닭에 비겨서 고기 한 근, 구리 가루 두 돈중을 먹이라는 등, 민족을 모독하였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어떤 선생이 신성한 교회 학교 강당에서 순진한 청년 학도들에게.라 하여 내 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탁을 두드리며 말하고 어떤 때에는 나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삼백 명 남녀 청중의 눈이 내게로 쏠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청중 중에는 학생 전부도 있었다.

한 목사는 자기의 말이 청중의 주의를 끈 것을 의식하자, 깡깡갑는 그 어조에 더욱 선지자의 신령스러운 권위를 붙여서, 그 선생은 마땅히 회개할 것이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아프게 회개할 것이요. 회개하면 우리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그 죄를 씻을 수 있거니와, 만일 회개----면 그는 여------의 진---심을 면----것이요. 아아, 두려운 것이요. 하나님의 진노 속에는 사탄도 떨거든 감히 그 앞에 설 자 뉘뇨?하고, 그는 말을 맺고 이어서, 사랑하는 부형 모매님네, 우리 이 불쌍한 형제를 위하여 우리 주 하느님께 기도합시다.하고 선교사의 어조로 기토 하압씨터.하였다. 그가 하는 기도는 그의 강연보다도 더욱 독하게 나를 때리고 찔렀다. 그의 기도는 길었다. 오오 불쌍한 그 형제를 수없이 연발하였다.

중간에 나온 한 목사가 내 연설을 다 아는 것을 보니, 필시 유, , 장 세 녀석이 일러바친 것이었다. 스승에 대한 의리를 어기고 은혜를 저버린 괘씸한 세 놈의 낯바대기를 나는 청중 속에서 찾아서 한 번 노려보았다. <똥구더기 같은 놈들.> 하고 나는 분한 것을 비웃음으로 돌리려 하였다. <어리석은 것들이 위인의 대사상을 몰라보고.> 하고 나는 떡 버티고 태연하려 하였으나, 내게는 가엾게도 그만한 뱃심도 수양도 없었다. 위인이라고 뽐내는 간으로는 위인이 덜 된 것이었다.

나는 한 목사의 괘씸한 말에 대하여 나를 위하여 분개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이 방 저 방 선생들의 방에도 가 보았으나, 내게 위로될 말을 해 주는 자가 없었고 학생들은 냉랭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이 학교에서 직원과 생도 사이에 애경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슬펐다. 만일 진실로 그들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비록 당장에 한 목사를 두들기거나 면박은 아니 준다 하여도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냉랭한 태도가 무엇이냐. <사람을 몰라보는 것들! 은혜를 모르는 것들! 나는 갈 테다. 내가 가버린 뒤에 너희가 나를 잃은 것을 애통하더라도 부질없으리라!> 이렇게 맹세하면서 나는 집으로 갔다. <이게 무엇이냐. 이 오막살이, 남의 협간이나 같은 큰 사람에게 당하냐. 아아, 은혜를 모르는 것들!> 나는 내 집이 미웠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이냐. 공부도 그만두고 이 시골구석에 묻혀서 한 주일에 사십여 시간 근로를 하여서 청춘의 꽃다운 시절을 허비하는 것이 누구 때문이냐. <망할 것들! 굼벵이 같은 것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로 내 방이라는 콧구멍만한 방에 요를 깔고 드러누웠다. 아내는 저녁을 짓고 있었다.

몸이 노곤하였다. 이 학교에 와서 인제 일년 반, 내가 학교 일과 동회 일에 아주 몸을 바친지도 만 일년이다. 그동안 나도 참으로 생명을 바쳐서 일하였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동네의 남녀 야학과 동회로 내게 한가한 날과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열정적이라는 말을 듣는 나는 학교와 동네를 위하여서 청춘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았다. 그러나 내 과로와 영양불량은 내 건강을 많이 깎았다. 기침도 났다. 그래도 나는 내 몸을 아끼려는 생각은 아니하였다. 이 모양으로 내 생명을 갈아서 민족에게 먹이고 거꾸러지는 것이 거룩한 소원이라고 생각하였다.

내 벽에 써붙인,

발 씻어 무엇하리.

첫닭 울면 나갈 것을

하루 열두 시에

다리 뻗을 때 없어라.

하는 노래는 옛 사람의 시를 번역한 농부의 노래여니와, 지난 일년의 내 생활은 실로 이 심경으로서였다.

만일 내가, 남이야 무에라든지 네 할 일만 정성껏 하여라 하는 정도까지 수양이 되어 있었을 진댄 한 목사가 무에라거나 학생들과 동민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내가 믿는 바를 힘껏 목숨껏 하면 고만이었겠으나, 스무 살의 나에게는 그만한 심경을 바랄 수가 없었다. 나는 역시 내 정성에 대하여 곧 남들이 응해 주기를 바랐고, 그것이 없으면 섭섭하였다. <분하다, 괘씸하다. 나는 어찌할까?> 하고 괴로워하고 누워 있을 때에, 여보셔요, 우리 수탉이 다리가 부러졌어요.하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무어?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치고 나가보았다. 참혹한 일이었다. 우리 제국주의자 수탉이 부러진 다리를 끌고 절뚝절뚝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볏과 살멱도 성한 데가 없었다. 나는 곧 그 까닭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어떤 집에서 저의 수탉이 우리 닭에게 진 것을 분히 여겨서 몽둥이로 우리 닭을 후려갈겨서 그의 다리를 상하고는 그를 붙들어 저의 닭으로 하여금 실컷 쪼아 원수를 갚게 한 것이었다.

비겁한 짓이다. 내가 회장으로 지도하는 내 동네의 소위일까. 그도 오늘 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를 미워하여서 내 닭을 이렇게 한 것일까.

우리 수탉은 다리가 아주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관절이 퉁겼거나 단단히 얻어 맞아서 다리에 타박상을 받은 모양이어서 다리를 쓰지 못하고 질질 끄는 것이었다. 아무려나 다리가 이 꼴이고는 다시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분이 치밀었으나 그 분을 풀 곳이 없었다.

나는 직각적으로 이것도 필시 한 목사의 소위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한 목사의 집에를 가 볼 생각이 났다. 그도 나와 같은 가난뱅이로서 제 집이 없고 예배당에 소속된 목사 주택에 떠나 온 사람이다. 목사 주택은 새로 지은 집이어서 내 집보다는 높기도 하고 크기도 하였으나 앞에 헛간조차 없는 외채 집이어서 마치 주막집같이 모였다. 나는 내 집이 월등하게 격이 높고 한 목사의 집은 천태를 띠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내외가 분명치 아니한 때문이라고 하겠지마는 그보다도 한 목사가 사는 집이기 때문이었다. <위선자! 회칠한 무덤! 속에는 시기와 미워함이 가득하면서도 입으로는 사랑을 설하는 자. 속에는 물욕이 넘치면서도 두 벌 옷을 아니 가진 성도를 꾸미는 자!> 나는 한 목사를 생각할 때마다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마당도 없고 뒤꼍도 없으면서도 닭을 열 마리나 놓고 교인들에게서 모이를 얻어 먹이는 그는 욕심꾸러기가 분명하다고 나는 춤을 추고 싶었다. 우리 집에는 뒤꼍도 있고 마당도 있다. 나는 닭의 모이를 문의 집에서 얻어 올지언정 학생이나 동민에게서 구걸을 아니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 목사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에 그 집 수탉이, 꺼더꺼더꺼더.하며 암탉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 먹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놈이다! 의심할 것 없이 저 놈이다!> 하고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그놈을 노려보았다. 그놈의 볏과 살멱에는 선지피가 묻어있으니, 금방 싸운 것이 분명하였다. 저놈이 우리 수탉한테 쪼이고 뜯기는 것을 한 목사가 비겁하게도 저의 닭의 역성을 들어서 우리 닭을 후려갈겨서 다리 병신을 만든 것이라고 나는 작정하여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놈의 닭이 밉기가 한량이 없었다. 한 목사가 미운 마음까지 아울러서 나는 그놈을 노려보았다. 그놈도 내가 제 적의 주인인 줄을 알기나 하는 듯이 매우 거만스럽게 떡 버티고 서서 눈을 뒤룩뒤룩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놈도 어지간히 크고 잘 생긴 닭이었다. 불그스레하고 털이 너슬너슬한 것이 허위대가 좋았고, 누르스름한 다리, 까만 발가락에 은으로 깎은 듯한 며느리발톱이 비스듬히 위로 향한 것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

그러면 우리 닭이 정당하게 싸워서 저 놈 한테 졌나. 우리 닭이 이웃 닭을 다 정복하고 난 끝에 동내의 맨 변방에 있는 한 목사네 집에 침입하였다가 의외에 경적을 만나서 참패를 당한 것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만일 그랬다 하면 우리 닭의 다리가 상하였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부정한 한 목사기로니 이기는 저의 닭의 역성을 들어서 우리 닭을 후려갈기도록 마음이 흉악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내가 노려보는 데 겁이 났는지, 한 목사집 수탉은 솔개에나 쫒기는 듯한 놀란 소리를 하면서 달아나고 말았다. 그놈의 닭이 다시야 안 오겠지. 글쎄 그놈이 사흘째란 말야.하는 소리가 내 귓결에 들렸다. 과연 한 목사의 소리다. 정말 그랬구나! 나는 한 걸음 더 가까이 한 목사네 문 앞으로 갔다. 또 오거든 이번엔 반쯤 죽여 주어야.이것도 한 목사의 말이다.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내 상상이 맞았다.

나는 두어 번 기침소리를 내면서 그 집에서 떠났다. 내가 제 말을 들었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자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또 동전을 줄로 갈기 시작하였다. 더 먹이자. 우리 수탉에게 쇠고기와 구리 가루를 더 먹이자. 한 목사가 밤낮 집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니 그가 없는 기회에 우리 닭으로 하여금 실컷 분풀이를 하게 하자. 고얀 사람 같으니! 한 목사는 예배당에서 내 명예를 짓밟고 돌아오는 길로 우리 수탉의 명예를 짓밟은 것이었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동전을 가는 팔엔느 불뚝불뚝함이 올랐다. 쇠고기를 어떻게 구하나, 내일이 장난이라면 내가 몸소 달려가서라도 사 오고 싶었다.

일이 잘 되느라고 문의 누님이 갈비를 가지고 왔다. 절골 언니 오셨어요. 갈비를 가지고 오셨어요.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문의 누님을 보는 것은 언제나 반갑지마는 그보다도 우리 수탉을 먹일 고기를 가지고 온 것이 반가왔다.

나는 두 사람의 놀림을 받으면서 고기와 구리 가루를 우리 닭에게 먹였다. 한 목사 집 수탉을 실컷 쪼고 차서 원수를 갚으라고 빌었다. 우리 닭은 내 뜻을 아는 듯이 맛있게 그것을 먹었다.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먹일 터이다.

, 배추와 쌀로만 살던 우리 집에 갈비가 들어온 것은 역사에 오를 만한 일이다. 밥이 벌써 다 되어 있었건마는 우리는 갈비를 끓이고 굽고 하여 셋이 잘 먹었다. 먹으면서 문의 누님은, 오늘 동네에서 소를 잡았어요. 그래 오라비가 갈비 한 짝을 사 왔는데 반은 학교 형님께 보내야 한다고 성화를 하길래 제가 가지고 왔지요.하고 설명하였다. 학교 형님이란 나를 가리킨 것이다.

문의 누님은 우리 집이 이 솔모루로 떠나온 뒤에도 여러 번 다녀갔으나, 내가 매양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렇게 한 자리에서 밥을 같이 먹는 일은 앞고개 집을 떠난 뒤로는 처음이었다. 나는 문이 갈비와 함께 보내어 준 소주도 몇 잔 먹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술이라 곧 얼근하였다. 닭 먹일 고기는 생겼것다, 갈비는 먹었것다, 술도 마셨것다, 오래간만에 문의 누님과도 만났겄다, 나는 생일을 쇠는 것같이 유쾌하였다. 한 목사의 괘씸함도 잊고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는 닭싸움 이야기를 시작하여 웃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였다. 나는 문의 누님 앞에서 한 목사의 옳지 못한 행위를 말하고, 우리 수탉이 반드시 어느 기회에 한 목사네 닭을 단단히 경을 치울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문의 누님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나와의 지나간 불쾌한 기억을 다 잊은 듯하여서 스스러움 없이 나를 바라보고 또 웃는 말도 하였다. 내가 닭 싸움에 그렇게도 상성이 된 것이 우습다고까지 하면서 내 아내의 어깨를 치고 웃었다.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역시 우스운 모양이었다.

나는 대단히 유쾌한 기분으로 두 사람을 집에 두고 저녁 청결 검사를 나섰다. 이것은 동회에서 작정된 것으로서 회장이 아침, 저녁 두 번 집집의 청결 상태를 순시하는 일이었다. 나는 집집의 안마당까지, 뒤꼍까지, 토요일이면 부엌, 부뚜막, 안방, 이불, 요까지 검사할 의무와 권이를 가진 것이었다. 아침에는 아침 소제, 저녁에는 저녁 소제로 저마다 제 집과 문전과 또 온 동네를 깨끗이 하자는 것으로서 아마 이것은 동회 운동으로 더불어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운동일 것이다. 회장님 오신다.하고 아이들까지도 내가 순회하는 것을 기다리게까지 되었다. 선산님 (선생님) 진지 잡수셨습니까?하고 부인네들이 부엌 설거지를 하다가 나와 맞기도 한다. 나는 이 일을 기쁨으로 알고 자랑으로 알았다. 이 때문에 동네는 깨끗하기로 소문이 나게 되어서 청결 검사의 일 헌병들도 이 동네에는 들어오지를 아니하게 되었다.

날이 저물기도 하고 또 문의 누님이 가기 전에 돌아올 양으로 이 날은 슬적슬적 돌았다. 맨끝으로 한 목사네 집에 다다랐을 때에는 방에서 유, , 장 세 녀석의 소리가 들려서 분이 치밀었으나, <내서두어라, 구더기 같은 것들.> 하고 기침을 한 번 크게 하고 훨훨 지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한 목사가 유, , 장 세 학생 녀석을 끼고 학생을 선동하여서 나를 배척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이까짓 지위를 아낄 줄 알고.> 하고 나는 흥 코웃음을 하였다. <내가 갈 데가 없어서 이 따위 시골 구석에 들엎디어 있는 줄 아느냐. 천하에 어디를 간들 나 설 자리 없는 줄 아느냐. .> 나는 한 목사 따위와는 격이 다른 사람이라고 자처하였다. 한 목사 따위는 시골 구석에서 깡깡갑는 소리나 하다가 썩어질 위인이지마는 나 같은 사람은 미구에 이름이 전국에, 아니 온 세계에 떨칠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평생을 솔모루 동내에서 지난다면 이 솔모루가 톨스토이의 야스나야 폴랴나가 되고 이 거지같은 학교가 나로 말미암아 세계에 이름이 높은 학교가 되리라고 혼자 뽐내었다. 나는 대사상가여서 톨스토이보다 큰 사람이 되지 않고는 말지 아니하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목사나 유, , 장 세 학생이나 모두 부족괘치어서 그런 것을 염두에 두는 것도 나답지 못하고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웃어버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한 목사의 집을 한 번 돌아보고 가여운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나 문의 누님이나 위대한 인물을 맞는 경건한 태도로 나를 맞았다. 그들은 이야기를 그치고 정색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가 앉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앉았다. 나는 앉아서 점잔을 빼었다. 내일 이 애 집에 좀 보내셔요.하고 문의 누님이 입을 열었다. 집에라니요?내 어조는 노성한 어른과 같아서 저도 놀랐다. 아니, 저 외가집에 말씀야요, 이 애 친정에요.」 「왜 무슨 일이 있어요?나는 의외의 말인 것 같아서 아내와 문의 누님을 보았다. 아내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문의 누님의 입가에는 참는 웃음이 있었다. 무슨 일은 없지마는 가을도 다 지났으니 친정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좀 쉬기도 하게요.하면서 문의 누님은 아내를 보았다. 허기는 우리 집에서는 굶는 심이지요. 가난한 선비의 집에 시집오기가 원체 잘못이지요. 가라고 그러셔요. 나는 혼자 끓여 먹어도 좋고 기숙사에 가 있어도 좋지요.나는 반 농담 삼아 이렇게 비꼬는 소리를 하고 입까지 비쭉하였다. 그러고는 곧, 큰사람도 이런 소리를 하나.하고 제 말이 점잖지 못함을 후회하였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요. 왜 그렇게 말씀을 하셔요? 굶기는요.하고 문의 누님은 당황하였다. 아내는 더욱 못 견디어 하는 듯하였다. 나는 그것이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침착한 문의 누님의 당황하는 꼴을 보는 것은 재미있거니와, 아내가 쩔쩔매는 곳에 내 위신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 게 아니라요.하고 문의 누님은 간사하다 하리만큼 고운 소리로, 이 애가 제 몸이 아냐요. 태중이야요. 입덧이 났어요.하고 아내를 본다.

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가 전에 없이 눕는 때가 많았던 것이 그 때문이었던가. 나는 그가 차차 버릇이 없어지고 게으름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얼굴에 전에 없이 붉은 기운이 보이던 것도 그 때문이었었는가.

잉태! 저 어린 것이 잉태!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요 지향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내가 오란 일도 없이 그가 온단 말도 없이 새로운 생명 하나가 나를 아비라고 부르고 그를 어미라고 부르면서 벌써 온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상하고도 또 이상한 일이다.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는 동안에 이 일을 한 이는 그 누구? 하느님? 자연? 호의? 악의? 장난? 남들은 다들 어ᄄᅠᇂ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게는 생각해도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신비였다. 오라기도 전에 간단 말도 없이 그는 어디서 오는가. 뉘가 보내는 것인가. 그 씨가 내게서 나갔다 하니 언제, 어디로부터 내게 들어와서 어디 머물려 있다가 나가는 줄도 모르게 나가서 어미의 배에 들어간고? 만일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 하면 그가 들고 나는 것을 알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또 만일 그것이 생명의 분열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알기는 알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주인이 아니라면 누가 주인인고? 내 몸의 속에 몇 아들과 몇 딸을 집어넣은 것은 누구며, 그들이 때를 찾아, 차례를 찾아 그리고 어미가 될 사람을 찾아서 내 몸에서 나가 그의 몸에 드는 것이 다 누가 시킴인고? 연애니, 혼인이니, 성욕이니 하는 것은 결국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방편이다. 나로 하여금 이러한 도구가 되게 하는 자가 그 뉘뇨? 나는 이때처럼 내 밖에 또는 내 위에 있는 어떤 힘을 절실히 느낀 일은 없었다. 그것을 하느님이라든지, 삼신님이라든지 또는 자연의 법칙이라든지, 이름이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나를 포함하고 나를 지배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노라고 멀거니 앉았는 것을 내가 아내의 잉태를 반갑게 안 여김이라고 속단한 모양이어서 아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는 제가 잉태하였다는 것을 알면 필시 내가 기뻐 뛰리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세상이 다 그렇지 아니한가. 더구나 나와 같이 남의 외아들로서는 아내의 잉태는 경사라야 할 것이 물론이다. 그러나 사실상 아내의 잉태는 나에게 생명의 신비를 암시하여서 의문과 경이의 정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언정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애정있는 아내와의 사이에 생긴 일이라면 어ᄄᅠᆯ지는 모르지마는 도무지 반갑지를 아니하였다. 아내가 섭섭하여서 우는 양을 볼 때에 심히 미안하나 그렇다고 억지로 반가운 모양을 꾸밀 줄은 모르는 나였다. 왜 울어?나는 이런 소리를 해 보았다. 울지 말어!하고 문의 누님도 내 말을 이어서, 울기는. 애기 밴게 경사가 아냐. 김씨 가문에 꽃이 피는 게 아냐.하고 위로하였다. 그럼, 내일 가지. 가서 맛있는 게나 자시구 잘 쉬구려. 내 걱정은 말구.나는 이렇게나 아내의 내게 대한 섭섭함을 우물쭈물하려 하였다.

아내는 본래는 둔감하다 할 사람이지마는 임신 중인 것과 이것이 대단히 중대한 사건인 그로, 하여금 매우 감정을 예민케 하였다. 나는 발표도 아니한 내 속이 그렇게도 신속하게, 정확하게 다른 개인의 마음에 비치는 것을 보고 무시무시하게 생각하였다. 그것을 사람의 영이라 할까 혼이라 할까, 눈에 보이는 빛, 귀에 들리는 소리를 떠나서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거울에 비치듯이 분명히 나타나는 무슨 힘이 있다는 것이 어찌 무시무시한 일이 아니랴. <아내는 내 속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외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튿날 조반 후에 아내는 문의 누님과 작별하여서 친정에를 가고 나는 홀아비 살림을 하게 되었다. 친정이라야 양친이 다 없고 계모 슬하이라 반가와 해 줄 사람도 없으련마는 그래도 첫 해산은 친정에서 아니할 수 없을뿐더러 아내나 문의 누님이 나의 생각에는 이미 이름지어 받은 기부가 있으니, 삼년상이 지나기까지는 추수를 넘겨올 수는 없거니와, 그러하기 때문에 도리어 가서 실컷 먹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조석은 기숙사에서 먹든지 이웃집에 붙어서 먹든지 하려 하였으나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보니 천만의외에도 문의 누님이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웬 일이시오?입으로는 놀라면서도 속으로는 반가왔다. 나는 닭의 모이를 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랫방에는 바느질감이 놓여 있고 화로에는 인두가 묻혀 있었다. 짓다가 둔 것은 내 솜옷이었다. 이것으로 보아서 문의 누님은 아내가 없는 동안 아주 우리 집에 있을 모양인 것이 분명하였다. 횃대에는 그의 치마와 저고리가 벗어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아내를 친정에 데려다 주고 문의 집으로 돌아와서 입던 옷을 가지고 아주 오래 머물려고 우리 집으로 온 모양이었다. 언니, 우리 집에 좀 가 있어 주우.하고 아내가 그에게 부탁하는 모양을 나는 그려 보았다.

문의 누님이 또 나와 단 둘이서 한집에 있는다 하면 나는 한편으로는 달큼한 번뇌를 느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이 내 앞에 만들어 놓으신 무서운 큰 시험이라고 겁을 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장지를 열고 웃방인 내 방으로 올라가서 장지를 꼭 닫았다. <장지야. 내 손에 열려서는 안 돼.> 하고 나는 장지를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나는 문의 누님이 내 집에 있는 동안에 밥만 와서 먹고는 학교에 가서 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으나 또 그럴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것도 같고, 그렇게까지 아니하여도 좋은 것도 같았다. 장지 하나 저편에 아름다운 이성을 두고 자는 것만 해도 퍽 즐거울 것 같고, 보통 사람으로는 참지 못할 것을 참아서 장지를 넘지 아니하는 곳에 내 인격의 높음과 의지의 굳음이 있는 것도 같았다. <하나님, 내 당신이 차려 놓으신 시험을 잘 이기오리다. 두고만 보시오. 까딱 없이 치러 내 오리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니 내가 금시에 거룩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또 거룩한 하늘의 기름이 마음에 넘치는 것 같았다. <그렇다, 구하여도 얻지 못할 것이 좋은 기회다. 이 시험을 이기고 나는 날에 나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문을 열어 놓고 책상을 정돈하고 방을 털고 쓸었다. 방에 있던 모든 먼지와 부정은 다 나가거라. 내 마음에 있던 모든 정욕아 다 나가거라! 나는 깨끗하고 거룩하고 깨끗하다!

“Whiter than snow, yes, whiter than snow.”

(눈보다 희고 눈보다 희다)

“There’s sunshine in my soul today.”

(오늘 내 마음에 햇빛이 있네)

하는 영어 찬미를 혼자 불렀다. 이것은 중학교에서 제일 내가 좋아하던 찬미다.

나는 문의 누님이 지어 주는 저녁밥을 먹고 동회 일과 야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랫방 창에는 빨갛게 불빛이 비치고 문의 누님의 어깨에서 머리까지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 돌아왔어요.하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장지 틈으로 새어 들어온 불빛에 내 자리가 깔려 있는 것을 보았다. 불 켜드려요?하고 문의 누님은 장지를 가만히 열고 성냥개비에 불을 붙여 들고 들어왔다.

그는 내 작은 남포등에 불을 켜 놓고 베개와 이불을 한 번 만져서 고치고 장지를 닫고 제 방으로 가버린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몸이 피곤하였다. 추풍이 나서부터 기분은 상쾌하였으나 연일 피로로 몸은 갈수록 쇠약하는 것 같았다. 야학을 끝내고 돌아오면 눈을 뜨기가 어렵고 사지가 자금자금 아팠다. 금방 쓰러지면 잠이 들 것 같으면서도 머리를 베개에 붙이면 도리어 잠이 달아났다. 신경이 쇠약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장지를 새에 두고 남녀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아무쪼록 소리가 아니 나도록 옷을 벗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옆방에서 바느질 감을 움직이는 소리, 인두를 꺼내어서 화로 전에 재를 떠느라고 가볍게 딱 하는 소리, 다시 인두를 화로에 꽂는 소리, 문의 누님이 몸을 움직이는 소리, 이 모양으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내 귀에 울려왔다. 그 소리들은 모두 문의 누님의 살 냄새를 풍겨 가지고 내 귀로, 내 코로, 내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나는 한 귀를 베개에다 파묻고 모로 누웠다. 일찍 한 번 닿아본 일이 있는 그의 살의 감각이 선명하게 살아 나오는 것을 누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바로 아까 내 방에 불을 켜러 들어왔을 때 보인 그의 얼굴과 몸의 윤곽과 움직임이며 그가 내 베개와 이불깃을 만지던 것이 눈을 감을수록 분명히 나타나서 심히 괴로웠다.

하나님은 가장 힘있는 마귀로 하여금 내게 있는 가장 힘있는 본능을 선동시켜서 나를 항복 받으려 함이라고 자탄하고 나는 입술을 꽉 물고, <사탄아 물러가거라. 내가 네게 항복할 줄 아느냐. 네게 항복하던 김 도경은 이미 앞 고개 집에서 죽었다!> 하고 속으로 소리쳤다.

나는 일부러 숨을 깊이 쉬어서 스스로 잠든 양을 하였다. 꿈꾸는 양을 하였다.

그 동안에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나 문의 누님은 다 지은 옷을 개켜 놓고 손으로 툭툭 쳐서 잠을 재우는 소리가 나고, 그러고는 일어나서 몸을 터는 소리가 나고, 자리를 내려서 까는 소리가 나고,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나고, 얼마 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소리가 나고, 옷고름을 끄르는 소리가 나고, 한 번 한숨을 쉬는 소리가 나고는 잠깐 고요하더니 불을 끄는 소리가 나고 또 잠깐 고요하다가 자리에 눕는 베개 소리와 이불 소리가 난다.

나는 이 소리를 다 듣고야 비로소 제 숨소리를 들었다. 그 동안에는 한 번도 숨을 쉬지 아니한 것 같아서 숨이 차고 숨소리가 높았다. 그 숨소리가 옆방에 들릴까 보아서 억지로 숨을 눌렀다. 그러고는 죽은 듯 고요하였다.

나는 문의 누님이 코고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아주 잠이 든 줄만 알면 내 마음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의 누님도 잠이 아니 드는 양 하여서 가끔 돌아 눕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왕복 사십리는 걸었으니, 다리도 쑤실 것이라고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마침내 아내의 몸을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아내의 몸은 내게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내 정욕을 식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감사한 아내여, 나는 이리하여서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이 깨었을 때에는 벌써 부엌에서는 불을 때느라고 나무 가지를 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됐다! 하루는 이기었다!> 하고 나는 참으로 감사한 기도를 올렸다. 지난 봄 그 일이 있던 이튿날 잠이 깰 때에 어떻게나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나?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유쾌하고 태연한가. 수면 부족으로 선잠을 깬 것 같아서 몸은 찌풋하나 마음은 날아 오를 듯이 가벼웠다. <사탄아! 보아라, 내 네게 지더냐. 네 열 갑절 힘을 가지고 내게 덤비어 보아라. 아니 백의 사탄, 천의 사탄이 오더라도 김 도경은 마음은 끄떡도 없다.> 하고 뽐을 내었다.

나는 닭장 문을 열어서 닭 마리 수를 세고 모이를 두 줌이나 듬뿍 주었다. 한 목사의 부정 행위로 대 타격을 받은 우리 닭도 밤새에 기운을 회복하여서 활발히 먹고 울었다. <고기와 구리 가루를 또 한 번 먹여야.> 하고 나는 닭들이 모이를 줍느라고 고개를 암쯕암쯕 하는 것을 귀엽게 보고 있었다. 참새 두어 마리가 덤벼들어서 닭 모이를 주워 먹었다. 우리 수탉은 두어 번 그들을 쫒았으나 셋째번부터는 고개를 들어서 보기만 하고는 내버려 두었다. 닭의 인()이다 하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유쾌하게 뜰을 쓸고 문전을 쓸고 동네를 돌아보고 한 목사집을 한 번 노려보고 집에 돌아왔다. 진지 잡수셔요.하고 문의 누님이 부엌에서 내다보았다. 그는 어제보다도 더 아름답고 반가왔으나 마주 바라보아도 꿀림이 없고 도리어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도 안심하고 내게 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탄과 밤새 싸워서 이기었다는 자신 있는 기름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나는 한 목사 문제를 잊은 태도로 학생들과 선생들을 대하였다. 교수 시간에도 자신과 권위를 가지고 임하였다. 집합 시간에는 꿀림 없는 양심이란 문제로 열 있게 말하였다. 양심에 꿀림 없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고 고조하였다. 쓴 샘에서 단 물이 나오지 못한다는 성경 구절을 들어서 마음에 악이 가득한 사람은 하는 말, 하는 행동이 다 사람을 해하고 괴롭게 하나니,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되 사탄의 사도라고 말하였다. 말이 부드럽고 사람의 마음을 편케 하는 말이어든 하나님의 성신에서 오는 말로 알되 남을 긁고 깎아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어든 사탄에게서 나오는 말로 알라고 말을 맺았다. 나는 내 말의 후반은 탈선인 것과 그것은 은근히 한 목사를 비방하는 말임을 의식하고 아니할 말을 하였다고 후회하였다. 더구나 사탄의 사도라는 말이 대단히 모진 말이어서 한 목사를 분격하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 나간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족형과 백 선생이 약간 양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았다. <말이야 다 옳은 말이지.> 하고 나는 스스로를 변호하였으나, 나는 새로운 후환의 씨를 뿌렸구나 하는 생각을 떼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처가에를 가려고, 이번 학기에 새로 도입한 오 선생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떠났다. 오 선생은 애지중지하는 이 자전거를 매우 아까운 듯이 빌려 주었다. 그때 시절에 자전거는 아직 실용품이 아니요, 사치품이어서 두루마기를 걷어 허리에 배띠끈으로 조르고 넌지시 자전거 위에 앉아서 시골 길을 달리는 것은 탄 사람에게는 자랑이요, 보는 사람에게는 부러움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얻어 탄 김에 외가로, 누이네 집으로, 종매형 집으로, 해가 남으면 오래 못 가본 이모님 집까지 거드럭거리고 다녀올 작정이었다. 입동 바람이 좀 쌀쌀하였으나 여름날 더운 것보다는 나았다.

먼저 외가에 들려서 놀란 것은 실단이가 과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글세 실단의 남편이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군요.하는 것이 형수의 말이었다. 언제?」 「칠월에. 인제 졸곡이나 되었나 원.」 「실단이가 친정에 댕겨갔나요.」 「아아니. 초상 상제가 무슨 친정에를 와요. 졸곡이나 지나면 오겠지.형수는 이렇게 말하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무슨 빛이 나오나 보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될는지 몰랐다. 다만 사람의 일이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실단의 얼굴에 어디 청승이 있었나 하고 마음에 떠나오는 실단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리워하는 내 실단은 아니요, 머리를 풀어젖히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을 하고 있는 청승스러운 실단이었다. 나는 정 떨어지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쉬었다. 서방님, 실단이헌테 장가 안 드시길 잘하셨어.형수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왜요?」 「실단이가 소년 과부 될 팔자길래 그랬지요.형수는 제가 소년 과부인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실단이 어머니를 찾아보고 싶었으나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로이 될 때도 있는 것이어서 나는 외가에서 나오는 길에 세개어우름이란 곳에서 실단 어머니를 만났다. 그는 손에 들었던 보퉁이를 동댕이를 치고 자전거에서 내려서는 내 팔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아이, 세상에.하는 그의 말은 땅바닥을 뚫고 들어갈 듯이 무거웠다. 이른바 땅이 깨질 듯한 한숨이란 것이다. 글세 그게 웬 일이야요?나는 이런 인사말을 하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고 그가 북받치는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실단이는 어떡허문 좋은가. 시집을 잘못 보내서 저렇게 되었으니 저것을 어떡험 좋은가?그것은 그도 모를 일이요, 나도 모를 일이었다. 예수나 믿으라고 하시고 공부나 시키시지요. 한문도 잘 알고 재주도 있으니,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 좋을 거야요.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글세, 제 시집에서 무엇이랄는지 온. 졸곡이나 지나고는 온다고 기별이 왔는데, 오거든 한 번 데리고 갈 테니 앞길을 잘 일러 주어요. 그애가 도경이 말이면 잘 듣고 고대로 할 게야. 불쌍한 동생으로 알고 잘 가르쳐 주어, .하고 그는 체면불고하고 내 손을 꼭 쥐었다. 과히 염려마셔요. 산 사람은 살 도리가 있지요. 실단이만치 착하고 재주 있는 사람이 설마 잘못 될라구요.나는 이렇게 말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여기서부터 누이 집까지는 인가 없는 벌판 길이어서 나는 귓가에 바람 소리가 윙윙 하도록 자전거를 빨리 몰았다. 누이도 이제는 제법 남의 젊은 아내의 태를 갖추었다. 넉넉지도 못한 농가의 오형제 중에 맏며느리라는 것부텀이 고생은 떠메인 팔자였다. 게다가 변덕장이 과부 시할머니가 집에 채를 쥐어서 사십이 된 며느리가 찍 소리도 못하는 판이니, 어린 누이의 정경은 물어 볼 것도 없었다. 그렇지마는 여섯 살 부모를 여읠 때 일을 생각하면 이만치 된 것도 용된 것으로 고맙게 알아야 할 것이다. 과히 고생이나 안 되니?시할머니가 자리를 떠난 틈을 타서 나는 누이에게 이렇게 가만히 물었다. 몸 편안할 새야 없지마는 시집살이야 다 그렇겠지, .하고 누이는 아주 어른이 다 되었다.

나는 아내가 잉태를 들어서 친정에 갔다는 말과 지금 그리로 가는 길이란 말을 하니, 누이는 희색이 만면하였다. 내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것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누구인가 하였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누이의 시할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니, 벌써 해가 거의 저물었다. 종매와 이모님 댁은 내일 일정으로 미루고 나는 곧장 처가로 향하여서 자전거를 몰았다.

논에는 누런 볏베가 꿈틀꿈틀 여러 가지 곡선을 그리고 아직도 물이 남은 논에는 오리들이 제 세상으로 알고 가는 물결 위에 떠 있었다. 밭과 다래끼와 바가지를 든 아이녀석들이 잔 고기를 푸노라고 다리에, 옷에, 낮바락에 감탕칠을 하고 떠들다가, 쟁고 보아라, , 쟁고다.하고 내 자전거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까닭없이 나는 어깨가 으쓱하였다. 소의 몸뚱이가 온통 감추어서 안 보일 만큼 볏단을 싣고 가는 수염 껌은 중늙은이도 만나고 어린 신랑을 앞세우고 친정으로 가는가 싶은 새색시도 있었다. 텃밭에는 캐다 남긴 무도 있고 산 옆네는 새 깎는 사람들이 비스듬한 한일자로 먹어 올라갔다.

나는 동네 어구에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이것을 끌고 처가로 향하였다. 자전거는 끌고 가는 것도 멋이었다. 아이들이 따라나오고 개들이 짖고 내달았다. 큰댁 김 서방이다. 쟁고 타고 왔다, 쟁고. 저게 쟁고야. 막 빨리 달아나는 거야.하고 때묻은 바지 사복을 땅에 질질 끌고 배때기를 드러내놓은 애녀석들이 주먹으로 코를 씻으며 앞을 서고 뒤에 따랐다. 개들은 왕왕거리고 짖어댔다.

장인도 죽고 처남은 어리고 사랑을 지킬 사람이 없어서 사랑 문은 첩첩이 닫혀 있었다. 아마 겨울이 되면 툇마루 위에 겻섬이나 겉곡식섬이 문을 가리워서 쌓여질 것이다. 그는 주인을 잃은 집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처갓집을 찾아오는 젊은 사위라면 남의 이야기만 들어도 유쾌한 것이지마는 내게는 이러한 낙은 없었다. 나는 귀염을 받을 새사위이기에는 너무 노성하였고, 또 처가에는 나를 귀애해줄 장모도 없었다. 게다가 아내가 내 정을 끄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처가에 오기가 싫었다. 잉태한 아내를 보내어 놓고 아니 와 볼 수 없어서 오는 인사체면 치레의 길이었다.

그래도 내가 온다고 사랑 문이 열리고 안팎이 떠들썩 하였다. 마침 감은돌 처고모도 오고 노루목이 처형도 와 있어서, , 김 서방이 온다고, 김 서방님이 오신다고 반가운 양들을 하였다. 어린 처남과 처제들도 싱글벙글하였다. 역시 나는 이 집에는 상객임에 틀림없었다. 처형의 남편은 내가 이 집에 장가들기 전에 벌써 죽고 처형은 이미 길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는 같은 어머니언마는 딴판이어서 얼굴도 아내보다는 똑똑하고 껍질도 엷은 편이었다. 처고모는 백발 노인이었으나 대단히 풍신이 좋고 또 김 정언의 딸이라는 자부심도 있는 모양이어서 매우 점잔을 빼었다. 내 장모가 제일 무서워하는, 이를테면 이 집에서는 고작 높은 어른이었다. 나는 장인의 궤연에 서투른 곡을 하고 장모, 처고모에게 절을 하고 또 처남 아이의 절을 받았다. 아내는 내가 와서 이 집에서 대환영을 받는 것을 보고 대단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어느 새에 그는 새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에는 사랑에서 내가 주인이 되고 처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담배 연기가 자욱하였다. 모인 중에는 여러 종류 사람이 있었으나, 그 중에 두 사람이 가장 특색이 있었다. 하나는 내 처육촌 되는 사람으로 나이는 삼십 남짓하나 아직도 날마다 망건을 쓰고 꿇어 앉는 패로서 한학에는 상당한 소양이 있으나 세상 물정은 전혀 모르고 만사를 논어, 맹자를 통하여서 보는 패요, 또 하나는 글공부는 없어도 재주와 꾀가 있어서 얻어 들은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안다는 이였다. 그도 내 처족으로 육촌과 비슷한 나이요, 동네에서 가장 말솜씨나 한다고 자타가 공인하였다.

그들은 내게 일본 이야기를 묻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를 묻고, 학교 공부를 하면 무슨 벼슬을 하는가며, 나는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하고도 왜 벼슬을 못하는가, 이러한 내게는 아픈 소리를 묻는 이도 있었다. 이런 때에는 내가 동경서 돌아올 때에 당시 내무대신이 날더러 전라도 장흥 군수로 가라는 것을 갔더면 좋을 걸 하고 생각도 하였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교육사업의 뜻을 말하거나 내 흉중에 있는 크나큰 경륜- 톨스토이도 못한 것을 한다는 경륜을 설명하여도 쓸 데 없다고 생각하였다. 오직 처육촌이 한학의 경계로 선비의 일이란 것을 알아 주는 것이 기뻐서 다 헤어져 갈 때에 따로 청하여서 술 한 잔을 대접하고 글 토론을 하였다. 그는 내가 한문에 들어서는 무식한 줄로 알았던 모양이어서 내가 시, , 역을 말하고 노자, 장자를 말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래어서, 과연 선생이시로군.하고 꿇어앉아서 칭찬하였다. 나는 기실 이런 것을 잘 알았을 리는 없으나 조금 아는 것으로 아는 체한 것이지마는 한학에 있어서도 문견이 넓기로는 내가 그보다 한걸음 앞서 있었다. 그의 도를 구하는 마음은 그 후에도 가끔 그로 하여금 나를 찾게 하고 비록 나이로는 나보다 노형이면서도 꼭 나를 선생이라 하여서 존칭하였다. 나는 그가 처족들에게 내 선전을 하여줄 것을 믿고 은근히 다행히 여겼다. 다들 나를 대수롭지 아니한 가난뱅이로 여겼기 때문이다.

육촌과 대조하여서 그 무엇이나 안다는 작자는 건방지고 얄미웠다. 그는 조그마한 사기꾼이라고 나는 결정하였다. 뒤에 들으니 그는 노름꾼이요, 또 오입장이요, 비리송삿꾼이라고 하므로 나는 내 지인지감을 자랑하였고 도덕이 없고 재주가 승한 위인이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공식을 얻었다.

육촌도 갔다. 나는 육촌과 술을 마시고 뜻에 맞는 담화를 하였기 때문에 매우 유쾌하게 아내를 대하였다. 입맛이 좀 났소?나는 애정 있는 남편 모양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그는 대단히 내가 묻는 말에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걸 물어 주시우?하고 아내는 싱긋 웃었다. 거기 모처럼 좋았던 내 기분이 상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기분을 고쳐서, 문씨는 왜 보냈소? 나는 기숙사에서 조석을 먹기로 하였는데.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왜 그 언니 좋아 안하시우?아내는 빈정대는 어조였다. 그건 다 무슨 소리야?나는 가슴이 뜨끔하였으나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서 부러 성난 체를 하였다. 내가 모르는 줄 아슈?하는 아내의 소리는 날카로왔다. 내가 다 알아요. 당신이 그 언니라면 사족을 못 쓰시는 줄은 내가 다 아는걸요.」 「아니 그건 다 웬 소리야?하고 이불을 젖히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제 양심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한 사내의 가엽고도 우스운 전술이다. <저것이 어린애도 아니요, 바보도 아니로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놀랐다. 노여시우?하는 아내의 음성은 울음을 머금은 듯하였다. 아니,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하오?나는 아내가 그다지 악의로 한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 기회에 아내를 완전히 속이고 완전히 억제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악인이었다. 당신이 찌뭇하고 앉았다가도 그 언니만 오면 좋아하십디다그려. 그러니깐 당신이 그 언니를 좋아하시는 줄 알 것 아니요?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오 그것뿐이더냐 하고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아직 알아서는 아니 될 비밀을 알지 못한 것이 내 생각에는 확실한 듯하였다. 아아, 살아났다 하고 나는 도로 자리에 누웠다. 내가 그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이하고 나하고 단 둘이 함께 있게 하오?나는 반 농담 비슷이 물었다. 좋아하는 이하고 단 둘이 같이 계시면 위로가 안 돼요? 그러니깐 언니더러 가 있으라고 그러지 않았어요?하고 아내는 어리광 모양으로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옷었다.

나는 어떻게 이것을 해석해야 옳은지 어리둥절하였다. 요것이 맹랑하여서 알 것을 다 알면서 그러한 술책을 쓰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나를 잔뜩 믿고 그러는 것인가. 또 어리석어서 그러는 것인가. 나는 고 속이 알고 싶었다. 아니, 그러다가 그이하고 나하고 아주 좋아하게 되면 어쩔라고?나는 이렇게 떠 보았다. 그러면 다양하지요. 아무러믄 당신이 나 하나만 가지고 가만히 있겠어요? 당신이 내라면 싫어하시는 걸. 내가 왜 그걸 몰라요, 다 알지, 억지루 억지루 내 곁에 오시는 것도 다 알아요. 그렇지만 다 내 팔잔 걸 어떻게 해요. 무꾸리를 하거나 손금을 보아도 내가 당신과 인연이 박하다고. 당신이 첩을 얻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생이별 수라구.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렇거든요. 그럴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문의 언니하고 같이 사는 것이 안 좋아요. 그 언니만 집에 있으면 당신이 나를 버리고 달아날 생각을 안하실 것 아냐요? 안 그래요?하고 아내는 한 번 한숨을 길게 쉬더니, 다시 고개를 내게로 돌리며, 여보슈, 나는 지금 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기만 하면 아모 걱정이 없겠어요.하고 또 한숨을 하나 쉰다. ? 왜 걱정이 없어?나는 울고 싶었다. 나는 아들 길르고 혼자 살 수 있거든. 그 언니하고 함께 살면 더 좋구.」 「나하고는 안 살 작정이로군?」 「당신하고 으추좋게 살기만 하면 작이나 좋겠어요, 마는- 아니 혼자 살게 되더라도 말야요.하고 그는 씩 웃는다.

나는 이 경우에, 영원히 너하고는 아니 떨어질 터이니 염려 말라 하고 굳게굳게 맹세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또 한끝으로는 그러할 생각도 용기도 없었다. 그러고 다만, 나는 당신의 언니허고 아무 관계도 없소. 장지를 꼭 닫고 아래 웃방에서 곱게 자니 아무 염려도 마오.하고 다질 뿐이었다.

이 말에 그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또 한 번 한숨을 쉴 뿐이요. 내가 얘기한 바와 같이 고마워서, 기뻐서 내게 매달리는 일이 없었다. 나를 아니 믿음인가, 무꾸리와 손금을 믿음인가. 한 번 시집가면 고만으로 여겨 팔자를 고친다는 것은 지천한 사람의 일로 알고 남편과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 여자의 일이라는 조상 때부터의 도덕의 힘인가.

나는 아내를 다시 보고 여성에 대한 생각을 고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고것 맹랑하다. 그는 어린애도 아니요, 바보도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튿날 나는 놀라웁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처고모는 처고모대로, 장모는 장모대로 처형은 처형대로 나를 무엇을 먹이려고 애를 썼다. 처고모는 다른 집에 명하여서 닭을 백숙을 하여다가 손수 뜯어서 나를 먹이고 처형은 술을 사 오고, 달걀을 삶아서 또 따로 나를 먹이고, 장모는 내 밥상머리에 앉아서 정답게 이것저것을 권하였다. 평생에 처음 당하는 우대인 것 같아서 나는 웬 심을 몰랐다. 이 사람들이 정말 나를 위해서 이러는가, 또는 무슨 정략으로 이러는가. 좀 과한 것 같았다.

하도 만류가 간절하여서 나는 학교를 하루 쉬기로 하고 처가에서 하루 더 묵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그들이 나를 이처럼 우대하는 이유의 일부분을 알았다. 처고모의 내게 대한 우대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단순한 애정이었으나, 정모와 처형은 다 각각 내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장모는 내게 위탁하여서 일가들이 뜯는 것을 막아 보자는 것이요, 처형은 나와 공모하여서 이 집 재산을 떼어 내자는 것이었다. 나는 장모의 의사에는 동정도 하고 원조하려는 생각도 났으나 처형의 모략에 대하여서는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그가 얼굴이 이쁘장하고 재주가 있는 것을 믿어서 나를 치켜세워 가지고 친정 재산을 노리는 것이었다.

처형은 이런 소리를 하였다. 오라비가 저렇게 어리니 이 집 주장을 할 이가 아재밖에 없지 않아요? 아버지도 그렇게 유언을 하였답니다. 내가 죽거든 만사를 김 서방께 물어서 하라고. 애초에 아버지가 아재를 사위를 삼으신 본의가 거기 있거든요. 그런데요.하고 처형은 한 손을 내 어깨에 살짝 걸치고 내 귀가 뜨뜻하도록 입을 내 귀에 대고, 그런데 어머니는 친정 동생을 끌어 들여서 제 마음대로 휘둘러 보려는 것 아냐요? 그야 될 말이야요? 우리 김씨 집 일에 타인이 어디라고 챙견을 해요. 그래서 제가 고모님을 청해 왔지요. 이거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우리 집 재산은 모두 홍가네 것이 되고야 말겠다고. 그래서 고모님이 오신 거야요. 추수가 얼마나 되나, 빚 받을 것은 어떻게나 되나, 모두 자세히 알아보시랴고. 그럴 거 아닙니까. 모두 빼어 돌리면 어떻게 해요, 글쎄 그래, 그렇지 않아도 아재를 모셔다가 한 번 의논을 하자고 고모님과 의논을 하던 중이랍니다. 아버지 유언대로 만사를 아재에게 여쭈어서 하자고. 제 말씀 알아들으시죠?하고 그때서야 내 귀에서 입을 뗀다. 나는 그의 입김 때문에 귀가 근질근질하다가 그가 입을 떼니 살아나는 것 같았다. , 알아들어요.하고 나는 어이없이 웃었다. 그러니깐 아재께서 이 집 일에 채를 잡으셔요. 제가 고모님을 끌고 따라갈게. 인제는 어머니도 다시는 친정 동생을 못 끌어들일 거야요. 제가 한 번 들었다 놓았답니다. 일가 어른들 모두 청해 놓고 한 번 따졌어요. 일가 어른들 말씀도 개왈 그러시지요. 김씨집 일에 외인이 웬 챙견이냐고. 김 서방은 일본말도 잘하고, 또 돌아가신 어른의 유언도 있으니 김 서방이 나서야 옳다고 개월 그런단 말씀야요. 또 다들 그러시죠, 김 서방에게는 열닷말지기 밭 사흘갈이만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적어도 두 섬지기는 주어야 옳으니라고. 우리 어머니가 외가에서 깃득으로 가지고 오신 것이야 우리 형제가 먹어야 옳지 않아요?나는 처형이 내게 하던 말을 더 적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가 나를 우대하는 것이 정에서가 아니라 이욕에서라는 것을 말해 두면 고만이다.

나는 처형의 말이 듣기가 싫고 그의 낯바대기도 보기가 싫었다. <망할 년. 과부년이 욕심만 많아서.> 속으로 이렇게 그를 천하게 보았다. <흠 내가 제 꾀에 넘을 줄 알고.> 하고 나는 처형이 하자는 대로 아니하고 편을 든다면 장모의 편을 들리라 하였다. 김씨 집에 외인이 상관이 없다면 처형 저는 외인이 아니며, 사위 나는 외인이 아닌가. 정당하게 어린 처남에게 돌아갈 재산을 노린다는 것이 더러웠다. 나는 아내의 몫에 온 열 닷마지기도 처남에게 돌려주겠다고 속으로 결심하였다. 나는 애욕은 있어도 물욕은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아내를 보고 처형이 나쁜 사람이니, 그 꼬임에 빠지지 말고 계모를 잘 위하라고 일렀다. 언니가 좀 욕심이 있지.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장모와 단 둘이 된 기회에 나는 이렇게 훈수를 하였다. 누가 무에라고 하더라고 흔들리지 마셔요. 이 집 재산은 다 명복의 것이 아냐요?명복은 어린 처남의 아명이다.

장모는 내 말에 대단히 기뻐하였다. 명복이가 어린 것을 기화로 일가들이 모두 뜯어 먹으려고 한다는 것, 세상에 하나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니 네가 명복이를 친동생으로 알고 끝끝내 돌아보아 주라는 것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당장 네 양식은 실려 보내 주마고 말하였다. 앗으셔요. 저를 양식을 주시면 다른 사람도 달라지요, 안 주면 원망하고. 애어 그런 걱정 마셔요. 그리고 또 일가들이 말썽을 피거든 제게 알리셔요. 군수나 헌병대에 말해서 꿈적 못하게 해 드리지요.하고 장담하였다. 나는 믿는 데가 있기 때문이었다. 군수는 나와 같은 배로 일본 유학을 갔던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중학교에 이학년까지 같이 다니다가 어서 본국에 가서 벼슬을 해야 한다고 모 대학 법률과 전문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벌써 이 골 원으로 온 친구였고, 헌병 분대장인 오꾸무라 대위는 내가 일본 말을 잘하고 학식(?)이 넉넉하다고 하여서 군수가 되라고 추천한다는 자였다. 나는 이것을 믿기 때문에 장모에게 장담한 것이었다.

장모는 내가 원과 친구라는 말에 바싹 나를 가까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집 재산을 노리는 일가 누구누구에게 대한 하소연을 하고 나만을 꼭 믿는다고 중언부언 하였다. 그래 원이 자네하고 친해?장모는 그래도 내 말이 못 미더워서 또 한 번 다졌다. 나는 그것이 불쾌해서 그에게 향하였던 동정이 일시에 소멸되고, 될 대로 되어라, 나는 안 도와 줄 걸.하는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 위신이란 것이 몇 푼어치 못 되는 것이 슬펐다.

그러나 이날 아침 좋은 기회가 왔다. 군수가 헌병 분대장과 같이 새 사냥을 오느라고 차에서 내려서 총을 멘 수원을 둘이나 데리고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처갓집 사랑에 앉았노라니 그 아는 체하는 작자가 쫄랑대고 그들을 끌고 왔다. 물론 그런 손님이 이 동네에 오면 이 사랑 밖에는 쉬일 곳이 없을 것이다.

군수는 내 손을 덤뻑 잡고 , 이거 웬 일야? 자네 어째 여기 와 있나?하고 반가와하고 분대장도 친숙하게 나와 인사하고 사랑에 들어 앉았다. 아 이 댁이 자네 처가댁인가. 닭이나 한 마리 잡겠네그려.하고 수선을 떨었다. 중학교를 마치기가 가깝해서 이 년 급에서 전문학교에 뛰어오른 친구라 걸죽걸죽한 사람이었다.

이날 처가에서는 닭도 없어지고 술값도 나갔으나 그 효과는 컸다. 내가 군수와 분대장과 절친(?)하다는 것이 장모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그들이 꿩을 잡아가지고 와서 처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것은 장모에게는 여간 큰 영광이 아니었다. 그 집을 뜯어 먹으려던 처가 일가들이 기가 눌렸을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군수 일행이 떠나간 뒤에 처가에서 내게 대한 대우는 더욱 융숭하였다. 나를 대단히 잘나고 무서운 사람으로들 보는 모양이었다. 아내도 싱글벙글 대단히 좋아하고 어성까지도 높아진 것 같았다. 잘난 남편을 가졌다는 자만이 난 모양이었다. 애들까지도 나를 더 따르는 것 같았다. 나도 어깨가 으쓱하여서 자전거를 타고 이 집을 떠났다.

종매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매부는 등신 모양으로 사랑에 가만히 앉아 있고, 종매의 시아버지는 머슴과 작인들을 데리고 짱짱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집에는 소가 새끼를 낳았었다. 나는 암만해도 이 병으로 오래 못 살고 죽는다.누님은 이런 비관하는 소리를 하면서 사십이 다 되어서 낳은 만득자 외아들을 안고 있었다. 이 집에 있는 것은 먹을 것 뿐인 것 같았다. 아무 낙도 없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집이었다. 나는 누님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모의 집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나는 이번 길에 좋은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하여서 마음이 찌풋했다. 누이네 집도, 누님네 집도, 처갓집도 다 낙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이 오직 인생의 괴롬과 보기 흉한 물욕의 암투가 있을 뿐이었다. 외가에서도 하루를 묵었으면 역시 불쾌한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실단 어머니가 지금 지옥고 속에 살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어디 사랑과 아름다움과 화평만 있고 물욕 싸움과 미워함이 없는 집에 잠시라도 몸을 담그고 싶었다. 이모네 집에를 가면 거기 가까운 것을 볼 것 같았다.

뚱딴지라는 별명을 듣는 이숙은 내게는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돈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입빠른 이모는 나를 보고도, 너의 아저씨는 돼지다.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술도 담배도 아니 먹고 친구 교제도 없고 오직 돈을 세는 것이 낙이었다. 더구나 그가 내가 어렸을 적에 제 아들, 즉 내 이종형을 읽힌다고 우리 집 칠서를 몽땅 가져 간 뒤로부터는 나는 그를 몰인정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모는 입이 빨랐다. 남이 아퍼할 소리를 곧잘 하였다. 내 어머니를 못난이니, 미련퉁이니 한 것도 이모다. 그래도 그에게 그리 악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아니하였고 내게는 사랑해 주는 이모님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간 뒤로는 이모를 대하는 것이 가장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채워 주었다.

이종은 장난꾸러기였다. 얼굴이 잘나고 재주도 있었으나 공부나 일은 싫어하고 장난만 좋아하였다. 그는 물욕이 없어서 그 아버지와는 딴판이었다.

이종 형수가 나를 귀애해 주었다는 것은 전에도 썼거니와 그는 미인이요, 또 다정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것이 흠이었다.

그 밖에 나와 동갑인 이종매는 나를 썩 좋아하였고, 나보다 세 살 어린 새침데기 누이가 또 하나 있었다. 요것이 어여쁘고 소문난 계집애였다.

이들 틈에 가 있으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행복될 것 같아서 나는 오르내리는 고개 많은 길로 자전거를 몰았다.

이모 집 동네는 잔잔한 산을 등지고 꽤 큰 강가에 낮은 기와집 많은 부유한 큰 동네다. 홍패장도 쌀 섬도 아울러 있는 동네였다.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이 보일 때에 나는 이종과 거기서 고기 잡고 놀던 것을 생각하고 유쾌한 이종형의 얼굴을 시각이 바쁘게 대하고 싶었다. 나들이나 안 갔을까.

이모 집 사랑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밖에 세워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모님!마당이 쓸쓸하였다. 아이, 돌고지댁 서방님!하고 형수가 하얀 옷을 입고 나왔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이 희어서 핏줄이 비칠 것 같았다. 아주머니.하고 나는 형수의 곁으로 가까이 갔다. 나이는 육 칠년 차이 밖에 없건마는 내가 어렸을 적에 그는 벌써 어른이었었으므로 지금도 그가 나보다 훨씬 어른인 것 같았다. 이모님이랑 형님이랑 어디 가셨어요?나는 형수의 소복의 뜻을 이리저리 해석해 보면서 물었다. 어머니는 금방 계셨는데. 인제 들어오시겠죠. 이리 들어요셔요.하고 형수는 이모님이 거처하는 안방으로 앞서 들어가서 거듬거듬 방을 치우고 돗자리를 내려 깔았다. 나는 자전거를 안마당에 들여 놓고 형수가 청하는 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로 절을 한 뒤에야 형수는, 아저씨께서 돌아가셨답니다, 구월 초하룻날.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나는 그가 소복을 입은 뜻을 알았다. 그러나 아저씨가 돌아가는 것쯤은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나는 억지로 하고 놀라는 양을 보였다. 그러냐 형수가, 형님도 돌아갔답니다, 구월 초여드랫날.할 때에는 정말로 숨이 막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아마 내 낯빛이 갑자기 해쓱하게 변했던 모양이어서 형수는 눈을 크게 뜨고, 서방님, 웬 일이셔요?하고 내 팔을 잡아서 가볍게 흔들었다.

그제야 나는 숨을 내쉬었다. 내게는 사촌이라고 이름부를 오직 한 사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가 죽었다!

이모가 딸들과 함께 돌아왔다. 산소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이모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기까지 하며 우리 집은 망했단다. 아저씨도 돌아가고 형도 죽었단다. 형이야 젊은 놈이 왜 죽겠니? 네 형이 먼저 앓다가 좀 나아갈 적에 아저씨가 돌아가니깐 글쎄 이것이 머리를 풀고 상제 노릇을 했구나. 저 아버지 장사하고 사흘만에 저 아버지를 따라갔단다, 어미는 버리고. 그래도 제 아버지께는 아들 노릇을 했지. 그래도 아버지 상여 뒤에 따라갔으니 아들 노릇 한 것 아니냐.하고 형수를 쳐다보면서, 제가 죽으니 나보다도 네 형수가 불쌍하지, 자식도 없는 게. 어떻게 한 평생을 사니?나와 누이들의 눈도 이 젊은 과부에게로 쏠렸다.

형수는 고개를 숙인다.

이모는 딸들을 돌아보며, 이까짓 년들야 백개 있음 무얼하니? 제 서방들이나 알지 친정 생각이야 요만큼이나 하나.하고 두 손가락을 합해서 손톱을 가리켜 보인다.

누이들은 픽 웃는다. 이모는 화두를 돌려서, 그래, 네 처는 곧잘 살림을 하느냐, 열일곱 살이라지? 그게 무얼 할 줄 알겠니? 천둥 벌거숭이지, 이따위로고나.하고 작은 누이를 손가락으로 찌를 듯이 가리킨다.

작은 누이는 어머니 손가락에 손이 찔릴까 보아서 고개를 흠칫하면서 내 곁으로 피해 온다.

이모는 전혀 아무 감정도 없어진 사람과 같이 마치 우스개 소리나 하는 것 모양으로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경이, 너 이 애들 할아버지 보였니?하고 또 화제를 돌렸다. 아직 못 뵈었어요.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수가, 금방 오신 걸요. 이모님 하고 부르시길래 제가 문을 열고 나갔더니 형님 어디 갔느냐 그러시겠죠.하고 보고를 한다. , 우리 시아버님은 장가를 듭셨단다. 아들 보시겠다고. 칠십이 넘은 어른이 새신랑이 되셨어. 열일곱 살 된 마나님을 데려다 놓고 정신이 다 없으시단다. 미친 늙은이지 무에냐. 손주며느리 손주딸들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인제 아들을 한 죽이나 낳아 놓으실 게다. 이 집이 본래 망할 놈의 집야. 삼대째나 양자를 하는 집이니 망할 놈의 집 아니냐. 양자에 진절머리가 나셔서 송장 바탕 다 된 늙은이가 처녀 장가를 듭셨단다. 어머니는 화를 내셔서 영감님하고는 말도 아니하시지. 칠십이 넘어도 샘이 나시는거야.하고 이모는 유쾌한 듯이 웃는다. 우리들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형수도 웃음을 참노라 입을 꼭 다물었다. 작은 누이는 참다 못하여 끽끽끽 소리를 내고 내 어째에다 입을 비볐다. 이런 집에도 웃음이 있는 것이 신통하였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산다는 것이 이를 두고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할아버지가 망녕이 나셨지 그게 뭬요?하고 큰 누이가 입을 삐쭉한다. 어디서 여우 같은 계집애를 하나 다려다 놓고- 꼭 여우야.작은 누이가 입을 뾰족하게 내밀어서 여우의 주둥이를 그려 본다.

누이들은 다 할아버지의 첩 얻은 것이 제 이해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없다없다 하니 딸자식은 자식 아닌가 머.작은 누이가 한 마디 더 한다. 이모가 작은 누이의 말을 받아서, 딸년들이 쓸데 있니? 친정에를 오더라도 무엇이나 뜯어가려 오지 쌀 한톨 보태는 딸 있디? 너의 년들도 그렇지, 어미 생각도 안 할 텐데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할 테냐. 그러니깐 딸년들이란 죽으로 있어도 쓸데 없다는 거야. 너의 년들도 백번 와 보아라, 할아버지가 논 한 마지기나 줄 줄 알고. 인제 다 틀렸다. 마나님이 꾸역꾸역 아들을 쓸어 낳아도.이런 소리를 하였다. 어머니는 외가집에 무얼 뜯으러만 댕기셨수?작은 누이가 또 들이댄다.

이모는 누이의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날더러, , , 외가에는 가 보았니? 다들 잘 있디? 유복이가 아들을 낳았다지?하고 친정 일을 물었다. , 그저께 외가에 들러 왔어요. 다 무고들 해요. 유복이 아들은 벌써 너푼너푼 기던데요.나는 이런 집에서 그런 말은 안 할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 며느리도 인제는 공들인 값이 났다. 그래도 유복이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길러 가지고 인제는 손자를 다 보았고나.하고 길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그래, 유복이 어멈도 인제는 늙었겠고나, 사십이 넘었지? 내가 그 며느리 본지도 십년이 넘었을 게라. 어머니 대상에 댕겨오고는 못 갔으니.하고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 그렇게 늙지도 않았어요, 좀 뚱뚱해졌어요.」 「뚱뚱해졌어? , 몸이 났고나. 여편네가 팔자가 좋아지면 몸이 나는 거야. 나는 팔자가 사나와서 이렇게 말라꽝이가 되었지만.하고 무엇을 멀거니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눈으로 며느리를 가리키며, 우리 저 애도 유복동이라도 있으면 작히나 좋을까. 너 아무렇지도 않으냐?하고 진찰하는 눈으로 며느리의 몸을 훑어본다.

형수는 흰 얼굴에 약간 홍훈을 띠며 고개를 숙인다. 내 눈도 형수의 몸에 쏠렸다. 그는 암팡진 편은 아니나 몸에 비인 구석이 없고 삼십이라면 곧이 안 들을 만치 애티가 있었다. 생산을 못한 까닭도 있거니와, 몸이 풍후한 때문인 것 같았다. 문의 누님과 같이 모두 토실토실하였다. 저런 몸으로 어찌해서 생산을 못할까 하고 나도 이상히 여기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안 그러냐, 도경아. 네 형수가 금 두꺼비 같은 유복동이를 하나 낳아 놓으면 우리 집이 고목 생화가 아니냐, 지금 내게 남은 소망은 그것 밖에 없어.모두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감정을 아니 보이던 이모의 얼굴에는 이때에는 바람의 간절함이 나타났다. 그의 눈은 며느리의 뱃속을 꿰뚫어 보려는 것 같았다. 누이들도 무시무시하리만큼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형수는 그린 듯이 소구둠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젖가슴이 불룩불룩 들먹거리는 것으로 보아 무슨 감정의 격동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였다.

이모는 며느리에게서 결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모양으로 눈도 깜박 아니하고 며느리를 보고 있었다. 죽은 외아들의 목숨이 손자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도 이모와 같은 감정을 품고 형수의 입술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동안 무거운 침묵이 있은 뒤에 형수는 손바닥으로 눈을 씻고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그런 것 믿지마셔요. 저는 유복자를 못 낳습니다.하고 또렷또렷이 대답하였다. ? 아직 어떻게 아느냐?하고 이모는 유복자의 희망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형수는 말하기 어려운 듯이, 그러나 결심한 듯이, 큰 누이를 향하여, 오라버니는 총각으로 돌아가셨답니다. 나는 처녀로 과부가 되고요.이렇게 말하고는 시어머니를 향하여, 이런 말씀은 영 아니 여쭈려고 했지마는 어머님께서 못 바라실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을 뵈옵기가 황송해서 바로 여쭙니다.하고 일어나 나가버린다.

이모는 화석이 된 듯하고 누이들과 나는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누이들도 다 시집간 사람들이라 형수의 말 뜻을 못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옳지 그렇구나!하고 나는 속으로 끄덕끄덕하였다. 형이 공부도 일도 다 싫어하고 장난만 좋아하던 것이 그 때문이었고나. 그에게는 저 자신에 대하여 또는 젊은 아내에 대하여 깊은 비관을 가지고 있었고나- 나는 이렇게 해석하였다. 또 여남은 살 적에 형수가 나를 쓸고 만지고 귀여워한 것이 성욕의 불만에서 오는 변태성욕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내가 나이가 어리더라도 도련님이라고 칭하는 시아주버니어든 내 살을 만짐이 과도하였다고 어린 마음에도 생각하였다. <내 이종형은 임포텐트였다.> 나는 이렇게 판단을 내리니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었다. 그렇다 하면 남자 아닌 남편과 십여 년 동거한 형수의 신세는 생각할수록 가긍하였다. 그것을 참고 아무에게 발설도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형수는 무섭게 높고 굳은 여성이었다.

이모는 한 번, !하고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고는 어머니로서도 마음에 짚이는 점이 있는 듯 그 문제에 대하여서는 더 말을 아니하였으나, 그의 눈과 얼굴이 갑자기 빛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생명 속에 남았던 한 줄기 희망의 등잔불마저 꺼지고 말았으니, 인제는 그의 얼굴을 비칠 빛이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바라보고 앉았는 동안에 형수는 부엌에서 솥을 가시고 불을 때고 있었다. 나를 위하여 무엇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집에 있는 것이 마음이 무거워져서 한 시각이라도 일찍 떠나고 싶었다. 게다가 학교를 이틀이나 쉬었으니 오늘 안 가면 내일도 쉬게 될 것이다. 한 목사가 오고 학교가 교회의 소속이 된 이래로 학교 안에 무슨 음모가 움직이고 있고, 그 음모의 대상은 대개 나를 밀어내자는 것임도 안다. 백 선생도 자기가 교장이 되고 싶은 것을 내가 일러 주지 아니한 탓인지 근래에는 가장 예수를 잘 믿는 모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역시 한 목사 편에 붙는 모양이요, 새로 온 오 선생은 이현령 비현령이지마는 그도 예배당에서 강도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교회에 붙어서 학교에 한 몫 중임을 맡으려는 뜻이 있음이 분명하였다. 가장 놀라운 것은 성 선생의 거취였다. 그는 본래 한학자요, 나와는 세의도 있는 사람이언마는 근래에는 성경을 듣고 다니며, 직원회에서도 내 의견에 찬성 아니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내라고 예수를 아니 믿는 것도 아니요, 예배당에서 강도도 아니하는 바가 아니지마는 웬 일인지 저 자칭 진실한 신자패들은 나를 이단자로 몰기 시작하였다. 그 중요한 원인은 내가 톨스토이를 좋아한다는 것과 학생들에게 생물 진화론을 말하여서 신앙심을 타락케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핑계요, 나를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중 나이 어리고 나중에 온 것이 어느덧에 학교의 중심 인물이 되어버린 것을 새암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형편이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진실한 예수교인들이 무슨 음모를 할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뒤꼍 배나무 위에서 까치가 깍깍 짖었다. 저녁 까치는 걱정 까치라고, 그 걱정은 내 걱정인 것 같았다.

나는 작은 누이더러, 난 지금 갈 테야. 아주머니 무얼 만드시나 보라, 나 위해선 아무 것도 마시라고. 난 간다고.하고 일렀다. 아이구 오빠도, 그렇게 왔다 가는 법이 어디 있수?하고 큰 누이가 내 모자를 집어들고 나간다. 갖다가 감춘다는 것이다.

작은 누이는 일어나더니 문 밖에 벗어 놓은 내 구두를 집어들고 어디로 가버렸다. 감추지 말어!하고 짜증을 내면서도 속으로는 그러한 혈족의 애정이 지극히 반갑고 기뻤다. 다 사촌들이다. 어디를 가면 누가 나를 이렇게 정답게 만류해 주랴 하고 누이들에게 절을 하고 싶도록 고마웠다.

이모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하루 묵어 가려므나. 다들 저렇게 반가와 하는데, 뿌리치고 가면 되나. 저의들도 너 밖에 가까운 사람이 있니? 이 집에는 열촌이 쟤들도 제일 가까운 일가란다. 망할 놈의 집이지? 어서 두루마기 벗어라.하였다. 이때에 구두를 감추고 들어온 작은 누이가 제 손으로 내 웃옷 고름을 끄르고 막 잡아 벗겨다가 또 어디로 가지고 갔다. 버릇 없는 일이나 그 버릇 없는 것이 아름답고 기뻤다.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 이모도 형수도 다 저 세상 사람이 되고 아들 한 죽을 낳겠다고 애첩을 얻었던 그 늙은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벌써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은 고마울 때도 있다. 이모나 형수를 그 슬픔에서 구원할 자가 죽음 밖에 또 무엇이나 있는가. 지금은 돌아볼 이 없는 두 과부의 산소에 봄 풀만 푸르렀을 것이다.

이튿날도 해가 저물어서야 나는 집에를 돌아왔다. 문의 누님이 반갑게 나를 맞아서 내 의관을 받아 주었다. 그도 내 이종 형수와 꼭 같은 신세다. 세상에는 행복된 사람이 없나보다. 혹은 박복한 내게 관계 있는 사람들만이 그러한가. 소년 과수로 유복자를 길러서 손자를 본 내 종형수를 이모는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아무 일 없었어요?내 밥상 곁에 앉아서 문의 누님은 이렇게 물었다.

나는 처가에서 일어난 일을 대충대충 말하고 처형이 음모를 하는 모양이라고 말하였다. 문의 누님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설마 아내와 나와의 문의 누님에게 관한 대화야 옮길 수가 있나. 나는 아내와 문의 누님과의 심리를 한 번 더 촌탁하여 보았다. 무슨 일 없었어요?이번에는 내가 문의 누님께 물었다. 닭이 또 싸왔어요.하고 문의 누님이 웃었다. 뉘집 닭하고? 한 목사 집 닭하고?하고 나는 입으로 가져갔던 밥술을 밥그릇 위에 놓고 물었다. 뉘집 닭인지 제가 알아요?하고 그는 우리 닭과 싸운 수탉의 모양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분명 한 목사 집 수탉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뉘가 이겼어요?」 「어서 진지 잡수셔요.하고 그는 닭이 싸우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바로 어제 아침야요. 우리 수탉이 어디로 나가더니 한참 있다가 무엇에 쫒기는 소리를 하고 들어오겠지요. 하더니 그 뒤를 따라서 지금 말씀한 수탉이 따라 들어온단 말씀야요. 하더니 우리 닭과 맞붙어 싸우겠죠. 지독히 싸우드군요. 처음에는 우리 닭이 밀리는 것 같더니 차차 기운을 내드군요. 아마 한 시간 턱은 싸왔을 거야요. 물고 뜯고 차고, 엎치락뒤치락, 어느 편이나 한 편은 죽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이겼어요? 우리 닭이 지지는 않았지요.하고 갑갑해서 결과를 물었다. 지기는 왜요, 나중에는 그 닭이 우리 닭한테 깔려서 죽도록 쪼였어요. 훠 하고 제가 쫓아도 몰라요. 남의 닭이 죽으면 안 되겠길래 우리 닭을 쫓았더니 그 닭이 날 살려라 쭉지를 늘이고 달아나겠죠.문의 누님의 설명 솜씨가 상당하였다. 전도 부인이 될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만족하여서 웃으며 다시 밥 먹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닭이 원수 갚으로 한 목사 집에 가서 그 집 닭과 싸우는 것을 또 한 목사가 몽둥이를 들고 우리 닭을 쫓은 모양이군.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닭이 충무공의 전술을 써서, 한 목사네 닭을 쫓기는 체하고 후려서 다리고 왔거나.하고 혼잣말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 .하고 문의 누님은 장지를 열고서 웬 묵직한 자루를 방구석에 끌어내면서, 바루 아까 다 저녁 때에 웬 사람이 이걸 지고 왔어요. 곧은골서 보낸 거라면 아신다고요.하고 나를 바라본다. 곧은골?」 「네에, 곧은골이라고요.」 「, 알았어요. 그것도 불쌍한 사람헌테서 온 거야요.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곧은골이라면 실단의 시집이 있는 곳이요, 거기는 밤이 소산이었다. 불쌍한 사람헌테서요? 어디 또 저 같은 사람이 있나요?하고 문의 누님은 쓴 웃음을 친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문의 누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내 끄덕이는 뜻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저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저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맨 불쌍한 사람입디다. 내가 오늘까지 사흘을 돌아다녔는데 불쌍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못 만났어요. 우선 외가댁으로 보더라도 누가 불쌍하지 아니한 사람이야요? 내가 그 동안에.하고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한 집, 두 집, 세 집, 네 집을 돌아왔는데 다 불쌍한 사람들 뿐입디다. 남편이 있어서 불쌍한 사람, 없어서 불쌍한 사람, 있을 적에도 불쌍하다가 없어져도 불쌍한 사람, 모두 불쌍한 사람 천지야요. 이 밤을 보낸 사람도 마음에 없는 남편헌테 시집을 갔다가 일년만에 과부가 되었으니, 있어서도 불쌍, 없어서도 불쌍이 아냐요? 아마 없는 불쌍이 있는 불쌍보다 나을 거야요. 싫은 남편하고 한 날 사느니보다는 남편이 없이 사는 게 안 좋아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하고 한탄조로 말하였다. 그야 그런 불쌍한 사람만 꼽으시니깐 그렇죠. 마음에 맞는 남편하고 재미나게 사는 사람도 불쌍해요?문의 누님은 항의하였다. 글쎄요. 그런 내외가 있다면 불쌍하지 않겠지마는 그런 내외를 보셨어요? 설사 지금은 의추가 서로 맞는 내외라 하더라도 내일 어떻게 될지 알아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그러나 행복이란 풀잎에 이슬이 아냐요? 믿을 게 어디 있어요? 부러워 할 건 어디 있구?내 말은 더욱 비관적이었다. 그 때 기분이 진실로 그러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지마는 풀잎에 이슬 같은 기쁨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 낫지 않아요? 저는 꿈속에서라도 기쁜 일을 좀 보았으면 좋겠어요, 깨어나서는 더 괴롭더라도.문의 누님의 말에는 인생 철학이 있었다. 그것은 활자로 된 책을 읽어서 얻는 것이 아니요, 제 생활이라는 원본에서 얻은 것이었다. 있다가 없을 것이면 애초부터 없는 편이 안 좋아요?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오직 하나가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아셔요?하고 나는 웃었다. 몰라요, 그게 무어야요?하고 문의 누님도 웃는다. 그 이가 불빛에 유난히 희게 빛난다. 말씀할까요? 애초부터 없는 것 하고, 있다가 없거든 잊어버리는 것 하고- 어때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있다가 없을 것이나마 있고 싶어요.하고 부끄러운 듯이 웃는다. 어디 밤 좀 주슈.하고 나는 기분을 고치려 하였다.

문의 누님은 부엌에 내려가서 칼과 대접과 마른 바가지를 갖다 놓고 밤을 한줌 한줌 손으로 집어서 한 바가지 퍼내었다. 밤은 굵고 좋았다. 검붉은 그 모양은 언제 보아도 소박하였다. 여기 편지가 들었어요.하고 문의 누님은 좁게 접어서 세모나게 맨 종이를 먼지를 털어서 내게 준다. 내 가슴은 두근거렸으나 문의 누님 앞이라 태연한 태도를 꾸미고 그것을 펴서 읽었다. 오라버님 전이라고 허두 하고, 이 밤은 실단이 새벽마다 집 뒤 밤나무 갓에서 한 톨 한 톨 아람 주워 모은 것이오니 겨울 밤 화로에 구우시와 맛보시옵소서.이뿐이었다. 그 글씨는 처음 보는 바여니와, 그 말들은 소리를 발하여 내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남편이라고 속 마음으로 수 없이 부르던 사람을 오라비라고 글로 쓰는 그의 심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실단이가 한 톨 한 톨 주워 모은-이 얼마나 간절한 구절인고. 이 한 톨 한 톨의 밤에는 실단의 손이 닿았던 것이다. 거기는 그의 살 냄새가 풍겨있는 것이다. 이것을 남더러 만지라서 될 것인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다. 겨울 밤 화로에 구워.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오년 전 외가에서 윷놀이 하던 이튿날 실단의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던 밤, 실단은 말없이 화로에 밤을 구워서 나를 먹였다. 그것이 그가 손수 나를 공궤한 처음이요, 마지막이었다. 사랑의 가장 드러난 표는 먹이는 것이다. 살이라도 빼어 먹이고 싶다는 말이 이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먹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만물을 먹이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요, 아들 딸을 먹이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의 조석을 만드는 것으로 큰 낙을 삼는다. 그날 실단은 새침하고 화로 곁에 앉아서 내게 밤을 구워 먹였다. 말은 없었으나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먹이는 것도 즐거움이지마는 사랑의 먹임을 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실단의 밤을 입에 물고 고맙게 고맙게, 기쁘게 기쁘게 나는 씹었다. 실단의 가무스름한 살 빛, 살이 비추이는 손톱, 소리없이 웃는 웃음, 이런 것이 모두 눈앞에 어른어른 하였다.

이튿날 학교에 가보니 과연 내가 없는 사흘 동안에 중대 사건이 있었다.

새 교수인 미국 선교사 오웬 목사가 교주가 된 후에 처음으로 학교에를 왔다. 그는 이 학교를 예수교회 학교로 개조할 임무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백 선생과 내 족형의 말을 들으면 오웬 목사는 토요일 오후 내가 처가로 간 뒤에 와서 지난 주일 예배를 주장하고 그끄저께 월요일부터는 교회 일과 학교 일을 의논하였다.

오웬 목사는 월요일 조회에 학교의 직원과 생도에게 대하여 일장의 훈시를 하고, 그 뒤에는 교수의 자격으로 직원회를 소집하여 공식 회견이 있고, 다음에 각 교직원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의견을 청취하였다. 그 동안에 한 목사가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오웬 목사의 방에 긴한 듯이 들락날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백 선생이나 족형이나 오웬 목사에게 무슨 의견을 말하였다는 것은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러고 어제는 오웬 목사가 아침 학생들 조회 시간에, 교장은 설립자가 임명하는 것이나 학생들의 의향을 알고 싶으니 마음에 원하는 이의 이름을 투표하라.고 하여서 즉석에 투표를 시키고, 그 다음에는 직원회를 열고 또 그와 같은 투표를 시켰다. 직원회 석상에서 개표한 결과는 학생의 투표는 한 목사 세 표, 백 선생 두 표를 제하고는 전부 내 이름이었고, 직원회 투표의 결과는 성 선생, 백 선생이 각 한표요 나머지 다섯 표는 내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투표의 결과대로 한다면 교장은 내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한 목사의 세 표라는 것이 유, , 장 세 녀석의 것임은 다시 말할 것도 없었다. 성 선생, 백 선생에게 한 표씩 넣은 것이 누굴까. 아마 성 선생에게 투표한 것은 박 선생일 것이요 백 선생에게 한 이는 오 선생일 것이다. 오 선생은 나보다 나이가 십 이삼년이나 장이어서 내 밑에 있기를 원치 아니하였을 것이요, 또 내가 그의 소중한 자전거를 여러 날 끌고 다닌 것에 화증을 내었을 것이다.

또 듣건대 오웬 교주는, 이 학교, 이제 교회의 학교 되었으니, 교장과 교감, 학감 세례 받아야 할 것이요. 세례 아니 받은 사람 교회 학교에 직원 될 수 도무지 없을 것이요.하여 어제 오후부터 선생들의 세례 문답이 시작되어서 백 선생, 성 선생이 차례로 문답을 받았다 하고, 박 선생만은, 나는 싫은 걸. 선생네들 다 천당에 가면 나는 널찍한 지옥에 가서 술이나 먹을라네.하였다 한다.

나는 이만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오웬 목사를 그 방으로 찾았다. 그는 키가 육척이나 되고 낯빛이 거무스레하고 입이 묵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교의를 타고 앉았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는 것이 방에 그뜩 차는 것 같았다. 방 한편 옆에는 콭이라는 접을 수 있는 범포 침대에 하얀 홑이불을 씨운 담요가 덮여 있고 또 한 구석에는 트렁크 두 개가 쌓여 있었다. 이것은 그의 옷을 넣은 것이요, 툇마루에 쌓여 있는 나무 상자는 그의 요리 제구였다. 그는 음식 만드는 쿡 한 사람과 비서라면 비서요, 상노라면 상노라 할 젊은 사람 하나를 수원으로 데리고 와서 그의 다음 방에 거처케 하고 있었다. 전장에 나가거나 감옥에 들어갈 때가 아니면 반드시 동부인해 다니는 미국 사람으로는 오웬 목사 혼자 이러한 시골 구석으로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큰 고생이어든 게다가 우리네 모양으로 김치 깍두기로 밥만 먹으라기는 너무 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의 사도요, 내가 아직 철 없는 젊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네 집에 묵으며 우리네가 먹는 것을 먹고, 우리네가 자는 방에서 때묻은 우리네의 이불을 함께 덮지 않는 것이 불만하여서 오웬 목사에 대하여 반감을 품고 나는 그를 대하였다.

나는 조선식으로 허리를 굽히지 아니하고 서양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한 채 그와 악수하였다. 내가 동경서 다니던 학교에 미국 선교사 선생들이 여러 사람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서양식 예절을 아노라 하였고 영어도 중학으로는 남보다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었다. 오웬 목사는 이 시골 구석에서 꾀죄죄한 조선 옷을 입을 초라한 청년이 서양식으로 인사를 하고 영어로 지껄이는 것이 의외인 모양이어서 그가 도리어 조선식으로 허리를 굽히고 수줍어하는 것이 우스웠다. 나는, 당신이 오셨는데 내가 여러 날 학교를 떠나 있어서 미안합니다. 궁벽한 산촌이라 불편하신 것이 많으실 줄 압니다.이런 인사말을 미리 영작문 짓듯 준비하였던 것이라, 문법이나 발음이나 크게 틀림은 없이 곧잘 지껄였다. 그러나 나는 속에도 없는 아첨의 말을 한 것 같아서 불쾌하였다. 왜 나는 담대하게, <주께서 사도들에게 두 벌 옷도 견대도 지니지 말라 하시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네 이 많은 짐은 무엇이냐.> 하고 들이대지 못하였는가 하고 부아가 났다. 그러나 첫 기회를 놓치고 보니, 큰 개 앞에 선 강아지와 같아서 나는 그의 위엄에 눌리고 그의 친절한 접대에 휘둘려버려서 다시는 그를 내려 누를 힘을 잃고 말았다.

오웬 목사는 자기가 침대에 옮아 앉고 의자를 내게 권하면서, 처음 만나나 김 선생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또 이번에 와 보니 듣던 바 이상으로 직원이나 학생이나 모두 선생을 존경합니다. 투표해서 알았습니다. 김 선생 이 학교의 지도자십니다. 책임 무거우십니다. 김 선생 학식면 이 무거운 책임 다 잘 하실 수 없다고 믿습니다. 김 선생 톨스토이 연구하신단 말씀 내 들었습니다. 나 톨스토이 많이 알지 못하나 사람 좋은 문사요, 사상가인 줄 잘 압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사람이요, 하느님이 아니니 존경하는 것 가하나 믿는 것 불가합니다. 믿을 수 있는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계시니 그는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잘 믿는 사람 오직 좋은 교육자 될 것입니다.하고 잠깐 말을 그치고 내 낯색을 바라본다. 나는 한 목사가 이런 소리를 일러바쳤고나 속으로 불끈하였으나, 영국 사람은 결코 흥분 아니한다는 영국 속담을 생각하고 천연스럽게 오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웬 교주는 내 얼굴이 태연한 것을 보고 안심한 듯이, 다시 말을 이어, 또 찰스 다윈의 생물 진화설로 말하면 단지 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결코 증명된 진리가 아니요, 아마 그런가 보다는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어떤 학자의 한 의견으로 가르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마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게 하는 것 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론 공교한 듯하나 매양 잘못되기 쉽고 하느님 말씀 평범한 듯해도 영원히 변함 없습니다. 세상에 안심하고 믿을 책 한 권 있으니 그것은 성경입니다. 나는 김 선생 성경 더 힘들여 연구하시기 바랍니다.좀 길지마는 나는 오웬 목사의 말을 기억되는 대로 다 기록하였다. 그의 말은 논리에 맞게 꼭꼭 짜여져 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오웬 목사로 말하면 연배로도 내게는 존장이요, 학식으로도 펜실베이니아 대학 출신으로 내게는 스승이라도 큰 스승의 자격이 있다. 그러하건마는 나는 그의 훈계적인 태도에 반감이 일어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이는 비록 어리고 학력도 중학 졸업 밖에 없지마는 내게는 저까짓 선교사 따위의 하풍에 서랴 하는 자부와 교만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오웬 목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나는 거만하게 가슴을 떡 버티고 떨리도록 흥분한 목소리로, 내가 얘기하지 아니하였던 당신의 강의에 대하여는 감사할 의무를 느낍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당신을 찾은 것은 한 친구를 발견하려 함이지, 선생을 구함은 아니었습니다.하였다. 나는 좀 지나쳐 흥분한 것이 부끄러웠으나 당연히 할 말을 당당하게 하였다고 자신하고 일어났다. 오웬 목사는 손을 내밀며, 나는 김 선생을 불쾌하게 한 것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모욕할 의사 조금도 없었습니다.하고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의 손은 따뜻하였으나 내 손은 찼다.

나는 이제는 이 학교 교장이 되기는커녕, 이 학교에 있기도 다 틀렸다고 분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애초에 학교를 선교사의 그늘에 두어서 일본 관헌의 압박을 면하자는 것부터 내 비위에는 맞지 아니하였다. 일본 그늘에 드는 것이 옳지 않다면 어느 외국의 그늘에 드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나는 애초부터 주장하였던 것이다. 하물며 선교사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교장의 자리를 탐하는 것은 더러운 일 같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실단의 밤을 화로에 구워 먹으며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기분으로 있었다. 에그, 시원하다. 나는 훨훨 가고 싶은 데로 가리라 하면 참으로 속이 시원하였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아무 데라고 대답할 수는 없어도 그저 이 자리를 떠나기만 하면 조롱에 갇혔던 새가 놓여난 것 모양으로 자유로울 것 같았다. 비록 다시 붙들려서 더 무서운 조롱에 갇히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놓여 있는 동안은 자유라고 생각하였다.

내 앞에는 압록강이 있었다. 내가 가는 날에 피눈물이 난지 만지 압록강 나린 물에 푸른 빛 전혀 없다.하는 효종 대왕의 노래가 생각켰다. 그것은 왕자로서 청국에 포로로 붙들려가는 애끓는 심사연마는 그 정경도 부러웠다. 그와 같은 처지에서 그와 같은 노래를 짓고 싶었다. 청석령 지나거따 초하구 어더메뇨.

삭풍도 참도 찰사 궂은 비는 무삼일고.

뉘라서 내 행색 그려내어 임 계신 데 드리리.

하는 것도 그의 그때의 노래다. 삭풍 불고 궂은 비 뿌리는 만주의 청석령, 거기서 임을 생각하는 정경, 그것도 부러웠다. 이 노래를 지은 이의 임은 아마 그 아버지 인조 대왕이겠지마는 그것은 고국도 될 수 있고 또 그리운 여성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면서 내 행색을 알리고 싶을고. 조국 삼천리 강산이 내 그리운 임일 것을 물론이지마는 그 밖에, 아니, 그것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살 있고 피 있는 몸 따뜻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싶었다. 압록강을 건널 적에, 청석령을 넘을 적에 그리워할 임이 있고 싶었다. 그것이 없고는 압록강 푸른 물이 싱겁고 청석령 궂은 비가 멋쩍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립고 아름다운 임이 있어서 그가 천리 밖에서도 나를 생각하여 준다면 열 압록강을 건너고 백 청석령을 넘어도 기쁠 것 같았다. 삭풍에 몸이 얼수록, 궂은 비에 살이 젖을수록, 솟는 피눈물이 모두 기쁨일 것 같았다. 나는 중세기 구라파 기사들이 애인을 생각하고 모든 고초를 달게 받고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것도 기쁨으로 알고 영광으로 여기던 심리를 양해할 수가 있었다. 그때에 나는 아직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은 일이 없었거니와, 나의 심정은 돈키호테와 다름이 없었다. 돈키호테가 한 번 본 시골 어떤 계집애를 저 혼자 애인으로 정한 모양으로 나도 그러한 애인이 하나 있고 싶었다.

내 마음에 떠나 올 수 있는 애인은 실단이 뿐이었으나, 시집가서 과부된 여자를 애인으로 여겨서 압록강, 청석령에서 피눈물을 생각하기에는 어딘지 좀 부족하고 어색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누가 있나? 문의 누님? 그도 내 애정을 끄는 사람이어서 같이 살라면 살 수는 있는 여편네지마는 내 가장 깊고, 높은 으뜸이요 오직 하나인 애인으로는 부족하였다. 그러면 누가 있나? 없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혹은 양자강에서 만날 수 있을 중국식 미인을 생각해 보았다. 혹은 인도의 열대 민족적 열정을 가진 여성을 생각하고, 혹은 미인이 많다는 소아시아와 클레오파트라가 났다는 나일강 가에서 우연히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애굽의 자주 옷 입은 처녀를 그려도 보았다. 영웅이 나면 용마가 난다고, 내가 났거든 내 애인이 아니 났으랴. 났건마는 아직 만나지 못함이다. 그렇다, 오직 못 만났을 뿐이다. 그도 어디서 누구인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연의 보이지 않는 줄이 내 발을 끌어서 그가 있는 곳으로 가게 할 것이다. 그렇다, 있기는 있다. 다만 만나는 것이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 시각이 바쁜 것 같았다. 저녁상도 받지 아니하고 금시에 떠나고도 싶었다. <가만 있자.> 하고 나는 밤을 벗기던 손을 멈추고 잠깐 주저한다. 그렇게 대단히 잘난 여성을 내 애인을 삼으려면 먼저 내가 썩 잘난 사나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잘난 사람인가?

나는 어려서 어른들에게, 그 놈 잘 났다.하는 칭찬을 들었다. 동경 있을 때에는 어떤 신문에 홍안 미소년이라고 씌었다. 실단이와 문의 누님이 나를 사랑하였다. 누이들에게도 나는 환영받는 오라비였다. 그만하면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닌가.

또 나는 어려서 재동이니, 신동이니 하는 칭찬을 들었고, 학교에서도 첫째는 못해도 셋째까지는 하였다. 이 학교에 와서도 나는 잘 알고 잘 가르치는 선생이다. 나는 글도 잘 짓고 말도 잘한다. 나는 톨스토이도 알고 셰익스피어, 바이런도 안다. 나는 일본말은 썩 잘하고 영어는 곧잘 한다. 그만하면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닌가. 더구나 내게는 닭의 싸움을 보고 천지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큰 직각력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공자, 석가, 예수로 하여금 공자, 석가, 예수가 되게 한 힘이 아닌가. 나는 이미 핀 꽃이 아니라, 장차 필 꽃의 봉오리다. 내게는 아직도 피어날 큰 꽃이 있다. 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세계에 가장 빛나는 큰 인물이 되게 한 장본이다. 그렇다. 어디로 보든지 나는 대단히 잘난 사람이니, 지금 만난 내 아내나, 실단이나, 문의 누님이나, 이런 것들은 다 지나가는 한 티끌에 지나지 못한다. 내게 돌아올 큰 명예가 아직도 저편 미래의 구름 속에 감추어 있는 모양으로 내 평생의 애인이 될 잘나고 덕있고 재주 있는 여성도 어딘지 모르나 극히 깨끗한 곳에서 볕과 이슬을 받으며 향기를 담뿍 담은 봉오리를 짓고 숨어 있는 것이다. 보라,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의 향기로운 숨결이 불려오지 아니하는가.

그가 어디 있나? 아직은 모른다. 나도 모르고 다른 아무도 모른다. 하늘이 나를 위하여 곱게곱게 그를 지키고 기르고 있는 것이다. 그도 내 숨소리를 들을 것이요, 내 체온을 살에 느낄 것이다. 나의 그윽한 마음 속에 일어나는 한 생각 한 생각이 하나 빠짐없이 그의 맑은 마음에 비추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옆에서 그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하여 밤 깎던 칼을 놓고 몸을 똑바로 하였다. 그리고 내 눈과 입과 모든 근육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여서 내 얼굴의 구김살을 펴고 점잖고 의젓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두 손을 마주 잡아 배 아래 읍하고 그린 듯이, 깎은 듯이 앉아 보았다. 이렇게 하면 내가 무척 음전하고 위엄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참선을 배운 사람이 아니었으매 똑바로 앉으니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팔다리가 저렸다. 나는 피곤한 것이었다. 흩어진 마음이 제가 노곤한 것도 잊었다가 마음이 가라앉으매 아픈 데가 알아진 것이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뻗었다. 그래도 몸이 편안치 아니하여서 벌떡 뒤로 자빠져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아 나는 몸이 약하다.> 하고 자탄하였다. 내가 본래 어려서도 잔병치레를 하여서 늙은 아버지를 괴롭게 하였지마는 이 학교에 온 후로 연해서 심한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몸이 약해진 것이라고 나는 판단하였다. 그 원인이야 무엇이거나 몸이 건강치 못하여 가지고는 큰사람이 될 수 없지 아니한가. 석가나 공자나 또는 톨스토이나 다 몸이 건강하셨던 모양이다. 그들은 모두 칠팔십 장수를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안자와 같이 조사하고도 이름난 사람도 있지마는 큰 일을 하자면 우선 병없이 살아야 한다. 예수도 조사하셨지마는 그것은 십자가에 박히신 것이지 몸에 병이 나서 조사하신 것은 아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다 장수하셨다. 나도 꼭 오래 살아야만 하겠는데 이렇게 몸이 쇠약하고 기침이 나다가는 큰일을 이루기 전에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한 가지 신념이 있었다. 나는 큰사람으로 큰일을 하기 위하여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늘이 아는 사람이다. 나는 늑대가 한창 날치던 계묘 갑진년에도 열두 살 열세 살의 어린 몸으로 혼자 밤중 산길을 여러 번 걸었다. 비록 늑대나 호랑이를 만나더라도 그들이 감히 나를 범접하지 못한다고 나는 마음이 든든하였다. 여름에 풀숲에 다녀도 긴 짐승이 나를 상치 못한다고 믿었다. 짐승만 아니라 귀신도 감히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게 귀신이 범치 못한다는 신념을 준 데는 또 한 원인이 있다. 내가 이 학교에 온 뒤에 미친 사람 두 사람이 나를 보고 두려워한 사실이다. 이것을 보고 나는 귀신이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남들은 혹 돈키호테의 영신이 씌였다고 할지는 모르거니와, 그것은 내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난 때까지 두고 보아야 알 것이지마는 나 자신은 은근히 그대로 믿고 왔던 것이다.

내가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을 읽은 것도 훨씬 후의 일이어서 내가 이렇게 저를 크게 믿고 높이 본 것이 결고 마호메트 같은 광신자를 본받은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만일 이것이 미친 것이라면 나 혼자 내멋대로 미친 것이지 누구한테서 옮은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히 장담할 수가 있다.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는 벌써 오십이 넘어 육십고개도 멀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누가 보든지 신통치 아니한 인물이요, 앞으로도 별로 신기한 일이 있을 것 같지 아니하건마는 그래도 나 자신은 아직도 옛날의 신념을 은근히 품고 있다. 나는 큰사람이라고. 나는 하늘이 아는 사람이라고. 나로 하여서 우리나라도 살고 이 인류도 바른 길을 걷게 되느니라고. 후세 사람들이 내가 머물던 땅을 베나레스나, 나사렛이나, 메카나, 곡부 모양으로 거룩한 순례의 처소를 만들고 내가 걷던 길을 더듬어 내 발자국에 입을 맞추리라고. 사람만 아니라 귀신도, 짐승도, 벌레도, 산도, 물도, 바위도 다 그러하리라고.

나는 누구를 보고 이런 말을 해 본 적은 없다. 만일 한다 하면 듣는 이는 필시 고개를 돌리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를 보고도 이런 말을 한 일이 없거니와, 이런 생각은 하루도 버린 적은 없었다. 스무 살의 시골 젊은 교사이던 시절이나 지금 샌 터럭이 나부끼는 이때나 사람은 변하지 아니하는가 보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할 때, 믿었던 것이 팔팔결 틀어질 때에 내 믿음이 흔들리는 수는 있었다. 실단이 일이 틀어질 때나, 내가 장가든 아내가 반드시 요조 숙녀가 아닌 때나, 다 하늘이 아신다는 내 믿음이 흔들린 기회이지마는 내가 OO학교에서 받은 여러 가지 타격도 내 운명이 그다지 시원한 것이 아니라는 낙심하는 생각을 준 전례였다. 무슨 일이나 될 듯하다가는 되기 한 걸음 앞에서 틀어지거나, 어찌어찌 바라던 대로 되더라도 신통치 않게 되고마는 것이 내 운명인가 싶었다.

지금 교장의 지위가 내 목전에 있건마는 나는 그것 역시 될 듯하다가 말 것이라고 직각하였다. 이 변변치 아니한 시골 학교의 교장이라는 것도 이 고장에서는 최고의 지위였다. 한 지방의 어른이 되는 것도 한 나라의 어른이 되는 것과 다름없이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와 같이 무엇이나 마지막 한 걸음에 틀어지는 복력으로는 이만한 교장의 자리도 돌아올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럴 바에는 내 편에서 미리 차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내심의 약점을 남에게 보였다가 미끄러져서 비숫음거리가 되기보다는 애당초에 그까짓 것은 헌 신짝같이 돌보지도 않는다는 사내다움이나 보이자는 것이다. 이번 교장 일로 말하여도 내가 교장이 되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운동을 하거나 교주에게 곱게 보이려고 아첨가지 할 마음은 본래부터 없지마는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면 그래도 피이 하고 박차버릴 소부의 생각까지는 없었다. 솔직하게 자백한다면 소년 명교장이라는 이름을 얻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 약점을 보이기가 싫어서 오웬 교주 앞에서 그처럼 괄게 군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도를 지나쳐서 굴러 들어오는 교장의 자리를 아주 박차버렸을뿐더러 이 학교를 떠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까지 사태를 험악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하기는 귀신이 부끄럽고 하늘이 부끄러우니 어디까지든지 나는 학교를 떠난다는 것을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가자, 떠나자, 새 운명을 개척하자.> 나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뜰에서 닭모이를 주고 있을 때에 한 목사가, 김 선생님!하고 우리 마당에 들어섰다. 김 선생이면 그만이지 을 왜 붙여, 하고 나는 그의 간지러운 웃음을 띈 얼굴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수탉이 모이를 먹다가 말고 고개를 길게 뽑아들고 놀라는 소리로 꺼더, 꺼더하였다. 몽둥이를 두르며 저를 후려갈기던 한 목사를 우리 수탉이 기억하는 것이다 하고 나는 새로 분이 치밀었다. 오웬 목사님께서 오십니다하고 한 목사는 또 을 분명히 발음하면서 뒷걸음을 쳐서 오웬 목사를 안내한다. , 김선생 닭 기르시오?하고 오웬 목사는 그 거무튀튀한 얼굴의 한 구석에 웃음을 띄운다. , 훌륭한 수탉이요. 그가 싸움을 잘한다지요?하고 두어 걸음 우리 수탉의 곁으로 가까이 오니 평생에 이렇게 큰 사람을 처음 보는 우리 닭은 어안이 벙벙하여서 고개를 뒤룩뒤룩하였으나, 한 목사를 볼 때와 같이 놀라지는 아니하였다. 어떻게 우리 수탉이 좋은 싸움꾼인 줄을 아시오?하고 힐끗 한 목사를 보면서 물었다. 속으로는 요, 좀된 한 목사가 대체 아니 일러바친 것이 없고나 하였다.

오웬은 대답하기 어려운 듯이 웃기만 하였다. 나는 더 묻는 것이 실례일뿐더러 또 그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 잘 싸우지요. 우리 수탉은 누구와 싸울 것을 잘 알지요. 부정,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지요. 옳지 아니한 자는 용서하지 않지요.하고 한 목사를 돌아보았다. 한 목사는 입맛이 쓴 듯이 한 번 입을 움직였다. 오웬 목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스러졌다. 그는 분명히 내 말 속에 품긴 독한 화실이 한 목사의 가슴을 맞힌 것을 본 듯하였다. 내 살촉의 독이 한 목사의 염통에 들어간 것은 그의 낯빛과 찌그러지는 얼굴로 보아서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보복의 쾌미를 즐겨하기 전에 손에 대한 무례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금은 손님을 맞는 때요, 독한 말로 한 목사에게 원수를 갚을 때는 아니었다. 나는 오웬 목사의 눈에 내가 어떻게 고약하게, 초라하게 비추었을 것을 생각하니 분하였다. 이로써 민족의 수치를 또 하나 보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들어오시지요.하고 얼굴에 화색을 지어 띄우고, 내 방문을 열고 손님을 인도하였다. 오웬 목사도 내가 반감을 품는 이지마는 그것은 그것이요, 나를 찾아온 손님은 손님이라고 구별할 만한 총명은 내게도 있었다.

오웬은 내 방의 찌그러지고 얕은 문을 살펴보았다. 이리로 족히 그의 큰 몸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재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도 그는 구두를 힘들게 벗고 허리를 굽히고 조심조심히 방에 들어섰으나 다 들어와서도 그는 얼른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치떠서 천정을 바라보아서 그것이 그의 키보다는 다만 한 치라도 더 높은 것을 안 뒤에야 비로소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고 서도 싱거운 모양이어서 싱긋 웃었다. 나도 싱그레 웃으면서, 이 굴이 당신의 몸을 용납하기에는 너무 적소이다. 그러나 안심하시오, 이 지붕은 여간해서 내려 앉지는 않습니다. 또 당신이 대각선이 되기만 하면 이 방에 누울 수도 있소이다.하고 농담을 하였다. , , 넉넉하오. 미국 방들은 너무 클는지 몰라.하고 그도 농담 대꾸를 놓았다.

오웬 목사와 나와 영어로 지껄이는 것은 한 목사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도 우리 둘이 웃으면 그도 따라 웃고 웃다가 그치면 그도 따라 그치고 있었다. 앉으시오, 오웬 목사.하고 내가 먼저 앉았다. 그는 선 대로 있을 것인지, 앉을 것인지 미처 판단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 말을 따라서 앉았으나 다리와 발을 둘 곳을 몰라서 쩔쩔매었다. 한 목사는 앉는 법을 강의를 하였다.

나는 문의 누님께 밤과 달걀을 찔 것을 부탁하였다. 수만 리 밖에서 우리 민족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오신 손님이 내 집에 임하였으니 나는 개인 감정을 초월하여서 힘을 다하여 그를 우대하여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 조선 민족은 물질주의를 경멸하고 정신주의를 존중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큰 집에 사는 것을 선비의 수치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여러 고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림과 조각만 아니라 희랍 건축에 비길 건축 예술도 가지고 있었건마는 그것은 국가나 종교적인 건물에만 썼고 점잖은 개인의 주택은 항상 검소한 것을 숭상하였습니다. 맑은 가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랑이었습니다.나는 이런 소리로 우리 집을 변호하였더니, 천만 의외에 오웬 목사는 그것을 대단히 흥미 있게 듣는 모양이어서, , 감사합니다. 김 선생 말씀으로 내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조선의 한 문제에 대한 설명을 얻었습니다.하고 매우 정중하게 사의를 표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책장 (기실 책장은 아니요. 선반 비슷할 것이다.) 에 끼인 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원래 몇 권 안 되는 책일뿐더러 그것도 계통 없이 주워모은 문학 서적이었으나 그중에 이채라고 할 만하게 눈에 띄우는 것은 톨스토이 전집의 영문역 열 네권 한 질이었다. 키는 작으나 남빛 껍데기에 금자로 제호를 박은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전집은 아니나 투르게네프, 고리키의 소설이 각각 오 륙 종씩 있었고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졸라의 파리가 꽤 크고 두꺼운 책이요, 그 다음에는 셰익스피어, 디킨스, 스콧의 소설과 밀턴, 바이런, 워즈워드, 테니슨의 시집 등이 있었다. 이런 책들은 내가 그때의 영어 지식으로는 잘 읽지도 못하는 것이지마는 그래도 아는 체 하는 것과 알려는 욕심으로 끌고 다니는 것이요, 내가 미쳐서 읽던 모파상의 한 여자의 일생이 다홍 껍데기로 눈을 끌었다. 그 밖에는 일본 문학 등속이 있고 한 편 구석을 온통 차지한 것은 내각판 칠서와 기타 한문 서적이었다. 이만한 장서도 이 학교 학생들을 위협하기에는 족하였다. 그러나 나도 서양 사람의 가정을 여럿 보았거니와, 그네들 눈으로 보면 내 장서는 실로 문제도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오웬 목사는 상당히 경의를 표하는 표정을 하였다. 그는 나에게 롱펠로우의 시를 읽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에반젤린을 읽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미국 사람이기 때문에 롱펠로우를 드는 것이라고 나는 그의 애국심에 대하여 동정하였다. 기실 그때에 내가 품었던 생각으로는 (들은 풍월이지마는) 미국에는 문학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예절을 차리기 위하여서 나는 그런 소리는 아니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생각으로, 오웬 목사는 누구의 시를 가장 사랑하시오?하고 물었다. 물론 롱펠로우가 첫째지요, 나는 아메리카 사람이니까, 그가 가장 잘 아메리카를 아는 시인이니까.그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하고는 마치 그 대답은 내 비위를 맞추려는 대답이었다 하는 듯이 대단히 느리게 싱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는 또 자기의 싱그레 하는 웃음을 잘못이라고 취소하는 듯이 엄숙한 얼굴을 지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대학에 있을 때에는 브라우닝을 제일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밀턴의 실락원은 억지로 읽었습니다. 신학을 배울 때에는 라틴말 공부를 위하여 로마 시인의 것을 읽었으나 히브리말을 읽게 된 뒤로는 구약 시편을 가장 애독하였습니다. 호메로스도 희랍말 공부로 읽었으나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오웬 목사의 말은 점잖고 진실하였다. 그는 나를 누르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지마는 나의 그의 말에 납작하게 눌려버리고 말았다. 로마 시인, 희랍 시인, 이런 것은 말은 들었으나 한 구절도 나는 아직 읽어본 일이 없었다. 영어는 노루 꼬리만큼이라도 알지마는 희랍어, 라틴어는 내게는 쥐 뿔이요, 거북이 털이었다. 나는 그만 오웬 목사의 앞에 땅을 핥게 참패를 당하였다. 내 얼굴에서는 쥐가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왜 고등 학교에를 아니 다니고 이 시골 구석에 초학 훈장이 되었는고 하고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이때에, 밤하고 달걀하고 여기 가져왔어요.하고 장지를 방싯 여는 문의 누님이 아니었던들 나는 내 몸을 둘 곳이 없었을 것이다. 맛있는 밤과 신선한 달걀.나는 이런 소리로 곤경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문의 누님은 내가 시키지도 아니하였건마는 꿀 물을 타서 내었다. 밤과 달걀과 꿀물로 서양 사람의 오후 차를 대신한 것이었다. , 대단히 좋소, 훌륭하오.하고 오웬 목사는 우리 가난한 정성의 대접을 진정으로 만족하게 받는 모양이었다. 나도 대단히 낯이 났다. 한 목사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니꼬운 한 목사, 나를 잡아먹으려는 한 목사이지마는 내 집을 찾은 손님이라면 밉지 아니하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었다.

이 모양으로 한 시간이나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오웬 목사는 영어로, 아까는 김 선생을 불쾌하게 하여서 미안합니다. 나는 결코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니 용서하시오.하고는 조선말로, 김 선생, 좋은 대접 받았습니다. 꿀물 나 처음 먹은 것이요, 대단히 맛있습디다.하고 일어났다. 나올 때에 마당에서 문의 누님을 만나게 되어서 나는, 내 아내의 자매요.하고 소개하였다. 이런 소개를 처음 받는 문의 누님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반쯤 외면하고 섰다. 한국 부인의 공손한 인사요.하고 나는 오웬 목사에게 설명하였다. 실상 문의 누님이 손을 읍하고 고개를 숙이고 반쯤 외면하는 자세나 동작이나 다 아름다웠다. 나는 조선의 문화를 거기서 본 것 같았다. 얌전하고 의젓하고 조용함.이것이 우리 도덕의 정신이라고 나는 느꼈다. 오웬 목사도 그것을 느끼는가 싶어서 자기도 심히 부드러운 태도로 문의 누님에게 답례하였다. , 달걀, 꿀물 다 맛나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예배당에 오십시오.하였다. 문의 누님의 인사하는 법이 예배당에 아니 다니는 순 조선식이라고 본 모양이었다. 보기에 둔한 듯한 오웬 목사의 민감한 데 놀랐다. 네에.하고 문의 누님은 잠깐 눈을 치떠서 오웬 목사를 보면서 대답하였다. 그가 하는 양이 모두 법도에 맞았다. 춤이나 노래나 꼭꼭 장단에 맞는 것과 같았다.

나는 조선 여성의 이 예법을 버릴 것이 아니요,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 목사 따위가 그런 것을 무엇을 알랴. 그는 섣불리 서양을 배우고 조선 것을 다 업수이 여겨서 교인의, 그중에서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지도를 하고 있다고 나는 보았다.

대문 밖에 나가서 한 목사가 내게로 한 걸음 다가오며, 김 선생님, 내일 세례 문답 하십시다. 문답 요지 여기 있으니 잘 생각하십시오.하고 종이 절지에 쓴 것을 내게 주었다. , 보겠습니다.하고 나는 냉담하게 대답하고 그 종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 쥐었다. 나는 한 목사가, 내가 이렇게 푸대접하는 태도를 알아보기를 바랐다. 한 목사는 의심스러운 듯, 또는 못마땅한 듯한 눈으로 나를 힐끗 보고 몇 걸음 앞선 오웬 목사를 따라서 빨리 걸었다.

방에 돌아오니 문의 누님이 손님 대접하던 것을 치우고 있다가 내가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몸을 한 편으로 비킨다. 나는 그를 힘껏 껴안고 싶은 충동을 누르기가 어려웠다. 그가 오웬 목사와 인사할 때에 보인 태도와 행동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새삼스럽게 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의 누님은 내 몸이 제게 가까이 가는 것을 보기좋게 피하였다. <버릇없는 녀석 같으니. 나를 무얼로 알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치우던 것을 마저 치워서 상에 받쳐들고 나가버렸다. 그의 치맛자락에서는 찬바람이 휙휙 나와서 바늘같이 내 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머쓱해서 책상 앞에 털썩 앉았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문의 누님은 내 사랑만을 바라고 있어서 무엇이나 기쁘게 내 말을 듣고 내 뜻에 순종할 줄만 알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가 그에게 애정을 표시한 일이 없는 것을 그는 섭섭하게 알아서 내가 팔을 벌리기만 하면 내 품에 굴러들어올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아니하였다. 그는 분명히 야멸차게 내 애정의 표현을 거절하였다. 나는 그가 내 손이 아니 닿을 데로 요리조리, 부러 하는 것 같지 않게 비키던 것과 상을 들고 찬바람을 뿜고 나가던 양을 한 번 더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그가 내게 대해서 어떻게 경멸하고 구찮아 하는 생각을 가졌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버릇없는 것 같으니. 나를 무얼로 알고!하는 소리가 또 쟁쟁하게 내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때에 문의 누님의 눈에 비추었을 내 꼴이여! 음충맞은 눈웃음 띄우고 두 팔을 벌리고 지척지척 그에게로 다가들던 내 꼬락서니! 내 눈에는 날개쭉지를 축 쳐뜨리고 모으로 암탉의 곁으로 지척거리다가 노랑 암탉에게 핀잔을 맞고 물러서는 우리 집 못난 수탉이 보였다. 내가 그다! <에 창피하다.> 하고 나는 주먹으로 아프도록 내 대가리를 두들였다. 다시는 안 그러리라, 다시는 어느 여자를 보고도 그런 못난 꼴을 아니하리라! 이번 한 번에 사람 값이 천 길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안하고 말고. 다시 그러한 창피한 짓을 해! 안한다. 안해!> 하고 굳게 맹세를 하고 나니 좀 마음이 가뿐하였다.

여자에게 애정을 청하다가 거절을 당한다는 것이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인만큼 그 부끄러움이 한량없이 컸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웠다. 다시 어떻게 문의 누님을 대하나. 다시 어떻게 사람을 대하나. 마치 내 이마에다가 음란한 사나이라고 화인을 찍힌 것 같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 음심을 품기만 하여도 간음이니라 하신 예수의 마음을 비로소 바로 깨달은 것 같았다.

이날 저녘상을 가져다 주는 문의 누님을 정면으로 대하기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러고 밥을 먹는 동안 줄곧 시무룩하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면 저도 우스울 만큼 점잖을 빼고 있었다.

나는 다른 때 같으면 문의 누님과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 내 방으로 가련마는 이날은 밥술을 놓는 대로 마치 싸움이나 하고 나가는 사람 모양으로 내 방으로 가버렸다. 내 마음의 저 깊은 속에는 내가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양을 문의 누님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마치, <나는 너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한다.> 하고 퉁명이나 부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책상에 대하여서 무엇을 읽으면 이 찜찜한 생각을 벗어날까 하고 책을 눈으로 골랐다. 어느 책에 대하여서도 그까짓 것은 하는 생각이 났다. 모두 신통치 아니한 것 같았다. 나도 라틴이나 그릭크로 쓴 책이 읽고 싶었다. 히브리말로 구약 시편을 읽고 싶었다. 영어로 쓴 책 같은 것은 그까짓 것이었다. 그러나 그릭크, 라틴을 읽는 것은 감감한 일이었다. 앞으로 십년 공부는 해야 오웬 목사가 아는 것을 다 알 것 같았다. 십년 공부를 할 일은 더욱 감감한 일이었다. 이제는 학비를 당해 준다는 사람도 없지 아니하냐. <에라 빌어먹을 것! 주역이나 읽자.> 하고 나는 누런 책 껍데기를 한 커다란 주역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오웬 목사는 주역을 읽을 줄 모를 것이다. 제가 한문을 모르기나 내가 라틴을 모르기나 마찬가지다.> 하고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내 한문의 힘도 영어의 힘보다 얼마 더 낫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주역이란 원래 알 듯 모를 듯한 글이다. 공자님도 늦게야 주역을 좋아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하거늘 나같이 단문하고 어린 사람이 주역을 읽어서 안다는 것은 바라지 못할 일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주역을 읽었다. 날마다 한 괘씩 소리를 내어서 읽고는 외웠다.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으면서도 그저 좋았다. 우선 내가 주역을 읽는다는 것이 좋고, 남들이 내가 주역을 읽는다고 보는 것이 좋았다. 사실상 주역을 모르기는 내나 남이나 다름이 없었다. 성 선생은 이 근방에서는 유명한 학자라 하지마는 내가 모르는 구절을 물으면 그도 몰랐고, 혹 아는 체하고 설명한대야 다 구리고 고리거나 그렇고 그렇고 한 소리였다. 내 삼종숙은 성 선생 이상의 학자이지마는 주역에서 내가 의심나는 곳을 물으면 그는, 역이란 남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제가 알 것이니라.하였다. 나는 삼종숙의 말에 감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주역 첫 대문인, 乾元亨利貞.만 해도 정자는, 하니라.하고 읽고 주자는, 은 크게 하니 흠이 하니라.하고 읽지 아니하였나. 그나 그뿐인가. 주역이란 글의 본지를 정자는 이치를 논한 것이라고 하고 주자는 점을 주로 한 것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는가. 이렇게 서로 보는 바가 틀리면서도 정자는 정자대로 주역을 읽고 좋아하고, 주자는 주자대로 그러하여서 다 제가 잘 아노라고 주석까지 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대로 읽고 좋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달한 나는 주역을 읽고 아는 체를 하여도 관계치 않다고 버틸 자신을 얻었다. 그뿐 아니라, 나는 정자와 주자가 다 방패의 한 옆만을 본 것이라 하여, 주역이란 원래 점을 주로한 글이지마는, 점이란 원래 천지의 이치로 되는 것이매 주역이란 이치를 논하는 것이니라.하고 내 독자의 정의를 내리고 내가 정자나 주자보다도 주역을 잘 안다고 으쓱하였다. 이 말을 할 때에 성 선생은 빙그레 웃는 양이, <네가 어느 새에.> 하는 듯해서 불쾌하였다. 나는, <제야말로 무얼 알아.> 하고 성 선생은 주역을 모르는 사람으로 작정하니, 내가 더욱 높은 듯하였다. 삼종숙은 그래도 상당하여서, 내 주역관을 듣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아마 그 생각이 옳을 것이야.하였다. 이로부터 나는 더욱 그 아저씨를 좋아하였다.

나는 주역을 한 권 꺼내려고 손을 내밀다가, <가만 있자. 이왕이면 점을 하나 쳐 가지고 그것을 얻는 괘를 읽자. 무슨 점을 칠까. 내가 교장이 되겠는가, 그것을 물을까. 그것은 안 됐다. 교장이 하고 싶은 것 같아서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OO학교 교장쯤을 탐낸대서야 천지 신명이 고개를 돌리지 아니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작은 인물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점할까. 앞날이 어떨까. 그것은 너무 광범하다. 교장을 하라면 받으리까, 말리까. 옳다 그것이 좋다. 교장이 물론 소원은 아니지마는 나라를 위하여 할 것이며 굳이 마다고는 아니하리라. 더구나 천지 신명이 받으라시면 어찌 거역하여서 되겠는가.> 나는 이 뜻을 신명에게 묻기로 억새로 만든 시책(施策)을 들었다. 시책은 쉰 대다. 나는 향이 없으니 향은 못 피우고 의관도 아니하고 꿇어만 앉아서 눈을 감고 가이태서유상(假爾泰筮有常)을 염하고 신명이 밝히 가르치시기를 빌었다. 점이란 길한 괘를 바라서는 못 쓴다. 그렇다고 흉한 괘를 바랄 까닭도 없지마는 길커나 흉커나간에 똑바로 나오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속에 길한 것을 바라는 마음이 스러지지 아니하여서 한참 애를 썼다.

겨우 마음을 정돈하여서 시책을 높이 들어 정성으로 그 쉰 가지 중에서 하나를 집어 왼손 새끼손가락 새에 끼고 그 나머지를 두 손에 갈라 쥐었다. 어느 편에 몇 가지가 갔는지는 세어 보아야 알 일이지마는 길흉 회린(吉凶悔吝)은 벌써 이 갈라 쥐는 데서 갈린 것이다. 이것을 열 여덟 번 반복하여서 한 괘를 얻는 것이어니와 혹은 양효, 혹은 음효, 혹은 변효가 나올 때마다 내 가슴은 설레는 것이다. 두 효, 세 효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내 운명의 판단이 작정되어 가는 것이다. 이미 얻은 다섯 획은 아래로부터, , , , , 음이었다. 마지막 한 획으로 화택규(火澤睽)나 뇌택귀매(雷澤歸妹)가 되는 것이다. 규도 그리 시원한 괘는 아니지마는 그래도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영웅의 괘요 지사의 괘다. 그러나 귀매로 말하면 남녀가 자칫하면 정당한 인연을 찾기 전에, 또는 만날 시기를 늦추고 부정하게 만나기 쉽다는 것으로서 육십 사 괘 중에 가장 흉한 괘다. 문왕은 无有利라는 세 글자로 이 괘를 단()하였다. 도무지 이가 없다는 것이다.

슬쩍 드러난 획을 본 나는 속이 매우 불안하였다. 제발 양획이 나옵소사 하는 사특한 잡념을 누를 길이 없었다. 나는 더욱 정성을 다하여서 시책을 갈라 쥐었다. 기수, 기수, 우수로 필경 음효다. <아아 귀매다!> 나는 내 던지듯이 시책을 통에 꽂아 버렸다. <글쎄 왜 하필 귀매야.> 나는 내 운수가 비색한 것을 한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귀매야 여섯 효에 길한 것은 다섯째 효뿐이다. 그러나 내 점에 동한 것은 구사 즉 넷째 효였다. 제 정당한 배필이 따로 있건마는 가까이 있는 부정한 유혹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내가 경거망동을 하는 것이다. 원체 이 괘 전체가 계집은 아양을 떨고 사내는 마음이 들먹거리는 모양이다. 이러고 일이 바로 될 리가 없다. 계집은 단정하고 사내는 진중해야만 옳은 부부가 될 것이 아닌가. 점괘로 논한다면 교장의 자리는 아양떠는 계집이요, 나는 마음이 들먹거리는 사내다. 이 사내와 이 계집이 만나면 처음 얼마 동안은 꿀같이 달는지 몰라도 멀지 아니하여서 계집은 다른 서방에게로 마음을 옮기고 사내는 오쟁이를 지고서 본 인연을 찾아가나, 그것은 이미 시기가 늦은 모양이다. 이에 헛물을 켠 것은 사내다. <허 그 점이 맞기는 맞는데.> 하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교장이 되더라도 한 목사 기타의 등쌀에 며칠을 못 배길 것이요, 한 번 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나면 다른 학교에 교원으로 불려가려도 어려울 것이다. 점은 꼭 맞는 것이었다.

나는 더 좋은 괘를 얻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웬일인지 모두 흉한 괘만 나왔다. 아마 사 오차나 반복한 뒤에야 신명도 화를 내셨는지, 소양 육획이 그려졌다. <건괘다. 건은 크게 좋으니 곧아야 하나니라. 아 됐다!> 하고 나는 이때에야 비로소 책을 꺼내어서 왱왱 소리를 내어서 읽었다. 모든 액이 다 지나가도 대통운이 터진 것같이 기뻤다. <건괘가 나오다니. 평생에 한 번도 이 괘를 얻기는 어려운 것이다. 원형 이정! 그렇다, 그것이 내 평생의 괘다. 다시 점을 칠 필요가 없다.

君子禮仁. 足以長人.(군자는 어짊을 체득함이 족히 다른 사람의 어른이 될 만하니)

庸言之信. 庸行之謹.(평상시 말을 미덥게 하고 평상시 행실을 삼가며)

終日乾乾. 夕陽若.(하루종일 힘쓰고 조심하며 저녁까지도 근심하고 반성한다.)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思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하고 일을 행할 때 하늘에 앞서 행하여도 하늘이 이를 어기지 않고 하늘에 뒤따라 행할 때도 하늘의 때를 받드나니)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

(나아가고 물러남과 살아날 때와 망할 때를 알면서도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이다.)

공자의 건괘에 대한 이 말씀들은 다 나를 가르치심인 것 같았다.

성인! 나는 성인이 된다!

이렇게 하느라고 벌써 밤이 깊었다.

나는 아주 기분이 상쾌하여서 책을 접어 제 자리에 두고 밖에 나왔다. 초겨울 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별들이 떨고 있는데 하순 달이 올라오느라고 동편 하늘이 훤하였다. 건괘를 얻었기 때문에 나는 별도 기쁘고, 달이 있는 것도 기쁘고, 없는 것도 기쁘고 무엇이나 다 기뻤다. 바람이 추운 것도 좋았다.

방에 들어오니 문의 누님이 내 자리를 까느라고 몸으로 여러 가지 리듬의 동작을 하고 있다. 그가 나를 아주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하면서 나는 그의 몸의 움직임을 아니 보기 위하여서 책상 앞에 벽을 향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까 결심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문의 누님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나면 속으로, 이놈!하고 저를 꾸짖었다.

문의 누님은 자리를 깔고 나갔다. 그래도 나는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됐다.> 하고 나는 자리를 깐 쪽으로 돌아앉았다. 초록 명주 이불의 붉은 깃이 유난히 내 눈을 자극하였다. 자자.내가 한 쪽 대님을 끌렀을 때에 또 문의 누님이 내 방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님을 다시 졸라매고 책상으로 돌아앉았다. 문이 열려도 모른 체, 나는 읽지도 아니하면서 책을 읽는 체하였다. 문의 누님이 내 옆에 와 앉는 모양이나, 그래도 모른 체하였다. 무척 쑥스러우나 그렇게 밖에 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약주 잡수셔요. 접때 소주가 남았어요. 너무 오래 두면 김이 다 빠질 것 같아서.하고 잔에 따르는 꼴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주의 향기가 코에 들어온다. 나는 진퇴유곡이었다. 돌아앉자니 아까 결심을 어기는 것 같고 안 돌아앉자니 인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살냄새는 내 눈을 끌고 술냄새는 입을 끌었다. 그래서 부득이 부득이 새 철학을 발명하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못난 짓이다. 평심서기로 태연하게, 대인답게 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책에 미쳤다가 정신이 드는 사람 모양으로 소리를 내어서 책을 닫치고 돌아앉았다. 그러나 점잖은 얼굴만은 변치 아니하리라고 작정하였다. 잡수셔요.하고 문의 누님은 술잔을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나는 눈도 거들떠 보지 아니하고 술잔을 들이마셨다. 마음을 못 펴고 먹는 술이라 맛이 없었다. 안주로는 생율이 있었다.

내가 잔을 내는 대로 문의 누님은 술을 따랐다. 옛날 사기병이라 병이 기울어질 때마다 꼴꼴꼴꼴 하는 소리가 났다. 이것은 주객들이 못 잊히도록 사랑하는 소리였다.

술 잘 먹는 것은 아버지의 딸이요, 오라비의 누이인 문의 누님은 술을 참 알맞추 데웠다. 좋은 술 구하지 말고 데기를 잘하라는 말까지 있다. 좋은 술을 알맞추 데인 것은 술 중에도 상미일 것이다. 촌 집 소주잔이라면 의례히 탕기 뚜껑이나 주발 뚜껑이다. 이것을 한 잔 먹어도 웬만한 주량으로는 얼근하는 법이다. 나는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따뜻한 소주는 마시는 대로 피로 들어갔다. 손끝이 후끈후끈하고 얼었던 마음도 훈훈하게 풀렸다.

문의 누님은 시름없이 내 낯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말일리는 어린 동생을 반은 귀애하고 반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조곰 남았어요.하고 문의 누님은 병을 흔들어 보고 잔에 마저 따랐다. 술은 꼴록꼴록 소리도 없이 반 잔이나 채워졌다. 자 마저 잡수시고 주무셔요.하고 문의 누님은 술에 뜬 티를 왼손 무명지로 찍어내었다.

나는 술이 취해 올라오는 것을 깨달았다. 전신에 근육이 줄근하게 풀리고 마음이 방탕하여지는 것 같았다. <안 된다. 지난 봄에도 술 때문에 문의 누님에게 죄를 지었다.> 하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귓가에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고만 먹어요, 과해요.하고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잡수셔요, 요것만인걸. 곧 주무실걸.하고 문의 누님은 술잔을 내 앞으로 조금 더 밀어 놓았다.

나는 마귀가 이번에는 문의 누님을 유혹하여서 나를 항복받으렴이나 아닌가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문의 누님의 눈이 차차 이상하게 빛났다. 여자의 눈에서 젖은 빛이 나거든 조심하라는 말을 나는 어느 책에서 본 일이 있었다.

그때에 악마는 내 귀에 속삭였다. <그 잔을 들어서 네 입에 대었다가 문의 누님에게 권하여 보아라. 그러면 문의 누님의 마음을 시험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뒤에도 네가 네 점잔을 유지하고 네 결심을 지킬 수가 있지 아니하냐. 저편에서 정열을 발하여 매어달리더라도 까딱없는 것이야말로 대인이 아니냐.> 나는 이 말이 무서운 유혹인 줄은 알면서도 그대로 해 볼 생각이 났다. 거기는 일종의 쾌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고는 낯을 찡기며, 나는 더 못 먹어요. 처형이 잡수셔요.하고 잔을 문의 누님의 앞에 놓았다. 아이, 제가 술을 먹어요?입으로는 그러면서도 문의 누님은 그 잔을 들어서 고개를 돌리고 마셨다.

그리고는 그는, 어서 주무셔요.하고 상을 들고 나가버렸다. 그야말로 평심서기요, 태연 자약이었다. 내 것은 어디로 갔나?

나는 또 한 번 개망신을 하였다. 그가 내게 술을 먹이고 또 저도 먹는 것을 나는 그가 내게 마음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내 사랑을 구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일어나 나가는 양을 보면 그는 진실로 광풍제월이 아니냐. 부질없는 번뇌를 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못난 것! 네까짓것을 뉘라 탐내랴. 지난 봄의 일도 문의 누님이 거지에게 물건을 던져주는 모양으로 나를 한 번 안아 준 것임에 틀림없다. 아니다! 가만 있자. 그것이 취중에 나 혼자만이 꾼 꿈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도 같다. 그러면 그렇지, 그가 내게 반할 리가 없다. 아까 하던 모양을 보라, 지금 한 모양을 보라! 에익, 못난 것! 저를 꾄 모르고 듯 싶어 하는 바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가만 있자. 그러면 실단이는?

실단이도 어린 마음에 나를 그리워하다가 그날 나를 대해 보고는 낙망한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데로 시집을 간 것이 아니냐.

. 나를 사랑하는 이는 오직 아내뿐이다. 그도 혼인을 하였으니 할 수 없어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거나 말거나 팔자로 알고 나를 남편으로 아는 것이다. <! 납잡했다, 납잡했어. 에라 잠이나 자자.> 하고 나는 훌훌 옷을 벗고 자리에 들었다. 모든 욕심을 다 떼고 제가 못난인 줄을 알고 보니 마음이 편안하였다. 뺄 것도 없고 꾸밀 것도 없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살아 가자. 제가 잘났다고만 생각지 아니하면 만사태평이요, 두루 춘풍이다. 나는 불을 홱 불어서 꺼버리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방과후에 나는 예정대로 오웬 목사에게 세례 문답을 받았다. 그는 내가 대답하기 싫어할 것은 아니 묻는 모양이요, 순전히 신약 전서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서만 묻고 주기도문을 외우라 하였다. 이것은 내가 매우 좋아하여서 썩 잘 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기동문의 뜻에 대한 내 대답도 오웬 목사를 만족시킨 모양이었다. 아마 그는 내가 거짓말은 아니하는 사람으로 믿은 모양이어서 그 점을 크게 본 듯하였다. 옆에서 한 목사가 몇 마디 물을 때에는 괘씸한 생각이 났지마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실행할 때가 이 때로고나 하고 나는 극히 겸손하게 정중하게 대답하였다. 한 목사는 대단히 만족한 모양이어서 더 묻지 아니하였다. 만일 한 목사가 심사를 부려서 내가 대답하기 싫은 문제로 훼사를 놓았더면 나는 낙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아 사랑의 힘이다! 하고 나는 곧 감격하였다.

나는 세례 교인이 되었다. 세례라야 물 몇 방울을 머리에 떨어뜨리는 것에 불과하지마는, 그래도 원래 감격성인 나는 몸이 찌르르하였다. 수백 명 교인의 앞에서, 커다란 오웬 목사가 그 뱃속에서 나오는 웅숭깊은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고 머리에 물을 떨어뜨릴 때에는 숙인 내 얼굴로 흘러내리는 세례물과 함께 내 눈물이 흘렀다.

세례를 받고 예배당 문을 나서니 몸이 한결 가볍고 깨끗해진 것 같았다. 나는 세례를 받기 위하여 그날 새벽에 문의 누님더러 물을 데워 달라고 하여서 머리와 손발을 깨끗이 씻고 젖은 수건으로 전신을 닦고, 그리고 내 몸이 범하는 모든 더러움을 씻는다는 뜻으로 정성껏 뒷물을 하였다. 나는 뒷물이란 것이 평생에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러고 문의 누님도 이날은 예배당에 오라고 하여서 내가 세례받는 것을 보게 하였다.

나는 이에 교회 학교에서 무슨 직원도 못 될 것이 없는 양반이 된 것이었다. 인제는 한 목사가 나를 이방인이라고 천대할 수는 없다. 다 같이 성도가 아니냐. 나는 성찬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는 인제는 예배당에서 당당하게 기도도 하고 설교도 할 수 있는 양반이 된 것이었다. 박 선생 기타 세례를 못 받은 직원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상노미요, 나는 양반ㅇ이다. 동회에서도 내가 회장이건마는 세례 교인이 아니라 하여 회원 중에 나를 낮추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집사는 그 대표자였다. 그러나 인제는 나도 세례교인이다.

나는 세례란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의기양양하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동네 부인이 사, 오인 와 있었다. 그들은 예배당에서 오는 길이라 모두 새 옷들을 입고 성경과 찬송가 보퉁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문의 누님이 예배당에 온 것이 반가와서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이 동네 동회장이언마는 아내가 예배당에를 아니 다니고 또 교제성이 없기 때문에 이사해 온 처음에는 더러 왔으나 차차 발이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우리 집에 와 있는 문의 누님이 동네 여편네들의 화제에 아니 올랐을 리가 없건마는 서로 가까이 할 기회가 없어서 소 닭 보듯 지내오다가 오늘 그가 예배당에 온 것을 기회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다 일어나서 대단히 공손히 경례를 하고 내가 오늘 세례를 받은 것을 치하하였다. 나는 그들과 지난 일년 동안 부엌에서도 만나고 안방에서도 만나서 부뚜막을 깨끗이 하라, 욧깃을 빨아라 하도록 친숙한 처지이지마는, 오늘처럼 그들이 나를 반가와하고 공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이스라엘 족속인 그들에게 더욱 친근한 생각을 더한 것이었다. 나도 오늘부터는 이방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눈에는, 된 것이었다.

그날 저녁상을 받고 있을 때에 문의 누님은 돌연히 저도 예배당에 댕겨요?하고 마치 내 허락을 구하는 듯이 물었다. 댕기시지. 왜 예배당이 마음에 들어요?하고 나도 호의를 가지고 대답하였다. 어째 댕기고 싶어요. 세례도 받고 싶고요. 저 같은 것도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요?하고 문의 누님은 한숨을 지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실로 죄 없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럼 세례 받을 수 있지요. 왜요, 무슨 못 받을 까닭이 있어요?하고 나는 그가 지난 봄 나 때문에 생긴 일을 생각하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면목 없이 고개를 숙여서 그의 시선을 피하였다. 그래두.하고 문의 누님은 잠깐 주저하다가, 다들 좋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게 아냐요? 나 같은 거싱야.하고 진실로 저를 면목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이 시무룩한다.

나는 내가 그를 괴롭게 하는 원인이나 아닌가 하여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죄인을 부르신답니다. 세상 사람에 누구는 죄가 없겠어요마는 다들 제 죄를 모르고 저는 죄가 없다고 생각들 하고 있지요. ! 나는 죄인이다, 하고 가슴 아프게 뉘우치느 사람이야말로 예수의 제자라고 하였지요. 세례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까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예수의 피로 이 죄를 다 씻어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게 해 줍시오, 하는 것이어든요.하고 그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네에.하고 문의 누님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으나, 그다지 감복하는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내 말을 못 알아 들음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딴 주견이 있음인가.

몇 숟가락 말없이 밤을 먹다가 숭늉을 마시고 나서, 문의 누님은, 자기가 먹은 빈 그릇(나는 상에 받쳐 주고 자기는 방 바닥에 놓고 먹었다. 손에 먹는다는 것이다.)을 들고 나가기 좋게 포개 놓고 나서,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지요?하고 부끄러운 듯이 물었다. 그렇다고 그러지요.하고 나는 자신없이 대답하였다. 나는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명치 아니하거니와, 또 있다손 치더라도 없다손 치더라도 거기 대하여서는 별 흥미가 없었다. 천당이 정말 있어요?문의 누님은 무척 알고 싶은 눈이었다.

나는 내 성경 지식을 기울여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 나라, 아버지의 나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며, 하늘 나라에는 너희가 있을 자리가 많다 하신 것이며,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자리를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며, 하늘 나라에서는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 없나니라 하신 일이며, 예수께서 천사를 시켜서 나팔을 불리시고 다시 오실 때에는 산 자는 산 채로, 죽은 자는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서 예수의 심판을 받고 예수를 믿는 자는 하늘 나라로 끌려 오르고 예수를 아니 믿고 죄를 지은 자는 어두움 속에 떨어져 이를 갈고 울리라고 하신 것 등을 말하고, 끝으로는 내 의견으로, 아무러나 좋은 일 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데가 천당이요, 죄지은 자가 가는 데가 지옥일 것 아니야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이 말에도 그는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천당에서는 왜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가나요? 그럼 다들 처녀 총각으로 늙나요? 그러면 무슨 재미야요?하고 빙긋 웃는다. 시집가서 과부되고, 장가가서 마음에 없는 여편네 만나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숫제 시집 장가 안 가는 것이.하고 나도 웃었다. 시집가면 과부도 안 되고 장가 들면 마음에 드는 아내를 만나야 천당이지 무어야요?하고 문의 누님은 또 한 번 쓴 웃음을 웃는다. 소년과수인 문의 누님은 천당은 과부 안 되고 남편하고 재미나게 사는 나라였다.

아무려나 문의 누님은 빠지지 아니하고 예배당에 다니고 내가 준 신약 전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마태복음 첫 장부터 모조리 읽는 모양이어서 아브라함의 성이 아가냐 아부가냐라는둥,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다 과부였더냐, 왜 남편의 이름이 없느냐라는둥, 예수의 성에 관하여는 그 아버지의 성은 요가인데 왜 아들의 성은 예가가 되었느냐라는둥 포복 절도할 질문이 있었으나, 매우 열심히 읽는 모야잉었고 아내가 친정에서 돌아온 뒤로는 하루라도 선배인 문의 누님은 아내에게 아브라함의 성은 아가도 아니요 아브가도 아닌 것과, 그가 과부가 아니요 남자라는 것과 이러한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세례를 받은지 이틀 후 학교에서는 오후 학과를 쉬이고 새 교장 취임식이 있었다. 수선장이 백 선생은 얌전한 내 족형과 함께 취임 식장의 장식과 행사 절차를 마련하였다. 당시에 대 유행이던 만국기가 장내에 엑스 자로 늘여지고 정면에는 태극기는 걸 수 없고 일장기는 걸기가 싫어서 OO학교 교기를 달았다. 나는 초례청에 나갈 신랑모양으로 설레는 가슴과 나타나는 흥분을 억지로 감추면서 어제까지 내 처소이던 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날은 천기가 청명하여야 상서로울 터인데 처음에 바람에 불려서 비가 오다가 나중에는 눈으로 변하였다. 이왕이면 비보다는 논이 내 취임식에 합당할 것 같았다.

교주는 날더러 모닝을 입으라 하였으나 모닝은커녕 내게는 보통 양복도 없었다. 아무러기로 고등학교 단추를 단 제복을 입고 교장 취임식에 임할 수도 없어서 나는 조선 옷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문의 누님이 다듬어서 지어준 시양목 바지저고리에 흰 명주 두루마기였다. 내가 아직도 조부의 승중상을 벗지 못한 것은 독자에게 알리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상제녀석이 못할 짓 없이 다 했기 때문이다. <교장! 나는 오늘 교장이 된다. 아니 사실로는 벌써 교장이 되었다.> 하며 기뻐하지 아니할 양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 앉아 있어도 자꾸만 입이 벙싯거려서 담벼락이 부끄러웠다. <? 대인답지 못한 일이로군.> 하고 스스로 책망하고 억제해 보아도 효력이 없었다. <아직 시간이 안 됐나?> 하고 나는 수없이 시계를 빼어 보았다. 가난한 내가 은시계를 차게 된 것은 이 학교 덕이었다. 교주가 신임과 신혼 축하로 이 시계를 사다 준 것이었다. 그것이 작년 봄인데 나는 벌써 교장으로 취임할 시간을 이 시계로 보게 된 것이다. <교장이 되면 교장답게 언행을 해야할 텐데.> 하고 나는 취임식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장다우려면 첫째로 점잖아야 할 것인데 이 점잔이란 것이 내게는 딱 질색이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거나 스스러운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면 나도 곧잘 점잔을 빼지마는, 그것도 잠시 동안이지 한 시간을 참기가 어렵다. 그놈의 점잔만 아니면 교장 노릇은 힘들지 아니할 것 같았다. 만일 점잔이란 것이 교장의 자격이라면 아마 정 선생이 우리 중에서는 고작일 것이다. 오웬 교주도 점잖다. 그는 빙그레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도 틀지고 무겁고 점잖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늘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점잔하고 싶은 것은 벌써부터지마는, 그것이 하늘에 오르기처럼 어려웠다. 나는 얼마나 내 처 육촌을 부러워하였는가. 그는 젊은 사람이지마는 참 점잖았다. 나는 장난꾼까지는 아니지마는 어째 무게가 없었다. 그러나 인제는 교장이다. 설마 두 시 취임식을 십여 분 앞에 두고 그 동안에 무슨 변화가 생겨서 내 교장이 틀어질 리야 있으랴. 그러면 나는 벌써 이 학교 교장이다. 교장이라면 이 학교의 어른이다. 아무리 성 선생이 아버지 아니가 되고 박 선생이 노형 뻘이 넘더라도 그들은 오늘부터 내 부하다. 목사로는 내가 그의 부하라 하겠지마는. 그렇다 하면 나는 성 선생보다도 점잔해야 한다. 이것이 딱 질색이었다. 한 목사의 점잖은 조금도 무섭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하느님 은혜로라는 말을 많이 쓰고 선교사의 조선 말조로 말을 느리게만 하면 된다. 그러나 성 선생의 점잖음은 그의 바위와 같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죽은 듯이 고요함에 있다. 이것을 따라가기는 나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점잔을 빼려면 내 마음이 부동심에 되면 몰라도 그렇게 되기 전에는 점잔을 꾸며야 할 텐데 이것이 나에게는 딱 질색이란 말이다. 대문 열면 안방이란 말로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을 형용하거니와, 나는 대문 없는 안방이요, 좀 기쁘거나 성나거나 한 때면 사벽 없는 안방이었다. 슬프고 기쁜 체, 있고도 없는 체, 소위 일흔 두 가지 체 중에 내가 가진 것은 단 두 가지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모르고도 아는 체, 못나고도 잘난 체였다. 이따금 나는 잘하고도 못한 체하는 변덕이 있었다. 이 체들을 잘 발달시키면 일흔 두 가지 체가 다 나오겠지마는 체를 꾸미자면 힘이 들고 숨이 차서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내가 발명해 낸 말이 있다. 아회는 아회답게라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내가 생긴 대로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장으로는 그럴 수는 없었다. 점잔해야 하겠다. 이것을 생각하면 교장이 된다는 기쁨이 갑자기 반은 감해지고 한숨이 나왔다.

종이 울었다. 학교의 종이 아니라 예배당으로 모이라는 종이다. 교장 취임식은 OO학교의 일만이 아니요, 교회 전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교장 취임식에 아무쪼록 손님이 많이 모여서 내 영광을 돕기를 바랐으나 갑자기 하는 일이라, 웬걸 많이 모이랴 하였다. 교장 선생, 식장으로 들어갑시다.하고 백 선생이 내 방 문을 열고 빙글빙글하였다. 나는 급작스레 태연 무심한 점잔을 꾸몄다. 벌써 시간이요?하고 아주 대수롭지 아니한 듯이 먹던 담배를 다 태우고, 대님을 고쳐 매고 귀찮은 청이나 받은 것처럼 한 번 길게 한숨을 쉬고 일어나 두루마기를 떼어 입었다. 교장이 되기도 전에 벌써 꾸미는 재주가 놀라웁게 진보한 것을 자 스스로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아이구, 어서 나오우. 웬 거드름이요?! 백 선생은 벌써 내 속을 들여다 본 것이었다. 틀렸다! 내 얕은 꾀로는 꾸미기는 어림도 없다, 하고 나는 분주히 신발을 신고 따라 나섰다. 성 선생, 박 선생, 족형, 그리고 맨 뒤에 오 선생이 제가 교장이 못되어서 섭섭한 얼굴로 되지 못하게 시치미를 떼고 따랐다.

식장인 예배당은 그만하면 신문 기자가 있었더면 인산 인해에 입추의 여지도 없다고 할 만큼 모였다. 문의 누님도 보였다. 무척 반가왔다. 곧 그 곁으로 뛰어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잠간 그를 바라보고는 점잔을 꾸몄다.

나는 백 선생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은 모두 새 교장인 나를 우러러보는 것 같고 부인네 교인들까지도 오늘은 특별히 나를 우러러보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런 것은 염두에도 아니 두노라 하고 눈을 반쯤 감고 잔뜩 점잔을 빼었다.

이윽고 교주가 군수와 헌병 분대장을 이끌고 참석하였다. 장난꾼 군수는 점잖은 내 손을 잡아 흔들며 일본말로, 요오, 오메데토오.하였다.

찬미, 기도, 성경 낭독이 순서대로 지나가고, 직원, 생도 일동 기립.하는 체조 우 선생의 구령에 늙은 성 선생, 변덕 백 선생, 익살 박 선생, 얌전 족형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고 아마 성경 교사요, 학교 이사의 자격을 인식함인지 한 목사도 일어났다.

오웬 교수는 황제의 대관식을 가아마는 대승정의 위엄으로 나를 단 앞에 불러 세워 놓고 떨리도록 엄숙한 음성으로, 김 도경 선생, 학교 직원회에서 선거되고 본교회 당회에서 승인하였으니, 나 설립자의 이름으로 OO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요.하고 선언한 후에 내게 교장의 사령장을 준다. 나는 약간 고개를 숙여서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았다.

오웬 교주는 다시, 김 도경 선생, 이제부터 이 학교 교장되셨으니, 직원, 생도, 다 그 지도 받고 명령 복종할 것이요. 권위! 나라에나 학교에나 집에나 권위 필요한 것이요. 권위, Authority 서지 아니하면 단체 생활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권위 서는 법 어떠한고 하면 그 단체에 있는 모든 사람 권위 가진 자 존경하고, 복종하고, 사랑하는 데서 섭니다. 조선 동포 권위 관념 많이 가질 필요 있습니다 민주주의 투표로 한 번 선거하면 선거 받은 자 나와 평등될 수 없습니다. 그는 내 지도자, 나는 그에게 복종하는 자 되어야만 나라 될 수 있고 학교 될 수 있습니다. 권위 복종 아니하는 사람 애국자 될 수 없고, 학교 사랑하는 사람 될 수 도무지 없습니다.

, 김 도경 교장 좋은 교장 되실 줄 믿고, 학교 직원, 생도 여러분 김 교장 지도 잘 순종할 줄 믿고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김 교장 선생 하느님 은혜와 성신의 도우심 받으시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한 목사님 기도 인도 하실 것이요.하고 한 목사를 돌아본다.

한 목사는 일어나서 교주가 섰던 자리에 나와 축복 기도하는 모양으로 두 손을 앞으로 높이 들면서, 사랑하는 부형 모매님, 우리 김 교장님 위하여 다 같이 기도 올립시다하고 긴 기도를 올린다. 그 중에 나를 교훈하는 듯한 구절도 있었으나 대체로 오웬 교주의 말의 주지와 같은 기도를 올렸다. 나를 미워하는 구절은 물론 하나도 없고, 우우리가 사아랑하고 고옹경하는 교오장 김 도경 선생께 푸웅성한 으은혜 베에프시와.이 모양으로 내게 호의를 가진 기도를 하여서 나도 만족하였다.

다음에 내가 교장으로서의 간단한 취임사가 있게 되었다. 나는 대 연설을 하고 싶었으나 군수와 분대장의 축사도 있을 것 같고 또 신랑이나 신부가 첫날에 말 많은 것이 흉이 되는 모양으로 새 교장도 침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러나 한 마디도 아니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웬 교주는 내게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우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혜와 오웬 교주의 지도와 직원 여러분의 협력으로 맡은 직책을 다하려 합니다. 손님 여러분과 교회 여러분도 이 어린 교장을 잘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이것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이 인사말이 매우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다 한다. 백 선생은 직원실에서 여러 직원 앞에서, 교장 취임사는 참 명연설이야. 간단한 중에도 할 말은 다 들었거든.하고 칭찬하였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았다. 전 같으면 한 마디 더 우스개 대꾸를 놓을 것이지마는 교장의 체면을 지키노라고 들을 막하고 말았다.

식이 끝난 뒤에는 간단한 축하회가 있었다. 그것은 떡과 국과 차였다.

교주가 나를 존경하는 뜻을 보이고, 군수가 나와 절친하고 분대장이 굉장히 나를 칭찬하는 축사를 하여서 나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올랐다. 나는 정말 잘난 사람인 것 같았다.

좋은 일이 생길 때에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큰 배를 안고 돌아와 있었다. 처형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 하여서 들르고 쌀이랑, 콩이랑, 녹두랑, 참깨랑, 참기름이랑 섬으로, 자루로 오고 떡과 술과 닭 삶은 것도 와 있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모두 엇어온 것이었다. 아내는 싱글벙글 기뻐하였다. 그것은 내가 잘난 사람이어서 교장이 된 때문은 아니었고 먹을 것을 이렇게 숱하게 얻어온 것이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된 것이었다. 이거 어디 둘 데가 있어야지, 광이 있나 무엇이 있나?하고 잘 사는 친정에 오래 있다가 이 오막살이에 오니 쌀섬, 콩섬을 들여놓을 데도 없는 것이 속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듣기에 좀 거북하였으나 내가 교장이 되었다는 것으로 뻣뻣하게 버틸 수가 있었다. 나는, 집이란 좁은 때가 좋은 거야. 큰 집에 둘 것이 없는 것이 걱정이지.하고 웃고 낯 좋은 말로 점잔을 빼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정말 높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내심에는 불쾌한 것이 있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물건을 얻어오는 것도 창피스럽거니와, 교장의 주택이 이렇게 초라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처형의 집도 기와집이란 말을 들었다. 그가 우리 집을 보고 입을 삐쭉할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가 만일 내가 교장인 것과 기실은 교장보다도 더 큰, 대단히 큰 인물인 줄을 알아준다면 조그만 이 집도 수치 될 것이 없지마는 처형의 눈에는 기와집과 노적가리가 보일 뿐이요, 인격이나 식견을 알아볼 까닭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마는 나중에 아내의 입으로 처가에서 대단히 나를 큰 인물로 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좀 든든하였다. 처가 족속들이 나를 크게 보는 까닭은 내가 군수와 분대장과 친하다는 것이니 그 군수와 분대장이 가버리면 나는 끈떨어진 망석중이가 되는 것이었다. 처형이 나를 존경한다면 그것도 군수와 분대장 때문일 것이다.

아내도 처형도 오니 우리 집은 전에 없이 북적북적하였다. 그들은 내 생일을 차린다 칭하고 처가에서 얻어온 물건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여편네가 셋이나 모이니 별 것을 다 만들었다. 거만한 처형은 시어머니나 된 듯이 모든 것을 지휘만 하고 저는 영 부엌에는 안 내려갔다. 문의 누님과 아내만이 며느리 모양으로 종 모양으로 들락날락하였다. 아내는 무엇을 제 마음대로 해 보려고 앙탈도 하였으나 번번히 처형에게 눌려서 뾰로통하였다. 그는 문의 누님을 좋아하지마는 친형과는 아니 맞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무엇을 주장하면 처형은, 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니? 미련퉁이 소리 말아!하고 쏘아 주었다. 나는 이모가 어머니를 미련퉁이라고 부르던 것을 생각하고 여자 형제란 다 저런가 하였다. 아마 처형이 친정에 와서 모든 것을 주장하려 들고 좋은 것은 집어가려 드는 것을 아내는 평소에 눈꼴 틀리게 보아온 것이 맞지 않는 원인인 것 같았다. 처형은 아내를 책망하고 나서는 나를 보고, 저게 무얼 알아요? 천동 벌거숭이죠. 게다가 심술은 있답니다. 아재도 속이 상하실 게야요.하고 나를 위로하는 것인지 빈정대는 것인지 모를 소리를 하였다. 마치 제게다가 살림을 맡기면 잘 하겠건마는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마는 잘하거나 못하거나 내 집 살림은 내 아내가 할 도리밖에 없다. 아무리 처형에게는 친 동기라 하더라도 그가 내 아내가 된 바에는 그를 바보니 미련퉁이니 하는 것은 실례라고 나는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불쾌하기로 말하면 처형이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불쾌하였다. 되지 못하게 건방지고 남을 제 밑에 내려누르려하였다. 나까지도 제 어린 철 없는 동생인 듯이 어려워함이 없었다. 나이로 말하면 나보다 칠, 팔년이나 장이지마는 그래도 나는 대장부요 제게 비기면 큰 인물이요, 큰 어른이어든 나를 휘두르려는 것은 괘씸한 일이었다. 허기는 접때에도 내가 처가에 갔을 때에도 닭을 잡고 술을 받아다 주었고 이번에도 닭 두 마리와 소주 한 병과 꿀 한 항아리를 갖다가 준 것은 처형이라, 그만하면 내게 호의를 가졌다고도 할 만하지마는 그래도 나는 처형이 싫었다. 어디가 싫은가, 다 싫지마는 더구나 그 눈이 싫었다. 그의 눈은 얼른 보면 사람의 마음을 끄는 눈이었다. 검고 큰 눈이지마는 웃을 때에는 어여뻤다. 그래도 그 눈은 항상 무엇을 찾는 눈이요 무심한 눈이 아니었다. 내 방에를 들어오더라도 무슨 비밀을 찾는 모양으로 그 눈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아니하였다. 고개도 가만히 있고 눈알도 굴리지 아니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엇을 찾는 것 같아서 대해 앉으면 안심이 아니 되고 꺼림칙 하였다. <스파이 눈이다!> 나는 여러 번 이렇게 속으로 노였다. 문의 누님의 눈은 호수 모양으로 고요하였다. 구름이나 새나 적은 벌레까지도 다 분명히 비추이지마는 그것을 탐내지도 아니하고 싫어도 아니하고 더구나 찾는 일이 없는 눈이었다. 그러한 눈과 마주 앉으면 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고 따뜻하였다. 그런데 처형의 눈은 사람을 안절부절을 못 하게 하는 눈이었다. 게다가 그 눈 속에는 거만이 있고 빈정거림이 있고 욕심이 있고 독이 있었다. <, 고약한 눈이다. 그의 서방이 밤낮으로 저 눈앞에 있었으니 아니 죽을 수가 없다.> 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그의 눈과 아내의 눈을 비교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아내의 눈은 무엇에 놀랐거나 무엇을 잊어버린 눈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아무 것도 못 가진 눈, 비긴다면 송아지 눈과 같은 눈이어서 둔할지는 몰라도 독하거나 욕심 사나운 눈은 아니었다. 그의 성질도 그 눈과 같았다. 어째서 동복 형제가 이처럼 다를까. 혹은 아내도 나잇살 먹어가면 독이 나오고 욕심이 나와서 처형의 눈과 같아질까. 두 사람의 눈에는 다 장인의 모습이 있기는 있었다.

처형은 대단히 뻔뻔스러웠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잘 내 자리를 깔고 내 방에 누워 있었다. 이것이 예에 어그러지고 버릇없는 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내 옷을 받아 걸고 감히 내 손을 만졌다. 주무시오?이런 소리를 하였다. 괜찮아요.하고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아랫방에서는 문의 누님과 아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 , 아재 돌아오셨다. 약주라도 한 잔 데어 드리려므나. 점잖으신 남편 섬기는 법이 그렇지 않다.하고 또 시어미 노릇을 한다.

내 눈에는 장지를 격하여 아내의 삐쭉하는 입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 귀찮은 형의 명령에 아니 복종할 수는 없다.

처형이 와 있는 동안에는 문의 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내 곁에 올 기회가 없었다. 처형은 나를 제 소유물로 아는 모양이어서 내가 졸려서 짜증을 낼 때까지도 내 방에 있었다. 그는 나를 한가한 사람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 주일에 사십여 시간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인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떤 밤에는, 나는 처형이야 있거나 말거나 잊고 자리에 누워버린다. 어서 아랫방으로 내려가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곧 일어나 나갈 염치 있는 처형은 아니었다. 그는 내 다리를 주무르고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서 내 발을 주무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씩둑꺽둑 수다를 늘어놓는다. 저는 어린 동생을 만지는 체하나, 내가 어린 동생의 남편이 될지언정 그의 어린 동생이 될 리는 없다. 그와 나와는 당연히 내외를 하여야 옳다. , 상것 같으니!하고 나는 그를 멸시하여 그가 무슨 소리를 하여도 못 들은 체한다. 그런 집과 혼인할 내가 아니라던 말이 생각켜서 불쾌하였다. 원 이럴 수가 있나. 고약한 것!나는 발길로 그를 탁 차버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소위 행세한다는 집 젊은 과부다. 과부가 된 지 삼, 사년이라니 마음대로 이성의 살에 접촉할 수 없는 그는, 동생의 집에 와서 동생의 눈총을 맞으면서 동생의 남편 발이라도 좀 만져서 그의 이성에 대한 굶주림을 만족코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쌍한 생각도 난다. 버선만이라도 벗고 그의 떨리는 손이 직접 내 발의 살이라도 만지게 해 주고도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면, 그의 눈에는 젖은 빛이 있어 술 취한 사람의 눈과 같았다. 나는 이불 속에 감추었던 손 하나를 내어서 그의 앞에 던졌다. 그는 두 손으로 덤뻑 내 손을 잡고 내 손등 위에 그의 이마를 대고 비비다가 차차 눈을 비비고 코를 비비고 나중에 입을 비볐다. 손등에 닿는 그의 입김이 불과 같았었다. 언니 안 자우?하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어서 내 남편의 곁을 떠나서 아랫방으로 내려오란 말이다. , 잘 테야 아재 다리 좀 밟아드리노라고.하고는 처형은 머쓱해서 내 손을 이불 밑으로 밀어넣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이때만은 그의 눈에 스파이와 같은 무엇을 찾는 야릇한 빛은 없고 그는 잠시 한 여성에 돌아와 있었다.

어서 갔으면, 하는 처형은 좀체로 갈 생각을 아니하고 문의 누님이 집에를 가보고 오는 주일에 온다고 하고 가고 말았다.

처형이 우리 집에 온 일이란 것은, 그 시집 재산의 일부를 내가 샀다는 형식으로 내 이름으로 돌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낳은 아들이 그 집의 상속자니 그럴 필요가 없지 아니하냐고 내가 말하였더니, 그는 그래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산이 없으면, 만일 아들이 죽기라도 한 뒤에는 제가 어떻게 사느냐 하였다. 외아들이 죽기를 바랄 어미는 세상에 없겠지마는, 그것이 죽은 뒤에 혼자 살 준비를 한다는 어미의 마음이란 것도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줄리엣도 열다섯살에 벌써 후일 걱정을 하고 후일 마련을 하였다 하거니와, 여자란 타산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처형은 요모조모로 생각한 끝에 내라는 위인이 그 중에 욕심이 없어서 믿고 재산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기는 내게 이런 청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왔다가, 나와 가까이 하는 데서 만일이라도 남성에 접촉하는 쾌감을 맛보자는 것이었다. 아이, 언니가 왜 안가?나하고 단 둘이 된 경우에 아내는 이렇게 짜증을 내었다. 인제 가실 테지, 언제까지나 계시겠소?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난 언니더러 가라고 할 테요. 언니가 집에 있으면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아요. 아이, 난 언니 싫어.하고 눈물까지 떨운다. 앗어 형제 아니야, 여러 형제도 아니고 단 두 형젠데. 그렇게 생각해 쓰나. 어서 가시는 날까지는 좋은 낯으로 대하시오. 만일 언니가 내 방에는 와 있는 것이 싫거든 내 며칠 동안 학교에 가 있고 집에는 밥먹으러만 오리다. 그래서 그러는 게면.하였더니, 누가 그래서 그런대요. 언니는 제 생각만 하고 남의 생각은 안하니깐 그러지요. 저 언니 오우.하고 아내는 눈물을 씻고 일어난다. 아무리 둔하고 못난 아내라도 여자가 되기에 필요한 총명과 감수성은 다 갖추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형제 간에, 한편에서는 멸시하고, 다른 편에서는 미워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일이 있는 것이 슬펐다. 친정 재산에 관한 새암이 없고 처형이 과부만 아니런들 이런 불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켰다.

처형은 그후도 사흘이나 동생이 주는 미운 밥을 먹고 하루에 이, 삼분씩 내 다리와 발을 만지고 손을 입으로 비비다가 떠나버렸다. 처형이 떠날 때에는 아내는 섭섭하다고 울고 날더러 데려다 주고 오라고 졸랐다. 나는 이 불길한 처형이 집을 떠나는 것이 기뻤으나 그를 데려다 주기는 싫었다. 그의 집에 가면 또 무슨 불길한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의 말과 같이 젊은 부인네를 사, 오십리 길을 혼자 보낸다는 것도 인사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가 꼭 내가 형을 데려다 주어야 한다고 우기는 심리를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당일에는 못 돌아올 길이니. 처형의 집에서 자고 온다는 것이 그 동안의 아내의 심리로 보아서는 의심쩍고 불쾌할 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의 누님을 청해다 놓고 처형을 다리고 집을 떠났다. 처형은 남편의 거상은 벗었건마는 여전하게 소복이었다. 머리에도 흰 수건을 쓰고 진솔 버선에 고운 짚신을 신었다.

길은 반 이상은 산 길이었다. 입동 추위를 하느라고 바람이 대단히 매왔다. 처형의 흰 얼굴은 까무스름하게 얼었다. 배오개라는 주막 거리가 우리가 낮잠을 할 곳이어서 여기를 지나면 술을 파는 집은 한두 곳 있지마는, 떡이나 국수나 더운 점심이나를 사 먹을 데는 없었다.

우리는 마치 처가에 가는 내외 모양으로 둘이서 주막집을 골라 들었다. 안손님이 오고 또 의복이 정한 것을 보고 주인은 우리를 안방으로 안내하였다. 침침하고 냄새나는 방이나 구들은 더웠다. 그러고는 치마도 아니 입은 주인 마누라가 들어와서 방에 들어놓은 것을 주섬주섬 치우고 까맣게 때묻고 군데군데 헝겊으로 기운 돗자리를 내어 앉았다. 어디를 가시우, 이 추운데.하고 주인 마누라는 벽에 걸렸던 치마를 떼어서 입는다. 여울모루 가요. 친정에 갔다가 오는 길이외다.하고 처형은 위에 입었던 양피 덧저고리를 벗어 놓는다. 아이마니나, 여울모루문 이제도 삼십 리가 되는데 저무시겠네, 서방님도 아씨도 잘들도 나셨소. 정말 그림 속에 신랑 신부 같구먼. 애기는 아직 없으시우?이 마누라가 꼭 우리를 부부로 보는 모양이었다. 하나 있어요. 할머니 모시고 집에 있어요.처형은 굳이 부부가 아니라고 발명을 아니할뿐더러, 과부라고 보이기보다는 젊은 남편의 아내라고 남이 보아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애기도 엄마 아빠 닮아서 잘나셨겠지. 나도 아들놈이 살았으믄 꼭 서방님만할 텐데.하고 마누라는 추연해진다. 꿩 없어요?처형은 마누라의 추연한 기색을 깨뜨리기나 하려는 듯이 새 말을 꺼낸다. 꿩 없어요. 아까까지는 한 마리 있었는데. , 안됐구만. 닭은 있지요. 암놈도 있고 수놈도 있고. 잘 처먹어서 통통하게 살이 쪘다우. 닭을 한 놈 잡을까요. 돼지 고기도 좀 남았어.마누라는 죽은 아들 생각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럼 닭을 한 마리 잡아주셔요. 국수허구, 소주 한 병허구.처형은 이렇게 서슴치 않고 명하였다. 그는 뜻하지 아니하는 동안에 과부의 태를 드러낸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젊은 아씨면 남편 앞에서 이렇게 나대지를 못할 것이다.

더운 방에서 몸이 녹으니 방이 좀 훤해졌다. 담벼락에 해묵은 빈대 피도 눈에 뜨이고 파리 똥으로 장식을 한 듯한 장롱도 보였다. 방 윗목에는 커다란 독 둘이 누더기에 싸여 있으니, 이것은 술독이 분명하였고 꼭 봉해놓은 항아리 옆에는 소주 잔이 나란히 놓인 술상이 있었다. 점잖다고 보는 손님이 오면 이 방에 들여앉히고 술을 파는 모양이었다. 요강, 타구, 재떨이, 장죽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이 집 주인은 아마 개화하기 전 읍내에서 꽤 들날리던 관속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주인마누라는 학창 시절에는 금먹고 은먹던 기생으로서 허위대 좋고 돈냥 있는 아전과 함께 되어서 갖은 호강을 다 하다가 세월이 뒤집히니 주막장이가 된 모양이었다. 주인 영감이 무엇을 가지러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내 생각이 맞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백발 동안에 아직도 풍류 남아이던 자취가 있었다.

처형은 벼르고 벼르던 이런 기회를 십분 이용하려는 듯 하였다. 그의 눈에는 스파이 같은 빛이 아주 사라지고 오라비 앞에 있는 어린 누이의 눈과 같은 아무 거리낌도 없는 눈으로 마음 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그와에 관하여서는 이렇게 단둘이 있을 기회라고는 아마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의 눈에서 그 무엇을 찾는 빛만 떼어놓으면 그는 아름답고 다정한 여성이었다. 더구나 오래 남편의 정에 굶주린 그가 누르고 참았던 애정을 마음 놓고 탁 터놓으면 그 힘이 어떠한 것인가 오직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물론 그는 야비한 모양은 안 보였다. 그는 외면으로는 어디까지나 아우의 남편에게 대한 처형의 태도를 잃지 아니하였다. 그의 말하는 말은 애정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자기의 재산에 관한 정, 친정 어린 오라비에 대한 염려 또 문의 누님이 불쌍하다는 이야기, 시집 사정과 자기를 넘보는 일가들 이야기 이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언제나 모든 것을 나만 믿는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의 말에 남녀의 애정을 암시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내 동생은 참 팔자가 좋아요. 아재 같으신 남편이 계시니. 아재께서는 동생이 부족하시겠지마는. 그래도 잘 귀애 해 주셔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 속에 일어나는 소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아니 보려도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 속의 소리를 전하는 것은 그의 혀가 아니요 눈이었다. 그리고 그의 숨소리였다. 나는 그가 애써서 감추는 불길이 그의 살과 옷을 뚫고 나와서 내 몸에 닿는 것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이때에 그의 기갈을 채울 것은 오직 남편을 주는 것이었다. 남편만 준다면 아마 그가 그렇게도 탐내는 재물도 아낌없이 내어던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편을 가지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단순히 우리 사회의 인습에 얽매우는 것이라면 그만이어니와,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인습이 오래 묵어면 양심이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콩콩 냄새를 맞는 습관이 코를 이룸과 마찬가지다. 남편이 죽어도 재가를 못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이미 양심이 되고 말아서 이것을 반항한다는 것은 양심의 세계에서 뛰어나간다는 것과 같다. 그래 재가한 여자는 지위가 뚝 떨어져서 그 자신만이 행세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양첩의 몸에서 난 서자 이하로 천하여진다. 지금은 과거는 없지마는 옛날에는 재가한 계집이 난 자식은 과거를 보기를 허하지 아니하였으니, 오늘날 말로 하면 공민권을 잃는 것이다. 처형이 재가하기가 이래서 어려운 것이었다. 재가할 수 없는 경우에 우리 여성들이 취하는 길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남편을 따라서 죽는 것이요, 둘째는 이성에 대한 욕망을 죽여버리고 수절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승이 되는 것이었다. 요새 같으면 세상을 위하는 사업에 몸을 바치는 일도 있다. 그런데 처형은 남편을 따라서 죽을 기회도 놓쳤다. 그것은 남편의 대상날이다. 그가 남편의 혈육인 아들이 있으니, 남편을 따라서 죽는 것보다도 아들을 길러서 남편의 뒤를 잇게 하는 것이 더 옳은 길이었다. 처형은 그 길을 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달리 건강한 육체와 치열한 애욕을 타고났고 이것을 누르는 공부가 없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정열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할텐데 재산을 탐내는 것이 그 하나이지마는, 재산은 그에게 애욕의 대신이 못될뿐더러, 재산으로 인하여 그가 부요하고 한가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의 정욕을 왕성하게 하는 근본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에게 남편을 못 줄 바에는 종교적 신앙 같은 정신 생활을 주거나, 온종일 몸이 피곤하여서 누우면 잠이 들 노역을 주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악의 악식으로 몸을 쇠하게 하거나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목말라하는 양을 보면, 자 마음대로 하시오.하고 내 몸을 그에게 내어 던져 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건지는 길이 못 될뿐더러,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소금물을 먹이는 것과 같아서 먹을 때에는 시원할지 몰라도 그 뒤에는 전보다도 더욱 목이 탈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성경을 읽어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편안한 마음을 얻으라고 권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첫째로 처형은 그런 정신적인 것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육체적이었다. 이 점으로는 문의 누님과 달랐다. 문의 누님은 남만 못지 아니한 정신적인 욕망도 갖춰 타고난 사람이다. 그러나 처형은 이 점으로는 불구자였다. 그에게는 오직 현실이 있고 육체가 있고 물질이 있을 뿐이었다.

술이 들어오고 국수가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마셔도 술이 취하지 아니하고 국수를 먹어도 그 맛을 몰랐다. 제 머리 꽁지로 제 머리를 동여맨 수염 난 총각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수물을 가져다 놓고 음충맞게 씩 웃고 나가며 수심가 가락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이것을 보고 나도 웃고 처형도 웃었다. 그렇게 웃고 나니 꿈에서 깬 것처럼 한결 마음이 가뿐하였다. 자 인제 갑시다.하고 내가 먼저 일어났다. .하고 처형은 일어나서 벽을 향하고 돌아서서 매무새를 고칠 겸 은전 일원박이 두 푼을 꺼내어서 나를 주었다. 음식 값을 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덧저고리를 쳐들고 그에게 입혀 줄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상긋 웃고 내가 입히는 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내 두루마기 깃을 바로 세워 주고 고름을 고쳐 주었다. 자 가셔요.이번에는 처형이 재촉하였다.

우리는 국수집 문을 나섰다. 그 총각의 소리가 우리의 뒤를 따랐다-

어떤 사람은 야

팔자가 좋아서 어,

장독 같은 색시를,

껴안고 자는데 에,

이놈의 팔자는, ,

무르팍을 안고서,

새우잠을 자누나아랑,

차마 진정, 네 모양 그리워 서,

나 못 사리로다.

나는 킥킥 소리를 내어 웃었다. 처형도 내 어깨에 잠간 이마를 대고 웃었다.

이로부터 앞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걸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와 같았다. 나는 앞서고 그는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따랐다. 길이 넓으면 나와 가지런히 서서 걸었다. 이제는 어린 동생을 내려보는 듯한 처형이 아니요 손윗사람을 우러러보는 듯한 그였다. 무슨 말이나 묻고는 내가 하는 대답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나는 거기서 모든 잡념 (욕심, 의심, 교만 같은)을 떠나 순수한 여성을 보았다. 칠팔년이나 위인 그가 서너 살 손아래인 것 같았다. 주막집에 들 때까지는, 그가 나를 데리고 왔으나 거기서 나와서부터는 내가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살얼음 지핀 강을 내가 그를 업어서 건널 때에도 아무 거드름이나 꾸밈 없이 가장 천연스러웠다. 내가 빨갛게 언 다리와 발을 닦고 말리우는 동안에 때 버선을 자기의 품에 넣어서 녹이는 것도 부자연하지 아니하고 내가 대님을 닿치기도 전에 내가 졌던 그의 짐을 제 머리에 이고 훨훨 앞서서 가는 것도 도리어 믿고 사랑함을 표하는 것 같아서 나로 하여금 빙그레 웃게 하였다.

그의 집에 가서는 그는 수줍고 내외성 있는 며느리였다. 내게 대해서도 고개를 소긋하거나 외면하고 말하였다 이튿날 내가 떠날 때에 그는 대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로 인사할 뿐이었다. 그는 그가 친정에서 보이던 말괄량이도 아니요, 장사꾼 같이 욕심이 그뜩 찬 여편네도 아니었다. 또 그는 눈으로 입으로 불 같은 정열을 뿜던 정욕에 주린 젊은 과부도 아니었다. 그는 예절다운 며느리였다.

나는 어제 둘이 오던 길을 혼자 돌아오면서 생각하였다- <아아, 사람은 배우라.>

 

明 暗 (아홉째 이야기)

 

스무 살 적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그러나 내가 인생 바다에 나뜨는 시작이기 때문에 신통치 아니한 일 같으면서도 다 내 일생에는 요긴한 원인이 되고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 내 일생의 이야기를 말하는 데는 빼어 놓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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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이야기는, 내 싹트는 애욕의 번뇌의 계속인 동시에 개인으로서 또는 민족의 산 사람으로서 저를 완성해보려는 어린 노력의- 오히려 어린 노력의 실패의 기록일 것이다. 아직 청춘기의 폭풍우 철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마는 무서운 저기압의 앞발이 내 눈앞에 번득이기 시작하는 때였다.

내가 세례를 받고 교장이 되었다는 것은 내게는 큰일이었다. 세례라는 것이 머리 위에 물 몇 방울 떨어뜨린 것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그것은 대단히 큰 맹세였다. 천지의 주재자인 하느님 앞에, 여러 사람들의 앞에 나는 이러한 일은 아니하오리다, 저러한 일만 하오리다 하는 단단한 약속이었다. 나는 이것을 지켜서 고대로 실행하여 보리라는 엄청난 결심을 새로 하였다. 술도 담배도 입에 아니 대리라. 마음에 음란한 생각을 품지 아니하리라. 남을 미워하지 아니하리라. 남을 어리석다 아니하리라. 예수께서 나는 섬기러 세상에 왔고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로다.하신 것을 나도 그대로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더구나 내가 톨스토이에게서 받은 무저항주의의 정신은 그것이 내 소년시대의 일이니 만큼 상당히 깊이 내 인격에 뿌리를 박았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달라거든 주고 주고도 받으려 말라.이런 것은 아직 고대로 실행은 못하여도 내게는 거의 의문 없는 진리였다.

혹은 내가 원체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무저항주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또 우리 민족의 역사가 너무도 개인 싸움, 당파 싸움에 찬 것이 지긋지긋하여서 내가 무저항주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닭싸움에 흥미를 가지고 내 닭이 지는 것을 성화하는 것을 보던 내 피 속에도 싸우는 본능이 노상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도 하려고만 하면, 칼을 들고 전장에 나아가서 죽이고 죽고 할 용기가 있는 것도 같다. 그러고보면 나는 역시 사랑의 원리의 진리성을 사모하여서 무저항주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뽐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네 왜 한 목사를 미워하느냐.하고 여러분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무안하여 붉은 낯을 못 들고, 아직 수양이 부족하여서 그렇소. 그러나 두고 보시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세례를 받고 교장이 되어서부터는 사랑의 사도라 하기에 한 점의 허물도 없게 하리라 하고 굳게굳게 작정한 것이었다.

나는 교장이 되면서 기숙사의 한 방을 내 방으로 정하고 자는 것까지도 거기서 하는 때가 많게 되었다. 내 책상뿐 아니라 이부자리도 그 방에 차려 놓았다. 나는 학교를 위하여서 전생명을 바칠 결심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기로 작정하면 앞뒤를 재일 줄을 모르고 부리나케 하는 성미였다. 게다가 신앙에 뿌리를 박은 생활을 하게 되니 좌고우면할 것이 없었다. 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생각도 버렸다. 내 집살림만 아니라 학교의 경비 같은 것도 나는 참견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서무와 회계를 맡은 이에게 맡겨 버리고 통 아랑곳을 아니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교장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본무였다. 관청에 교섭하는 것이 그때의 사립 학교로는 크기도 하고 번잡도 한 일이지마는, 그것은 그런 일을 즐겨하는 백 선생께 맡기고, 학부형이나 일반 사회에 대하여는 다만 학생을 지도하는 일만을 맡아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보면 성 선생이 교장이요, 관청에서 보면 백 선생이 교장이요, 오직 학생들에게만 내가 교장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이 학교의 두 장로격인 성, 백 두 분 선생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이렇게 한 것은 아니요, 다만 내가 해보지 아니한 일- 관청 교섭이라든지 학부형이나 기타 일반 사회에 대한 교제라든지는 귀찮아서 두 분께 맡긴 것이언마는, 의외에도 그 결과가 처음에는 매우 좋았다. 첫째로는 성, 백 두 분이 매우 만족하였고, 둘째로는 젊은 교장의 처사가 대단히 솜씨가 있다고 모두들 칭찬하였다. 이것이 비록 정말 내가 수완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도로 내가 못나서 한 일이언마는 솜씨가 있다는 칭찬은 듣기가 싫지 아니하였다. 내가 과연 솜씨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고 다소 우쭐하였다. 그러나 까닭 없는 헛칭찬이 오래 갈 리가 없어서 자칫 이것이 내가 무능하다는 공격의 자료가 되었다는 것은 훨씬 뒤에야 알았다.

아무려나 교장으로 취임한 시초에는 내가 환영을 받았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더구나 나날이 열도를 가하여가는, 교육에 대한 내 헌신적인 정성과 활동은 장난꾼 아니녀석들에게까지 인식을 받았다.

나는 궂은 날이나 마른 날이나 새벽 기상종을 쳤다. 이것은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을 깨우는 종이다. 이것은 사감인 체조 우 선생이 할 일이지마는 원체 몸이 건강한 그는 늦잠의 버릇이 있었다. 나는 그의 직무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기상종을 치는 것이 교장이란 것을 아는 이는, 처음에는 오직 우 선생뿐이었다. 새벽 단잠에 취한 학생들은 아직 이불 속에서 꿈을 꿀 때이기 때문이다. 높은 외기둥 종각에 달린 종은 내가 줄을 잡아당기는 대로 땡땡 울었다. 아직 먼 데 사람도 아니 보이는 새벽 고요한 산촌에 울리는 종소리는 처량하였다. 나는 젊은 시인의 감정을 품고 삼천리, 이천만의 모든 동포들을 염하면서 처음에는 하나둘 치고, 다음에는 열셋을 연하여서 치고, 다음에는 스물을 연하여 치고, 맨 나중에 하나를 쳐서 끊었다. 한 민족, 십삼도 이천만이 다 깨고 일어나란 것이다.

나는 종을 칠 때에는 벌써 찬물에 소제를 하고 아침기도와 성경 읽기를 끝낸 뒤였었다.

종 치기가 끝나면 기숙사 방 문틀이 열리고 아회들의 기운 차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반갑고 기뻤다.

나는, 다음에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서 이날 아침모임에 학생에게 줄 말을 생각하였다. 그것을 거기 합당한 성경 한 절과 아울러서 강당 철판에 똑똑히 써 놓았다. 이 짧은 글은 학생들이 베꼈다. 하로 한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선생들과 꼭 같이 교수 시간을 맡았다. 그리고 밤에는 여전히 야학하고, 동회하고, 그리고 밤 늦게 학교에 돌아오면 겨울이면 기숙사의 아궁이 보살피고, 여름 밤이면 어린 학생들 배 내는 것 덮어 주고 그리고 나서야 내 방에 돌아왔다.

방에 돌아와서는 등불을 대하여 그날 일기를 쓰고 내일 학과 가르칠 것을 준비하고 그리고는 반성하는 명상을 하고 저녁 기도를 올리고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누우면 팔, 다리가 쑤시고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과로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과로를 자랑으로 알았다. 나는 민족을 위하여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저를 대견하게 생각하였다. 이것이 교만한 마음이어서 마땅히 떼어버려야 할 것이라고는 아직 생각할 줄을 몰랐고 또 이렇게 과로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휘뚜루 하는 것이 몸을 위해서나 일을 위해서 옳지 못한 줄도 몰랐다.

한 겨울이 이 모양으로 났다. 내 몸은 퍽 수척하였으나 내 명성은 많이 올랐다. 항상 빈정대는 농담을 하는 백 선생도 눈에 뜨이도록 내게 경의를 표하였고, 평소에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이 없는 족형도 나를 보고 학교가 잘 되어 가고 학생들도 지나간 반년 동안에 딴 사람들이 되었다고 말하고 몸을 아끼라고도 말하였다. 동회 남녀 회원들도 참으로 극진히 나를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한 목사도 근래에는 나를 이단자로 대우하는 빛이 없어지고 삼일 예배에만 아니라 주일날 강도까지도 가끔 부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내 정성스러운 노력은 십이분으로 갚아짐이 되었다.

나는 참으로 성자가 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이 모양으로 내 생명이 있는 날까지 계속하리라고 결심하고 기도하였다. 내게 자만심이 생기는 것은 큰 병이어니와, 지금 생각하여도 분명히 그때의 내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은 생활이었다. 오늘의 내 인격에 조금이라도 취할 점이 있다고 하면 그 기초는 분명히 이때에 생긴 것이었다. 나는 그때에는 완전히 라는 생각을 잊고 내 몸을 잊었었다. 항상 나를 괴롭게 하던 애욕도 거의 잊어버리게 되었다. 나는 하루 몇 번 씩 집에 들려서 문의 누님을 대하였거니와, 평심서기도 할 수가 있었다. 문의 누님은 거의 내 의복, 음식 전부를 맡아 하고 있었거니와, 혈속의 남매와 같이 서로 다정하면서도 서로 맑은 마음으로 존경할 수가 있었다. 그는 진실한 예수 교인이 되었다. 재주 있는 그는 곧 성경 지식이 풍부하게 되어서 구약까지도 읽었다. 그는 교회에서도 칭찬을 받았다.

나는 다시는 그러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과연 내 신앙의 힘으로 그러하였던가, 내 몸이 바쁘고 피곤한 것이 원인이었던가, 또는 세상에서 성자와 같은 대우를 받으려는 허영심으로 그리하였던가, 아무려나 만일 이러한 생활을 오래 두고 계속만 한다면 나는 필경은 그러한 사람이 되고야 말았을 것이다.

겨울 방학이 되어서 학생들은 집으로들 돌아갔다. 나는 먼 지방에서 온 굵직굵직한 학생 이삼인을 데리고 전도 여행을 떠났다. 방학 동안을 그냥 보내기가 황송하였던 것이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며 예수 믿기를 권하고 동회를 세울 것과 청결을 시행할 것과 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한 고을에 학교가 한 두 곳 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큰 일이요 드문 일이었다. 이렇게 새 문화를 모르는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새 정신을 고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첫째로 머리를 깎고 샤뽀(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이 농촌 백성들에게 외국 사람과 같은 생각을 주었다.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일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까지도 싫어하고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우리 전도대가 처음으로 어떤 모르는 동네에 들어가면 어른들은 슬슬 피하고 아이들은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며 까치걸음으로 달아났다. 그러다가 우리가 누구인 줄을 안 뒤에야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머리를 깎았다는 것은 일본 사람이면 무섭고 한국 사람이면 밉거나 천하였다. 그건 왜 그런고 하니 머리를 깎은 한국 사람이라면 중이거나 천주 학장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동학장이 곧 일진 회원이기 때문이었다. 중 중 까까중.이라면 아이들이 볼기짝 장구를 치면서 놀려 먹는 소리였다.

이러한 동네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기실은 까까중이 구경으로 모여 오는 것이다.), 머리들을 깎읍시다. 개명한 나라 사람들은 다 머리를 깎았고 또 머리를 깎으면 위생에 좋습니다.하고 머리를 깎기를 권하면, 그들의 빈정대는 대답은 대개 일치하였으니, 우리네야 명색 없는 사람이 머리를 깎아서 무엇해.하는 것쯤은 점잖은 편이요, , 우리네같이 개구리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녀석이 대가리를 깎으면 개구리가 몰라보지 않느냐 말야.하는 것은 익살꾼의 말이요, 우리는 머리를 깎고 싶지만 부모가 계시니 할 수 있나. 그래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머리나 풀어 드려야 아니하겠나.하는 것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얌전한 사람의 진정이었다. 머리를 깎고는 풀 머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떠꺼머리 총각더러 머리를 깎으라면, 상투도 한 번 못 틀어 보고 어떻게 깎느냐고 한탄하였다.

이 모양으로 머리를 못 깎을 이유가 많아서 좀체로 우리의 권유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기는 더욱 힘이 들었다. 예수를 믿어서 병이 낫는다거나 돈이 생긴다면 다들 믿을 모양이었다. 그건 믿어 무엇하누?하는 그들의 생각을 깨뜨리기는 심히 어려웠다. 목숨이나 재물이 는다기 전에는 아무 요구도 그들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하느님이라는 귀신은 천상 천하에 가장 힘있는 신장님이어서 이 어른을 모시면 다른 귀신이 범접을 못하고, 이 어른께 정성으로 빌면 무슨 소원이나 다 이루어질뿐더러 죽어서는 천당이라고 하는 아주 편안한 곳에 태어난다, 고 하는 설명에 가장 그들은 솔깃하는 모양이었으나 한문 공부를 한 사람들은 좀처럼 이 말을 믿지 아니하였고 또 천생 신앙심이 없고 꾀가 발달된 사람들은, 그래,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나? 누구 본 사람이 있나?하거나, 또는 좀 더 놀리는 어조로, 당신 외아들이 찔려 죽는 것도 어떻게 할 힘이 없는 하나님이 무슨 힘으로 우리를 돕겠나? 하나님은 하나님 일 하시라고 가만 두고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하세.하면 좌중은 모두 갈채하였다.

이 모양으로 우리의 전도는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우리의 전도를 듣는 그들은 마치 모두 만족하여서 아무 것도 더 구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구하는 것이 없는 자에게는 아무 것도 줄 수가 없었다.

이에 나는 전도의 방침을 고쳤다. 나는 예수께서 천한 사람들을 고르신 것을 기억하였다. 천하고 슬퍼하는 자야말로 우리의 전도의 대상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고을에서 가장 천한 촌락 둘을 골랐다. 하나는 광대골이요 하나는 개무덤이었다. 광대골이란 것은 그 이름과 같이 광대들이 사는 동네였다. 우리는 먼저 광대골로 향하였다.

광대골은 앞고개라는 고개 밑 좁은 골짜기에 소복이 모여 있는 이십호 가량 되는 동네였다. 앞고개라는 것은 옛날 고려적 고을의 앞고개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최씨 한 성으로서 아마 고려적부터 오백년 이상 이곳에 사는 모양이었다. 본래는 번성한 읍내를 일터로 삼고 광대들이 여기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줄타기와 재주넘기와 이러한 재주로 관가나 사가의 연회에 불렸고 그 아낙네들은 바디, 참빗, 황화 등속을 이고 지고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이러한 아낙네들을 사람들은 자인이라고 불렀다. 아마 장인(匠人)이란 뜻인가 한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하대를 받았다. 물건은 현금으로 파는 일은 드물고 외상으로 놓았다가 가을에 쌀, , , 깨 같은 것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광대가 재인이나 의복에 특별히 다름은 없으나 그 얼굴은 도시인같이 말쑥하고, 옷맵시도 바느질 솜씨도 좋았다. 어머니들은 그것을 천태가 있다고 하면서도 부러워하였다.

이러한 재인네 중에는 특별히 말솜씨가 있고 교제가 능한 사람도 있어서 중매도 하는 모양이었다. 동네마다 집집마다 안 가는 데가 없음으로 어느 집에는 아들이 몇, 딸이 몇, 그 나이는 얼마 얼굴은 어떻고, 침선 방적의 솜씨는 어떠하며, 그 집 인품이 좋고 나쁜 것, 안방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다는 것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나도 어려서 어머니와 재인네가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이 모양으로 나는 광대골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인 것을 어려서부터도 알았건마는 한 번도 그 동네에 들어가 본 일은 없었다. 이 사람들은 호적도 없고 구실도 안 내는 극히 천한 사람들이라고 알았을 뿐이었다. 내가 다니던 글방에 싱민이라는 광대골 아이 하나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은 큰 사건이었다. 선생이 돈을 많이 받아 먹고 들인 것이라고 일시 비난이 자자하였으나 쫓아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고 얼굴도 깨끗하고 옷도 우리들보다 좋은 것을 입었었으나 우리들과는 따로 저 맨 윗목에 혼자 앉히워 있었다. 선생이 나가시고 없으면 우리들은 싱민이를 못 견디게 굴었다. 재주를 넘으란는둥, 거꾸로 서라는 둥, 바지를 벗어보라는 둥, 이렇게 우리들이 명령을 하면 그는 울면서도 하라는 대로 하였다. 우리들 중에는 능백이라는 떠꺼머리 총각녀석이 있어서 이군이 그중 싱민이를 못 견디게 굴었다. 싱민이는 선생님께 이른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이르는 일은 없었다.

싱민이가 장가를 들어서 상투를 틀고 오게 되었다. 관을 못 쓰기 때문에 상제 모양으로 가는 베로 두건 같은 것을 쓰고 왔다. 그러나 싱민이가 장가 들 때에 음식을 많이 가져와서 우리가 다 잘 얻어 먹었기 때문에 우리는 싱민이를 놀려 먹는 것을 적이 완화하였다.

싱민이 아버지는 참 허우대가 좋았다. 그는 재주도 잘 하거니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고 순범이라면 소문 난 광대였다. 그는 가끔 글방에 찾아왔다. 올 때면 선생님과 우리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왓으나 방에 들어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의관이 화려하였으나 뜰에서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였고 혹시 추운 날 방에 들어앉으라고 강권하여서 들어오는 일이 있으면 윗목에 잠깐 쭈그리고 앉을 뿐이었다.

나는 광대골에 싱민이를 찾기로 하였다. 음력 정초 지독히 추운 날이었다. 나는 혼자서 앞고개를 넘어서 광대골 동네 앞에 섰다. 나는, 하느님 이 동네 천대 받는 무리에게 복을 주소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의 빛을 받게 하시옵소서. 여러 백 년 불쌍하던 이 무리가 하느님의 빛으로 높이 들리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주의 뜻에 합당한가 하나이다. 어리석은 이 몸에 성신의 권능을 부어 주시와 이 불쌍한 형제와 자매들께 진리를 전하는 큰 일을 이루게 하시옵소서.이렇게 기도를 올리고 얼어붙은 개울을 건넜다. 울긋불긋 설빔한 아이들이 서넛 파랗게 얼어서 핑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어느 집이 싱민이 집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누구 물어볼 어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 사람들은 부지런도 하고 넉넉도 한 모양이었다. 집들은 다 크지 아니한 초가일망정 지붕이나 울타리나 모두 가뜬하게 손질이 되어 있었다. 지나간 십년 간에 변한 것은 이 동네가 농촌으로 변한 것이었다. 세상이 변하여서 인제는 줄타기나 춤추는 것으로 벌어 먹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양반 계급의 몰락은 곧 광대의 몰락도 되었다. 옛날 같으면 뉘가 대과를 하여서 도문을 한다거나 양반 집에 환갑연이 있다거나 할 때가 광대들이 수나는 때이지마는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지금은 벼 한 말, 깨 한 되라도 제 손으로 벌어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백년 붓끝 같은 손을 가지고 살아오던 그들도 손에 굳은 살이 박히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기생충적 존재로부터 당당하게 독립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지마는 그래도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는 그들에게 상당한 불안을 주었을 것이다. 몸에 가벼운 옷을 입고 비교적 안한한 생활에 멋들어지게 사는 습관을 가진 계급으로서 갑자기 지게를 지고 김을 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양반 계급이 농민과 노동자로 떨어진 것과 다름이 없는 혁명적인 고초를 그들도 당하였을 것이었다.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동네에 들어왔다는 것이 알려진 모양이어서 코 흘리는 아이녀석들이 모여들고 팔짱 낀 젊은 패들도 먼 발치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내 눈에 비추인 것은 관을 쓴 어린 신랑이 이삼 인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서운 것이나 보는 듯이 주춤주춤 내게로 가까이 왔다. 나는 그들이 모두 예수를 믿고 학교와 예배당에 오게 되기를 속으로 빌면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동포여.하고 소리 없이 불렀다.

개들이 짖었다.

담대한 아이녀석 하나가 까치걸음으로 내가 섰는 곳에 오더니 우뚝 서서 고개를 번쩍 들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멀끔하게 잘 생긴 아이였다. 그나 긴 머리를 기름까지 발라서 댕기를 드려서 땋아 늘이고 초록 저고리에 다홍 돌띠를 둘렀다.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네 성이 무에냐.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 아이에게 물었다. 최가.하고 그 아이는 여전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뉘 집 아들이냐.하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모른다는 뜻인지, 그런 부질 없는 소리는 왜 묻느냐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너의 집이 어디?하고 그의 어깨에 내 손을 얹었더니 그는 무엇이 무서웠는지 쏜살같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 녀석은 다른 아이들이 모여 섰는 곳까지 가서는 우습다는 듯이 하하하하 하고 나를 향하고 웃었다. 나도 부끄러운 듯 픽 웃었다. 내 호의가 그들에게 통하지 아니하고 그의 눈에 나는 우스운 괴물이었던 모양이다.

이 사건에 흥미가 생긴 양하여 어떤 키 큰, 관 쓴 사람이 내게로 가까이 왔다. 나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도 내 얼굴을 바라보앗다. 싱민이었다. (나는 싱민이라고 무슨 글자를 쓰는지 몰랐다. 아마 승민이거나 식민인지도 모른다.) 이거 얼마 만이오?하고 나는 그의 팔을 잡으면서, 나를 모르시겠소? 내가 도경이야.하고 나는 발음이 확실치 아니한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꺼려서 내 이름만을 불렀다. , 이거 웬 일이시오?하고 싱민이도 내 팔을 붙들며, 김 선생이 학교에 와 계시단 말씀은 들었지마는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그런데 웬 일이셔?하고 그는 옛날 계급을 아주 파탈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어서 극 존칭의 경어를 쓴다. 나는 그것이 미안하였다. 형을 찾아 온 길야. 우리가 동문 수학한 죽마고우가 아니오? 그래 춘부장 안녕하시오?나는 아무쪼록 그와 평교로서의 우정을 보였다. 글방에 같이 다닐 적에도 싱민이와 나와 이렇게 정답게 이야기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그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그의 집이 이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인 것은 전부터 알았었지마는 이렇게까지 잘 사는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사랑에는 툇마루까지 있고 주련까지 붙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도배나 장판이나 다 깨끗한 품이 근래에 점점 재산이 느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전에는 돈을 두고도 남을 꺼려서 집치레를 못하다가 이제 양반의 세력이 없어지니 마음 놓고 잘 살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었던 내 눈이 녹는 대로 나는 이 집 사랑이 화려한 것을 더욱 더욱 발견하였다. 아랫목에 산수병을 두르고 이런 시골서는 볼 수 없는 모본단 보료까지 깔았다. 문갑이며, 연상이며, 놋재떨이, 요강이며, 마상에서 썼다는 가죽으로 손잡이 한 연합까지도 있었다. 하릴없이 옛날 들날리는 양반집 사랑이었다. 자 이리 앉으시오.관을 쓴 싱민군이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도 턱 자리가 잡혀서 마치 대대로 이런 생활에는 익숙한 것 같았다.

나는 주인석을 피하여서 푸근한 보료 위에 앉았다. 나는 실로 이러한 좋은 자리에 앉아본 일이 흔치 못하였다. 춘부장 안녕하시오?하는 내 인사에 그는, 잠깐 기다리시오.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아버지를 청해 올 생각인가 하였다. 나는 싱민군의 아버지가 오면 일어나서 절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어찌해서 절을 아니할 것이냐. 그는 나보다 수십 년이나 연장자가 아니냐. 사람에 높낮이가 있을 리가 없다. 다 같이 하느님의 자녀요, 다 같이 단군의 자손이 아니냐. 나많은 자는 형이요, 어린 자는 아우다. 덕이 높거나 공이 큰 이는 특별히 존경할 법 하되,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것은 일체 타파할 것이다, 하는 것이 그때의 새 사상이었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일 같지마는 그 시절에는 이런 사상은 극히 희한하고 위험한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혹 신풍조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이러한 사상을 말은 하여도 그것을 몸소 실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서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나는 싱민군 아버지에게 절할 것을 생각하고 무슨 크게 좋은 일을 얘기하는 사람 모양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윽고 안으로 통한 문이 열리며 싱민의 아버지 순범이 나타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탕건을 쓰고 있었다. 순범은 방에 들어와 주인 자리를 피하고 나와 대면하면서 옛날 버릇으로 허리를 굽히는 것을 나는 민망히 여겨서, 이리 앉으시지요.하고 주인의 자리로 그의 소매를 끌었으나 그는 굳이 사양하고 섰던 자리에 앉았다. 싱민이도 들어와서 그 아버지보다 한 자리 뒤에 떨어져서 앉았다. 나는 그제야 순범을 향하여 절하였다. 순범은 황망히 일어나 답배하였다. 그는 분명히 내 절을 의외로 알았던 것이었다. 그는 절을 하고 앉으며, 이거, , 무슨 망발이십니까. 어디 절이 당하오니까. 소인네가 대대로 서방님 댁을 상전으로 섬겨 왔사온데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기로니 어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황송한 일이 없습니다.하고 그는 그 좋은 구변으로 우리 집 조상 적 이야기를 털어놓고 우리 선인들이 남달리 인후하였다고 칭찬하였다. 승지 영감께서 어떠하고, 사간 나리께서 어떠하고, 생원님이 어떠하고, 이 모양으로 그는 우리 대소가의 일을 말하였다. 나도 모르는 말도 있었거니와, 듣기에 일변 거북하나 일변 기쁘기도 하였다. 더구나 싱민이 하나를 유일한 인연으로 알고 찾아 왔던 나에게는 이 집과 내 집과 그처럼 인연이 깊다는 것이 다행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술상이 나왔다. 술도 먹음직스럽고 안주도 좋았으나 나는 사양하였다. 떡국은 먹었다. 설 음식이 아직도 남은 모양이었다.

순범은 여러 집에 기별을 한 모양이어서 늙은 사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내가 어른들을 보고 일어 절을 하면 젊은 사람들은 모두 내게 절을 하였다. 아이녀석들까지도 와서 내게 절을 하였다. 나를 대단히 반가운 큰 손님으로 대우하는 빛이 분명하였다.

그들의 화제의 중심은 우리 집 칭찬이었다. 더구나 창흡이라는 노인은 순범이보다도 우리 집을 잘 알았고, 우리 집만 아니라 이 고을에 과거장이나 한 집안 일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창흡 노인도 풍신이 좋았다. 더구나 그 말하는 솜씨는 유창하고도 점잖았다. 그들은 광대라는 천한 계급에만 태어나지 않았더면 정승 판서라도 하였을 것 같았다. 얼굴이 번듯하고, 눈이 어글어글하고 콧마루가 우뚝 서고, 창흡이나 순범은 참으로 잘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냐. 무슨 까닭으로 그들은 천하였느냐.

나는 젊은 정열에 그들이 대대로 받아 온 천대와 학대에 대하여 격렬한 분격을 느꼈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들에게 새 문화의 빛을 주어서 수백년 눌려 온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고 싶었다. 그들의 슬픔은 내 슬픔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전에 못하던 것을 이제 와서 하느라고, 남들이 이미 쓰다 버린 관을 쓰는 것이 가엾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였다.

나는 순범 부자의 친절한 문류를 받아서 그집에서 묵기로 하였다. 발도 뜨뜻하고 금침도 정결하였지마는 나는 좀체로 잠이 들지 못하였다. 어떤 모양으로 내 전도의 목적을 말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것이었다. 그들 역시 현재의 생활에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못 쓰던 관을 쓰는 것으로 마치 그들의 불행한 날이 다 지나간 것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만족한 사람에게는 도가 들어갈 수 없다. 불만이야말로 도에 드는 첫 자격이다. 내가 전도의 목적을 달하자면 먼저 그들의 잘못된 만족을 지적하여 이것을 깨뜨리는 것이 필요하였다. 우리 학교의 이 교주가 그러하였던 모양으로 다만 천한 것을 면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이 크게 귀하게 되는 것으로 목표를 삼도록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하여야 할 것이었다. 나는 밤중에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정성스러운 기도를 올렸다. 이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서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고 내게 하느님의 권능을 내려 이 동네 형제와 자매의 영혼을 깨우치게 하여 달라는 기도였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그 집 안방에서 상을 받았다. 이것은 친족 대우였다. 밤에는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깔았다. 밥상도 큰 손님의 상으로 차린 것이었다.

대문간에나 방에나 여러 가지 귀신을 위하는 형식이 보였다. 구가에는 어디서나 보는 일이지마는 지극히 천한 대우를 받는 그들이 더욱 귀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용이히 상상할 수가 있었다. 나도 어려서 재인이 소금을 보고 또 신비한 예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무당도 그들의 직업 중에 하나인 것같이 나는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글공부하는 계급이 아닌 그들은 한문 문화의 영향을 받음이 적어서 우리 나라 옛날의 법을 가장 많이 지켜 오는 것이었다. 쇠니, 돌이니, 바위니 하는 이름부터도 한문 냄새 아니 나는 우리 나라 법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광대라는 그 직업부터가 옛날옛날의 우리 민족적 종교이던 해 숭배의 신관이 아니냐. 광대의 모든 재주- 풍류, , 재주넘기는 무당의 푸념, 굿거리와 아울러 신께 바치는 제물이었다. 기생도 마찬가지다. 한족의 문물 제도를 숭상하고 우리 것을 천하게 여기게 됨을 따라서 고신도의 행사가 없어지면서 광대, 무당, 기생의 일이 천하게 된 것이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높던 언덕을 흩어 낮추기도 하고 낮던 곳에 흙을 모아 높게 하기도 한다. 역사의 흐름은 끊임없이 새로운 높은 계급을 만들었다가는 어느덧에 그것을 가장 천한 계급으로 떨어뜨려 놓는 장난꾼이다. 한 나라 한 민족에도 성쇠와 부침이 있는 것과 같이 한 사람, 한 집에도 그러하다. 이제 가장 높은 지위를 누리던 자가 오늘 벌써 사형대에 이슬이 되지 아니하는가. 광대골 최씨네도 그럴 것이다. 그들이 고려 적에 한때 가장 세력이 있던 최 충헌(崔忠獻)의 자손일는지도 모른다. 또는 고구려나 신라에서 더욱 들날리던 집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순범이나 창흡의 헐헐한 풍신을 볼 때에 더욱 그들의 비범한 혈통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인연으로 비록 수십 대 수백 년 간 하천한 고초를 겪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에는 어떤 위대한 것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의 자손 중에서 어떠한 큰인물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 하면 내가 그들에게 새 문화와 새 진리를 전하려는 것이 더욱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성으로 주는 조반 대접을 받고 사랑에 나오니 벌써 사람들이 가뜩 모여 있었다. 정초의 한가한 때도 때여니와, 서울도 보고 일본도 보았다는 내라는 손님에게서 무슨 새 소리를 들어 보려는 호기심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 묻는 말은 대개 유치한 말이었다. 일본에도 해와 달이 있느냐, 하나씩이냐, 둘씩이냐 하여서 우리나라와 같다고 하면 그들은 신통한 듯이 웃었다. 날더러 일본 가서 무슨 공부를 하였느냐고 묻기에 중학교를 줄업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다 못 마치고 왔다고 대답하였더니, 거기서 배운 것이 무슨 재주냐고 잼처 물을 때에는 나는 말이 막혔다. 생각하면 아무 재주도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릴없이, 영어랑, 수학이랑, 지리랑, 역사랑 이러한 학과의 이름을 주워대었다. 물론 그들은 그러한 공부가 다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몰랐다. 생원님은 일본 말은 잘 하시겠군요?하는 어떤 젊은 사람이 묻는 말에 싱민이가, 아 일본 말이야 일본 사람보다도 잘하시지. 양국 말도 잘하시는데.하고 나를 대신하여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내가 공부가 용하면 왜 벼슬을 아니하고 이 시골에 묻혔느냐 하는 것은 어디를 가도 받는 질문이어니와, 여기서도 받았다. 우리 동포가 원하는 것이 첫째로 벼슬이요, 둘째로 벼슬이요, 셋째로도 벼슬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옛날로 말하면 벼슬만 하면 돈은 저절로 있었다. 원이나 두어 고을 다니면 탐관오리 소리를 아니 듣더라도, 만인산을 받으면서라도 기와집간, 볏섬거리는 생겼었다. 이러니깐 아들을 낳으면 소원이 벼슬이었다. 돈을 모아도 벼슬을 하여서 지은 기와집과 모은 재산은 대접을 받아도 농, , 공으로 된 것은 천대를 받았다.

이렇게 벼슬을 좋아하는 기풍에서 벼슬을 사고 팔고 하는 일이 생겼고, 이것이 흔 층 더 발달(?) 하여서도 차함이라 하여서 벼슬 이름만을 사고 파는 일까지 생겼다. 이조 말엽에 막 싸구려로 팔리던 진사, 주사, 참봉, 의관 같은 것은 그중에도 유명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장(한 자리라고 아니하고 한 장이라고 하였다. 사실상 돈 주고 사 오는 것은 인 찍힌 종이 한 장이기 때문이었다.)에 백원, 이백원 하던 것이 나중에는 생산 과다의 법칙에 의하여 이원, 삼원에 폭락하였다. 그 중에는 물론 위조도 있을 것이다. 싱민이 아버지의 탕건도 아마 그렇게 산 것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산 벼슬도 나으리니 영감이니 남들이 불러 주었고 탕건도 쓰고 옥관자도 달 수가 있었다. 죽으면 명정이나 신주에 통정대부행중추원의관(通政大夫行中樞院議官) 운운의 직함을 고일 수가 있었고 택호까지도 무슨 참봉 댁, 아무 의관 댁이라고 부를 수가 있었다. 싱민이 집도 인제는 적어도 최참봉 댁쯤은 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였으나, 이 지방에서는 그렇게 불러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 가여웠다. 그러나 타관에 여행을 하면 뻐젓하게 최 참봉 나으리나 혹은 최 의관 영감일 것이라고 또 불러졌을 것이다.

이때에는 벌써 우리 나라 벼슬은 없어지고 일본 사람이 와서 만들어 놓은 도장관이니, 군수, 군서기, 경부 같은 새 벼슬이 행세를 하였다. 그 누구라는 자는 헌병 보조원을 하였다고 해서 일가문 중에서 소를 잡고 도문언을 하였다. 군서기도 소학교 선생도 관리면 모자에 금줄을 두르고 허리에 칼을 찼다. 이 벼슬이 하고 싶어서들 모두 침을 흘렸다. 나도 사립학교 교장이 아니었더면 모자에 금줄을 둘이나 두르고 금장식한 멋들어진 칼을 찼을 것이요, 그러기만 했으면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언마는 불행히도 나는 벼슬을 못 하였다. 나는 제깐에는 당당한 중학교 교장이언마는 관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민간에서는 나를 공립 보통학교 훈도보다도 낮게 알아주었다. 나는 속으로 섭섭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였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직 애국지사라 하여 헌병대와 경찰에게 미움을 받는 한 계급과 예수 교인들만이 사립학교 직원을 존경하였다. 이 계급에서는 관리 되는 것을 수치로 알고 나와 같은 사립학교 직원을 지사라고 존경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계급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제가 대접받기를 위하여서라도 애국자와 예수 교인을 많이 늘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도 여행에서 나는 이 일이 용이한 일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민중이란 추세하는 동물이었다. 먹을 것 있고 세력 있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민중의 본능이었다.

나는 광대골서 이틀이나 묵었건마는 예수를 믿는다는 자도, 아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자도 하나도 얻지 못하였다. 예수를 믿는 데 대하여서는, 글세 부모 제사를 못한다니까.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에 대하여서는, 글이나 좀 더 읽혀 가지고.하는 것으로 방패막이를 하였다. 모처럼 쓰게 된 관을 벗기가 아까운 것이었다.

나는 그 동네를 떠날 때쯤 해서 싱민이를 보고, 글쎼, 남들이 다 내버린 관을 이제 와서 살 것이 무엇인가. 오는 세상에는 신학문을 공부한 사람이 양반일세.하고 박절한 말까지 하였다. 그래. 나도 그런 줄은 알지만, 어른들이 완고하시니까.싱민이는 이런 듣기 좋은 말로 어물어물하여버렸다. 일본 말을 가르쳐 준다면 사람들이 모일 거야.싱민이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내가 아는 일본 말을 뱉아 버리고 싶도록 동포의 무기력하고 비굴한 소갈머리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칠백 년(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쓴 이래) 래로 깊이 뿌리를 박은 사대 근성은 용이하게 빠지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 동네를 떠날 때에 싱민이는 앞고개턱까지 배웅해 주었다. 어렸을 적 동창의 정의는 역시 깊은 것이었다. 한 번 학교로 찾아오게. 그리고 내가 이틀 동안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나는 이렇게 말하고 그의 손을 잡았다.

이 날은 날이 음산하고 마른 눈이 서릿발 모양으로 풀풀 날리고 있었다. 위대한 영웅이나 사도의 결심을 가지고 광대골을 찾았던 나는 패군장과 같이 후줄근하게 풀이 죽어서 거기서 쫓겨 나온 것 같았다. 나는 기도를 해 볼 양으로 마루턱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았으나 기도 할 기운이 나지 아니하였다.

어리석은 나는 내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일어나고 학교가 생길 것 같은 자신을 가지고 전도 여행을 떠났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이십일 간의 나의 소득은 몸에 오른 보리알 같은 이뿐이었다. 나는 무슨 면목으로 학교로 돌아가나, 무슨 말로 한 목사나 다른 교인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탁 맥이 풀려서 걸음을 옮겨 놓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민중을 교화한다는 것이 어떻게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고 이 교주의 고심과 능력이 어떻게 위대하였던가를 탄복하였다. 세상 일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고 나는 몸에 소름이 끼침을 느꼈다. 나는 오웬 교주며 기타 선교사들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만리 타국에 와서 그 나라의 말을 배우고 그 민족의 풍속을 배워 가면서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전도와 의료와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피가 같은 동포도 아니요 문화가 같은 이웃도 아닌 나라, 그들이 보기에는 야만 미개한 백성들 중에서 말 잘 아니 듣고 빈정대는 자들에게 도를 전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그들의 심사, 그들의 신앙, 그들의 정열, 그들의 인내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저절로 고개가 숙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적이 마음이 놓였다. 한 이십일 수고를 가지고 무슨 효과를 바라랴. 이 모양으로 내가 늙어 죽도록 계속할 것이다. 또 지난 이십일에 내가 애쓴 것도 결코 헛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내가 뿌린 씨는 사람들의 마음에 떨어졌기는 하였을 것이다. 그 중에는 돌작밭에 떨어진 것도 있겠지마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씨들은 볕을 받고 누기를 채워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서 백 갑절 이백 갑절의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나는 새 기운을 얻어서 눈오는 산 속에 홀로 감사한 기도를 올릴 수가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극히 정갈하고 고요한 자리를 찾아서 거기서 실컷 내 죄를 참회하고 하느님께 정성된 기도를 올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이십여 일 전도 여행에 마음에 사욕이 줄고 거기 비례하여 동포에 대한 사랑이 느는 동시에 그들을 건져낼 힘이 부족함을 통절하게 느낀 까닭인 듯하였다.

나는 서벅서벅 소리나는 눈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산골짜기를 더듬어 올라갔다. 앞고개라는 것은 그리 높은 고개는 아니나 거기서 서쪽으로 올라가면 벼락바위라고 부르는 십여 길이나 되는 큰 바위가 있고 또 거기서 좀 더 올라가면 바다가 바라보이는 미력바위라는 높은 바위가 있었다. 벼락바위에는 동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굴이 있어서 거기는 호랑이가 산다고도 하고 귀신이 있다고도 하여 장난꾼 아니들도 그 옆에 가기를 싫어하고 미력바위는 날이 가물 때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어서 대단히 거룩한 곳으로 여겨서 사람들이 노구미 정성을 드리는 곳이었다. 나는 이 미력바위를 내 큰 기도의 처소로 택하려는 것이었다.

눈은 가루눈이던 것이 차차 함박눈으로 변하고 있었다. 뽀얗게 안개가 가리워서 천지가 온통 황혼 빛으로 변하였다. 나는 약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났으나 기어이 이것을 이기고 초지를 관철하려 하였다. 눈이 소복하게 덮인 잔 솔포기 밑에서 장끼 한 마리가 소리를 치고 날아났다. 내가 어릴 적에도 이 산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있었건마는 일아 전쟁 이후에 다 작벌이 되어서 지금은 골짜기에 오리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같은 것이 있을 뿐이요, 높은 데는 애솔포기, 떡갈, 가얌 떨기가 있을 뿐이었다.

미력바위 밑에서 조금 떨어져서는 성공 우물이라는 샘이 있었다. 바위틈에서 솟는 샘이언마는 그 밑에 작은 시내를 이룰 만큼 물이 많았다. 이 샘은 물 고이는 데가 이억이억 셋으로 되어 있어서 정성 드리러 오는 사람은 맨 밑의 물에 몸을 씻고, 가운데 물에는 제물을 씻고, 웃물은 밥물을 두거나 정안수를 바치는 것이었다. 물은 얼지 아니하여서 하얀 눈 속에 까만 눈동자 모양으로 고여 있었다. 옛날에는 미륵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하나 지금 집터도 분명치 않았고 오직 무너진 돌담 바탕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목욕을 하고 싶었으나 물을 풀 그릇이 없다는 핑계로 그만두고 세수와 양치만을 하였다. 귀와 손 끝이 끊어질 듯하고 이마와 뺨이 칼로 에이는 듯하였으나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모든 부정을 다 씻은 듯하여서 기뻤다. 나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의 마음으로 아무쪼록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이 흔들리지 말도록 조심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미륵바위를 향하여 올라갔다. 산마루터기가 가까워짐을 따라서 바람이 차차 세어졌다. 등성이에 눈이 안개와 같이 날려서 내 낯을 때리기도 하였다. 눈 보다 더욱 희여지게하는 찬미가 구절이 생각나는 것도 잡념이라 하여서 나는 그것을 물리쳤다.

마침내 나는 미륵바위가 솟아 있는 미륵봉 마루턱에 올라섰다. 문득 새 세계였다. 바람은 내 두루막 자락을 끊어져라 하고 날리고 흑흑 숨이 막히도록 공기는 찼다. 이따금 윽하고 내 몸을 통으로 집어 던질 듯한 바람이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불어서 지나갔다. 바다 있는 방향은 약간 훤할 뿐이요, 산인지 평지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한문 문자로 한다면 鴻濠이요 混沌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눈가루 하나에 지나지 못함을 느꼈다. 어떻게나 적은 나인고? 어떻게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고. 죄도 공도 붙을 나위 없는 미미한 나인 것을 이때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미륵바위가 강한 바람을 막아 주는 곳을 찾아서 솔가지를 꺾어 눈을 쓸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나는 기도를 시작하였다. 하나님!하고 불러 놓고는 나는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하나님!하고 부른 말을 반복하였다. 나는 모처럼 기도를 올린다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왜 기도하는 말이 나오지를 아니할까. 하나님은 죄로 더러운 내 입을 막으신 것인가. 나는 머리만 쭈뼛쭈뼛하였다.

가까스로 나는, 하나님! 이 죄인의 지인 죄를 용서하시옵소서.하고 외쳤다. 내 소리는 떨렸다. 이렇게 외치매 하느님은 나에게 제 죄를 보는 눈을 열어 주신 것 같았다. 하나님, 이 몸은 교만하옵고- 그러하옵나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공도 없으면서 형제를 어리석다 하고 제가 가장 잘난 체하는 교만한 죄인이옵나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겸손한 체를 꾸미고 온유한 가면을 쓰는 죄인이옵나이다.

이 모양으로 내 첫 참회는 나의 교만에 관하여서였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른다. 나는 저를 잘났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제가 교만하다고는 생각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첫 참회가 교만이었을까. 이것은 하느님이 내 가리워졌던 눈을 열어 주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과연 나는 교만함을 깨달았다. 한 목사는 우습게 천하게 보았고 성 선생, 백 선생, 박 선생 같은 이에 대하여서도 나는 나많은 이에 대한 존경을 겉으로 깍듯이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어리석게 생각하였던 것을 깨달았다. 참 의외였다. 이렇게 큰 제 허물을 어찌하면 지금까지 못 보고 지냈을까. 마귀가 내 눈을 가리웠던 것이라고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었다.

광대골 이틀에도 내 마음을 차지한 것은 교만이 아니었던가. 이 어리석은 무리, 이 천한 무리.하는 생각으로 나는 그들을 대하였던 것이 아닌가. 내가 순범이나 창흡에게 공손하게 절을 한 것도 교만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절을 하니 황감하게 알아라 하는 생각이 있지 아니하였던가. 더구나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여서 예수도 아니 믿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아니 보내려 할 때에, 나는 속으로, 괘씸한 것들, 내게 저희들께 절까지 하였거든, 하는 생각으로 반감을 품지 아니하였던가. 그렇다. 그것은 늙은 이를 부모로 알고 젊은 이를 형제로 여기는 도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이 그렇고야 어떻게 저들을 감동시킬 수가 있으랴.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무엇이길래하고 저를 돌아보았다. 내가 과거에 한 일과 현재에 마음속에 먹은 생각을 돌아볼 때에 나 자신의 적고, 더럽고, 건방지고 한 모양이 분명히 눈앞에 드러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내었는지 모르거니와, 내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심히 뜨거운 눈물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도 생각이 나고 조부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들에게 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한량없이 슬프고 걷잡을 수 없이 느끼었다. 하나님, 이 죄인을 건져 주시옵소서.하는 말을 반복하는 나는 마침내 소리를 내어서 엉엉 울었다. 하늘을 우러러보던 고개는 수그러져서 내 이마는 눈 덮인 바위 위에 닿았다. 나는 왜 우는지도 잊어버리고 몸을 들먹거리며 울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인 것도 같고, 제가 몹시 외로운 설움인 것도 같고, 동포를 건지려는 뜻은 있으나 힘이 없는 설움인 것도 같았으나 결국은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다.

나는 그로부터 십여 년을 지나서 금강산 영원동 개울 가운데 있는 바위등에 앉아서 이와 같은 설움을 경험한 일이 있었으나, 어떤 중이 보고 이것은 나의 전생 다생의 묵은 설움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전생 다생에 죄도 많고 원통한 일도 많을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 맑고 고요한 틈을 타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미륵바위의 설움도 그것일는지 모른다.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빌 것도 잊어버렸다. 내 혼이 온통 슬픔으로 녹아버린 것이었다.

내가 울음을 끊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천지가 온통 눈이 되어 있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모른다.

나는 몸이 추운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걸음을 옮기려 하였으나 다리가 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발에는 감각이 없었다. 머리가 쭈뼛하고 무서움이 생겼다. 내 몸은 언 것이었다.

나는 주먹으로 다리를 두들기고 발을 쳐서 겨우 감각을 회복하였다. 나는 어디 가까운 인가를 찾아 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가나 하고 생각한 끝에 이 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서 망우리 고개를 조금 내려가면 관음굴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던 것을 생각하였다. 어렸을 적에 몇 번 가 본 일이 있는 곳인데 거기를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울 것 같았다. 내게는 지금 더운 방이 필요하였다. 관음굴에를 가면 정갈하고 따뜻한 구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또 눈물로 씻은 몸이 갑자기 속된 곳으로 가기가 싫기도 하였다.

나는 어려서 가 보던 기억을 더듬어서 산마루를 타고 서북쪽으로 눈보라를 거슬러서 걸었다. 눈은 쉬지 않고 퍼부었다. 방향을 알기가 어려울뿐더러 높고 낮은 데를 가리기도 어려웠다. 땅과 허공을 분별하는 것도 때때로 불가능하여서 나는 우두커니 서서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눈에 홀린다는 말을 생각하고 무서웠다. 인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새 한 마리 보이지 아니하였다. 천지는 오직 고요하였다. 눈 덮인 지구 위에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는 나 하나 뿐인 것 같았다. 이 추운 천지 간에 따뜻한 것은 내 피뿐인 것 같았다. 이러한 속에 똑똑 뛰는 내 심장만이 무엇을 찾아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약하디 약한, 조막만한 심장은 얼어들어오는 추위에 못 이기어서 몇 걸음 안에 움직이기를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 왼편 젖가슴은 발락발락하였다. 그것이 내 심장이 아니요 무슨 다른 것인 것 같았다.

나는 소리를 질러보려 하였으나 입이 얼어서 소리가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나는 땅성냥을 켜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성냥 불만 보아도 몸이 녹고 또 정신이 반짝 들 것 같았다. 나는 곱은 손으로 조끼 주머니를 더듬어서 성냥갑을 꺼낼 수가 있었다. 나는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서 성냥을 그었다. 불그스레한 적은 불길이 일어났으나 바람에 담박 꺼지고 말았다. 불도 얼어죽었다고 생각하고 나는 성냥갑을 도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반짝하고 순식간에 꺼진 성냥개비 불은 그 가냘픔이 내 생명의 상징인 것 같았으나, 그래도 내 얼어붙으려는 생명에 무슨 자극을 주기는 주었다. 나는 한층 기운을 내어서 또 눈보라를 거슬러서 걸었다. <, 잠깐만 눈이 그쳐 주었으면 안 좋은가. 방향을 잠깐만 보았으면.> 나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졸리게만 되면 죽는다는데> 이러한 생각도 났다. 내 정신 작용도 분명히 얼어서 둔하게 되었다. 나는 몸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얼어 죽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나는 바람을 피하느라고 산마루터기에서 낮은 데로 내려가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내 잘못이었다. 나는 들쭉날쭉한 골짜기와 잡목 수풀 속에 들었다. 방향은 더욱 알 수 없고 걷기는 더욱 힘이 들었다. 거의 절망 상태에 빠진 나는 마침내 방향을 찾을 생각을 버리고 발이 있는 대로 갈 작정을 하였다. 자꾸 나려가노라면 어디나 인가 있는 데를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오직 걱정되는 것은 내가 내려가는 길이 병풍바위라는 절벽으로 행하는 것이었다. 병풍바위라는 것은 길다란 절벽이어서 거기는 솔개미와 독수리가 집을 짓고 밑에는 살망아가 수없이 산다고 하여서 나무꾼 어른들도 곁에 가기를 무서워하는 험한 곳이었다. 나는 어려서 그 산 밑으로 수없이 지나다녔으나 병풍바위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여서 거기는 올라가볼 생각을 내인 일도 없었다. 이 병풍바위에서 한 등성이를 넘은 골짜기가 관음굴인데 관음굴이라는 봉 가슴패기에 앉아있어서 외딸기는 병풍바위 골짜기 이상이지마는 그렇게 험하지는 아니하였다. 양명한 맛이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방향을 그르치면 병풍바위 골로 떨어질 수 있는 자리에서 헤매는 것이었으나 원체 눈 때문에 방향을 분별할 길이 없고 또 어려서 다녀본 길이라 어림도 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무턱대고 잡목 숲속으로 더듬을 수 밖에 없었다. 힘드는 걸음이라 추위는 아까보다는 나았다.

나는 어차피 길을 모를 바에는 어름어름할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발 가는 데로 가리라 하고 뱃심을 내었다. 아무 데로 가기로 해 전에 인가 있는 데야 못 가랴. 하느님이 계시거니 나를 버리시랴 하고 무턱대고 걸었다. 걸었다기 보다는 미끄러지고 굴러 내렸다. 골짜기에 내려갈수록 눈은 더욱 깊었다.

이 모양으로 얼마를 가노라니 깍깍하는 까치 소리가 들렸다. 까치 소리가 나면 인가가 가까울 것이다. 인가면 관음굴일 것이다 하고 나는 새 기운을 얻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사방을 휘 둘러보고 또 무슨 소리나 나는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서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으나 다시 들으려고 좀 더 귀를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없었다. 까치도 다시는 짖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까치 소리도 헛 것이었던가. 사뿐사뿐 눈 나리는 소리와 이따금 마른 가랑잎이 바람에 포로로 떨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참 고요하다.

나는 까치 소리가 나던 방향으로 가리라 하고 발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결에 들은 소리라, 그 방향이 좌편인 것도 같고 우편인 것도 같아서 확신이 없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안 들었을 때 보다도 더욱 마음이 불안하였다. 이것이 눈에 홀렸다는 것인가 하고 나는 소리를 쳐보려 하였으나 입이 얼어서 소리가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두 손으로 입을 싸서 입을 녹혀 가지고 한 번 소리를 쳐보았다. 이것이 내 소린가 할 만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어!하느라고 불렀는데 내 귀에는 우응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렇게 두 번을 불러도 아무 반음도 없더니 세 번만에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저절로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아니요, 분명히 사람이 흔드는 요령 소리인 것 같았다. 나느 기운을 얻어서 더 힘있게, 한 번 더 울려 주오. 길 잃은 사람이요. 여기가 관음굴이요?하고 외쳤다. 그러나 내 어음이 분명치 아니하여서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딸랑딸랑, 딸랑딸랑, 딸랑딸랑.하고 요령 소리가 여러 번 연속하여서 울었다.

인제는 되었다. 나는 소리의 방향도 알았고 거리까지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나는 관음굴 바로 맞은편 언덕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기억에 남은 관음굴의 지형을 생각하면서 골짜기를 건너갔다. 그것이 수월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마침내 관음굴 돌 층층대 밑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우러러 보면 무겁게 지붕에 눈을 인 절이 보이고 돌각담에 야트막한 일각문이 보였다. 나는 층층대를 올라가서 지친 대문을 밀었다. 안으로 걸려 있었다. 노장님, 문 좀 열어 주시우.하고 나는 언 주먹으로 대문을 두들겼다. 내가 무턱대고 노장님이라고 부른 것은, 십년 전에 보던 머리가 하얗게 세인 중을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이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서도 달리는 부를 말이 없었고 또 이런 유벽한 적은 암자에 중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늙은이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웬 일인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거 이상하다.> 하고 나는 구개를 기울이었다. 금방 내 외침에 응하여서 요령을 흔들어 준 것은 그러면 누구였던가. 노장님 문 좀 열어 주시오. , , 오릿골 학교에 있는 사람인데 눈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온 사람이니, 몸 좀 녹혀 가게 해 주시오.나는 이렇게, 안에 있는 사람(만일 사람이 있다면) 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상당히 자세하게 나를 소개하였다.

그제야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뜰로 걷는 소리가 나더니 누가 대문 빗장을 덜걱덜걱한다.

대문이 열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문 안에 선 사람도 놀랐다. 나도 말이 없고 그도 말이 없었다. 피차에 가슴만 들먹거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여서 내 앞에 마주 선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아 머니나!하고 어인이 벙벙하다가, 눈에 고이는 눈물을 고개를 숙여서 떨우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지웠다. 추우시겠어요, 들어오셔요.그는 치마 고름으로 눈물을 씻고 웃음을 지으며 앞을 섰다.

나는 우선 모자와 두루마기의 눈을 털고 퇴에 걸터앉아서 말 잘 안 듣는 손가락으로 얼어붙은 구두끈를 끄렀다. 내 바지가랑이도 무르팍까지 눈 투성이었다.

나는 모자와 두루마기를 툇마루에 벗어놓고 그가 문을 열고 서서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후끈 하는 더운 김은 깨달을 수가 있었으나 눈이 얼어서 방안이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는 내 소매를 잡아끌어서 나를 따뜻한 방바닥에 앉혔다. 그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서 내 두루마기의 눈을 털어서 팔에 걸고 모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쩔까나 하는 모양으로 잠깐 서성서성하다가 내 앞에 두어 자쯤 떨어져서 앉았다. 그제야 내 눈도 좀 녹아서 그의 얼굴과 눈을 볼 수가 있었다. 그의 옷이 소복인 것도 단정할 수가 있었다. 또 그의 얹은 머리에는 댕기가 없는 것도 보였다.

그는 실단이다. 근데 웬 일이셔요?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실단이가 반가운 웃음을 머금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부드럽고도 밑에는 금속성을 품은 어성이 참으로 반갑고 내 언 마음을 녹혔다. 나도 평상스러운 마음이 될 수가 있었다. 미륵바위에 올라갓다가 눈을 만나서, 관음굴로 오는 것이 제일 가까울 것 같아서 이리로 향했죠. 했더니 눈 땜에 길을 잃고 두루 헤매다가 처음에는 까치 소리를 듣고 다음에는 요령 소리를 듣고 가까스로 찾아왔어요. 그 요령 소리가 없었더면 나는 아직도 눈 속에 헤맸을 거야요. 어디 지척을 가릴 수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실단씨야 말로 어째 여기 와 계시오? 나는 아까 대문이 열리고 실단씨가 나타날 때에 이게 웬 일인가 했어요-. 내가 눈에 홀린 것이나 아닌가 했어요.하고 나는 아까 놀라던 감정르 또 한 번 경험하였다. 나도, 나도 그랬어요. 음성이 그런 것도 같았지마는 설마 웬걸 오시랴 했거든요. 아이참 어떻게나 놀랐는지.하고 실단도 그때에 놀람을 한 번 더 경험하는 모양이어서 가슴이 들먹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글세 실단씨가 여기 와 계실 줄을 뉘라 알겠어요? 다시 만날 생각도 못했었는데. 대관절 어째서 여기 와 계시오? 이렇게도 외딴 데 혼자.하고 나는 좀 밝아진 눈으로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서쪽 벽 불탑에는 까맣게 그을은 불상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절의 본존 관세음보살이시다. 금강산 가는 길야요.하고 실단은 잠깐 수삽한 빛을 보이고 나서, 혼자는 아니랍니다. 이 절 노장님이 계셔요. 어머니가 나하고 같이 오셨다가 집으로 가시는 데 노장님도 같이 갔어요. 인제는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안 오는군요. 이렇게 눈이 와서는 오기가 어려울 거야요. 그래서 어떡허나 하고 혼자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김 선생이 오셨군요. 참 무얼 좀 끓여드려야지. 지금 어느 때나 됐을까요?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느 조끼 옷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고, 네 시 반인데요. 거진 해가 넘어가겠는데요.하고 나는 시계를 도로 넣으며, 혼잣말로, , 이거 어쩌나. 이제 학교에를 가려면 저물겠는데. 여기서 이십리가 넘을텐데.하고 걱정을 하였다. 가시긴 어떻게 가셔요? 이렇게 눈이 오시는데. 거기 가만히 누우셔서 몸이나 녹히셔요. 나가서 무얼 좀 끓이겠어요.하고 실단은 밖으로 나간다.

나는 실단이가 부엌에서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하였다-

참말 이상한 일이다. 내가 어찌하여 오늘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그래서 꿈에도 예상 못하였던 실단을 만나게 되었을까. 이렇게 짜 놓은 이가 하느님이실까.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는 것일까. 그렇지 아니하면 한 목사나 윤 장로 같은 이들이 말하는 모양으로 내 신앙을 흔들어보려는 마귀의 시험일까. 또는 단순한 우연일까.

때도 때다. 이것은 칠 년 전 내가 동경에서 돌아와서 실단을 외가에서 만나던 정월 보름 께(모레가 보름이다), 실단은 나의 첫사랑을 끈 여성이요, 아마 나는 실단에게 첫 애인이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 먹은 소년과 소녀의 꿈 같고도 애틋한 사랑이었다. 달빛 아래 밤나무 그늘에서 그가 내 가슴에 낯을 파묻은 것은 그의 가슴에 타오르는 저도 모르는 사랑의 정열이었다. 나는 이 신비한 감촉을 안고 만 사년간 만리 타국에서 그를 그리워 하였다.

재작년 내가 일본서 돌아와서 나는 초례청에 들어가는 한 시각 전에 돌모루 할머니 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것은 그가 처녀로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아직 단장을 아니하고 있었다. 내가 앉았던 방에는 그의 신의와 단장할 제구가 놓여 있었다. 그가 몸을 씻을 대야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도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그를 목전에 놓고도 내 짝을 만들 만한 복도 없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를 생각하고 지어놓았다는 옷을 엉뚱한 사내에게 입혀 보내었다. 나는 사랑하는 그를 못나게도 다른 남자의 초례청으로 들여보내었고 그는 사랑하는 나를 두고 울면서 사랑이 없는 남자의 방으로 울면서 들어갔다. 나는 얼마나 내가 로빈훗이 못된 것을 한하였던고? 이것은 또 뉘가 만들어 놓은 각본이었던고? 나와 그와의 인연이 엷었음인가. 하느님의 뜻이라면 하느님에게 그런 각박한 뜻이 있을 수가 있는가. 그도 깨끗한 처녀, 나도 깨끗한 총각, 둘의 마음에 꼭 같은 사랑을 심어놓고 그것이 일각의 차로 팔팔결 틀리는 엉뚱한 길로 엇나가게 한 것이 착하신 하느님의 뜻일 수는 없었고 그야말로 조물의 시기거나 마귀의 작희였다.

이리하여서 그는 과부가 되고 나는 사랑 없는 아내의 남편이 되어서 둘이 다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무슨 보복일까.

인생의 빛을 잃은 그는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서 평생을 산간에서 마치려는 것이다. 나도 방랑의 길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지 아니한가. 망국의 비애를 품고 해외에 망명한다는 로맨틱한 감정도 있거니와 꼬치꼬치 파보면 실단을 잃은 허전함이 그 참 원인이 아닐까.

이렇게 실단과 나와의 사랑이 모래 위에 엎지른 물이 되었거든 서로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여든 무엇하러 다시 이렇게 서로 만나게 하였는고? 이제 우리 둘이 합한다 하더라도 벌써 지난날의 그와 나는 아니다. 그는 이미 남의 아내였고 나는 남의 남편이다. 그와 나는 이 세상에서는 뻐젓한 애인도 될 수 없고 부부는 더욱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도덕과 사회제도가 이를 금할 뿐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하늘 닿은 끝까지 달아나서 세인의 이목을 피할 수는 있다손 치더라도 제 마음의 밝음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죽었다가 오는 생에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미 묻은 때는 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실단은 과부요 나는 아내 있는 남자다. 안타깝게도 회복할 수 없는 일 저지름이다. 과거로 하여금 과거를 장사하게 하라 함은 남녀 관계에서만은 될 수 없는 말이다.

그러하거늘 우리 둘은 왜 다시 만났는고? 만나니 반가왔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는 반가움이다. 도리어 더 애가 타고 기가 막히게 하는 반가움이다. <조물의 작희다! 과연 조물의 작희다! 두 사람의 생채기를 더 아프게 하려고 짜 놓은 악마의 흉계다!> 하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실단이가 때는 불에 내가 앉은 자리가 점점 더워 올라왔다. 나의 실단에게 대한 여러 가지 공상은 끝이 없었으나, 얼었다 녹은 몸은 꼬박꼬박 졸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또한 내가 실단에 대한 흥미가 식은 표일는지도 몰랐다. 나는 앉은대로 졸고 있다가 문을 여는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실단은 불기에 밥을 담아서 다홍 행주를 덮어 들고 들어와서 불탑에 놓았다. 그리고는 불탑 옆에 달린 경쇠를 땅땅땅 쳤다. 곡조는 맞지 아니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 듯이 합장을 하고 수없이 절을 하였다. 절도 아직 어울리지는 아니하였으나, 그 속에서 그의 불도에 향한 결심과 정성을 엿볼 수는 있었다. 꽃 같은 청춘으로서 남편의 거상을 입는 소복만 하여도 청승맞으려든 세상의 영화를 모두 끊고 평생을 산간에 보내려는 그 결심은 더욱 애끓는 일같이 보였다. 나는 새파랗게 머리를 깎고 남복을 입고 가사와 장삼을 걸친 실단을 눈 앞에 그리면서 그가 절할 때마다 너푼거리는 하얀 자락을 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방바닥에 움직이는 실단의 하얀 버선발이 이상한 감촉을 주었다.

나는 밥을 먹고 간다고 일어났다. 이것은 내 이면치레였다. 정말 갈 생각도 없거니와 다 어두운 이때에 눈 깊은 산길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외딴 산골 단간 방에서 젊은 남녀가 단 둘이 잔다는 것은 괴변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 지금 어떻게 가시우, 눈 깊은 산길을?하고 실단은 내 손에 들린 두루마기를 붙들었다. 그러기로 여기서 어떻게 자오? 노장이나 계시면 몰라도.하고 나는 두루마기를 빼앗기지 아니하려고 지그시 잡아당기면서 실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등잔불 빛을 받은 그의 반면이 해쓱한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싸늘한 빛이었다. 그래도 못 가시우.하고 실단은 담대하게도 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서 두루마기에서 떼어버리고 그것을 횃대에 가져다가 걸어 놓고 다시 내 곁으로 와서, 오늘은 여기서 묵어 가셔요. 이 세상에는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을 것을. 우리 이 밤이 새이도록 실컷 이야기나 해요. 나도 김 선생께 하고 싶은 말이 태산 같고 김 선생헌테 듣고 싶은 말도 수수만만이야요. 자 저기 아랫목에 가 앉으셔요.하고 살짝 내 어깨를 떠민다.

나를 아랫목에 붙들어다 앉혀놓고 자기도 목꺾어 내 옆에 와 앉는다. 한 무릎을 세우고 치맛자락으로 발과 무릎을 가리우는 양이 외가에서 윷놀이 할 때의 그의 자세 그대로다. 오직 달라진 것은 그의 머리와 옷이다. 그때에는 땋아 늘였던 머리가 지금은 해얹었고 그때에는 분홍 치마 노랑 저고리던 것이 지금은 눈 가루가 날릴 듯한 소복이다. 얼굴은 처녀 적 까무스름하던 빛이 벗겨져서 창백하게 되었으나 그의 특색 있는 눈과 입 모습은 여전하였다. 벌써 칠년이 되엇죠, 우리가 윷을 놀던 그때가?나는 이런 말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실상 이것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럼요. 그날은 달이 밝았지.하고 실단은 멍하니 옛일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 근육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석바꾸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나도 말없이 그때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날은 다시는 못 돌아오죠?하고 실단은 울음을 삼키는 듯이 입을 꼭 다물었다. 그날에는 슬픔도 울음도 모르는 실단이었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날이 한 번만 더 돌아왓으면. 한 번만, 단 하루만.하고 실단은 눈을 크게 떠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의 왼편 눈이 바른편 눈보다 작은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자고 나면 새 날, 자고 나면 새 날, 늘 새 날이 오는 게 좋지 않아요?나는 이런 말을 하였다. 하고 나니 이런 소리는 실단이가 기다리는 말도 아니요 내가 할 말도 아니라고 깨달았다. 좀 더 실단의 정열에 가락을 맞추는 말이었어야 할 것이었다. 나의 교원 생활이 이렇나 교훈적인 말을 하게한 것이었다.

실단은 과연 내 말이 불쾌한 듯, , 새 날이요? 나 같은 사람헌테 무슨 좋은 새 날이 와요? 자고 나면 더 슬픈 날, 더 괴로운 날이지요. 하루하루 세월 거꾸로 흐른다면 좋은 날도 있겠지마는 거꾸로 간다면 그날, 외가댁에서 우리들이 윷놀이 하던 날도 돌아오겠지마는. 인제는 다 틀렸어요.하고 하염없이 한 번 웃고 나서, 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면서, 그래도, 오늘은 김 선생을 만나 뵈었으니 좋아요. 김 선생도 인제는 그때 도경씨는 아니시지마는, 그래도 반가와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윷놀이하던 날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안 되죠? 다 틀렸죠? 김 선생은 다른 이의 남편, 나는 다른 사내의 과부! 안 돼! 안 돼! 그 날은 다시는 못 돌아와!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것은 다 슬픈 일을 겪어보고 절망하는 마음을 가져본 사람만이 하는 재주였다.

실단의 이런 몸짓을 보는 것이 무척 가여웠다. 그가 벌써 산전 수전 다 겪은 늙은이와 같이 보였다. 아직도 응석을 부리고 무엇을 보나 우습고 재미 있어서 깨득거릴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새에 슬픈 표정과 절망이 제스처가 자리가 잡힌 것이다.

나는 또 교사의 버릇을 내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너무 비감하지 마시오. 아직도 인생이 시작아 아니오? 책으로 말하면 인제 겨우 두어 장 밖에 안 넘긴걸.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대목이 있을지 알아요? 하그님께서 다 마련이 있으시겠지. 실단씨같이 아름답고 착한 사람을 내실 때에는 하느님의 뜻이 다 있으실 게요. 지금 같아서는 실단씨 신세가 참 딱하지만 내일 일을 어떻게 알아요? 무슨 좋은 일이 올지 어떻게 알아요?」 「좋은 일?하고 실단은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 모양으로 새침해지며,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세상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서 산 속으로 들어가는 년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 좋은 일이 하나 있겠지요. 죽는 일이. 인제 내게 남은 좋은 일은 죽는 일 밖에 없을 게야요.하는 그의 몸에서는 찬 바람이 훅훅 부는 것 같았다. 이것도 내가 처음 보는 실단이었다. 그는 벌써 여성을 초월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그와 대립하여서 그의 신념을 깨뜨리는 입장에 서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 그래요? 당신 생각은 너무나 구식이요.하고 승벽을 내어서, 지금 세상에야 다시 시집가는 것도 흠이 아니오. 아픙로 몇 해 동안 공부나 하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또 혼인할 수도 있지 않아요? 또 혼인을 아니하더라도-.하는 내 말을 중동을 꺾어서, 실단은, 아니, 날더러 또 개가를 하란 말씀야요?하는 소리는 날카롭고 샐쭉한다. 나는 아차 하고 내가 한 말을 후회하였다. 아직 초상과부더러 재가를 권한 것은 과연 실례였다. 실단의 눈에 노염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단의 노염이 여기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였을 때에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실단의 말은 이러하였다. 너 같은 헌 년은 열 스무 번 훼절을 해도 좋단 말씀이죠? 그 말씀 들을 만도 해요. 내가 정말 단정한 계집이면야 언제까지라도- 평생이라도 당신을 기다리지 왜 시집을 가요? 그날 당신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기까지 한 걸 내가 왜 초례청엘 들어가요? 왜 내가 그날 당신께 매어달려서, 난 다른 데로 시집은 안가요, 날 데려가요, 하지를 못하였어요? 그러고는 마음은 당신한테 두고 몸만이 다른 데로 시집을 갔어요. 그랬다가 과부가 됐어요. 그러니깐 어차피 훼절한 헌 계집이지요. 그러니깐 당신이 나를 업수이 여겨서 개가해라 하시는 게죠? 당신한텐 그런 말 들어 싸요, 싸고 말고요. 그렇지만 나도 원통한 것이 있어요. 당신을 원망할 것이 있어요. 그날 왜 날더러 다른 데 시집가지 마라 하고 한 마디 못해 주셨던가요. 나는 당신의 입에서 그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암만 기다려도 당신은 그말 한 마디를 안해 주셨습니다. 그집 할머니도 나가시고 우리 어머니도 가시고 당신하고 나하고 단 둘이 있을 때가 있었죠? 한참 동안이나 단 둘이만 있었죠. 그런데도 당신은 암 말도 없지 않았어요? 만일 정말 나를 사랑하셨다면 한 마디 무슨 말씀이 있을 것 아냐요. 나는 그때에 당신이 나를 껴 안아 주기를 기다렸어요. 그랬더면 내가 왜 가기 싫은 시집을 가요? 신랑은 온다고 그러고 하늘같이 믿는 당신의 입에서는 암 말도 없고, 그래서 나는 에라 될 대로 되라 하고 시집을 간 게야요. 내가 세상을 버린 것은 그날에요.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하고 절통해요. 나는 아마도 제 명에는 못 죽을 거야요. 나는 첫날밤에도 물에 빠져 죽을 양으로 뛰어 나왔었어요. 어머니헌테 들켰지요. 시집이라고 가서도 목을 매어 죽을 생각도 해보았어요, 뒤꼍 밤나무 가지에 목매달아 죽을 생각도 했지마는 이대로 죽는 것이 원통한 것 같아서 아직도 살아 있었어요. 은근히 이런 생각도 하여 보았어요. -한 번 당신을 만나면 내 속엣 말이라도 해보았으면 시원하겠다고,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그랬더니 부처님이 도우심인지 오늘 천만 염외에 당신을 만나 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날더러 또 시집을 가거라 그러셨습니다. 무에라고 하셔도 좋아요. 무에라고 하셔도 모르는 체 하시는 것보다는 고맙지마는, 왜 내 머리채를 검어쥐시고 이년, 이 배반한 년, 하고 때려 주지를 아니하셔요? 그리셨더면 내가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렇지만 마음에 없으신 사랑을 어떻게 억지로 보입니까.하고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그래 내가 그날 당신께 매달렸더면 당신께서 나를 뿌리치시기는 아니하셨을 거야요. 내가 가여워서도 나와 혼인을 하셨을 거야요. 그랬더면 지금 이 꼴이 안 되었을 거야요. 생각하면 다 제 잘못이지, 다 제 팔자구요. 그런 줄 알건만도 이렇게 설어요.하고는 무릎 위에 얼굴을 대고 흑흑 느껴 울기를 시작한다.

나는 들먹거리는 실단의 어깨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하엽없이 앉아 있었다. 무한히 가엾건마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은 독립한 한 세계다. 슬픔도 그 혼자의 것이요 기쁨도 그러하다. 옆의 사람이 어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실컷 한대야 같이 울어 주고 같이 웃어 주는 일이 있을 뿐이다.

실단이가 슬피 우는 양을 보면 나도 슬펐다. 더구나 그의 슬픔의 원인이 내게도 있다 하면 더할 수 없이 미안하였다. 그러면 어찌하나? 더할 길이 없지 아니 하느냐. 울지 마오.하고 나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울면 무엇하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앞날 일이나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소? , 그만 울고 이야기나 합시다. 내가 수절하는 당신더러 구태 개가하라는 말이 아니오. 하려면 할 수도 있단 말이지. 나도 딱해서 하는 말 아니오? 서울이라도 가서 이화 학당 같은 데서 공부나 하고, 그러고-.하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실단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싫어요, 싫어요! 공부도 다 싫어요. 땅에 떨어졌던 밤을 다시 주워 먹을 생각은 없어요. 그만큼 말을 해도 내 속을 몰라 주셔요. 내 속을 알아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어요. 아버지도 몰라 주시고 어머니도 몰라 주시고 당신도 몰라 주시고- 그러니깐 나는 머리를 깎고 금강산으로 가는 거야요. 구름과 물 소리와 벗을 삼아서 죽는 날까지 살아 가자는 거야요.하고는 두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고 일어나 나가버린다.

그가 다시 들어올 때에는 언제 내가 울었느냐 하다시피 빙글빙글 웃는 낯이었다. 그는 세수를 한 모양이었다. 눈이 그쳤어요. 바람이 나오고.그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나는 그의 속을 알 수 없었으나 방안을 내려누르던 무거운 기운이 없어진 것만은 좋았다. 나는 비로소 자유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동시에 그는 내게서 천리 만리 먼 곳으로 떠나 간 것 같았다. 인젠 주무셔야지.하고 실단은 어찌 할까나 하는 모양으로 방을 둘러보더니 불탑 밑에서 이불 보퉁이를 꺼내었다. 까치와 같은 무늬 있는 이불보였다. 그것이 새로운 것이 새색시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그에게 잠자리를 정하는 자유를 줄 겸 밖으로 나왔다. 과연 눈은 그쳤으나 아직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하얀 산의 윤곽도 보이고 나무들의 모양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찬바람이 내 화끈화끈한 이마를 스쳐 불었다. 가슴속까지 서늘하여짐을 깨달았다. 나는 옛 기억을 더듬어서 약물이라는 샘 있는 곳을 찾아 내려갔다. 그것은 키작은 관목들이 다닥다닥 거꾸로 달린 댓길이나 되는 바위 밑이었다. 하얀 눈 속에 까만 샘이 보였다. 돌 위에 엎어 놓은 바가지에 눈이 아니 덮인 것은 금방 실단이가 쓴 표였다. 나는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양치하고 벌컥벌컥 마셨다. 창자 속에 찌르르하도록 차다. 나는 그 물로 씻고 낯을 닦았다. 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나는 샘가에서 잠깐 비켜서서 기도를 올렸다. 나는 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든가,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어쩌고 어쩌고 하는 판에 박인 기도의 문자를 쓰기도 싫어하고 또 쓸 줄도 모른다., 그것은 한 목사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이 다 형식이요, 허위인 것 같아서 들으면 반감까지도 났다. 이것은 내가 아직 예수 교인으로서 자리가 잡히지 아니한 탓인 것 같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배울 마음은 없었다. 나의 기도는 오직 참회의 기도였다. 그리고는 주의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하는 것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는 것이 내가 빌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더구나 평생에 두 번 있기도 어려운 이 이상한 하룻밤을 지내려는 내가 빌 것이 이것 밖에 또 있는가. 내 뜻이 이루어지지 말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러함으로 실단이라는 한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길에 들어오게 하시옵소서하는 것이 내 기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내게는 감당키 어려운 짐이었다. 그야말로 성신의 도움이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려나 나는 내 힘을 다하여 옳은 일을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미륵봉의 기도는 분명히 내 약한 마음에 새로운 힘을 준 것 같아서 든든하였다.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이기어 낼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보셔요, 여보세요.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실단의 소리다. 네에.하고 나는 대답하고 층층대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어디 계셔요?」 「여기야요. 약물 먹으러 왔어요.하고 뜰에 올라섰다. 실단은 팔짱을 끼고 마당에 나와 있었다. 추운데 무얼 하고 그렇게 오래 계셔요? 난 한참 찾았어요.나는 기도를 올렸다고는 아니하였다. 기도란 비밀이기 때문이다. 으슥한 곳에서 하느님과 단 둘이서만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날이 저만큼 왔을 거야요. 오늘이 열 사흘 아냐요?실단은 아까 울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상쾌한 모양이었다.

내가 실단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을 내버려두고 실단은 층계를 올라가며, 어서 들어와 주무셔요.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에 구름이 동북 쪽으로 물결을 지우며 상당히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높은 곳에는 꽤 힘찬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푸른 하늘과 밝은 달이 나올 것 같았으나 그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구름 틈으로 번쩍 보이는 푸른 하늘과 밝은 달이 보고 싶었다. 그것을 보았으면 가슴에 뭉킨 것이 탁 터질 것 같았다. 바람이 눈보라를 날려오며 풍경이 스르릉 울었다.

나는 방에 들어갔다. 실단은 등잔에 기름을 치고 있었다. 밤 동안에 꺼지지 않게 하려면 밤중에 한 번 기름을 쳐야 하는 것이다.

아랫목에는 다홍 깃을 단 남빛인가 싶은 명주 이불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두어 자쯤 떨어져서 자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보매 때가 많이 묻은 성싶은 처네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아마 이 절 노장의 것인가 싶었다. 저 아랫목에서 주무셔요.하고 실단은 내게 벨 베개를 바로 놓으면서, 이것이 김 선생을 생각하고 만들었던 것야요- 사랑 이불로. 그래서 이렇게 요도 좁고 이불도 좁답니다. 오늘 한 번 주인이 써 보셔요. 난 여기서 자요.하고 그 더러운 처네를 들어서 아랫도리를 가리우고 앉는다. 아니, 이전에는 이 절에 남자 노장이 있었는데.하고 나는 자리 옆에 앉으며 뚱딴지 말을 하였다. 실단의 애끓는 추억을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아냐요. 보살인데.하고 실단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한다. 아냐 내가 어려서 왔을 적에는 여기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고 얼굴이 붉과한 노장님이 계셨어. 아마 팔십은 되었을 게야.나는 이런 소리를 중얼거렸다.

실단은 고개를 끄덕하며, 옳아, 이 노장님이 심원 절에서 왔대. 도솔암인가 하는데 있다 오셨대요.하고 멀거니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을 보인다. 나는 그가 자기도 몇 십 년 후면 쪼그라진 보살이 되어서 혼자 이 절에서 저 절로 굴러다닐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면 나는? 나는 늙어 꼬부라져서 무엇이 될 것인고? 하니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우두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단은, 어서 누우셔요. 먼저 누우셔야 나도 누워요.하고 이불보를 접어서 제 베개를 만든다. 요도 안 깔고?」 「중은 깔개 없이 잔다면서요?」 「중은 그렇겠지마는,」 「세상에 요 못 깔고 자는 사람이 더 많지요.하고 실단은 웃는다. 정말 중은 누더기 하나로만 살아야 한 대요. 누더기 하나가 낮에는 옷이 되고 밤에는 이불이 되고- 그래야 한 대요. 중은 일절 중생의 수고로 만든 것을 받아서는 안 된대요. 중생이 먹고 내버리는 것을 얻어먹고 중생이 내버리는 헝겊으로 쪽모이를 해서 누더기를 만들어서 입고 살아야 정말 중이래요. 말을 들어보면 그게 참 옳은 일야요. 커단 집에 배불리 먹고, 뜨뜻이 불 땐 방에다가 포근한 요 깔고, 가쁜한 이불 덮고 그리고 남편이니 아내니 하고 호강스럽게 살자니깐 모두 걱정이지, 그 욕심만 버리면야 무슨 걱정야요? 아미타불님이 거러셨다나요, 중생 중에 단 한 중생이라도 배 고프고 헐벗고 고생하는 자가 있으면 당신은 성불 아니하시겠노라고- 노장님헌테 들은 소리니깐 자세힌 몰라요. 그래도 아무려나 그런 뜻이야요. 거 좋은 말씀 아냐요? 그러니깐 나도 그 도를 닦아보려는 거야요. 누더기 하나 만으로 살아보려는 거야요. 그러니깐 나 자는 걱정 마셔요. 자 어서 주무셔요 어서!나는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실단의 말에 저항할 수 없어서 순순히 복종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 말에 거역할 수가 있으랴. 그의 말이야말로 성인의 말이요 하늘의 말이었다. 그 단순한 표현 속에 인생의 모든 진리가 품겨 있는 것 같았다. 중이 과연 그런 것이라 하면 나도 실단의 뒤를 따라서 중이 되고 싶었다. 나는 인생에 대한 모든 의문이 환하게 풀린 것같이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나는 대체 무슨 전도를 하였는고? 내가 무엇을 알았다고 남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고? 나는 내가 집이 오막살이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내 월급이 적은 것을 불행하게 생각지 아니하였는가. 누가 나를 조금만 덜 대접해도 노하지 아니하였는가.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 재물, 지위, 명예, 호강을 다 탐내지 아니하는가. 중생에게 일절 폐를 끼치지 아니하는 생활- 아아 그것만이 오직 사랑의 생활이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 견대를 지니지 말라, 주라, 받을 생각을 말라, 때리거든 맞으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섬기라 섬김을 받지 말라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새로운 빛과 힘을 가지고 기억에 떠올라왔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베개 둘 곳이 없노라.하신 예수의 생활은 실단이가 말한 누더기 한 벌의 생활이었다.

잠이 들었다가 깨었을 때에 벌써 실단은 방에 없고 부엌에서 땔나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네 시. 그러면 실단은 잠이 못 들고 있었던가. 실단이가 누웠던 자리를 만져보니 얼음장과 같이 찼다. 오랫동안 방을 아니 고친 탓인가, 아랫목만 더운 모양이었다. 늙은 중이 혼자 꼬부리고 자는 방이라, 방석만큼만 더우면 그만일는지도 모른다. 나만 따뜻한 자리에서 단숨에 내쳐 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나는 실단이가 아궁이 앞에서 타는 불을 바라보면서 앉았을 모양을 생각하면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고 별이 총총하게 반짝거렸다. 날이 새려면 아직도 두 시간은 있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세수를 할 생각으로 부엌 앞을 멀찍이 지내어서 샘으로 내려갔다. 새벽 바람은 마치 천인지 만인지 모르는 바늘이 일시에 살을 찌르듯이 찼다.

나는 날이 새면 마당의 눈이나 쳐 놓고 가리라 하면서 문 소리 안 나게 방에 돌아와서 도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모처럼 나를 위하여 불을 때어 주는 실단의 호의를 깨뜨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실단이와 나와 부부가 되었더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뒤를 이어 나오는, <그랬더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무서워서 비벼버렸다. 그것은 무서운 생각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실단의 말과 같이 그의 초례날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날에, 내가 용기를 발하지 못한 것이 영원한 실패였다. 다시는 그와 나와 부부가 될 기회는 없는 것이다. 엎질러진 물이다. 그야, 그와 나와 몸으로 한데 모여서 살 수는 있다. 이미 동정을 잃어버린 그와 나와는 하나로 합하여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곁에는 다른 남자의 그림자가 따르고 내 옆에는 다른 여자의 그림자가 쫓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는 한 번 남자를 접하면 그 혈액에까지 그 남자의 피엣 것이 들어가 온 몸의 조직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이 꾀꼬리 피를 처녀의 피부 밑에 넣어 붉은 점이 남게 하였단 말이 인생의 이 미묘한 심리 때문이다. 혼인 첫밤을 지나면 이 앵혈이 스러진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은 몰라도 사람은, 그중에도 여자는 평생에 한 번만 이성을 사랑하게 마련된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처녀와 총각의 사이에만 있을 것이다. 두 번, 세 번째 사랑은 암만해도 김이 빠진, 어딘지 모르나 꺼림칙한 구석이 있는 사랑이다. 사랑은 한 번만 할 것이다.이것이 진리인 것 같다. 내가 실단을 그리워하는 생각이 여전히 간절하기는 하면서도 이제 와서는 그와 몸으로 합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관음굴을 떠날 때에 실단은 일어서 나가려는 내 품에 와서 안겼다. 칠년 전 한 보름날 밤 외가집 밤나무 수풀에서 하던 고대로의 자세로 그는 두 손을 내 젖가슴에 대고 얼굴을 내 가슴에 묻었다. 나는 두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얹어 사랑하는 정을 표하였거니와, 그때 모양으로 가슴도 두근거리지 아니하고 숨도 차지 아니하였다. 귀엽고 반가왔으나, 그것은 형제의 정일지언정 애인의 정은 아니었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였는지 내 가슴에서 고개를 들고 한숨을 지었다.

이것이 실단이와 나와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그로부터 사오 년 후에 나는 그가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그의 도력이 번뇌를 이기지 못하였음인가. 나는 아직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지 못하거니와 그렇게도 이쁘고, 얌전하고 재주 덩어리, 열정 덩어리이던 한 여성이 무엇하러 세상에 와서 그런 불행한 생활을 하고 간 것일까 하고 근 사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가끔 그를 생각하고는 슬퍼한다. 정말 중은 누더기 하나로만 살아야 한 대요. ......커단 집에 배불리 먹고, 뜨뜻이불 땐 방에 포근한 요 깔고 가쁜한 이불 덮고 그리고 남편이니 아내니 하고 호강스럽게 살자니깐 모두 걱정이지, 그 욕심만 버리면야 무슨 걱정야요?하던 그 복음을 내게 전하러 이 세상에 나왔던 것인가. 그리고 저는 그 욕심만 버리면야하던 그 욕심을 버리려고 애를 쓰다 쓰다 못하여 죽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내 소년 시대의 마지막을 더럽힌 문의 누님 사건을 반복하지 아니하고 실단이와의 깨끗한 작별로 내 청년 시대의 허두를 삼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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